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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변화] (2014/05)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사회 개혁,개조에 혁명의 횃불을 들라! → (2016년 11월) 민중이여! 시민이여! 박근혜 하야,탄핵 추방 위해 촛불 대신 혁명의 횃불을 들자!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6/11/21 20:12:06)

[한 세월 격세지감] (2014/05)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사회 개혁,개조에 혁명의 횃불을 들라! → (2016년 11월) 민중이여! 시민이여! 박근혜 하야,탄핵 추방 위해 촛불 대신 혁명의 횃불을 들자!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 기자


↑ 거리로 튀쳐나가기 않으면 질식할 것같은 사회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이런 내가 미쳐가는 것 같았다. 사진은 여의도 새누리당사로 가는 마포대교 위 - 지난 4,5,6월,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 대한민국 1인혁명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자료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바랬던 필자는, 박근혜정부 출범과 동시에 나의 기대가 무색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2014년 5월엔, '[논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사회 개혁,개조에 혁명의 횃불을 들라!'고 부르짖기에 이르렀다. 이미 우리사회 돌아가는 꼴이 개판이 돼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 눈에 보인 박근혜는 혼과 넋이 빠져 있었다.

2016년 4월, 결국 박근혜가 우리사회를 질식시키는 주범이라고 종합되었다. 가만 있으면 답답해 숨이 멋을 것같아 견딜 수 없었다. 거리로 튀쳐 나갔다. 소위 광화문에서 '서울포스트(양기용 발행인)의 대한민국 1인혁명'이 시작되었다. 난 항상 너무 빠르다.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대낮에 미친 놈처럼 불쑥 내뱉은 '혁명!'. 부수적으로는 국민과 함께 '어떤' 희망을 갖고 싶었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가 최초로 워터게이트사건을 보도하고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켰다면, 한국의 서울포스트 가 최초로 박근혜정부를 향해 '혁명'을 외쳤다고 하면 날 또라이라고 하겠지만, 마침내 2016년 10월부터 광화문에는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난 참으로 기분 좋고 보람된 역사의 한 장을 썼다.

2016년 11월, 이제 민중이여! 시민이여! 박근혜 하야,탄핵,추방 위해 촛불 대신 혁명의 횃불을 들자! (龍)


↑Before, After↓

▲ 올 봄 - 4월,5월,6월 나 홀로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 대한민국 1인혁명'을 외쳤던 광화문에, 11월엔 100만이 모여 민중혁명,시민혁명,국민혁명을 외치고 있다.
ⓒ2016111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아래 기사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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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워터게이트보다 더 심각"
kbs백진원 입력 2016.11.17 17:56 수정 2016.11.17 18:03


"내 일생 결코 중도 포기란 없었습니다. 지금도 임기 만료 전 떠나는 것에 내 본능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이에 나는 내일 정오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합니다."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1974년 8월 8일 행한 사임 연설의 한 대목이다. 그 12일 전인 7월 27일 하원 법사위는 닉슨에 대한 3건의 탄핵 사유를 승인, 본회의 표결에 넘겼다.

당시 미 전역에 TV 중계된 닉슨 대통령의 사임 연설 내용을 더 들어 보자.

"미국의 대통령과 의회는 국사에 전념(full-time)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많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내가 나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 싸워나간다면 앞으로 몇 달씩 대통령과 의회는 모든 시간과 관심을 여기에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현시기는 나라 밖에선 평화를 지키고 나라 안에선 인플레이션 없는 번영을 이뤄나가야 하는 커다란 과제들에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한 달여 뒤 닉슨은 부통령으로서 그의 잔여 임기를 승계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으로부터 특사를 받음으로써 기소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닉슨의 사임 결단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상대 당인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을 도청한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일반 여론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화당마저 등을 돌리는 바람에 의회에서 탄핵안 가결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최순실 게이트가 미국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 전문가들을 인용해 최순실 스캔들을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 도청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하야한 미국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비교했다.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 한국학 교수는 WP 인터뷰에서 "최순실 스캔들이 심각한 정도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보다 크다"고 분석했다.

국가정보원 1차장,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도 '워터게이트'를 언급하며 "이 사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닉슨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라고 WP에 전했다.


닉슨도 순순히 사임하지는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백악관 집무실 녹음테이프 제출 문제를 놓고 1973년 7월부터 1년 가까이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다 녹취록 공개 후 공화당 상·하원 원내대표가 모두 대통령의 사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선회하자 결국은 포기했다.

닉슨은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는 특검에게 영장 철회를 주문하다 말을 듣지 않자 법무부 장관과 부장관에게 특검을 해임토록 명령했다. 미국에선 검찰총장을 겸하는 법무부 장관이 특검 임면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거부하고 항의의 표시로 사임하자 법무부 서열 3위인 차관을 시켜 끝내 해임했다. '토요일 밤의 학살'로 불린 사건이다. 그러나 여론의 역풍이 크게 일자 닉슨은 새 특검을 임명토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최순실 스캔들'은 정치 부패라는 고질적인 '한국병'이 얼마나 여전한지를 보여준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서울발로 보도했다.

WP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집어삼킨 최순실 스캔들은 부패, 뇌물, 횡령, 권력남용 등이 여전히 반박할 여지가 없는 한국 사회의 구성 요소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WP는 "30여 년 전 군사정권 시절 데모와 비견될 정도로 규모가 컸던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이 강제 퇴출당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리스크 분석을 하는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 그룹은 박 대통령의 퇴진 가능성을 70%까지 보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대규모 집회에서 나타났듯이 '그림자 대통령'에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려는 박 대통령의 시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이날 '한국 박 대통령, 디톡스 클리닉에서 여배우 이름 가명 사용'이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박 대통령의 '길라임' 가명 논란을 보도했다.

로이터는 "박 대통령이 미용·노화방지 클리닉 차움의원에서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 여주인공 이름 길라임(Gil Ra-im)을 가명으로 썼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길라임이 패러디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희귀한 게이트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른다. 백진원기자 ( jwhit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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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하야 '결정타'는 워터게이트 아닌 거짓말
한국경제 이상은 기자의 Global insight 입력 2016.11.18 17:48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증거 은폐·특검 해임 명령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호텔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도청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72년 6월17일이다. 많은 사람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연루돼 곧바로 하야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실제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1974년 8월9일이다. 약 2년2개월 동안 그는 자리를 지켰다.

자리를 지킨 정도가 아니었다. 1972년 11월7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538명 선거인단 표 중 520표를 얻으며 압도적으로 재선됐다. 워싱턴포스트가 사건 발생 이틀 후부터 공화당과의 연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10월10일엔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가 공화당과의 관련성을 인정했지만 사람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3년 5월 상원이 워터게이트 위원회를 만들어 청문회를 하고, 그 내용이 TV로 생중계되면서부터다. 그해 7월13일 청문회에 출석한 알렉산더 버터필드 닉슨 부보좌관이 “1971년부터 닉슨은 집무실에서 이뤄진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고 폭로하면서 사건의 폭발력이 커졌다.

닉슨은 솔직하게 사과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은폐를 지시했다. 6월23일, 닉슨은 내용이 일부 삭제된 테이프를 공개하며 “비서의 실수로 훼손됐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10월20일, 닉슨은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명령했다. 법무부 장관이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며 사임했다. 권한대행이 된 윌리엄 러클즈하우스도 거부하고 사표를 던졌다. 윌리엄 보크 송무차관이 대신 콕스 검사를 해임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보도했다.

닉슨이 연루됐다는 버터필드 증언 후에도 그는 1년여 더 대통령 노릇을 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집무실 녹음테이프 원본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통치행위’라고 변명했다.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면 안보상 큰 위협을 받는다고도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원고가 돼 피고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테이프를 공개하라는 재판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1974년 7월24일 미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3개의 삭제 전 원본 테이프가 의회에 제출됐다.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음이 명백해지자 의원들은 모두 등을 돌렸고, 하원 사법위원회의 세 차례에 걸친 탄핵권고 표결은 모두 가결됐다.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하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 최초로 하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인들은 도청 행위 자체보다는 그가 권력을 남용하고, 비위 사실을 은폐하려고 애썼으며, “나는 사기꾼(crook)이 아니다”며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것에 더 분노했다.

1974년 8월8일 닉슨은 하야 연설에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모든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대통령과 모든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문제에 직면한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변론을 위해 몇 달씩 싸움을 계속하게 되면 대통령과 의회 모두의 시간과 관심이 거의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일 낮 12시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하려고 합니다.”

비록 탄핵이 임박해 불명예를 피하려 스스로 자리를 내놓긴 했지만 닉슨은 (무고하지 않은) 자신의 변론을 위해 무리하게 버티며 국가적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에 결국 동의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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