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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북한산 아름다운 길⑪ - 평창계곡 올라 보현봉,문수봉 거쳐 태고사(중흥사지), 산영루-①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4/09/09 22:42:51)

[탐사] 북한산 아름다운 길⑪ - 평창동계곡 올라 보현봉,문수봉 거쳐 행궁터, 태고사(중흥사터), 산영루-①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① 평창동계곡 - 일선사(一禪寺) - 보현봉(普賢峰 714m) - 대남문(大南門) - 문수봉(文殊峰 727m) -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 - ② 715봉 - 상원봉능선(上元峯) - 남장대지(南將臺址) - 행궁터(行宮址) - 태고사(太古寺) - 중흥사지(重興寺址) - 산영루(山映樓) - 대서문(大西門)]

▲ 보현봉에서 본 남방 최고봉 문수봉, 대남문, 북한산 정상부, 도봉산까지. 북한산국립공원 전체를 한 장에
ⓒ2014090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도봉산 정상에서 본 북한산. 맨 뒤쪽 능선 오똑한 곳이 보현봉 ⓒ2014 서울포스트자료

▲ 인왕산에서 본 보현봉과 문수봉 ⓒ2012 서울포스트자료
▲ 용마산에서 본 북한산 ⓒ2014 서울포스트자료
▲ 예봉산에서 본 북한산 ⓒ2013 서울포스트자료
▲ 운길산에서 본 북한산 ⓒ2013 서울포스트자료

북한산 남방에 우뚝 솟은 보현봉은 대부분의 서울지역에서 그 기세를 담방에 알아 볼 수 있어, 조선의 도읍지로 풍수를 떠나 중요한 지리적 좌표역할을 해 오고 있다. 여기에 있는 설치물이 아무리 국립공원 관리에 유익하든 국민 공익에 도움을 주든 미관상 이전 설치되어야한다는 개인적 견해에는 변함이 없어, 공단의 승인을 받아 구체적인 현장 실상을 담았다. 빠른 시일내에 엉뚱한 사람들이 엉뚱한 행위목적으로 찾다가 사고를 낸 일이 근절돼 보호구역에서 해제되어 건강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현재 보현봉은 공단의 출입허가없이 개인적으로 갔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한다. 북한산에서 대표적으로 사이비 종교자들이 찾는 곳이지만 기도빨이 늘었다거나 효과를 봤다는 경우는 한 사람도 못봤다. 오히려 귀신에 홀렸는지 추락사고가 가장 많은 곳이 여기다.

북한산은 북쪽 세 고봉(백운대,인수봉,만경대)과 남쪽 세 고봉(문수봉,보현봉,715봉)이 정릉계곡,보국문,산성계곡을 기점 삼아 나뉘어진 지형구조다. 이미지에서 남쪽은 1봉인 문수봉을 제치고 2봉인 보현봉이 대표성을 띠며, 북쪽은 2봉인 인수봉이 북한산을 대표한다. 인수봉은 '부아악(負兒岳 아이를 업고 있는 바위)'이라고 해서 북한산을 부아악 이라고 부른 시대도 있었다. 또 과거부터 강한 남성성의 상징(성기를 나타낸 인수봉)으로 본 토템신앙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강하고 뚜렷한 상징의 북한산이 흐리멍텅(?)한 소(牛)로 둔갑한 것도 일제때다. 우이동은 원래 한성 동부 숭신방(崇信坊)이라는 지역이었으나 1900년대 경성부 숭인면 우이리(牛耳里)로 개편되었다. 일제가 '강한 남성'을 백운대와 인수봉이 '소 귀떼기' 같다고 해 '소귀(우이)'로 만들고 백운대 오르는 철난간대도 설치했다. 우리나라 소 관련 산이나 봉우리(혜목산慧目山-우두산, 가야산 상왕봉象王峯-우두봉 등)는 일제의 치밀한 의도 - 부지런하고 값진 재산이라는 말에 속았지만 미련한 소대가리 라는 뜻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 서쪽과 비봉능선을 보며 밥상을 차렸다. 저 앞 비봉의 유래가 된 북한산진흥왕수순비(眞興王巡狩碑, 국보 제3호)는 순수(純粹)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망치와 정을 사용해서 돌에 글자를 새길 줄 아는 금석학자 김정희가 그 비석에 깊게 자신의 이름을 낙서했기에 글자 몇 자는 그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위조될 수 있다. 진흥왕 것이 확인되었다면 김정희는 비신에 손가락 하나 대지 말았어야 했다.

이 비석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세워졌는지 누가 언제 왜 훼손했는지, 내용은 뭔지 모른 채 수 백년이 지났다. 북한산이라는 요지에 쉽게 띈 곳이기에 모든 사람, 특히 역사가는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사, 조선사 어디에도 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비의 인위적인 훼손 흔적으로 봐, 훼손자는 원래 비문을 알았을 것이어서 '진흥태왕(대왕),신라'자를 후세가 알 수 있도록 남겼을 리 없다. 정말 진흥태왕순수비 라면 고려, 조선시대 학자는 봉사요 머저리들이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실제 이 비는 황초령비나 마운령비와 '모양'이 전혀 다르고 '글자'도 훨씬 세련돼 신라 라는 동시대의 비 가 아닐 개연성이 크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이 저술한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 1751년)'는 조선 후기 지리학 발달을 대표하는 실학적 지리서로 매우 상세한 기록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도 '무학오심도차(無學誤尋到此)'라는 구절이 나와 무학대사와 관련된 도선국사비(道詵國師碑)이거나 몰자비(沒字碑)로 알려져 왔었다.

이것을 김정희는 1816년(순조 16) 7월 진흥왕순수비라고 읽어 자신의 이름을 파 넣은 후, 1년간 연구해 1817년 6월 조인영과 함께 남아있는 글자 68자를 심정했다고 자기 이름을 두 번째 새겼다.

한편, 조선 후기에서는 무학조차 "요승妖僧無學誤尋到此碑'으로 기록할 정도니 지배층의 성리학이 불교와 승려를 완전히 멸시한 시기이기도 해, 이미 폐사된 양주의 회암사지의 경우 1821년(순조 21) 지공·나옹·무학의 부도와 탑비가 지방 유림에 의해 고의적으로 훼철되고 거기에 자신의 선영 묘를 썼을 정도였다.

어쨌든 비석에 '무학(無學)'자가 나오든 '진흥(眞興)'자가 나오든 둘 다 무학과 김정희가 각각 위조(재조각)했을 가능성조차 있다. 공교롭게도 한문의 無學 과 眞興 은 상호 변조될 구조이기도 하다. 몇 번 비봉을 더 답사하고서 '김정희가 아니올시다'를 주장해야겠다,고 한 사이 715봉에 접어 들었다. ②편에 계속... (龍)

▲ 평창동계곡으로 올라 동령폭포에서 본 형제봉능선 ⓒ서울포스트
▲ 동령폭포 위에서 본 보현봉 ⓒ서울포스트
▲ 일선사에서 내려본 형제봉능선과 북악산, 서울시가지 ⓒ서울포스트
▲ 일선사에서 본 용마산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보현봉에서 본 풍경들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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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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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봉에서 아래 문수사와 건너 보현봉 ⓒ서울포스트

▲ 문수봉 아래로 펼쳐진 비봉능선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청수동암문 ⓒ서울포스트
▲ '출발17' 루트 를 따름 ⓒ서울포스트

▲ 보현봉에서 본 남방 최고봉 문수봉, 대남문, 북한산 정상부, 도봉산까지. 북한산국립공원 전체를 한 장에 ⓒ2014090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도봉산 정상에서 본 북한산. 맨 뒤쪽 능선 오똑한 곳이 보현봉 ⓒ2014 서울포스트자료
▲ 인왕산에서 본 보현봉과 문수봉 ⓒ2012 서울포스트자료
▲ 용마산에서 본 북한산 ⓒ2014 서울포스트자료
▲ 예봉산에서 본 북한산 ⓒ2013 서울포스트자료
▲ 운길산에서 본 북한산 ⓒ2013 서울포스트자료

▲ 평창동계곡으로 올라 동령폭포에서 본 형제봉능선 ⓒ서울포스트
▲ 동령폭포 위에서 본 보현봉 ⓒ서울포스트
▲ 일선사에서 내려본 형제봉능선과 북악산, 서울시가지 ⓒ서울포스트
▲ 일선사에서 본 용마산 ⓒ서울포스트
▲ 보현봉에서 본 풍경들 ⓒ서울포스트
▲ 문수봉에서 아래 문수사와 건너 보현봉 ⓒ서울포스트
▲ 문수봉 아래로 펼쳐진 비봉능선 ⓒ서울포스트
▲ 청수동암문 ⓒ서울포스트
▲ '출발17' 루트 를 따름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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