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북한산 아름다운 길⑩ - 삼천사계곡 올라 삼천사지, 의상봉능선(증취봉甑炊峰 시루봉 593m) 넘어 북한산성계곡 (2)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①삼천사(三千寺) - 삼천사(三川寺)계곡 - 삼천사지(三川寺址) - 증취봉(甑炊峰 시루봉 593m) -
②[의상봉능선] - 부왕동암문 - 부황사지(부왕사지) - 백운동계곡 - 용학사 - 산영루(비석거리) - 중성문 - 북한산성계곡 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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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대,만경대에서 쏟아져 북한산 최고의 개연폭포를 만들고, 문수봉북쪽에서 발원한 백운동계곡과 보리사 에서 합류한 북한산성계곡은 북한산국립공원 제일로 꼽힌다. ⓒ2014072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증취봉 전망바위에서 한참을 누웠다가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으로 향했다. 숙종때 북한산성을 축성할 당시엔 남쪽은 대남문과 소남문, 암문을 하나씩 계획했으나 사정상 소남문(현 대남문)과 암문 2개(부왕동암문,가사당암문)을 만들었다.
부왕동(扶王洞)은 증취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삼천사계곡을 만들고, 그곳 옛 삼천사에서 가까운 신혈사(神穴寺, 현 진관사) 스님의 기지로 임금(고려 현종)을 구한 적이 있다고 하여 '왕을 도운 계곡이란 뜻'으로 '부왕동(扶王洞)'이라 이름되었다.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 扶旺洞暗門)을 지나 백운동계곡에 가까워지면 이번엔 바위에 청하동문(靑霞洞門)이라고 새겨진 동네에 부황사지(扶皇寺址 부왕사지 扶王寺址,扶旺寺址)가 나온다. '부황사(扶皇寺)'는 임금(황제)을 돕는다는 뜻으로 1717년 숙종때 북한산성 수비를 위해 세워졌고 한국전란 중 폐허돼 누각의 장주초석과 단촐한 부도 가 남아있다. 폐사지 비석에는 부황사의 '부(扶)' 자가 좌우로 뒤집혀 써져있는데 풍수로 그랬단다.
풍수상 '부'자를 좌우로 바꾼 게 아니라 혹시 '도울 扶'자를 돌리면 '돕지 않는다'는 뜻이 돼, 임금을 돕지 않겠다고 어떤 불손 세력이 개입된 절이 아닌가 상상도 해본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보니 1717년 심운대사(尋雲大師)가 창건할 당시 편액은 '부왕(扶旺)'이라고 돼 있지만 이후 '부황사(扶皇寺)로 바꿨단다. 여기의 '왕(旺)'은 일본 왕(日王)을 뜻한 바도 있어 혹시...라는 생각도. 현재 부왕(扶王),부왕(扶旺),부황(扶皇)은 같은 의미로 혼용되고 있음.
산성내 사찰은 고려때부터 중흥사와 부속 태고사 만 있었는데, 조선 후기 산성축조시 승군에 의해 창건된 것이 대부분이다. 중흥사는 승병을 지휘한 승영으로 산성내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전각 하나만 남아있는 폐사지로 조계종에서 부황사와 함께 복원중이다. 대신 태고사는 1341년(고려 충혜왕 복위2) 보우대사(태고종의 종조)가 중흥사 주지시절 동암(東庵)으로 지은 개인기도처에 '태고(太告)'라는 편액을 달아 태고사와 오늘날 태고종의 기원이 되었다. 전각들은 6.25전쟁때 불타 근래 복원했다.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만이 역사를 말해준다.
[* 원증국사보우탑비,원증국사보우탑, 여기 원증 보우 국사 圓證 普愚 國師: 태고(太古)는 호(號), 보우(普愚)는 휘(諱)이고, 법명은 보허(普虛), 시호는 원증(圓證). 조선 중기 허응(당) 보우 대사(虛應 普雨 大師)와 구분]
이 중흥사와 태고사 는 나중으로 미뤘기에 아예 산영루(山映樓)와 폭포에서 오래 머물렀다. 능선에서 내려보인 용학사도 들렀다. 비석거리와 산영루도 현재 복원이 한창이다. 계곡으로 내리면서 쉴새없이 시원한 물소리를 들은지라 피곤함은 덜했다. 중성문을 지나 원효봉과 북한산계곡의 대단원을 담기 위해 달음질을 해댔다.
길은 나 있으나 쉽게 가지 않는 길로 증취봉을 오른 오늘 탐사는 매우 기분 좋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간 봄에서 여름 사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공허함에 신물났지만 이제야 마음속에 생긴 보람됨이 오래 남을 것이다. (龍)
▲ 백운대,만경대에서 쏟아져 북한산 최고의 개연폭포를 만들고, 문수봉북쪽에서 발원한 백운동계곡과 보리사 에서 합류한 북한산성계곡은 북한산국립공원 제일로 꼽힌다. ⓒ2014072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증취봉 쉼터에서 나월봉. 나월봉은 개인 생각으로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같다. ⓒ서울포스트
▲ 증취봉 쉼터에서 북한산정상부. 영취봉(염초봉),백운대(그 뒤 인수봉 살짝), 만경대, 용암봉, 노적봉 ⓒ서울포스트
▲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 扶旺洞暗門). 부왕(扶王),부왕(扶旺),부황(扶皇)은 같은 의미로 혼용 ⓒ서울포스트
▲ 폐사지 부황사의 장초석과 북한산 정상부 ⓒ서울포스트
▲ 청하동분(靑霞洞門) ⓒ서울포스트
▲ 비석거리와 복원중인 산영루(山映樓) 앞 계곡 ⓒ서울포스트
▲ 용학사 대웅전 앞 오층석탑 ⓒ서울포스트
▲ 용학사에서 본 의상봉능선의 나월봉(좌)과 증취봉. 저기도 길매재 다. ⓒ서울포스트
▲ 중성문 ⓒ서울포스트
▲ 새마을교 앞 두 천이 합해진 곳의 보리사(菩提寺). 이승만 대통령을 맞았던 영빈각 인 등운각(登雲閣)이었다. ⓒ서울포스트
▲ 원효봉 밑 산성계곡 ⓒ서울포스트
▲ 원효암 에 불켜진 좌 원효봉, 용출봉을 뒤로 한 우 의상봉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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