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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논단] 비비안 리,마릴린 먼로 단상..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상(오스카상)작품상 등 4관왕 '기생충'에 박수 쪼금.. 그리고 문재인부터 쪽팔릴 우리사회 부끄러운 현상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20/02/11 20:28:43)

[서울포스트논단] 비비안 리,마를린 몬로 단상..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상(오스카상)작품상 등 4관왕 '기생충'에 박수 째끔.. 그리고 문재인부터 쪽팔릴 우리사회 부끄러운 현상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진즉 아카데미상에 대한 자료를 기록할려 했는데 차일피일 미룬 중, 우리 영화계에 낭보(?)가 들렸다. 그래도 생각했던 헐리우드 대 스타 중 여배우 두 명, '비비안 리(비비엔 리 Vivien Leigh, 인도 태생 영국인 1913~1967년)와 마릴린 먼로(마를린 몬로 Marilyn Monroe, 미국 1926~1962년)'를 콕 찝어 먼저 언급해야겠다.

 

그들이 미국,세계영화 중흥기(난, 1940~1960년으로 본다)에 기여한 역할이 대단하기 때문. 그리고 왜 하필 나이 차이가 제법 난 이 두 사람인가는, 스타 라는 배우들은 서로의 영역을 공유하기 어려운데 반해, 함께 출연하지 않았지만 같이 한 영역과 시간이 있어서 이다. 리 가 오로지 걸출한 연기에 몰두했다면, 먼로 는 모델,춤과 노래까지 곁들인 팔방미인. 각자의 삶도 같은 듯 다른 듯 닮은 듯한 면이 많다. 외모와 성격은 정반대되는 것 같으면서도 상큼,발랄,경쾌함은 공통점. 1900년대 초반엔 조혼 경향이 있었다지만 둘 다 16세에 결혼했다는 것도 재미난 사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금수저 코스를 밟은 비비안 은 작품에서는 리얼하면서 진지한 그러나 비극적 역할을, 사생아로 흙수저로 자란 마릴린 은 희극적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비비안 리 는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영국 1907~1989년)와 연극으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고, 1953년 영국에서 '잠자는 왕자'를 공연했다. 1957년 헐리우드 에서 영화화 하면서 제작사가 *'왕자와 무희(The Prince and the Showgirl)라는 제목을 달고 올리비에 상대역에 먼로 를 캐스팅 했다. 이 때문에 리 가 스트레스 를 받아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모양. 그게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 두 커플 다 이혼하고 두 여배우는 제법 이른 나이에 각각 혼자 살다가 외롭게 죽어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가장 오랜동안 화려하게,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 아우라 는 계속 될 것이다.      

[* The Prince and the Showgirl (originally called The Sleeping Prince) is a 1957 British-American romantic comedy film starring Marilyn Monroe and Laurence Olivier. Olivier also served as director and producer. The screenplay by Terence Rattigan was based on his 1953 stage play The Sleeping Prince. It was filmed in London.]

↑ (좌) 비비안 리(1913~1967년) 와 마릴린 먼로(1926~1962년). 같은 듯 다른 듯 닮은 듯, 한때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두 여인. 금수저 전형 비비안 의 양 묶음머리와 흙수저 전형 마릴린 의 지하철통풍구 씬은 할리우드 아이콘 이 되었다. ⓒ자료

 

비비안 리 는 어릴때부터 영국 왕립연극학교를 거쳐 탄탄한 연기수업을 받은 전형적인 금수저. 2번이나 아카데미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그가 주연한 불멸의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년 제작,상영)'는 1940,50,60년대까지 근 30여년간 흥행 1위를 할 정도로 출연진의 연기력과 주제,구성,장면 등이 향후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대중성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작품으로 1940년 아카데미상 1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후보)되어 10부문에서 최우수상을 휩쓸었다. 물론, 그 시기 '오즈의 마법사(주디 갈란드 주연,1939년 제작,상영)'나 '시민 케인(오슨 웰스 주연, 1941년 제작,상영) 등도 아카데미상과 별 인연은 없지만 여전히 걸작으로 꼽힌다.

 

마릴린 먼로 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 1953년 제작,상영)'가 결정적 출세작, 10년여 활동기간동안 30여편의 엄청난 양의 영화를 찍었으나, 오락물이 많아서인지 '뜨거운 것이 좋아(1959년 제작,상영)'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뿐이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2차대전 때 남편이 태평양함대에 배치된 사이 군수공장에서 일하다가 모델로 발탁된 흙수저 전형. 연기학원을 다니는 등 모델,가수,배우로 마침내 할리우드 를 대표한 관능적 섹스심벌 에 우뚝 선다. 12살 차이 난 뉴욕 양키스 전설 조 디마지오 와 6.25휴전상태인 1954년 2월, 일본으로 야구관련 비지니스(신혼여행 겸)로 왔다가 미군위문공연제의를 받아 홀로 한국에 온다.

 

듣도 보도 못한 오지의 나라, 미군의 생명을 3만6천여명이나 앗아간 동토의 땅, 추운 겨울 상반신을 노출한 채 4일 동안 대구공군비행장,포항해병대,강원도인제보병사단 등 10여 곳 미군기지와 병원을 돌며, 군복을 입고 탱크에 오르고, 배식당번을 하며 시종 활짝 웃는 모습, 따뜻하고 생기발랄한 표정, 무대매너와 노래솜씨로 우리나라와 훈훈한 인연을 맺었다. 그의 기록물엔 당시 야외공연이 '코리아'라는 말과 함께 대부분 등장한다. 그도 라이브 때 장병들과 거리낌없는 교류를,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이 두 여인에게 빼 놓을 수 없는 남자가 있으니,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영국 1907~1989년)외에, '할리우드의 제왕(The King of Hollywood)'이라는 별명의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미국 1901~1960년)이다. 게이블 은 점원,막노동 등을 전전하며 불우한 청년기를 거쳤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단역부터 할리우드 로 진출. 비비안 처럼 클라크 에게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출세작이 된 셈이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 와 클라크 게이블 이 주연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1960년 제작)'은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의 생애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영화계에서 가장 화려했던 두 여인과 한 남자, 1939년 최고의 칼라대작을 만들었던 때의 비비안 과 클라크, 20년이 지난 후 1960년, 하필 사막을 배경으로 흑백영화를 남긴 마릴린 과 클라크, 그리고 곧 이은 죽음들. 참, 두 영화의 제목이 뭔가를 시사한 것처럼 혹은 그들의 필연적인 인연처럼 묘한 아이러니 를 준다.   

 

↑ 너무나 유명한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1939년 작)' 포스터. 비비안 리 남편역을 했던 클라크 게이블 은 20여년 세월을 두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0년 작)'에서 마릴린 먼로 연인역을 했다. ⓒ자료정리

 

그럼 자, 우리영화 기생충(PARASITE, 2019년 봉준호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쾌거를 이뤘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이념갈등,빈부문제,계층갈등 등이 수반된 모략,모함으로 인한 인간성 실종이 '기생충'이란 시사성 강한 작품 등장을 가능케 한 것 같다.

[※ (자료 등 참고)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 오스카상Oscar) : 정식 명칭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상. 그 전해에 발표된 미국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영화를 대상으로 우수한 작품과 그밖의 업적에 대하여 해마다 봄철에 시상한다. 1927년 창설된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주관으로 1929년부터 매년 시상해 왔는데, 이는 오늘날 미국 영화계의 가장 큰 연중행사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상 내역이 지나치게 미국적 사고방식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도 면치 못하고 있다. 제1회 때는 11개 부문을 시상하였으나, 점점 즐어 2020년 현재 작품·감독·배우·촬영을 비롯하여 녹음·미술·음악·외국영화·기록영화·단편영화 등 본상 24(25)개 부문이다. 수상작품 선정은 먼저 각 부문 해당 회원들이 투표에 의해 후보작품을 뽑은 다음, 다시 3,000여 명의 아카데미 회원 전원이 투표로 수상작품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상금은 따로 없으나 '오스카'라는 애칭의 인간입상(人間立像)이 수여되기 때문에 아카데미상을 오스카상이라고 부르기도. 청동제의 금도금한 오스카는 높이 34㎝, 무게 3.85㎏의 인체상. 배우에게는 오스카를 받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목표이자 명예. 본상 24개부문 외 공로상과 과학기술상 등의 특별상도 있다.]

 

↑ 자료이미지 사용

 

사실 이 영화에 작품성,영상기술,은 아직 멀었다. 미장센 이나 몽타주 도 거의 없다. 작년에 들끓었지만 마치 가족구성원이 똘똘 뭉친 조작들은 조국사태가 터지기 전 누군가가 그 일가족의 쓰레기같은 행위를 빤히 알고, 영화에 녹였다는 짐작도 가능하게 할만큼 현재 한국인 저변에 깔린 부끄러운 정서와 삶의 방식 일부를 편집했다. 내 개인적으로, 차라리 우리 역사적 사건 일면을 각인시킬 '밀정'이나 '남한산성'같은 작품이 출품되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고, 고래로 인간 세상 어느 사회건 조작에 조작과 사기의 연속이 더해 행해진 '결과'가 사실로 굳어진 경우가 상당히 많아, 본질에 충실하다면 어떤 현상에 환호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기생충이란 제목부터 어색한 감. 6,70년대 내가 국민학교 때는 이불에,옷에,머리에 이와 벼룩이 바글바글했다. 국민건강을 위해 학교에서는 봉지에 대변샘플을 내어 구충제 복용하기가 연례행사. 다음날 선생님이 배출 마리수를 조사하는데, 여학생들은 보통 3-7마리, 나도 그 정도로 알렸다. 한번은 뒤에 앉은 녀석이 72마리라고 해 경악과 폭소를 내 지른 적이 있는데, 사실 우리가 마리 수를 적게 말했을 뿐, 그 친구의 솔직함이 늘 부러웠다. 짜빠구리도 아닌, 퉁퉁 부른 국수,짬뽕,스파게티면발같은 회충은 닭이나 오리의 보양식이 되었던 것 같지만, 최근 온 나라가 사기형국화한 지금, 그 친구는 어린 우리들의 위선과 거짓말을 고발할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는 생각도 좀 든다.

 

어쨌든 그저그런 영화 하나로 역사적인 헐리우드 장벽을 넘었다는 둥, 외신들의 놀람이나 축하반응 등에 우쭐할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좁은 의미로 향후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둠이 옳다.    

 

필자는, 과거 70,80년대 TV주말의 영화나 영화관에서 본 상영물에 항상 필기장을 가지고, 감독,배우,줄거리,인상깊은 대사 등을 메모 한 습관이 있었다. 당시 외국영화 위주였으니, 당연히 1900년대 들어 탄생한 헐리우드 스타들, 그리고 1940,50,60년대 활약했던 남녀배우들을 거의 욀 정도다. 고교 때 기숙사 생활관에서 주말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비비안 리)'와 '돌아오지 않는 강(마릴린 먼로)' 등을 봤었다. 또 헐리우드 배우들의 화보나 책으로된 기록물을 샀지만 영화광은 아니었다. 이후로 거의 잊은듯 그 방면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당시의 감성들과 기록습관이 지금의 서울포스트 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임은 사실이다.

 

돌이켜 보자니, 당시 영화들이 이제 60줄 된 내 세대에 맞고 그때가 바로 영화계의 르네상스. 그러기에 1900년부터 1930년대에 탄생한 배우가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건 확신한다. 그 시대의 영화가 왜 중요할까, 함 짚어 보자 : 30년대부터 무성영화가 음성더빙없는 유성영화로 바뀌었고, 흑백에서 칼라스크린 으로, 그리고 시네마스코프(1953년 '성의'가 최초)라는 와이드스크린 으로 발전한다.

 

카메라 가 발명된 시기는 최초 프랑스 1820년대, 고전음악과 오페라 에서 독일과 이태리 에 뒤떨어진 프랑스 와 영국은 뮤지컬장르로 대중을 끌기 시작한다(대중음악이라는 팝송 이 영국에서 세계로 퍼져나간 시기도 비틀스 가 활약한 60년대). 영구 기록 가능한 사진,영상기술로 영국의 영화산업이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운다. 60년대엔 락그룹 중심의 밴드보컬 공연 대중음악(팝송) 시대가 열린다. 다 '인구폭발'이 저변에 깔렸다.  

 

1차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은 세계경제는 팽창을 하다가 2차대전을 거치며 미국경제가 급상승하면서 대중적 문화욕구도 극대화된다. 주연배우에 어김없이 술마시고 담배피는 장면이 들어간다. 이 시기에 있었던 (여자 위주로) 배우들이 우리가 흔히 말한, 매우 주관적으로 세기의 미녀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 마릴린 먼로, 1940,50,60년대를 주름 잡은 - 8(9?)번 결혼한 남자수집가 엘리지베스, 은퇴후 평화대사의 오드리, 모나코왕비가 된 그레이스, 성녀에서 창녀가 되었다가 다시 성녀로 돌아왔다 는 잉그리드, 영국을 대표한 명배우,감독 로렌스 올리비에 의 비비안, 비운에 요절한 섹스심벌 마릴린 등이다. 이전에도 수많은 미녀들을 명멸했으나 폭발적인 미디어매체의 조명을 받은 시기가 그때라는 얘기,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한 여자스타들은 인구와 매체폭발로 오히려 분산이 돼 생명력이 짧아졌다고 난 분석한다. 또한 무엇보다 자극적인 주제와 소재를 넘어 지나친 공상적 느와르 에 함몰된 현대 영화의 끝은 결국 게임 같은 허망 아닐까. 이미 중국영화는 무협지 손오공같은 뻥치기, 서양 영화는 우주적 망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 비비안 리 자료 ⓒ자료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장면 ⓒ자료
↑ '시저 와 클레오파트라'의 비비안 리 ⓒ자료

 

↑ 1954년 2월, 마릴린 먼로 주한미군위문공연-강원도 인제,포항 미해병 사단 등 4일간 10차례 강행했다고 한다. 하얀 눈도 인상적이다. ⓒ자료
↑ 1954년 2월, 마릴린 먼로 주한미군위문공연-강원도 인제,포항 미해병 사단 등 4일간 10차례 강행했다고 한다. 이제 보니 엄지손가락을 다쳤던 모양. ⓒ자료
 
↑ 1954년 2월, 마릴린 먼로 주한미군위문공연-강원도 인제,포항 미해병 사단 등 4일간 10차례 강행했다고 한다. ⓒ자료
↑ (좌) 로렌스 올리비에,비비안 리 - 영국인부부 와 마릴린 먼로,아서 밀러 - 미국인부부. '왕자와 무희(1957년, 로렌스+마릴린)' 영국 촬영에 남편을 감시하기? 위한 비비안, 부인을 감시하기 위한 아서. ⓒ자료
↑ 먼로 를 환영하는 올리비에, 리 부부 ⓒ자료
↑ 재미있는 자료 - 비비안 리,로렌스 올리비에 커플 로 장식된 헐리우드 잡지, 하단에 마릴린 먼로 컬트쇼 도 소개하고 있다. ⓒ자료
↑ 비비안 리, 로렌스 올리비에 가 공연한 연극 '잠자는 왕자'(1953년)' 사진 ⓒ자료
↑ 마릴린 먼로 주연, 로렌스 올리비에 가 감독,주연한 영화 '왕자와 무희(1957년)' 포스터 ⓒ자료
↑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2년)'에서 먼로 역을 한 '미셸 윌리엄스' ⓒ스틸컷자료

 

 

BEST bits of VIVIEN LEIGH (VIVIAN LEIGH) in GONE WITH THE WIND Clark Gable

 

 Remembrance MARILYN MONROE Summertime Sadness Clark Gable

 

Marilyn Monroe Korea 1954 HD and Radio Interview 1955

 

 

올 겨울 빈둥빈둥 놀면서 유튜브 에서 과거 영화와 스타 들을 다시 접했다. 역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미국과 전세계적으로 30여년간 인기를 누린 이유가 있더라. 거기 **비비안 리 를 딴 스칼렛 오하라 칵테일, 그리고 요즘 유행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어원 스웨덴출신 잉그리드 버그만 의 가스등(Gas Light)도 보고, 무엇보다 마릴린 먼로 가 왜 그렇게 사랑받고 그 인기가 지금까지 계속되는지 알았다. 위 자료에 보면, 우리가 그저 상업적으로 안 먼로 는 미국영화를 빛낸 전설적인 여배우 6위에 올라있다. 70년,80년 전의 인물들과 영화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

 

그간 특집 자료를 찾다가 먼로 는 참으로 매력적인 여인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위 사진 두 영미커플은 로렌스 와 마릴린 이 주인공으로 나온 ***'왕자와 무희' 영국 촬영 때고, 그때 세트장 밖 먼로 의 일탈적 애정행각이 영화로 만들어 진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미셸 윌리엄스 가 역)'은 2012년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다. 비비안 도 게스트 출연씬이 있다. 마릴린먼로장미도 있고 그 아이보리색(할리우드 상징이 된 마릴린 의 지하철통풍구 의상색) 부케 도 여전히 인기,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를 보니 마릴린 먼로 는 아직 살아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마가렛 미첼 원작소설. 1939년 영화제작,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15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각색상·컬러촬영상·편집상·미술상·명예상·기술공로상 10개 부문 수상] 

[** 비비안 리 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나 받았으나, 마릴린 먼로 는 아케데미상과는 인연이 없고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한 번 기록. 두 배우는 이혼하고 병마에 시달리거나 약물에 의존하는 등,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정 반대 출신이지만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본다.]

[*** '왕자와 무희' 는 원제 '잠자는 왕자' 로 영국에서 로렌스,비비안 이 공연한 1953년 연극이었으나, 1957년 영화화 하면서, 막판 춤과 노래에 일가견이 있는 마릴린 이 배역을 맡았다고 한다. 촬영 내내 리 가 먼로 를 질투했다는 일화.]  

 

각설하고, 이번 아카데미상 쾌거(?)를 계기로 내 욕심이라면, 울 나라 해방 전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습격함으로써 시작된 태평양전쟁부터 징병.징용,정신대문제, 히로시마원폭과 무조건항복, 조선해방, 대한민국건국에 따른 이념갈등, 6.25동족전쟁,빨치산까지 망라한 대서사극 이 언젠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龍)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상 수상자('수상작') 명단 (24개 부문)
◇ 작품상 = '기생충' 

◇ 감독상 = 봉준호('기생충') 
◇ 남우주연상 = 호아킨 피닉스('조커') 
◇ 여우주연상 = 러네이 젤위거('주디') 
◇ 각본상 = 봉준호·한진원('기생충') 
◇ 각색상 = 타이카 와이티티('조조 래빗') 
◇ 남우조연상 = 브래드 피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여우조연상 = 로라 던('결혼 이야기') 
◇  편집상 = '포드 V 페라리' 
◇ 촬영상 = '1917' 
◇ 미술상 =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 의상상 = '작은 아씨들' 
◇ 분장상 = '밤쉘' 
◇ 시각효과상 = '1917' 
◇ 음악상 = '조커' 
◇ 주제가상 = '(아임 고나) 러브 미 어게인'('로켓맨') 
◇ 음향편집상 = '포드 V 페라리' 
◇ 음향효과상 = '1917' 
◇ 국제장편영화상 = '기생충' 
◇ 장편 애니메이션상 = '토이 스토리4' 
◇ 단편 애니메이션상 = '헤어 러브' 
◇ 단편영화상 = '더 네이버스 윈도' 
◇ 장편 다큐멘터리상 = '아메리칸 팩토리' 
◇ 단편 다큐멘터리상 = '러닝 투 스케이트보드 인 어 워 존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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