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북한산 삼천사 계곡(三川寺 溪谷)의 '삼천사지 대지국사 탑비 의 귀부·이수(三川寺址 大智國師 塔碑 - 龜趺·螭首)' 주변 정비-②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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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사지 대지국사탑비 의 귀부 와 이수' 주변을 정비하면서, 중요문화재인 만큼 당국은 관심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없어진 비문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게 부셔 버렸는데, 발굴과정에서 조각들을 주워 퍼즐 맞추듯 해석했다고 한다. 여기 대지국사탑비 는 고려 중기(1000년 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14082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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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포(Before)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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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앱터(After) ⓒ서울포스트 |
보물 제657호 로 지정된 삼천사지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磨崖如來立像 ← 공식명칭. 기타: 마애불, 마애석불 磨崖石佛) 은 옛 삼천사(三川寺) 암자가 있던 터에, 현 삼천사(三千寺)가 지어지면서 다행이 국가 보물로 잘 보호되고 있다.
오늘, '삼천사지 대지국사 탑비 의 귀부·이수(三川寺址 大智國師 塔碑 - 龜趺·螭首)' 주변을 정비한다고 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 티 내는 선행 개념이 아니라) 의미있는 문화재가 대책없이 방치된 느낌을 받아서다. 수풀에 싸여 손길도 눈길도 닿지 않아 훼손된다면 전적으로 우리들 책임이다. 양주 회암사지 나옹화상 비탑 은 주변에 불이 나 완전 손실된 것을 가짜로 만들어 세워놨고 진짜 귀부는 누군가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셔놨다.
삼천사지는 이미 일정부분 발굴해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전시도 하지만, 아직 진행중이니 좀 더 서두를 필요가 있다. 또 대지국사탑비 는 '보물적 유물'로서 더 이상 훼손돼서도 안된다.
정비를 하면서 보니 누군가 오래전에 정리를 했던 흔적도 있다. 이제는 서울포스트 가 1년에 한두번이라도 관리를 할 생각이다. 혹, 등산중 지나치신 분들은 문화재당국이 관리할 때까지 '있는 그대로 원형 보존'에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다.
풀을 베내고 식사하면서 가만히 보니, 탑비 는 땅을 파 움푹하게 만들고 석축을 두른 다음 그 안에 안치한 흔적이다. 아마도 귀부 주변에 항상 물을 채워 거기서 거북이가 놀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밤에 비온다는 날씨, 바람 한 점 없어 땀을 뻘뻘뻘~~~!!! (龍)
※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
생졸년 미상. (고려 전반기, 대략 900년 중반 출생~1000년 중반 졸)
편년체 역사서인 『고려사(高麗史)』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법상종파 고려 불교계의 거물. 삼천사(三川寺) 주지이자 왕사 도승통(都僧統) 등을 지냈다. 현종이 부모 명복을 빌기 위해 '법경(法鏡)'을 1011년(현종 2) 창건한 현화사(玄化寺) 초대 주지로 보냈으며, 1020년(현종 11) 왕사(王師)에 책봉되었다. 1032년(덕종 1)에 대지국사(大智國師)에 올랐다.
대지국사탑비 는 고양시 북한산 삼천사지 에 비문이 있었으나 비문을 도끼로 잘게 부수고 파묻어, 간혹 출토되어도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였던 것을, 최근 발굴 터에서 다량의 비문 파편이 발견되어 일부나마 행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비문에 따르면, 승랍(僧臘) 85세이고 세속 92세로 돌아가셨다. 비문은 이영간(李靈幹)이 짓고 최홍검(崔弘儉)이 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중기(1000년 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이후 사찰 중창 등으로 재제작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경이 님 자료)
[※ 문화재 관리에서 혼용되는 명칭 :
탑(塔)=부도=부도탑=승탑=사리탑=묘탑, 비(碑)=부도비=탑비=비탑]
[※ 서울포스트 캠페인] '삼천사지 대지국사탑비 귀부이수' 를 아낍시다
여기 삼천사지(三川寺址)는 현재 발굴이 진행중인 중요 문화유적지로 '대지국사 탑비 의 귀부 와 이수'는 보물급에 해당됩니다. 이곳을 경유하시는 등산객께서는 당국의 발굴이 완료될 때까지 '이대로 원형보존'에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서울포스트 발행인 양기용 드림 -
▲ '삼천사지 대지국사탑비 의 귀부 와 이수' 주변을 정비하면서, 중요문화재인 만큼 당국은 관심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없어진 비문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게 부셔 버렸는데, 발굴과정에서 조각들을 주워 퍼즐 맞추듯 해석했다고 한다. 여기 대지국사탑비 는 고려 중기(1000년 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14082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비포(Before) ⓒ서울포스트
▲ 애프터(After) ⓒ서울포스트
▲ 탑등에서 올챙이가 살다니 ⓒ서울포스트
▲ 올챙이를 사냥?하기 위해 암벽을 오르는 도마뱀 ⓒ서울포스트
▲ 여기 대지국사탑비 의 귀부 는 높이 약 140cm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크기일지 싶다.(아직까지 이 보다 더 큰 귀부는 못봤으며, 엄청난 크기의 세종대왕 신도비의 귀부나 조선에서 최대크기의 비(비문석)를 세웠다는 청태종 의 삼전도비 귀부도 이 보다 훨씬 작다.)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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