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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정조가 장조(사도세자)의 융릉 행차 때 쉬어간 객사 - 과천 관악산 아래 온온사(穩穩舍)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8/05/19 23:54:01)

[탐방] 정조가 화성 장조(사도세자)의 융릉 능행 때 쉬어간 객사 - 과천 관악산 아래 온온사()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이름으로 미뤄 절집인줄 알았던 조선시대 객사, 과천 '온온사' 탐방에서 싱그러운 5월을 느꼈다.
ⓒ2018051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청계산 서울대공원, 과천서울랜드, 추사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관악산 연주암(연주대), 과천향교, 경마장 등등 과천자랑 표지에 온온사 라는 절(?)을  발견하고, 부처님 오신날 도 있는 5월 어느날 귀가길 꼭 찾아 볼 곳으로 꼽았다.

 

어제까지 비가 내린 날씨였지만 오늘은 쾌청한 토요일, 일을 마치고 같은 중앙동(관문동?)에 있는 그 사찰(찰사)을 찾기로 했다. 온온사(舍) 안내간판을 보기 전까지, 자료검색을 하지 않았기에 '절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따뜻할 온(溫)'자 가 들어갈거라는 짐작, 예전 등산때 용마능선 오른 쪽으로 가다가 산책길 젊은 부자에게 온온사라는 절을 물었다. 쭉 가서 왼쪽.

 

줄기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희한하게 연리지 로 선 수 백년 느티나무, 600년 수령 은행나무 보호수와 역대현감비석군 이 들어왔다. 조금 오르자 바로 본당이 서 있다. 현판에 대웅전이 아니고 '*穩=舍', 한글로 읽자면 '온땡사', 에구~ 절 이 아니었구나!

[* 한문 쓸 때 같은 글자 반복 약자 : 같은 자가 중첩될 때는 앞자만 쓰고  뒤에 '='을 쓸 때가 있다. = 은 亦(또 역)자의 약자 형태라고 함. 'マ'은 일본식 한자가 반복된 경우] 

 

옛 과천고을의 관아(官衙)는 대부분 폐허되었고 온온사 라는 객사(客舍)와 향교(鄕校)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절집 '사(寺)'가 아닌 기숙사,사당,객사,막사 등 잠시 머물거나 기거하는 곳을 말한 '사(舍)'다. 현대로 말하면, 숙식이 가능한 콘도 나 펜션 역할. 정조 가 화성에 있는 아버지(사도세자) 장조 의 융릉 에 행차할 때 온온사에서 머물고 인덕원옛길을 통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 는 "경치가 좋고 쉬어가기가 편한다"하며 묵은 온온사(舍) 현판, 지금은 사라진 그 옆 동 부림헌(富林軒)이란 현판도 하사했단다. 온온사는 2층형대의 지붕이 독특한 양식으로, 전해 온 자료가 없어 전남 승주 낙안객사를 본떠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 팔작지붕 중앙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로 1986년 복원했다.

 

편안한 온(穩) 자를 쓴 온온사 경내 정원에는 오랜 향나무 한 그루, 서쪽에는 대밭, 뒤쪽 관악산 소나무가 둘러 있고 앞으로는 자하동천(계곡)과 합류한 양재천이 흐른다. 우후죽순 대밭이 보여 오랜 옛 시골집  생각에 사진을 몇 장 찍어댔다. 어릴적 이 맘 때 뒤안 대밭에서 딴 어머니의 손 맛 죽순무침은 잊을 수 없다. 사실 이 시기에는 죽순이 상할까 대밭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대밭하니, 또 둥지를 튼 새집을 내릴려고 여러 대나무를 함께 아슬아슬 탔던 - 주윤발,장쯔이,양자경 의 와호장룡 은 70년대 한국의 내가 먼저 연기한 턱이다. 나보다 키가 큰 대까우(대거위)집 옆에 솜털 솔개새끼를 얻어 와 날 수 있을 때까지 키운 기억도.

 

5월 햇살 받은 초목은 눈 부시도록 푸르다. 상큼함을 더해 새콤달콤한 수액향도 더 오래 맡고 싶어졌다. 돌아 나오면서 과천초등학교 앞에서 보이는 청계산 모습이 좋다. 과천전철역에서 관악산 연주대 불꽃바위 실루엣 도 담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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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자료 등 참고

온온사

 

분류 : 인문(문화/예술/역사) > 역사관광지 > 유적지/사적지

위치 :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길 58 (관문동)

문화재지정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1980년 6월 2일 지정)

 

과천의 객사였던 온온사가 축조된 것은 조선 인조 27년(1649년)이었으나 현재의 ‘온온사’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정조 때였다. 정조대왕은 1790년 2월 11일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행 중에 과천 객사에 경숙하면서 “경치가 좋고 쉬어가기가 편한다”하여 객사 서헌에 ‘온온사’를, 객사동헌에 옛 과천의 별호인 ‘부림헌’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한 것을 계기로 온온사라 부르게 되었다. 1980년 6월 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된 온온사는 1986년 12월 2일 해체 복원되었다. 하지만 옛 온온사의 건물 형태를 알 수 없어 전남 승주군의 낙안객사를 본떠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 중앙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로 복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온온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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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온사[]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객사 건물. 1649년에 창건되었고, 사호는 정조 친필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유형 : 유적

성격 : 객사

건립시기·연도 : 1649년(인조 27)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

문화재 지정번호 :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00호

문화재 지정일 : 1980년 06월 02일

 

정의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객사건물.

내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이 건물은 가운데에 정면 3칸의 본채(정청)를 두고 좌우에 동헌과 서헌을 각각 3칸을 연결하여 세웠으며, 본채는 좌우의 건물보다 약간 높게 지어 전형적인 객사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원래 객사는 바닥에 전돌을 깔고 이곳에서는 제례를 올리는 정청과, 마루와 온돌을 두어 숙소로 이용되는 동·서헌으로 구분되는데 이 건물에서는 정청에서도 앞면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이 건물은 1649년(인조 27)에 창건되어 그 뒤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참배하러 가는 도중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 하여 친필로 쓴 ‘’란 사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 뒤 1895년(고종 32)의 행정개편이 있은 후 이 객사는 기능을 상실하고 과천군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1914년부터는 과천면사무소 건물로 이용되다가 1932년 면사무소 건물이 신축되면서 이 건물은 부속 건물로 남아 있다가, 1986년에 원위치였던 중앙동사무소 뒤편에 이전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건물은 조선 말기의 개화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져버린 객사 중에서 몇 안 되는 건물 중의 하나이며, 옛 과천현의 중심부를 알려주는 건축물로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온온사 [穩穩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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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기관광공사 사이트 에 온온사의 좋은 자료가 있어 소개한다. 서울포스트 에서의 자료사용은 상업성이 없으나 저작권을 행사하실려거든 메모 남겨 주십시오 = 편집부

 

여행지기들이 추천하는 경기도의 그 곳!

 

나의여행기

조선시대 객사를 만날 수 있는 경기도유형문화재 온온사

작성자 여인필, 작성일 2018-04-22 00:00:00

https://www.ggtour.or.kr/story/travel.php?

 

경기도유명문화제 제100호 온온사에 가다​

조선시대 객사를 만나볼 수 있는 온온사에 다녀왔습니다.

인조 27년에 만들어졌고 정조때 온온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조선의 객사에요.

 

경치가 좋고 쉬어가기 좋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 온온사.

그 이름에 걸맞게 주변 풍경이 매우 조용하고 편안합니다.

 

경기도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문화재만 찾아다녀도 1년은 후딱 지나갈 정도로 꽤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주말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는 학부모님들께 문화재를 찾아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온온사의 경우, 온온사를 기점으로 한바퀴 가볍게 돌 수 있는 탐방로가 있습니다.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온온사→배밭입구→용마골능선→쉼터→과천교회→온온사

총 1시간 20분이 소요되는 가벼운 코스에요.

 

온온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15명의 비석이 있는 역대현감비석군입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식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서, 조선시대의 비석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온온사입니다.

온온사는 조선시대의 객사로 당시 궐에서 출발하면 하루 꼬박 걸리면 이곳 과천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꽤 번화한 객사를 가질 수 있는 도시였다고 해요.

 

참고로 이 현판은 정조가 직접 적은 글씨입니다.

덕분에 작게 어필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온온사 주변으로는 잔디밭이 곱게 깔려 있어서 더욱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덕분에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해요.

 

온온사 해설은 매일 제공을 하는데 하루에 총 4타임이 있습니다.

11시, 12시30분, 오후2시30분, 오후3시30분

해설은 총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온온사에 대해 많은 걸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온온사는 관아 내에 있던 현감이 머물던 내아였습니다.

아름다운 단청과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온온사는 사실 복원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일제시대 때 소실되어 다시 복원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낙안객사를 본 떠 정면 9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복원되었습니다.

 

온온사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해설사 분이 상주해 계시기 때문에 간단히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물어봐도 좋아요.

온온사는 그 이름에 걸맞게 편안한 실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온온사 내부에는 온온사 현판말고 부림헌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습니다.

원래부터 걸려 있던 것은 아니고 다른 건물 하나 더에 붙여져 있었는데 그 건물은 소실되어 현판만 남아 이곳에 보관중입니다.

부림헌 현판 역시 정조의 친필입니다.

온온사에 오면 정조의 힘있는 필체를 구경할 수 있는 두 개의 현판 중 하나인 것이죠.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00호, 주변 탐방로도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산책겸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시는 김에 문화해설시간에 맞춰 오셔서 온온사에 대한 정조의 이야기도 들어보며 재미있습니다.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어딜갈까 고민하는 학부모님들께 특히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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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네이버카페 '과천사랑(과천을 하는 사람들...)에 실린 귀중한 자료를 첨부한다. 서울포스트 에서의 자료사용은 상업성이 없으나 저작권을 행사하실려거든 메모 남겨 주십시오 = 편집부

 

역사의 산실, 온온사  2013.07.06. 01:17    과천 생활 

양혜순(silv****)   성실멤버 

http://cafe.naver.com/mygc/67585

 

조선시대 온온사의 옛모습을 많이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과천현감' 나으리들께서는 재물에만 관심 많고 역사적, 문화적 인식이 부족했었는지,

 

오늘 과천문화원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온온사 사진들과 문헌을 받아 훑어 보았지만.

과천시가 소장하고 있는 온온사 사진이나 자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고문헌 등을 보니, 관련 자료를 유추 수집하면 재밌는 향토 사료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을것 같아, 후학들의 과제로 남겨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온온사는 지방관청으로서 '관아', 그리고 국왕의 행행시 '행궁'으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온온사로 미루어, 과천은 조선시대부터 '지방관청', 그리고 '행궁'으로서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헌에 의하면 과천현의 '관아'는 한달에 두차례 국왕에 예(재)를 올리는 장소와  사신이나 관리의 숙소로 접대하는 장소로사용되기도 했고

 

'행궁'은 국왕 행차시 머무는 숙소이므로 임시로 수라간, 약방, 좌마(마굿간?) 가교마 등이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병풍은 각각 어디에 어떤 무늬의 병풍을 비치할 것인지, 도배는 2년마다 어떤 무늬, 어떤 종이, 재질로 해야 하는지, 대청과 뒷간 시설에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등등이 <경기감영>에 기록되 흥미롭습니다.

 

관아는 객사와 동헌 등 여러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는데,

과천초등학교의 현 행정실쪽에 큰 객사가 있었고, (사진)아마 11단지 내 큰 느티나무(?) 부근에도 관아 건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관아의 안쪽에는 수령 가족이 거주하는 살림채, '아사'와 '내동헌'이 온돌방으로 지어지고, 집무처인 '향청'은 관아 안에 지어진 징세를 관할하는 건물이며, 또 향청에 드나드는 손님을 위해 '관청별감'에서 음식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왕의 '행궁'으로는1650년경 인조부터 현종, 숙종, 영조, 철종, 고종,정조대왕 등이 온천을 다니거나 능행시에, 이곳 온온사에서 쉬어 갔는데, 온온사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라고합니다. 대부분의 모든 흔적들이 소실되었지만 현판이 명맥을 잇고 있네요 .

 

과천 객사 온온사는 어찌보면 왕궁의 별관과도 같이 , 경북궁,  덕수궁 등과 같이, 하나하나 복원, 재현하여

귀중한 문화 유산이자, 역사 유적지로  가꾸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1960년대 온온사  (과천면사무소) 모습.1932년에 현재 구 중앙동주민센터 위치로 신축 이전된 것으로, 기존 객사 건물의 형태가 사라지고 기단석과 초석 등 부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일본식 기법이 가미되어 조성된 것이랍니다.  

 
일제 강점기 1920년대 과천공립보통학교 (초등학교) 내 과천객사(우측),  한말에 와서는 각 지방의 객사가 보통학교의 교사나 재판소 등으로 전용되었다고 합니다.

 
1943년 과천의 모내기 모습.  우측 과천초등학교  건물 옆에 측면 기와지붕 건물이 과천 객사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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