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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강감찬 생가터와 안국사, 낙성대공원에서 관악산 연주대 풍경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4/05/26 23:04:30)

[탐방] 강감찬 생가터와 안국사(安國祠), 낙성대(락성대 落星垈)공원에서 관악산 연주대(련주대 戀主臺) 풍경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이틀 연속 들른 낙성대 안국사. 사진 속 말달리는 강강찬 장군은 비행기보다 빠르다.
ⓒ20140525-2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어제와 오늘 날씨는 극과 극, 어제 오후엔 안개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명료한 대기를 보여준다. 살랑이는 바람에 봄날 눈이 시릴 정도로, 미치도록 푸른 하늘은 매우 드문 경우다.

작업장에서 보이는 연주대의 헬기장이라는 저 건물은 네모 반듯한 형태로 주변 산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철거되어야 할 건축물이지만 지을 때 좀 더 신경썼더라면 풍경이라도 거슬리지 않을텐데... 하여간 사색할줄 모르는 한국인의 미적 감각은 매우 허술하고 빈약하다.

이틀 연속 날씨 탓에 안국사를 들를 요량으로 걸어 내려갔다.


강감찬 생가 터, 낙성대 (姜邯贊 生家─, 落星垈).
장군의 사당(안국사)과 영정이 모셔진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 (법정동과 행정동은 헷갈리지만 현재 지도는) 낙성대동으로 돼 있다. (※ 관악구에서는 최근 봉천동을 없애고 신사동,서림동,삼성동,중앙동,은창동,청룡동,낙성대동,인헌동 등의 행정동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신림동과 봉천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도 대학동으로 바뀌었다. '하늘을 받든다'는 좋은 이름의 봉천(奉天)동을 팽개치다니...)

인헌공 감감찬(仁憲公 姜邯贊, 948~1031) 장군은 고려때 거란의 침입에 맞서 귀주대첩을 이끌었다. 장군의 출생터인 낙성대 주위에 인헌초등학교(봉천동, 낙성대동), 인헌 아파트, 인헌동(봉천동) 등은 장군의 호를 따 지었다.

안국사는 1973∼1974년 정화사업에 따라 지어졌으며 기념 휘호석 落星垈 와 현판 安國祠,安國門은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이다.

장군의 묘는 한동안 실전되었다가 1963년 후손들이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玉山面) 국사리(國仕里)에서 '姜邯贊' 이름이 쓰여진 묘소의 지석(誌石)을 발견한 후, 1964년에 분묘(단소: 시신이 없는 가묘)를 만들었다고하나, 지석 글씨가 너무 망실돼 글자 판독이 어려운 이유로 그 사실 여부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장군의 묘가 없어진 것은 1645년 인조 23년에 있어던 '강빈옥사(姜嬪獄事)' 사건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 '강빈'은 강감찬 장군의 17대 손이 되는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 당시 소현세자와 세자빈인 강빈이 청나라에서 풀려나 귀국 후, 인조의 후궁 조소용(趙昭容)과 반목하던 중에 소현세자가 죽었다. 이를 기화로 강빈이 세자를 죽이고, 또한 왕실을 저주한다고 무고하여 후원에 유폐되었다가 1646년 3월에 왕이 내린 사약으로 죽었다. 옥사가 일어나자 삼족의 멸문지화가 두려워 후손들은 성씨를 바꾸거나 조상 모시기를 소홀히해 잊혀진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안국사 [安國祠] - 검색 등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 낙성대공원에 있는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姜邯贊 984∼1031)의 사당으로,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받은 추충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이라는 호를 따 안국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1974년 강감찬 장군의 출생 지역인 낙성대(落星垈)에 건립하였고, 사당 주변을 공원화하여 낙성대공원을 조성. ‘큰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의 낙성대는 장군이 출생하던 날 출생지에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지은 이름으로,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안국문(安國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을 통과하면 정원 양 편에 고려강감찬장군사적비와 ‘강감찬낙성대(姜邯贊落星垈)’라는 명문이 새겨진 삼층석탑이 있으며, 정원 안쪽의 낮은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안국사)이 나온다.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인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정원에 있는 삼층석탑(높이 4.48m,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은 고려시대(13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낙성대 인근 관악구 봉천동 218번지에 있었으나 낙성대공원을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강감찬장군의 생가터는 낙성대가 아니라 바로 이 석탑이 있었던 자리로, 1974년 그 터는 낙성대유지(落星垈遺址)라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고, 그곳에 높이 2m의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탑신의 옥신석에는 우주(隅柱; 모서리기둥)가 모각되었고, 옥개석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의 탑 안의 보물을 훔쳐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이틀 연속 들른 낙성대 안국사. 사진 속 말달리는 강강찬 장군은 비행기보다 빠르다. ⓒ20140525-2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관악문화예절원에서 외국인 신랑을 맞은 전통혼례 ⓒ서울포스트
▲ 서울대쪽으로 난 계곡의 저수지. 관악산 북편 유일한 계곡일지 싶다. ⓒ서울포스트
▲ 콘크리트 벽에 기댄 장미꽃 한송이 ⓒ서울포스트
▲ 서울시 과학전시관 쪽에서의 사당능선은 힘이 넘쳐 보인다. ⓒ서울포스트
▲ 자운암능선과 연주대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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