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비 갠 연휴 오후, 종로 탑골공원(파고다공원) 배회..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圓覺寺址 十層石塔), 보물3호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등등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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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나갔다가 짬 내 들른 탑골공원. 사진은 팔각정으로 봐 본 국보 제2호 '원각사지십층석탑' ⓒ2018050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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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 ⓒ서울포스트 |
종로2가 탑골공원은 우리나라 근대식공원의 효시로 3.1운동 발상지나 다름없다. 동학,천도교와 인연이 많은 의암 손병희선생 동상이 삼일독립선언서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공원은 사실상 서울에서 센트럴파크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규모가 축소되고 주변이 난개발돼, 존재가 아래 종묘와 함께 노인들 배회하는 곳으로 지목되지만 엄청난 문화재가 있는 옛 원각사터 라는 것을, 그 앞을 지나는 사람조차 아는 사람도 드물다. 탑고을 이란 이름도 원각사석탑 때문에 붙었다.
원각사지에는 국보 제2호인 높이 12m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고, 보물3호인 대원각사비가 있다. 유교장려로 불교가 억압받을 조선 세조가 심혈을 기울여 창건불사를 일으켰으나, 연산군 때는 기방이 있을 정도로 흥청망청댔던 장소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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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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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
[※ 자료: 고려 때부터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왔던 사찰로, 조선 태조 때 조계종(曹溪宗)의 본사가 되었으며, 세종이 불교 종파를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한 뒤 기존 흥복사 영역이 점차 조선왕조 각 아문에 분할 귀속되었다. 1457년(세조 3)에 흥복사를 폐하고 악학도감(樂學都監)을 두었다.
1464년(세조 10) 4월 효령대군(孝寧大君)은 회암사(檜巖寺) 동쪽 언덕에 석가모니의 사리(舍利)를 안치하고 『원각경(圓覺經)』을 강의하였는데, 이 날 저녁에 여래가 공중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사리가 분신(分身)하여 800여 개가 되었다. 5월 2일 효령대군은 사리를 세조에게 보이고 함원전(含元殿)에서 함께 예불하였는데, 사리가 또다시 400여 개로 분신하였다.
이에 세조는 대사령을 내리고 5월 3일에 흥복사 터에 거둥하여 종친 및 신하들과 이 절터에 원각사를 창건할 것을 논의한 뒤 조성도감(造成都監)을 만들었다.... 원각사 자리였던 탑골공원에는 국보 제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보물 제3호인 대원각사비가 남아 있다.]
오늘도 원각사 내력을 읽고 깜짝 놀란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이들과 학부모가 탐방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청계천복원 등에서 나온 이 사찰유물로 보인 석물도 다수 있고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도 발견했다. 수령 200년 정도의 낙우송(아메리카 원산)인데 메타세콰이어(메타세쿼이아, 중국 원산)나 이깔나무(일본 원산)와 낙엽침엽교목 생태가 비슷한 것같다. 인사동골목에서 판소리 문화공연 잠깐 보고듣고.
이 곳에서도 국보라는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방식은 몰상식의 극치, '삼일문'이란 한글 현판은 전에 '광화문' 한글 현판처럼 박정희 대통령 친필휘호. 여러모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세상을 바꿀 줄 아는 진보 군인이자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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