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삼각산 삼천사(三千寺)와 삼천사(三川寺) 계곡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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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지지 않은 삼천사계곡 폭포는 아기자기한 멋을 준다. 향림담폭포 처럼 비스듬히 누운 와폭(臥瀑)으로 자체의 완성도에서는 북한산 최고로 꼽을 수 있다. 저 위 삼천사지와 함께 다시 찾을 곳이다. ⓒ2013110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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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월봉 아래 펼쳐진 삼천사계곡 ⓒ2012 서울포스트자료 |
삼각산 삼천사(三角山 三千寺)는 조선시대 북한산 지도에 삼천동(三川洞)으로 표시돼 있는 계곡에 위치한다. 또 '삼천사지(三川寺址)'라는 옛 절터는 현 삼천사(三千寺) 보다 훨씬 높은 위치(용출봉,용혈봉,증취봉 기슭)에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 옛 삼천사의 '삼천(三川)'은 글자의 형상에서 가로(三) 와 세로(川) 의 대비와 합치를 통한 우주원리를 나타내지 않았나,유추되며, 실제 세 개의 개천(①문수봉쪽에서 시작한 계곡, ②사모바위쪽에서 시작한 계곡, ③나월봉쪽에서 시작한 계곡)이 삼천사 계곡을 만들고 있다.
폐사지 '삼천사(三川寺)'는 1960년대부터 수차례 발굴했으며 유물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자료를 보고서야 유서 깊은 사찰인 것을 이제 알았으니, 이게 또 나를 흥분시킨다. 없어진 절 터 흔적에서 여주 고달사지, 양주 회암사지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녔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평지에 있는 여타 폐사지와는 달리 험준한 의상봉능선 상부에 위치하면서 한때 3,000여 명의 군중이 수도정진한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폐사된 다른 대형 사찰처럼 필시 동족끼리 종파 나 이념 분란이 틀림없다. 진즉 알았더라면 지난달 북한산 남방능선을 돌아 이 계곡으로 내려올 때 탐방했을텐데.
사실 그날, 해 떨어진 삼천사계곡을 내리면서 등산로로는 적합치 않다고 나름 생각했다. 능선이나 봉우리 기점도 아니고 나월봉에서 내려다보면 수직벽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산행만 힘들고 볼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찾을려 했던 것은 계곡의 아기자기한 폭포(와폭 臥瀑)와 마애불(磨崖佛 마애여래불 磨崖如來佛) 때문이었다.
삼천사(三千寺)에 있는 마애불은 1979년 보물 제657호 로 지정된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이다. 문제는 현 삼천사(三千寺)와 옛 삼천사(三川寺)의 연관성인데, 대체적 시각은 연관성이 '없다'이지만, 마애불 옆 옛 삼천사 암자를 1960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아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도 없다.
현 삼천사는 특이한 지형에 세워졌다. 의상봉능선과 응봉능선이 만든 협곡의 개천 바로 옆에 위치해, 대부분의 사찰이 둥그런 땅과 지형을 기반으로 하거나 높은 곳에 지어진 것과 사뭇 다르다. 또 마애석불을 모신 기도장과 산신각은 아예 계곡을 복개하여 그 위에 축조되었다.
시간이 촉박해 뛰듯했지만 삼천사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구불구불 정다운 길목의 산세와 개천, 그다지 힘들지 않으며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위치해, 오가며 들어오는 풍광과 상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길이다. 진짜 절집에 간다는 기분이 들었으니, 옛날 행랑 메고 실같은 길을 한가히 걸었을 스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나중 저 꼭대기 삼천사 터 를 찾을 땐 수행정진 길이 될 것이다. (龍)
이하 감색 등:
삼천사(三千寺,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津寬外洞 산 34번지) 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 1960년 옛 삼천사(三川寺)의 암자터에 중건했다.
삼천사(三川寺)는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가 흥국사(興國寺) 등과 함께 창건한 절이라고 하나, 그 뒤의 연혁이 전하지 않는다. 1481년(조선 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삼천사(三川寺)는 한때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승병들의 집합소로 활용되었으나 이후 불에 타 없어졌다.
1950년 6·25전쟁 때 소실된 암자터에 1960년에 진영이 중건하고 1978년 성운이 중수했으며, 1988년 미얀마에서 부처 사리(세존 진신사리) 3과를 얻어와 봉안한 석종탑과 나한사리가 봉안된 오층탑이 있다.
현재 사용한 사찰 이름(삼천 三千)은 과거 삼천사(三川寺)가 삼천(三千) 여 명이 수행할 만큼 대가람이었던 데서 따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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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입로에서 본 삼천사계곡. 구름에 덮힌 의상봉부터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봉능선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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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타교(彌陀橋)에서 구름속 용출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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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적멸보궁'으로 위상을 가졌으나, 부처님 사리를 모신 사찰은 종로의 조계사 를 비롯해 많다.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①양산 영축산 통도사, ②평창 오대산 상원사(월정사), ③인제 설악산 봉정암(백담사), ④영월 사자산 법흥사, ⑤정선 태백산 정암사 에 있다. 적멸보궁이 있는 사찰은 통상 불단만 갖추고 불전에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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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한사리 가 봉안된 오층석탑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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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조성된 십층석탑 뒤로 용출봉 이 아직 구름에 싸여여있다. 유물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야 가치로 남는데, 새 것은 언제나 어색하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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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웅보전 뒤로 모습 드러낸 용출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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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오층석탑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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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제657호 로 지정된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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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 나월봉과 우측 나한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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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존(석가모니,부처님)진신사리 가 봉안된 종형부도탑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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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곡에 쌓은 돌탑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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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천폭포, 삼천계곡폭포, 삼천사계곡폭포, 삼천동폭포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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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 캐낸 흔적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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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고와 범종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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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 좌측 용출봉,용혈봉,증취봉, 우측은 나월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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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지지 않은 삼천사계곡 폭포는 아기자기한 멋을 준다. 향림담폭포 처럼 비스듬히 누운 와폭(臥瀑)으로 자체의 완성도에서는 북한산 최고로 꼽을 수 있다. 저 위 삼천사지와 함께 다시 찾을 곳이다. ⓒ2013110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집입로에서 본 삼천사계곡. 구름에 덮힌 의상봉부터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봉능선. 가운데는 백화봉 ⓒ서울포스트
▲ 미타교(彌陀橋)에서 구름속 용출봉 ⓒ서울포스트
▲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적멸보궁'으로 위상을 가졌으나, 부처님 사리를 모신 사찰은 종로의 조계사 를 비롯해 많다.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①양산 영축산 통도사, ②평창 오대산 상원사(월정사), ③인제 설악산 봉정암(백담사), ④영월 사자산 법흥사, ⑤정선 태백산 정암사 에 있다. 적멸보궁이 있는 사찰은 통상 불단만 갖추고 불전에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다. ⓒ서울포스트
▲ 새로 조성된 십층석탑 뒤로 용출봉 이 아직 구름에 싸여있다. 유물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야 가치로 남는데, 새 것은 언제나 어색하다. ⓒ서울포스트
▲ 대웅보전 뒤로 모습 드러낸 용출봉 ⓒ서울포스트
▲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오층석탑 ⓒ서울포스트
▲ 보물 제657호 로 지정된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 ⓒ서울포스트
▲ 좌측 나월봉과 우측 나한봉 ⓒ서울포스트
▲ 세존(석가모니,부처님)진신사리 가 봉안된 종형부도탑 ⓒ서울포스트
▲ 계곡에 쌓은 돌탑들 ⓒ서울포스트
▲ 삼천폭포, 삼천계곡폭포, 삼천사계곡폭포, 삼천동폭포 ⓒ서울포스트
▲ 돌 캐낸 흔적들 ⓒ서울포스트
▲ 법고와 범종 ⓒ서울포스트
▲ 탑 좌측 용출봉,용혈봉,증취봉, 우측은 나월봉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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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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