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양평 폐역사 구둔역, 여주 폐사터 고달사지(高達寺址) 순례(巡禮)①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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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구둔역 폐역사를 거쳐 여주 폐사지 고달사(高達寺) 터까지의 순례기(巡禮記) ⓒ2013072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오늘 고달사지를 가면서 정말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에게 사물을 올곧게 보는 눈과 깊은 생각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보는 눈이 사실에 근접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제가 쓰는 답사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불러 일으키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왜곡된 역사가 있다면 진실되게 수정되기를,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도 제 눈과 마음이 가 닿기를 희망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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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강 양수대교를 거쳐 용문역으로 향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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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평면 일신리 마을 개천 너머 고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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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둔역 옛 역사 ⓒ서울포스트 |
그래서 나의 길은 보고 즐기는 길이 아니라, 오감을 열어 느끼고 생각하고자 순례자의 심경으로 집을 나섰다. 버스길에서 거기까지 포장도로를 걸었다. 비 그친 오후는 금새 열기로 후끈하다. 아예 걷기로 작정을 했지만 '고달'사 로 가는 길은 '고달'펐다. 그러나 산천을 구경하는 재미에 왕방울만한 방점을 두고, 나처럼 걸어서 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는 없을거라는 자부심(?)에 눈깔사탕만한 방점을 찍었다. 내가 지금 신간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 세상을 주유(周遊)한다는 것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미적 관점과 애잔한 시각이 공존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고달사 석물을 제작했다는 고달 이라는 사람은 '높은 곳에 도달한다'는 뜻의 자기 이름 이전에 '일련의 과정들은 사실 고달프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의미로 썼을거라고 생각한다.
왜? '고' 자가 주는 의미는 : 높다, 뛰어나다,가 있지만 고롭다,외롭다,는 뜻도 있다.
즉, '1' 이 주는 의미는 : 처음,우수,를 뜻하나 작다,단순하다,는 뜻도 있다.
색채도 그렇다.
흰색은 순수,풍요를 뜻하나 무지,패배를 뜻한다.
검정은 간결,권위을 뜻하나 불량,추함도 뜻한다.
빨강은 열정을 뜻하나 위험하다.
노랑은 평화를 뜻하나 미숙하다.
녹색은 성장을 뜻하나 병약하다.
파랑은 신념을 뜻하나 차가웁다.
보라는 고귀를 뜻하나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을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등의 고상한 철학이 아니라 일기이원론(一己二元論)이거나 일기다원론(一己多元論) 이라는 일상철학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때의 영화를 누리다 망한 제국도 많다.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빈 손만 내놓고 묻히기를 바랬다. 불로초를 찾아 신하들을 동원했던 진시황제도 잠깐의 통일국가를 이뤘을 뿐이다. 세상이 그리할진데 요즘같은 폭우에 속절없이 떠내려가는 서민들은 부귀영화를 누릴 권리조차 없다.
몇 해 전 긴 장마에서 'Who'll stop the rain'을 떠올리며 그때, 나라의 왕이라면 삼각산에 올라 가 빤쓰만 입고 지우제(止雨祭)라도 지내야 한다고 중얼거린 적도 있다. 비로 인해 생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한숨만 쉬는 서민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탐방길에서 주민들을 마주할 때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게다가 두 군데 다 제 기능을 상실한 데서 온 허전함과 막막한 심정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리라.
간이역 구둔역(九屯驛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구 역사는 등록문화재 제296호로 지정(2006년)되었으며 중앙선 용문에서 원주간 복선 전철역 새 구둔역이 2012년 8월 개통됨에 따라 폐역사로 남게 됐다. 근래에는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고달(高達) 이라는 석공의 이름을 땄다는 고달사지(高達寺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는 발굴이 진행중이어서 유물을 보관할 박물관도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구둔(九屯)'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때 9개의 진지가 구축됐다고 해 붙여졌다고 한다. 사방 첩첩 산 속 일신리 마을로, 동네 앞 개천에서 옥녀봉(玉女峰 419m) 자락이 솟아있다. 고래 형태같다고 해 이름한 *고래산(경산 鯨山 542m)의 동쪽이다. 고래산 줄기는 정점에서 고래등처럼 능선을 만들고 서남쪽 우두산(牛頭山 530m)으로 이어진다. 이 세 산이 양평과 여주의 경계를 이루며, 우두산은 바로 '혜목산(慧目山)' 으로 그 아래 고달사터가 있다.
[*고래산은 고달산(高達山)으로 불리기도 하며, 예로부터 고려장을 하던 '고려산'으로 불리다 고래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양평군 지평면에는 의병로가 있고, 이 일대는 지리적으로 전투가 치열할 수밖에 없어 한국전쟁때는 우리군과 연합군이 많이 희생된 곳이라고 한다. 지평역근처에는 언제나 유엔기가 게양돼 있다.
양평 오지 마을회관까지 뱅뱅 돌았던 버스가 일신리를 경계로 여주군 북내면 주암리에 막 접어들자 고달시지 사거리 안내표지판이 나왔다. 내려서 걷기를 2~3km. 고개를 넘자 멀리 옥녀봉에서 시작된 고래산과 우두산이 북서쪽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진행방향 끝자락에 초지가 보인다. 직감적으로 '저기구나' 싶었다.
도보여행이 재미있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원근거리를 재는 것과 그 너머의 풍경까지 상상하는 거다. 거기에의 이보다 더 아름다울 '무엇'을 생각하면 신이 난다.
마침내 고달사 터 진입로. 천년 전 대가람의 영광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세월이 무심한 것인가 인간들이 무지한 것인가. 야은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따라, 난 '천년전 영화사찰'을 읊는다.
천년전 영화사찰 지금은 폐허라니
사라진 절터보자 분노가 솟는구나
아이고 열받은가슴 뉘짓일까 하노라!
당산나무 아래 도착하자 관리인이 앉아있다. 며칠 폭우로 토사가 덮친 터 때문에 관계기관에서 왔다갔단다. 음료를 나눠 마신 후 카메라를 꺼냈다.
고달사터에는 국보를 포함한 국가지정 보물이 수두룩하다. 현존한 국보4호인 '고달사지승탑(高達寺址僧塔 고달사지부도, 고달사지부도탑)'은 주인이 확인되지 않은 부도(浮屠=사리탑=묘탑)다. 어쩌면 주인없음으로 인해 편견없이 예술적 가치로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국보1호인 남대문(숭례문)은 사실상 국보지위가 없어졌다. 불에 전소되었던 남대문은 타지 않는 돌만 남이있지 어디에서도 옛날은 찾을 수 없다. '국보란 시간이라는 역사성이 첫번째 조건'이다. 그래서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라면 '남대문을 국보에서 보호사적으로 격하'하고 세월이 지난 다음 후세가 재심해야 할 문제다. 국보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유리장 안에 가둬 놔 그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국보3호인 북한산진흥왕순수비는 진흥왕순수비가 아닐 수 있다. 마모되었거나 지워져 천 년 동안 아무도 해석불가한 것을 조선말 추사 김정희가 '글자를 판독하여(읽어) 자가증명을 깊게 새겼다는 게 영 신빙성이 없다'는 것. 이 같이 역사는 귀납법으로만 해석이 가능한 함정을 갖고있다는 것을 지금 고달사가 검증해 주는 셈이다.
고달사가 고려 3대사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없어진 것으로 사서는 기록하고 임진왜란 때 환란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다. 소위 완전한 미스테리 다.
그러나 내 욕심으로만 판단한다면, 원종대사 외에는 어떤 스님의 유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국보인 부도탑도 주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난이나 환란에 의함이 아니고 누군가가 또는 어떤 세력(교종,선종 등 종파간 분쟁 포함)이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기 위해 철저히 증거를 멸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혜로운 눈, 지혜의 안목 의 뜻을 갖고 있는 혜목(慧目)산도 우두(牛頭)산으로 바꿔 부른다. 소대가리산이라니... 최근 없어졌다는 'NLL대화록'이 딱 이 짝이다.
고달사 터를 돌며 몇 번이고 뒷걸음을 했다.
흰돌이 까맣게 된 아득한 세월이 나를 자꾸 돌려 세웠을까.
진한 아쉬움 몇 점 뿌려 놓고, 이번엔 아저씨가 타 준 차 한 잔 마시며 훗날을 기약했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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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를 넘어 먼 산 아래 보이는 초지. 고달사터 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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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녀봉과 고래산과 우두산(혜목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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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이 선점한 고달사. 조계종은 한국 토종 종파로 해방 이후 생겨나 태고종과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웬만한 절을 다 쓸어 담았다. 여기에 조계종 고달사 안내판이 두 개 있으며, 하나는 옛 고달사 위에 현재 수행하는 절이다. 또 도로 건너에는 태고종 신고달사 도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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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워 싼 산 아래 촌락(앞고래들)도 폭우 피해를 입고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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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내 '고달사'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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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공사진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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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때의 고달사 터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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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호수. 수령 400여년 느티나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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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제4호, 고달사 터 부도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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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제7호, 고달사 터 원종대사부도탑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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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달사 터 원종대사비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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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터도 비 피해가 심각하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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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달사 터 석불좌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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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부와 이수를 석불 자리에 올려보고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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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롭게 찾는 이들도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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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 예정 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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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를 넘으며, 고달사 터가 한결 쾌청해 보인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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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경길의 구둔역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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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봉을 시작으로 한 용문산은 구름에 덮혀있다. ⓒ서울포스트 |
※ 여주 고달사(驪州 高達寺)는 764년 경덕왕 23년에 봉황암(鳳凰庵)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고달원(高達院), 고달선원(高達禪院)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고달사 터 일대 면적 58995㎡(약 1만8천 평)은 1996년 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중 국보와 보물로는 문화재청 시행 현재명칭으로,
1. 고달사지 승탑 (高達寺址 僧塔 - 무명의 부도) : 국보 제4호
2.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 - 원종대사비의 귀부 및 이수) : 보물 제6호
3.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高達寺址 元宗大師塔 - 부도,부도탑) : 보물 제7호
4. 고달사지 석조대좌 (高達寺址 石造臺座 - 석불대,석불좌,석불대좌, 석불의 좌대) : 보물 제8호
5.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 : 보물 제282호 (중앙박물관 소재)
6. 고달사지 석조 (石槽 - 수조 水槽)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이외, 보물 제6호의 본체 인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비,비신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碑身) : (중앙박물관 소재)
* 다른 명칭 :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부도탑) : 국보 제4호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탑비塔碑) : 보물 제6호
=비탑원문: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慧目山 高達禪院 國師 元宗大師之碑)
3.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 부도,부도탑浮屠塔) : 보물 제7호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5. 고달사지쌍사자석등 (高達寺址雙獅子石燈) : 보물 제282호 (중앙박물관 소재)
6. 고달사지 석조 (石槽, 석재수조水槽)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이외, 보물 제6호의 본체 인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 비신碑身) : (중앙박물관 소재)
[※ 문화재 관리에서 혼용되는 명칭 :
탑(塔)=부도=부도탑=승탑=사리탑=묘탑, 비(碑)=부도비=탑비=비탑]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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