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국내 유일 비구니 종단 '보문종' 총본산 보문사(普門寺)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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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한 '비구니 종단'의 총본산 사찰 보문사.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석불을 본 떠 제작한 석불 ⓒ20140118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우리나라 불교 종단 수는 100개가 넘으며 그 중 법인(사단,재단)을 이룬 곳은 30여 곳, 그 중 대한불교 조계종(大韓佛敎 曹溪宗) 이 사찰 수 2,500여(승려 1만여 - 비구 5,500여, 비구니 5,000여, 신도 1,100만여), 한국불교 태고종(韓國佛敎 太古宗) 이 사찰수 3,000여(승려 5,700여 - 비구 5,000여, 비구니 700여, 신도 600만여)로 종단으로서는 양대산맥을 이룬다. 그러나 사찰 규모나 재정면에서 조계종파가 압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 개인 시각으로, [불교가 억압을 받았던 조선이후, 일제 때 불교부흥을 주도한 측은 한용운 등 대처승이 주류를 이룬 태고종파로 북한산 태고사 를 옮겨 와 '태고 원증국사' 를 종조 로 한, 현 4대문 안에 유일한 절 (1910년대는 각황사, 일제강점기때는 태고사 로 불림)을 지었으나, 해방 후 일제청산 작업으로 소수 비구계 조계종파가 대처승을 몰아내고 조계사 등 전국 사찰에 조계종 깃발을 꽂기 유리해졌다. 소위, 사찰재산 소유허용으로 정부가 준 재산권에 감읍하여 오늘에 이르며, 단신 수행이라는 무기 뒤에 은처승 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기까지 했다(지난해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도 양물검사를 하자는 등의 은처승 논란에 휩싸이기도).] 1954년부터 불교정화운동으로 지배권력을 등에 업은 조계종파가 태고사 에 조계사 간판 을 걸어 사찰을 강탈한 사건 은 언젠가 재정리 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당시 꼴사나운 싸움에서 어느 편에 서지 않기로 한 '비구니'들이 순수하게 창단한 종단이 바로 대한불교 보문종(大韓佛敎 普門宗)이다. 현재 국내 유일한 여승 종단이며, 이 종단 총본산이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보문사 다. (북한산 승가사 가 비구니 사찰이지만 조계종 소속이라서 이와는 종조 부터 본질적으로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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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호하고 지탱해 준다는 호지문(護持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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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사 홈페이지 |
[※ 자료 등]
1. 보문사(普門寺)는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 3가 168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보문종 총본산. 동대문 밖 비구니 수행도량 보문사(普門寺)에는 조선후기부터 불리워온 별칭이 있다. 그 별칭은 '탑골승방'으로 서울의 낙산 아래 동망봉을 경계로 청룡사, 미타사 등 비구니 도량이 군집해 있어 생긴 이름이다.
특히 보문사는 조선시대에 탑골 승방이라 불리는 옥수동의 두뭇개 승방, 석관동의 돌곶이 승방, 숭인동의 새절 승방(청룡사)과 함께 여승들이 거처하는 성 밖의 네 니사(尼寺) 중 하나로, 단종의 왕비 송씨와 연관된 동망봉과 청룡사ㆍ미타사가 이웃해 있어 이 곳이 왕비와 후궁들의 기도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동문 밖, 비구니 도량으로 왕을 여의거나, 나이가 찬 후궁들이 갈 곳 없이 방황할 때 이곳 탑골승방의 문은 활짝 열려 그녀들의 지친 마음을 감싸 주었다. 그 연유로 비구니 스님들이 상주하며, 정갈하고 단아한 가람, 그리고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수행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세계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포교ㆍ사회복지ㆍ교육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2. 보문사는 고려 중기인 1115년에 담진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1692년 대웅전을 중건하고 1827년 좌우 승당을 세웠다. 1945년 이후 30여년 동안 불사를 벌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인근 청룡사와 더불어 조선 왕실의 후궁과 상궁들이 말년을 의지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화가 여럿 전하며, 지방문화재 3점(대웅전 영산회상도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8호, 대웅전 신중도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9호, 지장보살도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0호) 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경내 서쪽에는 경주 석굴암을 축소해서 재현한 석굴암이 있어 눈길을 끈다.
3. 보문사 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전국에 몇군데 있지만, 석굴암이 있는 보문사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 보문종의 총본산이다.
1115년 예종10년에 담진국사가 창건했으며, 보문종은 불교 최초의 비구니인 석가모니의 이모 대애도니(大愛道尼:마하파자파티)를 종조(宗祖)로, 신라의 비구니 법류니(法流尼)를 중흥조로 삼았다.
불가에 의하면 온갖 덕을 보(普)라 하고, 쓰임을 나타내는 곳을 문(門)이라 하는 것으로 보문이란 곧 관음보살이 중생의 온갖 고난을 구제하고 소원을 성취시키며 널리 교화한다는 뜻이다.
1970년 8월에 시작하여 23개월 동안 진행된 이 불사는 약 4,500여 명에 이르는 조각가와 석공이 동원되었고, 전라지방의 황등석과 경기석 등 총 2,400톤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주불(석불본전)은 15톤의 원석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3.38m이다.
전체적인 것은 경주 석굴암을 따랐으나 경주는 정면이 하나의 문이 있으나, 서울 석굴암은 3곳에 문이 있고(정면과 좌우), 팔부신장(八部神將)이 생략되어 있다고 한다.
보문사 뒷산이 돌산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살려 조성하였는데, 보문사 대중이 이루어낸 대표적인 불사로 평가받고 있다. [3=보문사 사이트]
▲보문사 팔각 9층석탑 : 월정사의 9층석탑을 본떠 제작했으며, 1978년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 3과를 내부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서울포스트
▲ 한 길 가 한옥에 24시마트가 그런대로 멋을 준다.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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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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