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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에서 만난 국보와 보물②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3/07/25 23:51:08)

[탐방]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에서 만난 국보와 보물②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엄청난 규모의 고달사 터 국보와 보물들 ⓒ2013072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①편 '고달사지 순례'에서 난,
국보1호 남대문(숭례문)은 사실상 국보지위가 없어졌다는 주장을 했다. 불에 전소되었던 남대문은 타지 않는 돌만 남이있지 어디에서도 옛날은 찾을 수 없다, '국보란 시간이라는 역사성이 첫번째 조건'이다. 그래서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라면 '남대문을 국보에서 보호사적으로 격하'하고 세월이 지난 다음 후세가 재심해야 할 문제다.
국보2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유리장 안에 가둬 놔 제대로 볼 수 없어 우리가 국보를 국보로 존중하고 감탄하고 자부심을 느낄 근거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국보3호 북한산진흥왕순수비는 진흥왕순수비가 아닐 수 있다, 마모되었거나 지워져 천 년 동안 아무도 해석불가한 비석을 조선말 추사 김정희가 '글자를 판독하여(읽어) 자가증명을 깊게 새겼다는 게 영 신빙성이 없다' 고 주장했다.

고달사가 대사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없어진 것으로 사서는 기록하고 임진왜란 때 환란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다. 소위 완전한 미스테리 다. 같은 지역 신륵사에는 고려때 명승 나옹화상의 행적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나옹 의 일대기에 그 유명했다는 고달사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옹 훨씬 이전에 폐사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또 내 욕심으로만 판단한다면, 원종대사 외에는 어떤 스님의 유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국보인 부도탑도 주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난이나 환란에 의함이 아니고 누군가가 또는 어떤 세력(교종,선종 등 종파간 분쟁 포함)이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기 위해 철저히 증거를 멸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혜로운 눈, 지혜의 안목 이란 뜻을 갖고 있는 혜목(慧目)산도 우두(牛頭)산으로 바꿔 부른다. 소대가리산이라니... 역사는 귀납적으로만 해석 가능한 모순이 있다.

덧붙이자면, 계유정란을 일으켜 왕권을 쥔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까지 죽이고 세종(세조의 아버지)의 충신들을 모조리 처형한 냉혈안인 반면, 이씨 조선이 단종 주변의 간신들로 위태로와서 거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삼문 등은 나중에 복권되었지만 정말로 간신이었을 수 있고 정말로 충신이었을 수 있다.

ⓒ서울포스트

※ 여주 고달사(驪州 高達寺)는 764년 경덕왕 23년에 봉황암(鳳凰庵)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고달원(高達院), 고달선원(高達禪院)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고달사 터 일대 면적 58995㎡(약 1만8천 평)은 1996년 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중 국보와 보물로는 문화재청 시행 현재명칭으로,

1. 고달사지 승탑 (高達寺址 僧塔 - 무명의 부도) : 국보 제4호
2.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 - 원종대사비의 귀부 및 이수) : 보물 제6호
3.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高達寺址 元宗大師塔 - 부도,부도탑) : 보물 제7호
4. 고달사지 석조대좌 (高達寺址 石造臺座 - 석불대,석불좌,석불대좌, 석불의 좌대) : 보물 제8호
5.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 : 보물 제282호 (중앙박물관 소재)
6. 고달사지 석조 (石槽 - 수조 水槽)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이외, 보물 제6호의 본체 인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비,비신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碑身) : (중앙박물관 소재)

* 다른 명칭 :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부도탑) : 국보 제4호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탑비塔碑) : 보물 제6호
=비탑원문: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慧目山 高達禪院 國師 元宗大師之碑)
3.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 부도,부도탑浮屠塔) : 보물 제7호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5. 고달사지쌍사자석등 (高達寺址雙獅子石燈) : 보물 제282호 (중앙박물관 소재)
6. 고달사지 석조 (石槽, 석재수조水槽)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이외, 보물 제6호의 본체 인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 비신碑身) : (중앙박물관 소재)

[※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 등에 그동안 지정명칭의 명명(命名) 방식이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왜곡되고, 지정명칭과 관련된 통일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웠던 것을 국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명칭부여 기준을 마련하여 지정명칭 일제정비 사업을 2007년 완료하여 시행하고 있다.

※ 현재까지 혼용되는 명칭 : 탑(塔)=부도=부도탑=승탑=사리탑=묘탑, 비(碑)=부도비=탑비=비탑]

▲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탑) : 국보 제4호 ⓒ서울포스트
▲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탑) : 국보 제4호 ⓒ서울포스트
▲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탑) : 국보 제4호 ⓒ서울포스트
▲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탑) : 국보 제4호 ⓒ서울포스트
▲ 원종대사부도탑(보물 제7호)에서 무명의 부도탑(국보 제4호) 가는 계단 ⓒ서울포스트
▲ 3.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 부도,부도탑浮屠塔, 탑) : 보물 제7호. 관리상태가 좋지 않다. 최근에 옮겼거나 손을 댄 흔적들이 보인다. ⓒ서울포스트
▲ 3.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 부도,부도탑浮屠塔, 탑) : 보물 제7호 ⓒ서울포스트
▲ 비 조차 없고 귀부의 목도 떨어져 있다. 아직 문화재 가치를 인정 못받았다.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서울포스트
▲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 : 보물 제6호 ⓒ서울포스트
▲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서울포스트


▲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서울포스트
▲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서울포스트
▲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서울포스트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서울포스트
▲ 5. 고달사지쌍사자석등 (高達寺址雙獅子石燈) : 보물 제282호 (중앙박물관 소재) ⓒ자료
▲ 6. 고달사지 석조 (石槽, 석재수조水槽)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자료
▲ 보물 제6호의 본체 인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 비신碑身) 과 탁본 : (중앙박물관 소재) ⓒ자료


◆ 여주 고달사지(驪州 高達寺址) ◆ : 1996년 사적 제382호로 지정됨

자료1 : 문화재청 참조

소재지 :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외
수량/면적 : 58995㎡(약 1만8천 평)
시대 : 통일신라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7호)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이 있다.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자료2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혜목산(慧目山)에 있었던 절.

내용764년(경덕왕 23)에 창건되었으나 창건자는 미상이다. 신라 구산선문 중 봉림산파를 열었던 현욱(玄昱, 787∼868)이 절을 중건하였고, 862년(경문왕 2) 훗날 진경대사(眞鏡大師)로 불리운 신라말의 고승 심희(審希)가 이곳에서 현욱의 제자가 되었다.

고려 광종 이후 역대왕의 비호를 받아 대찰(大刹)의 면모를 유지하였는데, 원종 찬유(元宗 璨有)는 진경대사에게 법을 이어 받은 후 고달사에서 28년간 주석하며 중창하여 고려 초 3대 사찰 가운데 하나가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고, 대략 17세기 후반 무렵에 폐사된 듯하다.

이 곳에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부도와 보물 제8호 고달사지석불좌, 보물 제7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이 남아 있으며, 보물 제6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 및 이수와 보물 제282호 고달사지쌍사자석등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보호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립박물관에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고달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참고문헌『문화유적총람』 상(문화재관리국, 1977)
『전통사찰총서』 3(사찰문화연구원, 1993)


자료3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北內面) 상교리(上橋里)에 있는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절터.

1993년 7월 23일 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만 1,035㎡이다. 764년(경덕왕 23)에 창건된 고달사는 고달원(高達院)이라고도 하며, 고려시대에는 특히 광종(光宗) 이후 역대왕들의 비호를 받던 사찰이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절터는 북내면 상교리마을을 사면으로 병풍처럼 감싸안은 혜목산(慧目山) 산자락에 있으며, 지금은 전답 등 농경지와 임야로 되어 있다.

국보 제4호 고달사지부도(浮屠), 보물 제6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의 귀부(龜趺) 및 이수(螭首), 보물 제7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 보물 제8호 고달사지석불좌(石佛座) 등이 있다.

1. 고달사지부도 (高達寺址浮屠) : 국보 제4호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호로 지정. 높이 3.4m. 국보 제4호. 기단부·탑신부·옥개석 등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

전형적인 8각 원당형(圓堂形) 승탑으로 신라의 양식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고려시대 초기 승탑이다. 상륜부가 없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승탑의 기단은 여러 매의 판석으로 짜인 8각지대석 위에 각각 1석으로 조성된 괴임대를 놓고, 그 위에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을 얹은 모양이다.

하대석(下臺石)에는 옆면에 안상(眼象), 윗면에 복련(覆蓮)을 새겼고, 간석(竿石)에는 거북을 중심으로 하여 네 마리의 용(龍)과 구름 무늬를 조각했는데, 그 솜씨가 웅혼(雄渾)하고 대담하다. 상대석(上臺石)에는 앙련(仰蓮)을 돌리고 날씬한 8각 탑신을 놓았으며, 각 면에 문비형(門扉形)과 사천왕상을 새겼다. 비교적 두꺼운 옥개는 전각마다 높직한 귀꽃을 새겨 장식했다.

고르게 갖춘 조형(造形)과 세련된 조각수법은 장중한 기풍을 풍긴다. 또한 신라 석탑의 기본형을 따르면서도 고려시대의 웅장한 분위기가 감돈다. 일설에 따르면, 868년(경문왕 8)에 입적한 신라 말의 고승 원감(圓鑑)의 묘탑(墓塔)이라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두산백과 등)

2.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이수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螭首, 비,비탑碑塔)의) : 보물 제6호
=비탑원문: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慧目山 高達禪院 國師 元宗大師之碑)

귀부는 높이 0.91m, 길이 3.21m, 이수는 높이 1.09m, 너비 2.33m.

고려시대 것으로 비의 정식명칭은 "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다. 비신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용산구 중앙박물관에 있고, 고달선원의 옛터인 고달사지에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비문에 따르면 수국사신(修國使臣) 김정언(金廷彦)이 글을 짓고, 내의승지 장단열(張端說)이 썼다고 한다. 아울러 원종이 869년(咸通 10:신라 문경왕 9) 태어나서 13세에 출가하여 불도를 닦은 행적을 간략하게 적었다.

이 비는 지대석(地臺石)과 귀부가 커다란 하나의 돌덩이로 만들어졌고, 육각갑(六角甲) 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비좌(碑座)는 운(雲) 무늬를 새긴 연화좌(蓮花座) 위에 각출(刻出)되었고, 윗면 둘레에는 복련(覆蓮) 무늬를 조각하였다. 거북의 네 발과 발톱 끝은 사실적(寫實的)이고도 예리하게 조형되었으나, 용형(龍形)의 귀두에 비해 면상이 너무 크고 기이하다. 그 거대함과 사실성에서 고려 초기의 진취적인 기상을 읽을 수 있다. (두산백과)

3.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 (高達寺址元宗大師慧眞塔 부도,부도탑浮屠塔) : 보물 제7호

8각 원당(圓堂)의 형식을 따르면서 부분적으로 시대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탑이다. 넉장으로 짜여진 넓은 사각형 지대석(地臺石) 위에는 1면에 다섯 잎 씩, 각 우각(隅角)에 1엽 씩, 모두 24잎의 홑잎 연꽃무늬가 얹혀 있다.

상대석(上臺石)은 8잎의 커다란 홑잎앙련(仰蓮:위로 향한 연꽃)이 있는데, 바닥면에는 잘룩한 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탑신받침의 몰딩이 있다. 8각 탑신(塔身)은 4면에 문비형(門扉形)이,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이 조각되었다. 옥개(屋蓋)도 8각이며 추녀는 수평이나 전각(轉角)에 이르러 위로 뻗었고, 그 위에 뚜렷한 귀꽃의 일부가 손상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꽃무늬로 조각한 복발(覆鉢) 위에 귀꽃이 달린 작은 보개(寶蓋)를 얹고, 보륜(寶輪) ·보주(寶珠)를 올렸다. 탑비가 975년(광종 26)에 건립되었으므로, 이 석탑도 그 무렵에 건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백과)

4. 고달사지석불좌 (高達寺址石佛座, 좌대座臺) : 보물 제8호

높이 1.48m. 3단으로 만든 대좌(臺座)는 각 단이 별개의 돌이며 기본형은 사각형이다. 상단의 윗면은 불상을 안치하던 곳이며 잘 다듬어져 있고, 1단의 각형(角形) 받침이 있다. 그 아래로 겹꽃의 앙련(仰蓮) 무늬가 각 면에 다섯 꽃잎씩, 모서리마다 한 잎씩 모두 24잎이 조각되었다.

중단(中段)은 간석(竿石)으로 사각형이며 각 면에 우주(隅柱)가 있고 위와 아래 끝은 단층을 이루었다. 이 안에 커다란 안상(眼象)을 하나 조각하였으며 네 면이 모두 똑같은 수법이다. 하단(下段)은 제일 위에 간석을 받치는 3단 받침이 있으며, 그 아래에 복련(覆蓮)의 겹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 1단의 턱이 진 안상 받침이 있다. 그 아래의 받침은 각 면에 네 개의 안상이 있으며, 맨 아래에는 지대석이 그대로 깔려 있다. (두산백과)

5.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 : 보물 제282호 (중앙박물관 소재)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은 1938년 고달사에서 발견 국보로서 가치를 인정하고 195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보관 주민이 종로 모 예식장주인에게 거금을 받고 팔았다. 1959년 경복궁(중앙박물관)으로 옮겼으며 1962년 국보와 보물을 나눔에 따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발견당시 옥개석과 상륜부가 없었으나 추가발굴로 옥개석은 찾고 상륜부는 현재도 없는 상태.

6. 고달사지 석조 (石槽 - 수조 水槽)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2010년에 시도문화재로 지정. 고달사지 석조는 경기도 내에서 보기 드문 작품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점에서 가치가 인정된다. (문화재청)

○ 보물 제6호의 본체 인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비,비신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碑身) : (중앙박물관 소재)

975년 건립. 비신의 높이 325㎝, 너비 162㎝, 두께 30㎝. 원래는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의 고달사지에 있었던 것으로, 여러 조각으로 깨져 있다.

*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명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銘) 탁본

재질 : 지(紙),
크기 : 146×70.5cm
소장기관 :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여주 고달사터에 있던 고려 초 원종대사(元宗大師) 찬유(璨幽)의 비를 탁본한 것으로 머릿돌과 받침돌은 보물 제6호로 지정되어 고달사터에 있다. 비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부러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태가 양호하여 글자의 판독이 가능하다. 비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장단열(張端說)이 전액(篆額: 전자로 쓴 비갈이나 현판의 제액)을 썼다. 또한 비문은 해서로 바둑판 같은 선이 그어진 네모칸 안에 썼으며, 글자는 이정순(李貞順)이 새겼다.


▲ 가까스로 귀부와 이수를 석불좌에 앉혀봤다.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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