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경복궁에 남아있는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址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101호)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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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중앙박물관으로 못가고 경복궁에 남아있는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현묘탑(玄妙塔, 지광국사부도=부도탑=묘탑(墓塔)=승탑=탑) ⓒ2015041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 (사전 =) 현묘(玄妙): ①헤아릴 수 없이 미묘하다 ②그윽하고 오묘함]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옆에 아름답고 화려한 탑 하나가 있다. 고려시대 고승 지광국사 해린(智光國師 海麟, 984∼1067,1070?)의 부도로, 마치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의 혼합을 보는듯하다. 모든 탑,탑파 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부도(浮屠)'라고 하는 묘탑(墓塔)을 말하지만 커다란 탑이나 작은 부도는 같은 목적으로 쓰여 의미도 같다고 한다. 여기 지광국사현묘탑은 지광국사부도탑,묘탑이지만 그 제작 수법이 오묘해 현묘탑(玄妙塔)으로 부르고 있다. 실제 한반도에 지금까지 유효한 승려의 묘탑은 대부분 8각 원당형이지만, 이 탑은 전무후무한 형식일 뿐더러, 다양하고 화려한 형상과 문양,장식,조형미,규모 등에서 부도탑 중 한반도 최고의 예술적 걸작으로 꼽힐만 하다.
[※ 자료 = 지광국사 해린(智光國師 海麟, 984∼1067)은 원주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원씨(元氏), 자는 거룡(巨龍)이다. 유학(儒學)에 능하고 문장과 법문에도 뛰어났다. 고려 불교 법상종을 중흥시켰으며, 국사(國師)에까지 올랐다. 시호는 고려 문종이 내린 '지광(智光)']
사리를 모시는 탑 과 행적을 기록한 탑비 는 함께 있게 마련이나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탑(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塔 국보 제101호)' 은 일제 강점기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터에서 1912년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1915년에 되돌려 받아 현재 경복궁 경내에 세워져 있다. 원주 소재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탑비(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塔碑 국보 제59호)'도 같은 예술적 걸작의 반열에 있다. [+ 키워드: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현묘탑(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玄妙塔,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현묘탑비(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玄妙塔碑]
고려(918∼1392년)는 중국 송나라(960∼1279년)와 시대를 비슷하게 한다. 중국은 이미 송대에 예술,사상,실용기술이 꽃을 피웠고 서역과 교류도 활발했다. 송 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때문인지 고려시대 탑의 몸체에도 페르시아(현 이라크, 이란 지역으로 1935년까지 이란의 국호는 페르시아) 풍의 창문을 내고 드림새 장식을 했다.
지광국사는 고려 현종(8대)과 문종(11대)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문종 때 왕사로 삼았다가 훗날 국사로 임명한 기록이 있으며, 현묘탑비 를 받히고 있는 귀부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아래 자료사진 참조). 이런 내용도 한반도 불교사에서 유일하다.
왜인에 의해 탑과 탑비가 이별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되돌려 받아 모신 경복궁(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쟁의 폭격으로 심하게 훼손돼 시멘트 등으로 복원했으나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탑신부 네 모서리에 사자 네 마리는 행방불명 되었다. 경천사지십층석탑 상륜부도 용산 이전 전후에 사라졌음) 2005년 10월 28일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롭게 개관돼 대부분의 경복궁 문화재는 이전했지만, 여기 지광국사 현묘탑은 기브스(?)를 한 채 홀로 남아 있고 원주 법천사터로도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다.
근 1,000년이라는 비바람의 흔적. 신록이 더 푸르러지는 날, 더 선명한 사진을 기대하며!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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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이전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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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폭격으로 파손된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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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관대첩비(모조품)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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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동남쪽에 있는 동십자각 ⓒ서울포스트 |
※ 북관대첩비 (北關大捷碑) - 아래 모든 자료는 검색에 의존함.
임진왜란 때 정문부(鄭文孚)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한 전공비.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이다. 이 비에는 함경도 의병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거느린 왜군을 무찌른 일, 왜란이 일어나자 반란을 일으켜 함경도로 피난한 두 왕자를 왜적에게 넘긴 국경인(鞠敬仁)을 처형한 전말등 사실이 1,500자 비문에 소상히 적혀 있다. 조선 숙종 때 함경도 북평사(北評事)로 부임한 최창대(崔昌大)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臨溟)에 건립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 때 함경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 여단장 소장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는 주민들을 협박하여 비석을 파내 일본으로 옮겼다. '군국일본'의 상징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방치되었다.
그러나 비문에 이름이 있는 의병의 후손들이 일본 정부에 청원서를 내는 등 반환운동을 벌인 끝에 2005년 10월 20일에 한국에 반환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치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다가 2006년 3월 1일에 비석이 원래 있던 곳에 복원하기 위해 북한으로 전달 되고 국립중앙박물관, 독립기념관, 의정부 정문부장군묘역의 세곳에 복제비를 세웠다.
※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탑 [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塔 Stupa of Buddhist Priest Chigwang]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 내에 옮겨져 있는 고려시대 승탑으로 높이 6.1m, 1085년 경 조성, 국보 제101호.
- 개설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 뒤편 탑비전 서쪽에 함께 있었으나 1912년 해체되어 일본 오사카 후지와라 남작 가문의 묘지로 이전되었다가 1915년 조선총독부의 명으로 반환되어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근처로 옮겨졌다.
이후 동문 가까이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세워지자 박물관 경내에 있게 되었다. 한국전쟁 시 포탄의 피해로 옥개석 이상이 조각나 흩어져 있는 것을 195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건보수공사를 실시하여 현재 위치로 복원되었으며 이때 탑신 상면에서 방형의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내부는 비어 있었으며 뚜껑은 4, 5쪽으로 파손되어 있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궁내 대부분의 석조물들도 함께 옮겨졌으나 이 승탑은 이전 시 파손의 위험으로 인하여 그대로 남게 되었다.
- 역사적 변천
허균의「유원주법천사기(遊原州法泉寺記)」에 법천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광국사현묘탑비문」에 지광국사가 구족계를 받는 999년 이전에 법천사를 방문하였고 국사가 된 후 1067년에는 이곳으로 돌아와 3년 후 열반하였음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전에 창건되어 고려 중기에 크게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도 한명회, 서거정 등이 이곳에서 수학하였음이『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어 법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589년까지 존속되다가 1592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어 절터는 부락과 전답으로 변하게 되었다.
한편 당간지주만 남은 절터와는 달리 절터 뒤편 동쪽 산자락 외곽지역 석축 위에 있었던 탑과 탑비는 20세기 초까지도 원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현재 탑은 1912년 이후 일본을 거쳐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 영역으로 옮겨졌으며 탑비만 원위치에 남아 있다.
- 내용
넓은 지대석 위에 2층 기단, 탑신, 옥개석, 상륜을 안정감 있게 올린 방형 승탑으로, 빈틈없이 각종 조식이 장식되어 있다.
기단은 하층기단 하대석이 3단으로, 제1단은 4매로 층단과 같은 낮은 면에 하대, 우주와 탱주, 갑석을 모각한 후 각 면에 귀꽃이 솟은 안상을 조각하였으며 위로 낮은 1단의 괴임이 있어 상층이 올려져 있다. 네 모서리에는 용의 발톱 같은 것으로 덮여 지대석까지 이어지며 탑을 지면에 안착시키는 듯하다. 제2단도 4매로, 측면 중앙에 귀꽃이 솟은 연판을 2중으로 장식하였으며 윗면에는 각, 호의 윤곽을 둘러 윗단을 받고 있다. 제3단은 하층기단 중대 면석이 함께 조출된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우주와 탱주가 모각된 3단의 면석, 각, 호, 각의 괴임대, 역시 우주와 탱주가 각출된 하층기단 중석이 차례로 표현되었다. 3단 면석에는 국화문이, 하층기단 면석에는 구름과 화염 속의 보주가 조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은 1석으로 측면에 장막을 표현하는 2단의 횡선문과 연주문이 있으며 상면에는 3중의 연화가 둘러져 있으며 4귀퉁이에는 사자가 안치되었던 2개의 원공이 있다. 하면에는 낮은 부연을 두고 상층 탑신을 받는 곳에는 호형의 윤곽이 둘러져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1석으로, 탑신석과 같이 높으며 각 면에는 2개의 장방형의 액자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남쪽 사리봉송장면, 북쪽 산수문, 동서쪽에 운룡문과 신선문을 새겼다. 갑석은 상단 네 귀퉁이가 살짝 올려져 반전하고 있으며 측면에는 2단의 장막과 연화를 장식하였는데 상단 장막은 횡선과 연주문으로, 하단은 걷어 올려 끈으로 묶어 늘어진 모습이다. 갑석 위로는 1매의 괴임석을 두어 탑신석을 받고 있다.
탑신은 1석으로 밑에는 탑신 받침이 모각되었는데 측면은 작게 구획하여 귀꽃이 있는 작은 안상을 돌리고 위로는 3중의 연꽃을 새겼다. 면석에는 3개의 대나무로 표시된 우주를 새기고 남·북면은 문비를, 동·서면은 2구씩의 창을 모각하였는데, 문과 창은 모두 첨형 아치 형태이며 위로 영락이 늘어져 있다.
옥개석도 1석으로 전체 모습은 우동마루가 표현된 일반 석탑의 옥개석 형태이나 천개 모습의 처마에는 네 모서리의 가릉빈가를 비롯하여 보주, 불상, 비천 등이 가득 장식되었으며 밑으로 영락이 늘어진 휘장이 장식되어 있다. 상단에는 낮은 괴임을 두어 상륜을 받고 있다.
상륜은 낮은 받침, 팔메트형 앙화, 복발, 보륜, 옥개석과 유사한 천개 형태의 8각형 보개, 2중의 연화 받침대에 올린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상륜부의 잘 보이지 않는 보개 하단에도 연화를 새기는 등 각 부재에 빠짐없이 문양을 장식하였다.
- 특징
선종의 발달과 전래로 신라 9세기부터 중시되어 조성된 우리나라 승려의 묘탑은 8각 원당형이며 이는 고려 초까지 이어진다. 법상종 승려인 지광국사탑은 이러한 큰 틀을 벗어나 방형으로 조성되었으며 탑 전체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과 이야기, 독특하고 화려한 장엄 요소들을 복잡하지 않게 구성하여 전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다.
- 의의와 평가
지광국사는 법상종 승려로, 그의 탑은 기존의 선사 중심으로 조성되던 승탑의 조형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탑의 평면을 방형으로 변화시키거나 탑에 장식되지 않던 국화문, 변용된 귀꽃형 연화문, 대나무로 대체한 기둥을 사용하는 등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상층기단 면석의 사리봉송도, 산수문, 신선문 그리고 탑신석의 첨형 아치형 문비와 창문 조각은 당시의 동서문화교류, 회화, 사상적 배경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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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탑비 [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塔碑]
-(자료: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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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법천리(法泉里)에 있는 고려시대의 화강석 탑비. 국보 제59호. 1085년(선종 2) 건립. 고려시대 석비를 대표할만한 걸작으로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약 4.55m, 비신(碑身) 높이 2.97m, 너비 1.42m이다. 법천사 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67)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1년(1067)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과 함께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현묘탑은 현재 서울 경복궁 안에 있으나 비는 원래의 위치에 보존되어 있다.
귀부(龜趺)는 넓은 지대석(地臺石)위에 놓였고 귀수(龜首)의 목은 길게 직립하여 전면을 향하였으며, 머리는 괴수(怪獸)의 형태이다. 비면(碑面)의 외주(外周)에 보상(寶相) 당초문을 둘렀고, 양측면에는 농주(弄珠)하는 쌍룡을 음각하였다. 개석(蓋石)은 위가 활짝 벌어진 형태로서 통식(通式)을 벗어났으며 네 모퉁이의 전각(轉角)이 우뚝 솟고 귀꽃이 달려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의 찬(撰)에 안민후(安民厚)의 서(書)로 되어 있다. 1,370여 명에 달하는 제자들의 이름도 음각되어 있다. 비를 세운 연대는 비문으로 미루어 1086년(고려 선종 3)임을 알 수 있다.
※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法泉寺智光國寺玄妙塔碑, Stone Stele of Buddhist Priest Chigwang)
-(자료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이 탑비는 고려 시대의 고승인 지광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탑비와 함께 매우 이색적인 조형양식을 지닌 작품으로 유명하다. 거북들은 넓은 바닥돌에 조각되었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목은 길게 세우고 머리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목에는 물고기 비늘무늬가 새겨져 있다. 등가죽에는 네모진 외곽 안에 다시 구슬띠무늬의 육각형 껍질무늬를 표현하였고 그 속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등의 중앙에는 간결한 연꽃무늬를 덮어 빗돌받침을 마련하였고, 그 위에 세워진 빗돌에는 바깥 둘레에 꽃덩굴무늬를 장식하였고 옆면에도 쌍룡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머릿돌은 날아오르는 지붕과 같이 조각되어 추녀모습을 닮은 네 귀는 위로 솟아 있고 귀꽃도 달려 있다. 머릿돌 전체에는 용과 구름무늬가 장식되고 중앙의 꼭지에는 보주장식이 있다. 이 탑비는 표현감각이 매우 신비스럽고 상징적이며 세밀하고 정교한 무늬장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이 역력하다. 그리고 머릿돌의 조형기법은 이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형식으로 이국적인 예술감각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중앙박물관으로 못가고 경복궁에 남아있는 원주법천사지지광국사현묘탑(玄妙塔, 지광국사부도=부도탑=묘탑(墓塔)=승탑=탑) ⓒ2015041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북관대첩비(모조품) ⓒ서울포스트
▲ 경복궁 동남쪽에 있는 동십자각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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