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개운산 개운사, 대원암 그리고 '백불'이 있는 보타사(普陀寺)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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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타사 마애불 은 옥천암 마애불 과 흡사한 특징이 있다. ⓒ2014012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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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각백불 로 잘 알려진 옥천암 마애석불좌상 ⓒ서울포스트자료 |
오늘 도심사찰 탐방에 나선 것은 순전히 보타사(普陀寺) 때문이다. 며칠전 갔다 온 보문동 보문사 는 동향의 산자락에 버스 길에서 항상 보였기 때문에 궁금했던 터였고.
보타사 에도 유명한 백불(白佛)이 있다. 이 마애불 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돼 있으며, 호분(胡紛)이 칠해져 전체 모습이 홍제천변 옥천암 보도각 백불 = 마애보살좌상 과 쌍둥이 같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크기(높이 5m),표정,장식 등을 보아 한 사람이 제작했을 것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제작자가 여러 장소에 '동시 존재'자로서의 부처를 염두했을지 모른다. (불,불상, 석불,동불,철불,목불, 입상,좌상,와상, 마애불)
지난번 옥천암 을 탐방할 때 종무원에 들러 나눈 얘기가 생각난다. "현재 보도각백불 은 서울시 유형문화재인데 대단한 가치로 보여 보물지정을 요청하시라"고 했는데, 엊그제 문화재청 고시 보물로 지정예고 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오래전부터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얘기다.
개운사, 대원암, 보타사는 고려대학교와 고려대부속병원 사이에 있고, 지금의 안암동과 안암골이 유래한 안암산(安岩山) 아래 있다. 안암산은 현재 개운산(開運山) 으로 불린다.
※ 개운사  |
| ▲ 개운사 석불입상 은 전통적 불상의 모습보다, 현대적 도회적 요소가 가미된 미를 볼 수 있다. ⓒ서울포스트 |
※ 대원암
※ 보타사
※ 아래 자료 등을 참고하여 -
1. 개운사(開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성북구 안암동에 있다. 1396년(태조 5)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無學)가 동대문에서 5리 되는 안암산(安岩山) 기슭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영도사(永導寺)라 하였으나 1779년(정조 3) 홍빈(洪嬪)의 묘 명인원(明仁園)이 절 곁에 들어서자, 축흥(또는 인파仁波)이 동쪽으로 약간 옮겨 짓고 개운사로 고쳤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영조 6년에 이미 영도사가 이전된 것으로 기록된 문헌도 있어 영도사가 개운사로 이름을 바꾸게 된 시기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무학대사의 영도사가 있던 자리에는 고려대학교 이공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개운사는 현대 '불교개혁의 근원지', '불교교육의 근본도량' 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2. 대원암(大圓庵, 개운사 부속 암자)은 1845년 우기(祐祈)가 창건하고, 여기에 근대의 고승 정호(鼎鎬)가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여 불교계 지도자를 길러냈다. 개운사와 함께 20세기 이후에 한국 교육불사와 불교의 진보적인 운동을 주도해 왔다. 또 대원암은 불경번역의 요람으로 1973년 탄허((呑虛)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사업에 전념하였고, 1926년에는 근대불교의 석학 박한영 스님도 머문 곳.
중앙승가대학교(中央僧伽大學校)는 1979년 조계종단에 설립해 성북구 보현사를 학사로 했으나 1981년 개운사 내 개운회관을 인수하여 교사로 썼고 2001년 1월 김포로 이전했다.
3. 보타사(普陀寺, 개운사 부속 비구니 암자)는 승가대학교가 있을 때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비구니 스님 정진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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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애좌상 이라는 표현은 언어성립이 안된다. 마애불.. 로 표해야 ⓒ서울포스트 |
[보타사 마애좌상 (普陀寺 磨崖坐像)] - 검색
[※ 어떤 상 을 지칭할 때, '마애좌상(이대로 해석하면 = 끝을 갈아서 앉은 상)' 처럼 주어나 보어 가 생략된 명칭은 문화재관리당국의 무식의 극치며, '마애불...' 등으로 써야 한다. = 서울포스트]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이다. 이 불상은 1992년 서울문화사학회가 정기 답사 때 발굴한 것으로 높이 5m, 폭 4.3m의 거대한 보살상이다.
머리에는 좌우 옆으로 뿔이 있는 관을 쓰고 있으며, 뿔 끝에는 복잡한 타원형의 장식이 늘어져 있다. 얼굴 생김새가 토실토실하며 어깨가 넓고 웅대한 형상을 하고 있다. 비교적 자연스럽고 미감이 풍부한 표정이며 옷은 양 어깨를 감싼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최근에 온 몸을 흰색으로 칠하여 백불(白佛)의 인상을 풍기는데, 입술은 붉은색, 눈과 눈썹, 윤곽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마애불 어깨쪽의 좌우에 홈이 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보호하던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 오른쪽 아래에는 제작 당시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남아있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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