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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설날, 다산유적지 거쳐 꽁꽁 언 팔당호 트레킹(1차)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7/01/28 23:20:04)

[탐방] 설날, 다산유적지 거쳐 꽁꽁 언 팔당호 트레킹(1차)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 기자

▲ 저 의자를 보면. 큰 소파 를 매고 빙하나 고산을 누비는 독일 출신 사진작가 '호이스트 바커바르트 의 붉은 소파(Red Couch)'가 생각난다. ⓒ20170128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저 의자를 보면. 큰 소파 를 매고 빙하나 고산을 누비는 독일 출신 사진작가 '호이스트 바커바르트 의 붉은 소파(Red Couch)'가 생각난다. ⓒ20170128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설날, 문득 바다라도 보고 싶어 달려 간 곳이 팔당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담수호, 저수용량도 단연 최대인 팔당호는 주로 간 남양주에서 건너 광주땅을 볼 때 수평선이 아득한 바다를 마주한 느낌이다. 근처엔 예빈산,예봉산,검단산이 있고 댐 하류로 멀리보면 북한산과 도봉산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 기후가 변화고 있음을 작년 여름과 올 겨울을 겪으며 감지한다. 예년 같아선 영하 12도를 4일정도, 영하 16,17도를 2~3일 겪어야 겨울이 갔다. 올핸 12도가 3일 정도일 뿐이다. 하긴 작년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가. 평년보다 3도쯤 높고 날짜도 10일쯤 길었다.

겨울분위기도 나지 않지만 먼 산에 쌓여있는 희끗희끗한 눈, 꽁꽁 언 강바닥이 그런대로 겨울 정취를 맛본다. 초입에서 용문산 백운봉을 가까이서 담고 늘 보던 풍경대로 활엽수 낙엽 가득한 샛길을 걸었다.

버스 시간이 남아 비각이 있는 왕손 정도로 큰 묘지에 관심이 가 찾았다, 신도비가 2m를 훌쩍 넘는 양절공 한확 선생. 입구에 자기랑 이라는 도자기 카페도 담고! (龍)








※ 양절공 한확 선생 과 신도비(襄節公 韓確)

한확(韓確 1403-1456). 조선 전기의 문신. 누이가 명나라 성조의 비가 되자 진헌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광록시소경이 되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서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의정에 올랐다 .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소재하는 그의 신도비.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방신(方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寧)이고, 아버지는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영정(永矴)이며, 어머니는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덕종의 비(妃) 인수왕후(仁粹王后=소혜왕후 한씨, 인수대비)의 아버지로, 성종의 외할아버지이다.

생애와 활동사항

1417년(태종 17)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된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였다. 누나가 여비(麗妃)로 책봉되자 명나라의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되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승습사(承襲使)로 명나라에 들어갔고, 1419년(세종 1) 1월 명나라의 책봉사(冊封使)가 되어 부사인 홍로시승(鴻臚寺丞) 유천(劉泉)과 함께 귀환하였다. 1420년 1월 광록시소경으로서 예조참판 하연(河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태종 이래 추진했던 금과 은의 공물면제를 허락받고 귀국하였다.

1424년 명나라 성조가 북정(北征) 중 유목천(楡木川)에서 죽자 여비도 자결하였다. 그러자 명나라에서는 또 그의 누이동생을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선하였다. 그래서 1429년 조종생(趙從生)과 함께 진헌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마다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어 접대하였다.

1435년 행중추원부사·지중추원사 등을 거쳐, 1438년 중추원사, 1439년 판한성부사·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440년 병조판서·함길도도관찰사 등을 지내고, 1443년 동지중추원사로 의금부제조를 겸하였다. 1446년까지 이조판서를 역임하면서 인사에 공정을 기해 자못 명망이 있었다.

1446년 판중추원사가 되고, 이듬해 평안도도관찰사 겸 평양윤으로 파견되고, 1448년에는 병마절도사까지도 겸임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 판중추원사를 지내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2년(단종 즉위년) 좌찬성이 된 뒤, 1453년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서성부원군(西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455년(세조 1) 좌의정이 되고, 좌익공신 1등에 올라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다시 봉해졌다. 1456년 사은 겸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양위라고 설득하였다.

귀국 도중 사하포(沙河浦)에서 졸하였다. 누나와 누이동생이 명나라 성조와 선종의 총애를 받음을 계기로 현달했지만, 넓은 도량과 온순하면서도 대범한 성품으로 상하의 신망이 있었다. 또한 명나라 황실과의 유대와 공정하고 결단성 있는 정사로 외교와 내치에 크게 공헌하였다. 1470년(성종 1)에 세조묘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 덕종(德宗, 1438년 ~ 1457년 9월 20일 (음력 9월 2일)은 조선 초기의 왕족이자 왕세자, 작가이다. 세조의 장남이자 예종의 형이며 월산대군·성종 형제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정희왕후 윤씨이다. 1455년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2년 만에 20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사후 적차자 성종이 즉위하면서 왕으로 추존되었다.

바로 의경왕에 추존되었다가 회간왕으로 추존되고 뒤에 덕종의 묘호가 올려졌다. 정식 시호는 덕종회간선숙공현온문의경대왕(德宗懷簡宣肅恭顯溫文懿敬大王)이며 왕에 추존되기 전에는 의경세자(懿敬世子)로 불렸다. 성은 이(李), 휘는 장(暲), 초명은 숭(崇), 현동(賢同), 자는 원명(原明),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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