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⑭⑮
-SPn 서울포스트, 심천 자유기고가

제1부 우리는 하나

(1, 북에 가다.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①)
(2, 추방. 3, 제가 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②③)
(4, 다시 북에 다녀오다. 5, 제가 - I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④⑤)
(6, 눈물 매대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⑥)
(7, 전자 산업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⑦)

제2부 민족의 서광

(8, 북조선에 변화가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⑧)
(9, 북으로, 북으로 !!. 10, 전력(電力) 부국책(富國策)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⑨⑩)
(11, 또 다른 반란. 12, 통일 회담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⑪⑫)
(13, 해외 순방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⑬)


14, 최저 소득층의 소비확대가 경기를 부양시킨다.

끼니도 잇지 못하는 극빈자보다 한 단계 위라고 할까? 어쨌던 겨우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최저 소득층의 소비가 증대되어야 경기가 부양될 수 있다. 굳이 엥겔 리론을 적용하지 않아도, 최저 소득층의 소비증가는 의식주 구매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최저 소득층의 소득이 증대되었다해서 그들이 해외 여행을 간다거나 향락업소에 드나들지는 않는다. 그들의 소득이 늘어 바야 기껏 고기나 생선을 사 먹거나 비싼 옷을 사 입기도 하고 월세집에서 전세집으로 옮긴다 던가 하는 정도다. 좀 더 여유가 있다 해도 산으로 들로 돗자리 들고 놀러 갈 뿐이지 결코 해외여행을 가거나 해서 외화를 낭비하지는 않는다. 이같은 생필품 수요증가는 생산증가를 초래하고 생산증가는 곧 고용증대를 가져오며 고용증대는 곧 소비증가를 초래하여 경기의 호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조그만 마을이라 해도 수 십 또는 수 백 가지 물품이 생산될 수 있겠지만 리론을 단순화하기 위해서 어느 나라에 식료품 공장과 의류 공장 두개만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각 공장 종업원 수는 각각 100명씩이고 월급을 2 단위씩 지급했었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A(식료품),B(의류) 공장 각각 200 단위씩, 모두 합쳐 400단위의 물품을 생산 판매하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종업원은 저축 없이 월급 전액을 소비하는 최저 생활자들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그런데, A 공장에서 인건비를 줄여 이익율을 높이기 위해서 2 단위씩 지급하던 정규직 종엄원들을 모두 해고 시키고 1단위의 수당만을 지급하는 임시직으로 모두 교체했다고 하자. 그러면 200 단위가 지급되던 급료가 100단위로 줄었으니 우선 당장은 100단위의 급료를 절약할 수 있고 이는 곧 이익 증대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종업원들의 수입이 종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음으로 식료품 구매도 반으로 줄일 것이며 의류구매도 반으로 줄일것이다. 따라서 의류공장 매출은 당장 4분의 1이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의류공장에서도 1단위씩 지급하는 임시직으로 대폭 교체하여 인건비를 줄이고 수지를 맞추려 할 것이다. 그러면 각 공장매출은 자체소비 4분의 1 감소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매출이 반으로 줄게 되고 이는 또 다시 종업원 수를 줄이게 되고 따라서 소비가 줄고 생산이 줄고 또 종업원이 줄게되는 악순환 계속되어 경기는 급속도로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다. 그러므로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최저 소득층의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를 늘려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면 생산성도 향상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면,
1) 직장에 대한 안정감으로 애사심이 더욱 강해지고,
2) 소득의 증가로 정신적, 육체적인 up-grade 가 이루어져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A공장 종업원의 월급을 올려주면 오른 액수의 반은 의류구매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B공장의 매출증대를 초래하게 된다. 그럼으로 B 공장은 종업원 월급을 올려주게 되고 오른 월급의 반은 식료품 구매를, 그리고 나머지 반은 의류 구매로 연결되어 종국적으로는 A,B 공장 모두 이익증대를 기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만약에 A,B 두 공장 모두 비 정규직 직원들의 월급은 그대로 두고 사장(CEO)과 간부들의 월급만 두 배로 올려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식료품과 의류 매출은 늘어나지 않는다. 이미 풍족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유흥비, 해외 여행비 등이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유흥비, 해외 여행비 증가는 식료품과 의류 매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럼으로 상위 임원들에게만 혜택을 주게되는 부양책은 결코 경기부양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본 유출로 인한 국부의 감축으로 나라 살림이 쪼그라들 것이다.

과거 2009년경 미국에 금융위기가 왔을 때, 미 재무부에서는 경기진작을 위하여 7천 억 불인가 구재금융을 방출하였다. 그리하여 거대 보험회사와 은행들의 도산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7천 억 불이라는 머마어마한 자금이 부실기업의 도산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막상 그 막대한 자금은 고급 간부들의 손에서만 놀아나고 막상 최종 소비자들은 구경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비근한예이지만, GM의 경우를 보면, 회사를 부도위기로 몰아넣은 회사 사장은 호 경기 때의 계약대로 수 천 만 불의 퇴직금과 성과금을 받아가지고 나갔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이 모두 휴지가 되고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그외 보험회사, 은행들도 퇴임하는 간부들에게 수 천 만 불씩 지급해서 내 보냈지만 일반 고객들은 수수료 인상 부담만 떠 안게 되었다. 이와같이 퇴임 때 가져간 수 억 불 내지 수 십 억 불이 생산에 투자되지 않고 어디에 사장되어 있거나 해외로 유출된다는 것이다. 구재금융으로 지급된 7천 억 불 전액이 거의 모두 사장되었으니 경기가 되살아 날래야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1억 명의 저 소득자들에게 7천 불씩 생필품 구매 크레딛 카드를 무상으로 분배했었다면, 국책 보험회사나 몇몇 은행들은 부도가 났겠지만 경기는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북조선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 소비가 신장 됨으로서 호경기의 호 순환을 초래한 것이다. 이제 어림잡아 우리 북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은 5천 불이 넘어섰고 남조선은 3만불 가까이 될 것이다. 앞으로 몇년 이내에 북남 공히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시대가 열릴것이다. 우리 북조선은 작년에 무려 25%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앞으로도 매년 10 내지 20%의 고속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중국의 뒤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머지않아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경제대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공식집계로 6천 불(비 공식 집계 1천 3백 불)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고소득자 상위 1%가 국민 총 소득의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세계 유수의 부국에서 국가부도를 겪었고 그리스도 최근 부도위기에 몰렸었다. 이는 모두 국부(國富)의 대부분이 저소득층에 고루 펴져있지 못하고 상위 몇%에만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북조선의 고위층들이 필요이상의 부를 소유하고 있을시에는 철저한 세무조사를 통하여 정당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자산은 모두 국고로 환수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대 인민 담화를 발표하고 부정부패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엄단하도록 행정원에 엄히 지시하였다. 또한 퇴임하는 공무원들도 엄중히 조사하여 청렴결백한 이들에게는 청백리 서훈을 수여함과 동시에 특별 청백리 연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반면에 부정이 들어나면 불법 재산몰수는 물론 엄중 처벌하게 될 것이다.

서부전선 봉재공장의 부녀동에서 일하는 부녀자들에게는 경제성장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게 되었고, 처음 시작할 때는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지덕지 일을 하였으나 이제는 먹고자고 최저임금이 200불까지 늘어났다. 개성공단의 최저임금이, 처음 시작할 때는 5십 몇 불이었지만 지금은 180불로 늘었다. 우리 부녀동이 약간 센 편이다. 그리고 아이들 취학 문제 등으로 인하여 고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두둑한 퇴직금을 쥐어 줘 보냈다. 장병들에게도 봉급을 올려주고 휴가비를 넉넉히 주어 자주 휴가를 보냈다. 장병들의 체격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삼성과 LG는 명실공히 세계기업으로 우뚝 서게 되었고, 애플과 델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15, 망중한(忙中閑)

몇년만에 남조선 집에 다니러 갔다. 대형 쓰리쿼터 승용차에 경호병 12명을 대동하고 갔다. 이럴 때는 물론 상호 통보를 해 주는 것이 통례다. 북조선 군인이 공개적으로 남조선에 가는 것은 해방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남조선 군인들도 북조선에 온 적이 있다. 남조선 비축미를 싼값에 샀을 때 남조선 군인들이 수송했었다. 비공식 잠행이지만 어찌 알았는지 남조선 메스컴 기자들이 벌때처럼 달려들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거의 한 나절을 보냈다.
남조선 인민들의 북행은 이제 실향민들의 왕래가 뜸해지고 기업인들도 처음 왕래를 허용했을 때보다는 다소 줄어들었다. 그대신 남조선 일반인들과 학생들의 단체 여행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했다. 금강산, 칠보산, 묘향산, 백두산, 대동강, 보통강, 원산 명사십리 등의 자연경관 관광도 늘어났고 나진 전기자동차 공장 단지 견학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대동강과 보통강 물래 발전소 견학도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북조선 인민들의 남조선 방문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남쪽을 다녀와 봐서 남측과 협의하여 곧 자유왕래를 허용할 방침이다.

용식이가 벌써 만 4년 우리나라 나이로 여섯살이 되었고 말도 어찌나 잘 하는지 학교에 보내도 될성싶다. 무엇부다도 체격이 갈수록 우람해지고, 옆집 데이비드가 우리 용식이와 체격이 비슷해서 늘상 어울려 노는 단짝이란다. 용식이는 한글과 천자문 명심보감을 벌써 다 떼고 이제는 동문선습을 배우고 있단다. 내가 휴가를 보내는 동안 세아씨와 용식이를 데리고 영동군, 심천면에 있는 고향마을로 좀 쉬러 갔다. 심천의 고향 마을 공식 명칭 ‘단전리(丹田里)’, 속칭 ‘전댕이’라는 이곳은 부친께서 태어나시고 자라신 부친의 고향이다. 나는 부친께서 철도국 공무원으로 계시던 대전 소재동에서 태어 났지만 출생신고는 부친의 고향인 심천면에다 했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심천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곳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다. 때문에 이곳을 고향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모두가 낯선 집, 낯선 이웃, 낯선 풍경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 적 부친의 손을 잡고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수염이 허옇게 나고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노인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길거리에 넙죽 업드려,
“어이쿠! 대부님, 왕래 하셨습니까? 그동안 기체후 일양망강하시지요?”
라고 인사하기 일쑤여서 당황해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그런 곳이 이곳 심천이다. 그 노인의 항렬이 나의 손자뻘이라는 것이다. 방학때면 이곳에 와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동구밖 원두막에 올라 수박과 참외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을 엄청 보던 곳이라 그런데로 정이 든 곳이기도 하다.

우리 민문(閔門)과 심천은 우리 16대조 석계공(石溪公) 때 인연을 맺었다. 공께서 전국을 두루 주유하시다가 이곳 심천에 이르러 그 맑고 고운 물에 반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오늘날 석계공파(石溪公派)를 이루시었다. 공께서는 심천강 가에 관어대(觀漁臺; 지금도 남아 있음)란 정자를 짓고 낚시를 즐기셨다고 한다. 공께서 남기신 석계집(石溪集) 첫머리에 보면,
<奧昔昏朝時有一朝士來問國事於石溪閔公公遜謝曰江湖之人不識國家事但知天倫之重(오석혼조시일조사래문국사어석계민공공손사왈강호지인부식국가사단지천륜지중)> 이라는 귀절이 나온다. 한양을 오가는 선비가 공께 문안을 여쭈고 ‘나랏일이 어찌 돌아가느냐?’고 물으면, ‘강호에 묻혀 사는 내가 어찌 나랏일을 알리오. 그러나 다만 천륜이 중하다는 것은 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다음 귀절에 ‘국가사’를 묻던 선비가 ‘청죄(請罪)’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선비라면 마땅히 사람의 도리를 깨우치고 실천할줄 알아야지 어찌 재상들이 다루는 나랏일을 일개 선비가 알려하느뇨?’라는 질책이 공의 공손한 답변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듯 하다.

나의 조부님께서는 연세가 32세가 되도록 오직 공부만 하셨다. 고조부께서 통정대부 대재학 며슬을 하셨기에 손자를 과거시험에 임하도록 글을 가르치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일늑약이 체결되고 과거제도가 없어져서 응시조차 해보지 못하셨다. 평생의 한을 품고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대어주시기도 하고 후학양성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시겠다고 거금을 투자하셨으나 못된놈들에게 사기만 당하시고, 평생 농사일과 궂은일은 해 보신 적이 없으셔서 결국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그 좋던 재산을 다 탕진하시고 바로 이곳 ‘살미기’란 곳에 누옥을 마련하셨다고 한다. ‘전댕이’ 마을이 서향으로 앉아 있고 ‘살미기’는 그에 인접한 남향이다. 뒷산을 등지고 앞에는 물맑은 심천강이 흐르는 천혜의 경관이다. 그러나 지대가 높고 물을 끌어 댈 수가 없어서 논농사는 되지 않아 황무지로 방치된 상태다. 나는 사촌 동생을 시켜 약 3만 7천평 되는이곳을 모두 사 들이고 사과나무를 심고 과수원을 일구었으며 조그마한 초옥을 한체 마련해 두었었다. 이번에도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5촌 조카가 과수원을 관리하면서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누옥이지만 말끔히 치워놓았다.

심천강은 물살이 종잡을수 없이 급히 흐르는 곳이 많아 익사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던 강이다. 하여 지금까지는 심천강에 물눌이 하러 들어가는 것은 절대 금기시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과수원 앞 얕은 곳에 쇠파이프로 울타리를 치고 깊이 50cm 정도로 자갈을 깔아 자그마한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전댕이’ 개구장이들에게 이 수영장은 그들의 물놀이 천국이 되어 있었다. 이 수영장 앞에 작은 다리를 놓아 작은 낚시 받침대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는 누치, 피리, 모래무지 등이 잠간 사이 한 바구니씩 잡힌다. 특히 모래무지 찌개는 그 맛이 천하일품이라 그 어느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다. 이 모래무지 찌개를 며칠째 먹어도 결코 물리지 않는다. 오늘도 예외없이 모래무지 낚시에 몰입해 있었다. 내가 낚시를 하는 동안 세아씨는 용식이를 데리고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모래무지를 어느 정도 좀 낚았다 싶을 때 해가 중천에 떠서 햇볕이 몹시 따가웠다. 물위에는 낚시 찌 옆으로 왠 사람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누굴까?’ 자세히 살펴보니, 어이쿠,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가 그동안 너무도 무심했었구나 ! 외삼촌 ! 물위에는 외삼촌 얼굴이 어른거렸던 것이다.

“이봐! 장위 파출소, 서울의 구 장위동에 있는 파출소에 빨리 연락해봐! 얼른.”
“더기, 파출소라면 ?”
“성북경찰서 장위동 지구대인가 ? 아마 그럴거야. 어서.”
“아, 여보세요, 네, 여기 더, 북됴선 주석님이시야요. 잠간 기다리시라요.”
“뎌, 여기 - - -“
“지구대 뒷집에 조세원씨 좀 불러오라고 해요.”
“지구대 뒷집에 조세원씨 좀 불러 주시라요. 네? 지금 거기 와 계시다고요? 네, 바꿔 주시라요. 네, 네, 조세원씨요? 잠시만 기다리시라요. 뎌, 뎐화 받으시디요.”
“아, 여보세요? 조세원씨요? 응, 세원이냐? 나, 용일이다.”
“어이쿠! 형님! 그렇지 않아도 소식 듣고 아버님과 함께 한 번 찾아 뵈려고 했는데.”
“응, 그래, 아버님은 ?”
물으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돌아 가셨겠지 ! 아흔이 훨씬 넘으셨을텐데.
“아버님, 마침 우리집에 와 계세요.”
“아! 그래! 살아 계셨구나 ! 그래 느집 전화번호가 몇번이냐? 응, 저 봐, 종이- - -, 응 그래.”
세원이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외삼촌이세요? 저 용일입니다.”
“응, 그래, 니 예기는 듣고 있다.”
“외삼촌 ! 진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근력은 괜찮으시지요?”
“응, 그래, 주석님이시지? 이제 말도 함부로 못하겠구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는 옛날처럼 대해 주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니 참! 지금 당장 제가 찾아 뵙겠습니다.”
“지금 어디신가?”
“말씀 낮춰 주세요. 지금 저 심천에 있습니다.”
“응, 그러신가? 그러면 내가 세원이 데리고 지금 그리로 가도록 함세.”
“아니요, 제가 찾아 뵙겠습니다. 거기 가만히 계세요.”
“내가 그리 간다니까. 이만 전화 끊으시게”
“외삼촌 ! 잠깐만요. 그럼 영동 인터체인지에서 오실거에요? 몇시에요?”
“지금 곧 떠날테니까 한 3시간 걸리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낚시 찌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쑥 나와서 자빠졌다 요동을 치며 낚시대가 흔들흔들 하는데도 나는 그저 물끄럼이 물위에 어리는 외삼촌 억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낚시 안 하시고 뭐 하고 계세요?”
세아씨가 용식이를 데리고 와서 낚시대를 획 낚아 체며 말한다.
“으 응, 잠시 외삼촌 생각하느라고 - - -“
“외숙부님이 계세요?”
“응, 지금 이리 오신데. 아마 아흔이 넘으셨을거야. 전화 목소리 들어보니 아직은 정정하신 것같은데 - - -“
“어머! 그래요? 그럼 준비해야겠네. 몇시에 오신데요?”
“응, 지금 서울서 떠나신데니까 한 3시간 걸릴거야”
세아씨가 떠나고 조카를 불러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라 이르고 낚시 바구니를 쳉겨 집으로 향했다. 목욕을 하고 한복 정장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깊숙히 기대어 앉았다. 용식이가 뛰어와 내 무릎에 올라 앉으며 짓 이겨댄다. 이를 본 세아씨가 달려와 용식이를 안아 일으키며 아이를 나무란다.
“아유! 아빠 옷 다 구겨지겠네. 저기, 근데, 외숙부님이 어떤분이세요?”
“으응, 나에게는 일생 일대의 은인이시지 - - -“

6.25 동란으로 전 국민이 가난에 시달렸고 서울에 있던 많은 학교들이 부산으로 피난 와서 천막 속에 가마니를 깔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통고등학교는 철도청 직원 양성을 목적으로 관비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역시 부산으로 피난 와 있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진학에 어려움을 격던 전국의 수재들이 교통고등학교로 다 모여들었다. 교통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져도 경기고등학교 입학시험에는 합격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37:1인지 45:1이였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하여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했다. 3학년에 올라가자 장래에 대한 진로를 스스로 작정하고 있었다. 즉 교통부에서 서울대 공대에 보내 주는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고 만약 떨어지면 철도청에 취업하고 있으면서 고등고시 시험을 보리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교통부 장학생 선발은 한 해에 2 -3명 정도여서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 이외에 대학 진학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때였다.
3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외삼촌께서 학교로 나를 찾아 오셨다.
“내가 입학금을 부담할테니 대학에 진학 하도록 해라”
는 것이었다. 뛸듯이 기뻣다.

오늘날까지 70 평생 내가 누구를 도와준 적은 많지만 누구의 도움을 받은 적은 외삼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외삼촌의 그 말씀 한 마디에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입학 시험까지 5개월 정도 밖에 시간이 없었다.그동안 대학 진학 가능성이 거의 없어 입시 준비도 전혀 안 한 상태였다. 교통고등학교에서는 3학년 2학기 수업은 두 달도 채 안된다. 나머지는 현장 실습을 나간다. 외삼촌과 상의한 결과 현장 실습을 포기하라 하셨다. 동대문 시장 헌 책방에서 영어 3위1체 한 권을 샀다. 일본 동경대 와다나베 교수가 쓴 것으로 당시에는 영어 학습의 필독서로 알려져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자면 영어가 문제였다. 다른 학교에서는 3학년 때 영어가 1주일에 7시간 내지 9시간인데 비해 우리 학교는 1주일에 1시간 뿐이었다. 그나마 1학기만 있었다. 3위1체를 사자마자 무섭게 파고 들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틈만 나면 들여다 보았다. 기숙사에서 밤 10시 소등을 하고나면 밖에 나가 가로등 밑에서 봤다. 5개월 동안 600 페이지를 볼려면 1달에 120페이지, 하루에 4페이지 이상을 봐야 한다. 다른 과목도 해야하니 하루에 20페이지 이상을 독파해 나가야 한다. 독학으로 하다보니 앞뒤가 꼭 막힌 경우에는 끙끙대고 있을 수만 없다. 물음표에 중요도에 따라 동그라미를 쳐 두고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이해는 되지만 중요한 것이라 꼭 다시 봐야 할 것은 별표, 그외는 중요도에 따라 공표 또는 첵크표 이런 식으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학시험 전까지 두 번을 겨우 봤다. 그것도 두 번째는 표식해 둔 것만 봤다. 신기한 것은 처음 볼 때는 이해가 안되서 끙끙대다 물음표 해 놓고 넘어간 것이 두 번째 볼 때는 너무도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현장실습이 시작되기 무섭게 시골 집으로 내려갔다.

“너는 오직 입시준비만 해라. 다른 모든 것은 내가 처리 하마”
라고 말씀하시던 외삼촌을 전적으로 믿고 오직 입시공부에만 매달렸다. 다른 것에 눈 돌릴 시간이 없었다. 하여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 무렵 외숙부님은, 내가 고등학교 3년 동안 혜택받은 관비 2만 5천 몇 백원인가를 변상해 주시고 대학 입학 지원서를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지금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아마도 2천 5백 만원이 넘는 금액이 아닌가 싶다. 시골서 농사 지으시는 외숙부님께서 어디서 그 큰 돈을 마련하셨는지 아직 단 한 번도 여쭈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입학원서도 당신이 직접 작성하시고 직접 제출하셨기 때문에 정작 나는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했는지? 그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 학교 위치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입학시험 보러 가는 날 아침 수험표를 받아 들고서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했음을 알았다.

시골 집에 내려와서 우선 수학 총 정리를 했다. 수학은 거의 모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통고등학교에서는 타 고등학교에 비해 수학 공부는 철저히 시켰던 것 같다. 당시 다른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미분, 적분, 확율이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배웠던 것 같다. 당시 두툼한 안경을 쓰시고 열심히 가르치시던 대수학의 박광현 선생님, 서울대 공대 출신의 신사이셨던 기하학의 이종각 선생님, 이 분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약 보름동안 수학 총정리를 마치고 다른 입시 과목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읽어야 할 입시과목의 페이지 수를 공부할 수 있는 날자로 나누어 하루에 의무적으로 읽었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읽어 나가는 수준이다. 한 과목만 오래 읽으면 지루해 지기 쉬움으로 한 시간씩 시간을 짰다. 암기 과목과 이해 과목을 교차해서 짰다.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정도에 따라 표식을 해 두고 그냥 지나갔다. 당시 ‘학원’이라는 입시생을 위한 월간 잡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예상 문제와 해답 읽는 것도 시간표에 넣었다. 간간히 김용환 화백의 ‘코주부 삼국지’, 김래성의 ‘철가면’ 등도 읽으면서. 밤 12시가 되면 만사 재쳐 두고 잠을 잤다. 딱 1초만 자고 바로 일어났다. 1초만 잤다고 생각되지만 시계를 보면 정확히 6시간이 흘렀다. 밤 12시에 자리에 누워 꼭 1초만 자고 일어났는데 시간은 아침 6시가 된 것이다. ‘꿈’이라던가 ‘고민’ 이라던가 그 어떤 잡념도 내 사전엔 없었다. 오직 ‘읽고’ ‘잠자고’가 생활의 전부였다. 밥은 어떻게 먹었는지 화장실엔 어찌 갔는지 기억에 없다.
입시를 한 달쯤 남겨두고 학원엘 다녔다. ‘학원’ 잡지에 나오는 문리대 선생님들께서 강의 하시던 학원을 찾아 간 것이다. 그분들의 언행에서나마 실낫같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의 가정 형편으로는 학원이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다행히 외삼촌께서 그 학원비를 모두 부담하시었다.

시험 보는 날 아침 물어 물어서 뻐스를 타고 종로구 동숭동에 소재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란 곳을 찾아갔다. 이 대학이 뭐하는 어떤 대학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내 생전 처음으로 찾아간 것이다. 몇년 후,
“왜 문리대 영문과에 원서를 넣으셨어요?”
라고 외삼촌에게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외삼촌은 다음과같이 대답해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 서울대학교이다. 서울대학교 중에서도 문리과대학이 단과대학 중 가장 수준이 높다. 이 대학 졸업하면 타 지방대학 교수로 초빙될 정도다. 그런 문리대 중에서서도 그 전 해에 카트라인이 가장 높은 학과가 영문학과다. 영어는 신생 대한민국에 쓰일 데가 많지. 그래서 영문과에 원서를 냈었다.”
단순히 최고 대학교, 최고 대학, 최고 학과에 원서를 넣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모한 것같기도 하고 욕심이 지나치게 과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그저 시험을 치렀을 뿐이다.
확인해 볼 방법도, 확인할 수도 없었지만 수학은 거의 만점을 맞은 것같다. 4차 방정식 대수 문제와 확률 문제, 미분, 적분 문제 그리고 맨 끝에 도형이 제시된 기하학 문제가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 데, 나로서는 완벽하게 답을 썼지만 주관식 문제라 체점자가 몇점을 주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영어는 맨 위에 ‘돋보기로 신문을 읽다가 햇빛이 비쳐 신문을 태웠다’는 내용의 영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장문의 해석문제가 나왔다. 그런데, ‘magnifying glass’의 한글 ‘돋보기’란 말이 왜 그렇게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하기야 지금도 가끔 항상 대하는 절친한 친구 이름도 까먹고 쩔쩔 맬 때가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랜스’라고 적었는데, 그나마 왜 ‘볼록랜스’라 하지 않고 그저 ‘랜스’라고만 적었는지 두고 두고 후회막급이었다. 무엇엔가 씌운것 같기도 했다. 배점이 20점으로 기억되는데 20점 몽탕 깎을지 그저 단어 하나 틀린 것으로 2 내지 3점 정도만 깎을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 Simple sentence두 개를 Complex sentence 로, Compound sentence를 Simple sentence로 고치는 문제, 반대말을 쓰는데 반드시 s자로 시작하는 반대말, 간단한 영작문 등이 나왔는데 비교적 무난히 썼던 것 같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와서 열심히 점수를 매겨 보았다. 밖밖 깎으면, 전체 500점 만점에, 한 320점, 좀 후하게 주면 400점은 무난히 넘을성 싶다. 전년도 커트라인이 315점이었으니 금년도에는 더 높게 나올지 달랑 달랑 하기만 했다.

합격자 발표는 흰 종이에 학과별로 합격자 수험번호만 써서 건물 벽에 붙여 놓는다. 나의 수험번호는 980번. 붙어 있었다. 꿈에도 잊지못할 나의 수험번호 980!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7천 몇 백원이었는데 입학금은 2만 원 정도. 입학금 역시 외삼존께서 직접 남부하셨다. 그외에도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당시 농사를 지으시던 외숙부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셨을 것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외삼촌 은혜에 만분의 1도 갚지 못하고 있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 것이 진리일까?
‘爲善者 天保持爲福 爲不善者 天保持爲禍(위선자 천보지위복 위불선자 천보지위화)’. 명심보감에 나오는 글귀다. 나는 외숙부님께 배은망덕한 자가 됬지만, 그대신 하느님께서 외숙부님께 몇 만배로 대신 위복(爲福)하셨다. 나의 인생은 지진부진 하였지만 외숙부께서는 건설업이 성공을 거두어서 전국 곳곳에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신 부동산 갑부로 성장하시었다. 이제 이렇게 살아 생전에 만나 뵙게 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

영동 인터체인지까지 마중을 나갔다. 차문을 여시고 손을 흔드시었다. 내가 다가가자 차에서 내리셨다. 준비해 간 돗자리를 깔고 앉으시기를 권했다. 외삼촌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외엔 아주 정정해 보이셨다. 큰절을 올리고 나도 모르게 와락 껴안았다. 한참을 흐느끼고 나서 싫다는 외삼촌을 억지로 등에 업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자동차를 두어 바퀴 돌았다.집으로 오는 길에 질골 선산에 들러 나는 조상님께, 외삼촌과 함께는 우리 부모님께 예를 올렸다.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황간 외조부모님 산소를 다녀왔다. 너무나 굴곡 진 인생역전 탓일까? 한 50년만의 문안인 것같다. 외삼촌께서는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서울로 떠나시었다. ‘이제 떠나시면 언제 또 만나 뵈올 수 있을까? 살아 생전에 다시 뵈올 수 있을까? 타고가신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자리에 서서 돌아올 줄 모르고 있었다.
이튿날 세아씨와 용식이를 남겨두고 평양으로 떠났다. 짐을 챙겨 막 일어서려는데 경호대장이 남측 국방장관 전화라며 전화기를 건네준다.

(계속)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천-민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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