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⑦
-SPn 서울포스트, 심천 자유기고가

제1부 우리는 하나

(1, 북에 가다.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①)
(2, 추방. 3, 제가 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②③)
(4, 다시 북에 다녀오다. 5, 제가 - I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④⑤)
(6, 눈물 매대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⑥)


7, 전자 산업

중부전선 지역에 전자산업 공장을 건설해야 하는데 평양의 김기남으로 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몇일을 두고 수 차례 통화를 시도한 끝에 겨우 통화가 되었다.

“지금 접촉하고 있는 전자회사에서는 조만간에 결말이 안나면 중국이나 베트남에 공장을 짓겠다고 하니 하루 속히 결말을 내려 줘야 합니다.”
“긴데 그거이 말입네다. 평양에서는 여러가지를 고려하는 것 같습네다. 금년 결산은 나왔습네까?”
“아직 안나왔지만 금년에는 적어도 쌀 100만 톤은 보낼 수 있겠습니다. 저는 한 번 약속한 것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반드시 지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를 고려한다’고 했는데, 지금 서부전선 바로 곁에 있는 중부전선 인민군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까? 바로 옆에서 고기국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자신들은 씨레기 잡곡국밥도 배불리 못먹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요”
“기건 기린데, 군사적인 고려도 - - -“
“군사적인 고려 뭐요? 어디 시험삼아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에 남조선 장병들이 밀고 올라와 보라고 할까요? 틀림없이 중부전선은 모래성 무너지듯 허물어질 것이고 반면 서부전선은 오히려 우리 공화국 인민군이 반격하여 단숨에 밀고 내려갈 걸요”
“아니, 무시기 기딴 말씀을 하십니까? 어디 한 번 붙어 보갔시오”
“뭐요 ? 아니, 김동지는 북에서 하는 말이요? 남에서 하는 말이요?”
“무시기 ? 아, 기렇게 됐시오 ?”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하여간 서부전선 인민군의 사기는 충천합니다”
“저도 기린 정도쯤은 알고 있으니끼니 염려 내려 놓으시라요. 조만간 허락이 떨어질 거외다.”
“하여간, 앞으로 한 달 내에 소식이 없으면 우선 우리 서부전선 영내에 한 7천명 정도 투입할 수 있는 전자공장 건설을 하겠습니다.”
“됴금만 더 기다려 보시라요. 내 곧 연락한다니끼니”
“알겠습니다.”
다음날부터 중부전선과 연해있는 부대의 취사장을 중부전선 쪽으로 바짝 붙여서 옮겨 짓고 원래 있던 취사장 자리와 연병장 자리에 전자공장을 짓기 위하여 측량을 하고 있는데, 새로 부임한지 두 달밖에 안된, 제4군 군단장 이상철 대장이 부임 인사차 찾아왔다. 서부전선 사령부는 제4군과 인접하여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점심식사 도중 그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불쑥 한 마디 내 뱉는다.

“그거이 저, 뭰가? 박사님에게 강의를 들은 1기생들 있잖습네까? 갸들 상기도 쪽을 못펴고 있디요.”
‘이자가 나를 떠 볼려고 하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 다행이랄까? 아직까지는 그들과 아무런 연락도 없는 상태다.
“거 무슨 소리요? 그들이 어찌 되던 나와 무슨 상관이요?”
“아, 제자들이 잘 되면 좋디 뭬요. 제가 맡고 있는 이 4군 산하 인민군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게 말씀 하시라요”
“아니, 장군님에게 말씀 드리고 말고, 현제 계약데로 인민군을 쓰고 있쟎소?”
이 장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면서도 봉재공장 예기로 들은 양 전혀 딴 대답을 했다. 그는 대답대신 의미 있는 눈짓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 날 오후, 이상철 대장이 갑자기 5군 사령관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5군이라!
평양을 포함한 그 주변이 아닌가! 어제 그를 딸아다니던 부관의 눈치가 수상하더니 - - -, 그자가 혹시 - - -? 그러나, 1군이나 2군으로 수평 이동도 아니고 이건 오히려 영전이 아닌가? 하기야 4군과 5군은 막상막하이겠지?
사무실로 돌아와 있는데, 이번에는 서부전선 사령관 박기림 상장과 함께 이상철 대장이 이임 인사차 찾아왔다. 이런 저런 예기끝에 한 번 찔러 보았다.

“영전을 축하 드립니다.”
“뭬, 영전이랄게 있나요. 그나저나 오래 뫼시지도 못하고 정도 들기 전에 이별입네다 그려. 부임한지 두 달 밖에 않됬는데 또 전보되다니 원- - -“
“그러게요, 정말 아쉽습니다. 이장군님이야 어디에 계시던 위기에 처할 때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 별 말씀을 - - -. 미력이나마 박사님을 돕고싶습니다만 - - , 때가 있갔디요. 자, 그럼, 이만 가 보갔습네다.”
나는 서울에서 가져온 액자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청전 그림인데, 이런거 걸어놔도 될런지?”
“아이고, 고맙습네다. 뭬, 이런걸 다 주시고. 이 그림 볼 때마다 박사님 잊지 않겠습니다. 잘 보관 하디요.”
이 장군이 가고나서 박 장군에게 물어 보았다.
“제 4군과 제 5군 어느게 더 좋은 자리요?”
“비슷비슷하디요. 그러나, 5군은 상부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쥐새끼들에겐 더 됸 자리가 되갔고 우직한 이에겐 견디기 바쁘디요. 왜? 이상철 장군이 걱정되십니까?”
“내가 걱정될게 뭐 있겠소? 호기심에서 그저 물어 본거요. 참, 요즘 장병들의 불만 사항은 없습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불만이 있을 턱이 없디요. 등따시고 배 부르니 사기와 힘이 넘쳐납니다. 기래서리 요즈음 한창 축구연습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날자를 잡아서리 시합을 한 번 시켜 볼 작정이야요”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경계근무에 지장은 없소?”
“기딴거 염려 붙뜰어 메시라요. 아무 걱정 없습네다.”
“장병들이 제대하면 조그마한 봉제공장 하나씩 차리던가 최소한 봉재 책임자로 취업이 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 - -“
“그런 세상이 곧 오갔디오 뭐”
“그러고 보니, 전자 기술자가 더 좋겠지요?”
“그야 박사님께서 더 잘 아시갔디요. 우리야 뭐 평생 군에서 썩어야 하니끼니 뭐 알간?”
어느덧 나를 스스럼 없이 대하는 말투다.
“중부전선에 전자공장 세우려는 계획에 차질이 있는게 아닌지?”
“상부에서 허락이 안 떨어디면 우리 서부뎐선 사령부에서 맡아서 하디요. 디 아이세끼들이 뭘 알아야 허가를 해 주구 말구 하디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도 괜챦아요?”
“저야 뭐 이제 박사님 명렁에 죽고 사는 사람이야요. 누가 뭐라갔시오”
“그래도 조심할 것은 해야지요. 이따 사단장 몇 데리고 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내 위스키 한 병 가져 왔는데, 혼자 먹기 아까워서요”
“기러문요. 기딴거 혼자 잡수시면 탈나요. 기럼! 탈나고 말고요. 내래 다 비워 드리겠으니 염려 붙뜰어 메시라요. 그럼 저녁 식사 끝나고 여기서리?”
“저녁 식사를 이리 가져 오라 하지요”
“네, 알갔습니다. 그럼”

장성 식당에서 저녁 식사시 가끔 백세주, 백화주 등을 한두잔씩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는 대게 공식적인 대화가 주로 오가고, 이번처럼 식사후 내 방에서 값비싼 양주 등을 비울 때는 어느듯 울분을 토해내며 ‘엎어버리자’고 속 마음을 들어 낼 때가 많아졌다. 이 같은 중요 회의가 있을 때는 이곳 저곳에 숨겨놓은 도청기를 떼어내는 일도 있지만 오늘같은 대화쯤은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이라 왠만하면 그대로 둔다. 그 대신 종이에 써서 불필요하게 남측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도록 미리 주의를 준다. 오늘도 그냥 두고 진행했다. 비록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오늘같이 자극적인 대화가 오갈 때는, 내가 짐짓 나침판을 가리키며,
“S요? N이요?”
라며 은연중 주의를 환기시킨다.
“어느쪽이던 명령만 내리시라요”
그러면 여기저기서,
“하하하! 잘들 노시누만”
하고 얼버무리기 일쑤지만, 그들 마음 속에는 이심전심으로 이미 통하는 곳이 있었다. 이럴 때 마다 나는 짐짓 철저히 입단속을 시키지만, 박기림 상장이 데리고 오는 사단장들은 어느듯 혈맹처럼 뭉쳐 있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군단장 말고는 인사이동이 없지만 설령 있다해도 박기림 장군이 알아서, 가는 이는 끈으로 단단히 묶어 연결해놓고 오는 이는 여러가지 테스트를 거쳐 잘 선별하고 있다. 또 만약에 박 장군이 이동될 시는 후임 임무를 맡을 이는 누구로 할지 이미 정해 놓고 있었다. 물론 신임 사령관은 또 별도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요즈음은 차돌맹이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지낸다. 며칠 전 백일잔치를 끝내고 떠들석하던 집안이 고요해 지고 나면 방긋 방긋 웃는 순진한 모습에서 온 우주의 평화가 깃든 평온, 한 없이 맑고 깨끗한 순수함, 지고지순한 아름다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깃들어 있음을 본다. 영국의 시인 키이츠는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 했던가! 차돌맹이가 바로 그 ‘진리요 아름다움’이 아닌가! 태어나자 마자 코를 잡아주기 시작하여서 인지 요즈음은 제법 콧날이 오똑 섰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다. 도대체 얼마나 클런지, 요즈음은, 거짓말 쬐끔 보태서, 초등학교 아이만 하다. 살은 그저 통통할 정도이고 그리 많이 찐것 같지는 않은데 몸무개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이제는 가만히 누워 있지를 않고 엎드려 기는 건지 버둥거리는 건지 온 방안을 휘젓고 다닌다. 무엇이던지 닥치는 대로 끌어 당겨 입에 넣고 본다. 너무 무거워서 애기 엄마도 나도 잘 안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내에 눞여 흔들어 주지만 금방 실증을 내고 엎어져 내려오고 만다. 처음에는 깔아 놓은 요 위로 떨어지더니, 요즈음에는 한 손으로 그네를 움켜잡고 엎쳐서 살포시 내려올 줄도 스스로 터득했다. 하루 종일 차돌맹이와 놀고 있는데 공장에서 전화가 왔다. 인민군 중부전선 사령관 김기헌 장군이 나를 만나러 공장으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공장 준공식 때 한번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나를 찾아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6척 가까운 거인으로 기억된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공장으로 향했다. 이럴 때는 으례히 서울서부터 따라 붙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공장에 고정 배치된 사람도 많지만 가끔 이렇게 서울서부터 따라 나서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내 방 전등 안쪽에다 새로운 도청기를 붙여놓고 나갔다. 잠시 후 박기림 장군과 함께 김기헌 장군이 들어섰다. 문설주에 머리가 부딛치지 않게 고개를 살작 숙이고 들어와야 할만큼 키가 정말로 컸다. 눈과 눈섭은 역팔자 형으로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다.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은 그의 곧은 의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약간 깡마른 체격이지만 그의 골격은 보통사람의 두 배 정도로 크고 튼실해 보였다. 나에게 거수경례를 할 때는 그의 두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으나 내가 자리를 권하자 모자를 벗고 부드러운 풍모를 풍겼다. 우선 그와 덕담을 몇마디 주고 받았다. 그는 북조선에서 태어나서 북조선의 녹을 먹고 사는 이상 북조선 정권에 충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는 박기림 장군처럽 빙 둘러서 이야기 할 줄을 모르고 모든 것은 직설적으로 말하고 받아들인다.

“죄송하디만 중부전선 전자공장은 언제쯤 건설되갔는디요?”
그가 나를 찾아 온 본심을 숨기지 않고 토로한다. 요즈음 중부전선 인민군들 특히 우리 서부전선과 맞닿아 있는 부대 군인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에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옆 부대 인민군은 잘 먹어서 살이 피둥피둥 쪄 있는데 자기들은 소위 ‘개죽’ 두 그릇으로 하루를 견뎌야 하니 옆 부대처럼 잘 먹을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자들을 때려 부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김기헌 장군이 찾아온 것이다.
“아, 그, 강성태 동지가 듕국과 경제협력에 고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으니끼니 허가를 해주지 아이하니 그렇디요”
박기림 장군이 끼어 든다. 강성태는 북한 최고위층의 친척으로 사실상 북한을 움직이는 숨은 실력자다. 순간 김기헌 장군은 눈을 감은 체 무릅위에 올려 놓은 두 주먹을 부르르 떨고 굳게 다문 입에서는 말이 없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정 안되면, 우리 공장 부지 공터를 활용해서 전자공장을 짓고 인근 중부전선 인민군을 교대로 우리 공장에 투입해서 일을 시키는 방안을 강구해 봅시다.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니, 어디 누구 평양에 줄을 대 보시지요. 근본적으로 해결을 해야지요”
내가 결론을 내리자, 김기헌은 굳었던 표정이 다소 누그러 진다.
“김 장군이야 워낙 올곧은 길 밖에 모르는 터라 - - -“
박 장군이 한마디 거들자 김 장군의 표정은 다시 굳어진다.
“조만간 김 장군께서 평양에 한번 다녀 오시지요?”
“네?”
김 장군은 천부당 만부당 하다는 듯 나를 노려 본다.
“가서 부대 실정만 보고하고 오시면 됩니다. 그 후 판단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이제야 납득이 가는 모양이다.
“넷, 알갔습니다”

이렇게 김 장군과 일차회담은 끝났다. 김기헌이 가고나서 3일인가 있다가 박기림 장군이 찾아왔다.
“김기헌 장군은 강성태 동지와 먼 친척간입니다. 좀 멀긴 하지만 기래도 강성태 사람으로 통하디요. 지난번 강동지께서 잠시 물러 나셨을 때도 김 장군 같은 강동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포진해 있으니끼니 은근히 힘이 돼얐을 겝니다. 긴데도 김 장군은 워낙 고지식해서리 이점을 잘 활용하려 들디 않디요.”
“그냥 내 시킨데로 부대 실정만 잘 전달하면 강동지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만사 기렇게 쉽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그저 웃고만 말았다.
“아, 참! 8사단인가요? 스키 파-카 봉재 맡고 있는 부대가? 임치무 사단장 좀 오시라고 해요. 이따 점심이나 같이 먹게”
“네! 알갔습네다”
박 장군 부관이 전화를 걸었다.
“- - -기문, 날래 연락병 보내라우”
“연락병을 보내? 어디 가셨데?”
“부대에 계시다는 디요”
“부대엔 전화가 안되나?”
“아니! 박사님께서 언제 전화를 놓아 주셨습니까? 아, 우리 부대에서도 연락병을 보내야 하는데요”
“아니! 부대끼리도 전화가 안됩니까?”
“아, 휴전 당시 전화선을 가설하고시리 어언 60년이 넘었으니 벌써 다 썩었디요. 전화기도 다 일 없습네다. 어디 그뿐입네까? 지난번 해안 포대에서 남측 년평도에 포격할 때 보셨디요? 300발 듕에 딱 두발만 목표에 명중했댔습네다. 기것도 80발 정도는 불발탄이구요. 알고보면 예삿일이 아닙네다. 저, 우리 장사포 있디요? 서울을 불바다 만들겠다는? 그거이 말캉 헛소리야요. 아, 포탄이 있어야 쏘던지 말던지 하디요. 또, 쏴도 다 제멋데로 날아갈 거에요. 포가 다 썩었디요. 간나세끼들 소총도 마찬가지디요. 총알도 없고, 기름으로 닦지 못하고시리 물로 닦고 있으니- - -“
이때, 부관이 와서 박 장군 귀에 데고 무언가 속삭인다.
“염려 말라우! 우리 문 박사님은 관계 없으니깐두루”
다 아는 예기지만, 어찌 보면 나보고 전화 좀 놓아 달라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공장 이외의 시설은 내 소관이 아니다.

“박 장군하고 김 장군께서 해외에 쎄일즈 여행 좀 다녀오셔야겠는데- - -“
김기헌 장군이 평양에 다녀온 경과보고 차 방문했을 때 내가 툭 던져 보았다. 강성태와 사이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 김 두 장군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그들에게 해외여행이란 것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피양에서 허가가 날디?”
“김기헌 장군이 힘 좀 써 주셔야지요?”
김기헌은 갑자기 입이 부루퉁해졌다.
“하여간 상신이나 해 봅시다. 다음 달에 우리 쎄일즈 단이 떠날 때 같이 가시도록.”
“상신이라면?”
“상부에 신청한다는 말이요”
두 장군의 해외 여행 신청을 한지 3주만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김기헌 장군이 인민군 제5군단 산하 평양보위군 사령관으로 전보발령된 것이다. 남한의 수도경비사와 비슷하나 그 작전 범위는 훨신 넓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끔 빽이 좋은 소장 아니면 중장이 맡는 것이 상례인데 이번처럼 상장이 맡는 것은 이례적이다. 좌천이라고 봐야 하나? 평양의 의중을 가름하기 어렵다. 이리하여 두 장군의 해외여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박 장군도 몹시 섭섭해 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는 위로의 말로 다독거릴 수밖에 없었다.
중부전선 김기헌 장군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정인홍 상장이 부임인사차 나를 찾아왔다. 것 모습은 뒤룩뒤룩 살이 쪘지만 하는 행동은 쥐세끼같은 스타일이다. 상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중책을 맡고 온 것이다. 말하는 내용으로 봐서 상사에게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아양을 떨고 그 대신 부하들에게는 무자비하게 대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우리 부대 인근 장병들의 불만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보였다. 사령관이란 사람이 저 모양이니 내가 굳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사단장들은 달랐다. 금방이라도 부대 장병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들끓고 있으니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할 판이다. 특히 바로 옆 21사단장 이항구 소장은 매일같이 찾아와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메어달린다.
“아, 정 장군이 알아서 하겠지요. 상사에게 부탁할 일이지 왜 관계도 없는 나한테 와서 이러시오?”
“아, 그 양반은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어디 좋은 요직을 맡아 갈려고 혈안이 되 있어서 부하들은 죽든 말든 관심도 없는것 같소. 이 문제는 오직 박사님 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좀 선처해 주시라요. 이렇게 빕니다. 박사님! 지난번 김 장군에게 좋은 방안을 제시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상부의 허락도 없이 내 소관 밖의 일을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와 귀 부대에 다 같이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요.”
“기문, 김기헌 장군께는 왜 말씀 드리셨나요?”
“아, 그때야 김장군이 바람막이가 되어 줄 것으로 믿었었지요. 지금은 정 장군이 그럴 것같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말 뜻을 알아 들었는지 이 장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정인홍이 오히려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윽고 이 장군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공연히 박사님께 패만 끼쳐드고 - - -, 그럼 이만 - - -“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실망만 하지 마시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습니까?”
순간 뒤 돌아 보는 그의 두 눈이 번쩍 빛난다.

회사는 2기 결산이 끝나서 북조선에 쌀 100만 톤을 보내기로 했다. 통보를 받은 김기남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튿날 당장 공장으로 달려왔다. ‘대외협력부 부부장’이라는 굵직한 명함을 달고 왔다.
“이제 곧 부장님(남한의 장관급에 해당)이 되실 날도 멀지 않겠네요?”
“다 박사님 덕분이디요. 잘 좀 봐 주시라요”
“쌀은 해주로 보낼까요? 아니면 원산으로?”
“항만 시설은 아무레도 원산이 낳디요”
“그럼 원산으로 보내지요. 5만 톤 급 스무척은 있어야겠네요.”
“아무려먼 어드렀습네까? 보내기만 하시라요. 먹어주는 건 문제 없으니끼니”
점심을 먹고나서 김 부부장을 데리고 중부전선 접경지역으로 갔다. 철조망에 인민군들이 새까맣게 메달려 웅성거리고 있다. 누룽지 한쪽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이지만 분위기로 봐서 금방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이 험악하게 보인다.
“아니, 저런! 쫑간나새끼들! 근무는 아이하고 무시기들 하고 있음메? 내 당장 가서 사령관 놈 요절을 내야지.”
“공연히 다치지 말고 가만 계세요. 내게 해결 방안이 있습니다.”
김기남을 억지로 끌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좋은 해결 방안이 있다고 했습메?”
“바로 옆에 있는 우리 부대 인민군은 이팝에 고기국을 먹는데 자기들은 ‘개죽’ 두 그릇으로 하루를 견디어야 하니 울화통이 치밀겠지요. 게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부전선 지역에 전자공장을 짖기로 했지만 상부에서 허가가 나지 않으니 ‘왜 허가를 내 주지 않느냐?’며 인민군의 불만이 극에 달해 언제 폭발할지 화급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상부라 했댔시요?”
“강성태 동지가 추진중인 조중경제협력에 지장이 있을까봐 그렇답니다. 지난번 김기헌 장군이 강 동지를 찾아가서 사정을 예기하고 또 내가 강의했던 영상을 같이 보았다는데도 여태 종무소식입니다. 김 동지께서 기회가 닿으시면 잘 말씀 드려서 우선 본 허가가 나기 전에, 우리 서부전선 부지에 조그만 공장을 지어서 중부전선 21, 22사단 인민군만이라도 불러서 일 시키고 밥먹일 수 있도록 조처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이대로 뒀다간 언제 폭발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령관 세끼는 뭘하고 - - -, 아무턴 내가 만나보고 가는게 - - -“
“그게 좋겠습니다. 아무튼 좋은 말로 구슬르고 이리로 왔다 가도록 하세요. 내 좀 드릴게 있습니다.”
김기남이 갈 때,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원산에 두번째 배가 2차분 쌀 10만톤을 싣고 갔지만, 하역할 곳이 없다며 도로 싣고 와서 감천항에 부려놓고 갔다. 부화가 치밀어 당장 김기남에게 전화를 했다.
“아, 하역할 곳이야 있디만, 피양으로 운반하는게 문제야요. 목탄차 20대를 배정했디만 이틀이 걸려야 20톤 밖에 못 가뎌오니 더딜 수 밖에 없디요”
“기차는 없습니까?”
“아, 기차가 되면 왜 안쓰간? 기누무게 한 달도 됴코 두 달도 됴흐니 원 - - -“
“그러면, 동부전선 인민군과 원산 주변 인민들에게 우선 배정하면 될게 아니요?”
“아, 새쌀은 피양에서 먹어야디요. 닌민군에겐 묵은 것 보내고”
아휴! 저런 비러먹을!
“그럼, 나머지 90만톤은 보내지 말까요? 보내 줘도 제데로 처리도 못하니 원!”
“아니, 곧 조치하갔시오. 염려 붙뜰어 메시라요. 내 곧 연락 드리디요.”
“지금 2차분 쌀을 부산에다 부려 놓고 갔는데, 하루 보관료가 얼만지 아세요? 빨리 조처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처분할 수밖에 없어요.”
“알았시오. 내 알았다니끼니.”
그로부터 정확히 열흘이 지나서 김기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쌀도 보내고 전자공장도 지으라는 거다.
“쌀은 당장 보내겠으며 또 한 달뒤 10 – 20만톤 갑니다. 절대 뒤돌려 보내는 일 없도록 하세요. 그리고 전자공장 건은 문서로 해서 보내세요. 나중에 딴소리 없도록. 알았지요?”
“네, 알갔시오. 염려 말라요.”

전자공장은 우선 Dell Computer와 년산 600만대의 콤퓨터 조립생산 계약을 체결하고 하루 2만 명씩 3교대로 총 6만 명을 투입할 공장 부지정리 작업부터 시작했다. 공장건설과 직업훈련은 전적으로 Dell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 유사이래 처음으로 미국인들이 인민군 부대를 넘어 북한 땅에 발을 들여놓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Dell이 현제 중국에서 조립생산하는 원가는 대당 재료비가 $150.-, 인건비가 대당 $50.- 합계 $200.-로 출하 가격은 대당 $400.- 소매가격은 $800.- 내지 $1,000.- 이다. 그러나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면 인건비가 대당 $10.-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 원가는 $160.-, 출하가격은 $320.-, 소매가격은 $500.- 내지 $600.-이면 가능하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전 세계 콤퓨터 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Apple과 특히 국내의 LG와 삼성이 난리를 치고 있다. 하루 속히 중부전선에 허가가 나면 사업은 대 성공이며 아울러 북조선의 경제사정도 나날이 일취월장할 것이다.

(계속)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천-민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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