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①
-SPn 서울포스트, 심천 자유기고가

제1부 우리는 하나

1, 북에 가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
“아! 이 보시라요, 거기 문박사님 계시나요?”
“예, 접니다만, 누구시죠?”
“아! 예, 안녕하시디요? 내래 주간조선에 쓰신 박사님 글을 보고 전화하게 됐시요”
“제 글이라면 ‘조선민국’ 말씀이신가요?”
“그렀수다래, 죄송하디만 한 번 만나 뵜으면 하는디요”
“아! 예, 북한이 고향이신가 보군요. 아직 10분의 1도 안 썼는데, 혹시 무슨 불만이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제 e-메일로…”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박사님에게도 도움이 되시리라 믿고 꼭 좀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서리”
“전화로 말씀하시면 ……”
“꼭 좀 만나 뵙쓰면 해서리”

뭔가 이상한 낌새가 뇌리를 스쳐간다. 불만? 간절한 소망? 그의 공손한 말투로 봐서는 해를 끼치지는 않을 성 싶다. 이 대명천지 미국에서 무슨 일이야 있으랴 싶어, 집으로 찾아오라고 아파트 번호를 알려 줄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하고 아파트 대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녹색 긴 바지에 짧은 소매 그리고 흰 모자에 부채를 들고 있기로 했고 그는 검은색 소나타를 타고 오기로 했다.
오후 4시. 해거름 해서야 예의 그 소나타인듯한 차가 들어왔다. 운전기사 혼자였다. 나이는 한 40대로 키가 작은 편이고 깡마른 체격에 유난히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얼핏 보아 예사 인물은 아닌 성 싶었다. 차에서 내리며 손을 내 밀었다.

“처음 뵙습네다. 저 김 철환이외다”
“아, 네, 전 아시다시피 문 용일입니다.”
“네, 잘 알고 있습네다. 긴데 연세가 꽤 드신 것 같습네다”
“예, 일흔은 훨씬 지났지요. 할일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아, 네, 어디 앉아서 말씀드리디요”
그자가 타고온 차를 일단 같이 타고 아파트 4동 앞으로 갔다. 1층 휴게실엔 몇몇 흑인들이 앉아있어 3동쪽 휴게실로 갔다.

“앉으시지요. “
“여기서래?”
“여기가 제일 좋습니다. 이곳엔 한국사람은 잘 없고 있다 해도 저 앞으로 지나가는 거 다 보이니까요”
김 철환이란 자는 이곳 저곳 둘래 둘래 살피더니 이내 자리에 앉으면서 말을 꺼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 드리디요. 내래 북에서 왔습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세상에! 이곳 미국 땅에까지! 미국은 이자의 침투를 알고 있을까? 분명히 알고 있을것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아직 초기 단계이니 그저 무슨 짓을 하나 살펴보고 있겠지.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언제 오셨는지?”
“좀 됐습네다. 북에서 연락이 오기를 박사님을 모시고 올 수 있겠느냐고 해서리…”
“왜요?”
“강의 좀 맡아 주십사 해서리”
“못 가겠다면?”
“그럼, 하는 수 없디요. 기티만, 신문에 쓰신 글 내용으로 봐서는 오시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윗 선에서도 박사님의 ‘고구마 이론’에 감동을 받은 것 같습네다.”
“아! 그래요?”
나는 그 ‘고구마 이론’이란 걸 잠시 되짚어 본다. 뭐, 이론이라고까지 할거야 없고 그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의견 정도라고나 할까? 뭐 그런 정도의 것에 불과하다.

중공에는 등소평이 있었고 월맹에는 레둑토가 있었다. 둘 다 서방에서 교육 받은 사람들이다. 즉, 인민들이 잘 사는 법을 몸으로 터득한 사람들이다. 이들 덕분에 오늘날 중국과 베트남은 개방정책으로 인민들의 삶이 옛날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에는 등소평도 레둑토도 없다. 그 대신, 비교적 서방 세계에 대해 눈을 뜬 김 정남이 있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인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한이 개방정책을 펴야 잘 살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가 아버지 눈 밖에 나서 북한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고 있는 상태다. 그는 현재 북한의 최고 책임자인 그의 친 동생을 ‘독재자’라고 서슴없이 외치고 다니니 그의 입북 기회는 당분간 아주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젊은 풋내기인 현 북한 책임자는 권좌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아서 남한을 금방 집어 삼킬듯이 설쳐 대다가 남한에서 꿈쩍도 하지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에 특사를 파견하기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북한의 젊은 풋내기를 불러들여 ‘핵 개발을 포기하고 개방정책을 펼것’을 강력히 요구하게 된다. 중국의 요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 그는 귀국해서 개방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주변에 등용하게 된다. 그 중의 한 인물이 내가 쓰고 있던 ‘조선민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는 걸 김철환을 통해서 알게 됬다.

‘조선민국’에 소개된 내용을 잠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화국 인민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그 잘사는 길을 가르쳐 줄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속된 표현으로 ‘고기 몇 마리 주고 생색만 낼 것이 아니라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자’는 것이다.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케케묵은 ‘주의’같은 것은 훌훌 털어 버리고 오직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이론이 객관 타당성이 있느냐 만 따져 볼 일이지, 그것이 공산 이론이냐 자본이론이냐 는 따지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의 분업 리론과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 대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생산비설, 에지워즈의 무역곡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소위 ‘고구마 이론’이란 것을 적었던 것이다.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에 고냉지 밭을 각각 50 마지기씩 가진 A씨네 와 B씨 네가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두 곳 다 감자 농사는 기가 막히게 잘 되는데 다른 농사는 너무 안 된다. A씨 집에서는 매년 잘되는 감자 농사만 지어서 이것을 내다 팔아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이들 학비도 부담하고 그리고 남은 것을 저축하며 그런데로 풍족하게 살고 있는 반면, B씨는 자급자족 한다며, 잘 되지도 않고 매년 실패만 거듭하면서도 각종 채소, 옥수수 농사는 물론이요 심지어 삼나무까지 키워서 삼베옷을 해 입는데 남루하기 짝이 없고, 아이들은 ‘우리 식으로’ 한다며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는데, 언제 공부를 하는지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만 시킨다. 결국 아이들은 굶주리고 병들어 죽기 직전이고 부모도 병들어 눕게 되었다. 이웃들이 보다 못하여
“왜 A씨 네처럼 잘 되는 감자 농사를 지어 그것을 내다 팔고 생필품을 사다 쓰면, 아이들 학교에도 보내고 풍족하게 살 터인데 왜 그러느냐고 하면,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 것”
이라며 고집을 꺽지 않더니 결국 아이들을 다 잃고 만 것이다.

‘우리 공화국’이 바로 B씨 가족과 같은 처지가 아닐까? A씨 가족이 생산성이 좋은 감자 생산에 특화하고 생필품과 교환하여 생활 수준을 높이듯이, ‘우리 공화국’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노동과 토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경제회생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생산의 3요소는 노동, 토지,자본(기술)이다. 그런데, ‘우리 공화국’에는 토지와 노동력은 있어도 자본과 기술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공화국’에 필요한 것은 자본과 기술 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본, 기술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서방 국가들 뿐이다. 현재 ‘우리 공화국’의 유일한 우방은 중국이다. 그런데, 정치, 군사적 으로는 중국이 ‘우리 공화국’의 유일무이한 우방이며 후원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아니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우리 공화국’과 똑같은 노동국가(토지를 소유한)이기 때문이다. 노동, 토지는 ‘우리 공화국’에도 얼마던지 있다. 그러니, 중국과 합작하면 ‘우리 공화국’의 자원(수산, 광물 등)만 고갈될 뿐이지 결코 ‘우리 공화국’ 인민들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 공화국’이 자본국가에 문호를 개방하면,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그들은 앞다투어 ‘우리 공화국’에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속성상 ‘이윤’이 좋은 곳에 앞다투어 투자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우리 공화국’이 속해있는 온대지방에서 문화가 가장 발달해 왔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공화국’ 인민은 손재주가 뛰어남으로 생산성이 가장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싼 값에 가장 우수한 품질의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윤이 많이 나는데 누가 투자하지 않겠는가?

보라 ! ‘우리공화국’ 평균 노임은 US$25.-/m, 최하 말단 막노동자의 월급은 한화로 약 3,000.-원(US$3.-), 개성공단 노동자 월급은 US$55.-. 그것도 대부분 북조선 당국이 떼어가고 노무자들에게는 과연 얼마씩 주는 지 아무도 모른다. 중국의 최저 임금이 월 US$300.- 정도라고 한다. 북조선 평균 임금에 비해 무려 10배가 넘는다. 세계의 모든 제조업이 ‘우리공화국’으로 몰려 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 바둑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9단쯤 되는 사람과 두면, 바둑실력이 늘기는 커녕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게 된다. 당초에 게임이 되지를 않는 것이다. 초보자는 9급 정도 되는 사람과 두어야 금방 배우고 금방 따라잡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술이 지나치게 앞선 나라와 합작하면 당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며 소득도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남조선 정도 수준의 국가와 합작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언어의 장벽도 없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 남조선 기업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경공업부터 시작하면, 자연히 기술도 습득하게 되고 어느정도 자본도 축적하게 되어 얼마 안가서 남조선의 경제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때 가서 ‘우리식데로’라고 얼마던지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제 2차 대전 후, 미국은 전 세계 공산품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었다. 쉬운 말로 하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자본(외화)은 쌓여 갔고 시민 생활이 향상됨에 따라 인건비가 올라갔고 생산비가 오르자 국제경쟁력이 점차 약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동국가가 하기 쉬운 경공업 제품은 일본으로 넘겨 주고 중화학 제품, 기술제품 등 경쟁력이 있는 상품 수출로 전환하게 된다. 일본은 일본대로 인건비가 오르며 경제력이 향상되자 남조선이 일본의 뒤를 이어 경공업 제품부터 수출하기 시작했고 남조선의 경제력이 신장되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자 이번에는 경공업 제품부터 시작하여 점차 중국으로 넘겨 주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력은 일취월장 세계 제 2위로까지 신장되었지만 인구가 워낙 많아 1인당 국민소득은 크게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화학 공산품이나 기술제품 생산은 선진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경공업 제품 수출에 메달리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경공업 제품을 수입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경공업 제품 수입이 가능한 남조선과 합작하면, ‘우리 공화국’ 경제력이 곧 남조선 수준으로 햐상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등소평 주석이 생전에 ‘우리 공화국 주석님’께, “남조선에 먼저 개방하라” 고 권고했던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였던 것이다.

“제가 ‘우리 공화국’에 가게 되면, 교육받을 학생들은 대학생들인가요?”
“자세히는 모르지지만서리 아마도 좌관급 장교들과 국과장급 간부들이 아닐까 싶습네다 만, 자세한 것은 가 봐야 알갔디요”
“자세히 알아야 수준에 따라 강의 준비를 해 가야 하는데요”
“그럼, 제가 문의해 보고서리 연락 받는데로 알려드리디요”
그날은 그렇게 그냥 헤어졌다. 자기 연락처는 알려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내가 북한에 간다?’
마음이 설랜다. 두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내가 죽기 전에 북한 땅을 한 번 밟아 본다는 것이 가슴 벅차게 기쁜 일이 아닌가? 하기야 남북통일이 되어 아무 거리낌 없이 여유롭게 이곳 저곳을 마음데로 다녀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둘째, 혹 그 누가 알랴? 나의 첫걸음이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을지? 아니 그거 말고 또 있다. 내 나이 이제 만으로 75세. 아직도 못다한 일이 많고 죽기전에 이 일만은 꼭 하고 죽어야지 하고 다짐해 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이대로 죽기는 너무도 억울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설령 뭐가 잘 못되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어쩌랴! 천명이라면 받아 들여야지! 죽고난 다음에야 무슨 ‘후회’같은 것이 있으랴 만, 그래도 그 어떤 모진 일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어디 그 뿐이랴! 또 있구나! 나는 성조기 앞에서 ‘미국에 충성할 것’을 맹서한 미국 시민이다. 그런 내가 내 맘데로 북한 사람을 접촉하고 내 맘데로 북한에 가도 괜챦은 건가? 국무부? 정보국? 국토안보부? 어느 부서에서 다루는 것일까? 어디서 어떻게 접촉해야 하나? 접촉이 되면 뭐라고 해야하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한편, 나는 껍데기만 미국시민일 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순수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내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그러고 보니 한국 정보기관에도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기야, 아직 구체적인 무엇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에 해가 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김쳘환이라는 사람을 그동안 두차례 더 만났다. 북한 입국 사증도 받았다. 짐은 책과 옷만 가져가기로 하고 나머지 살림은 모두 다니던 교회에 기증하기로 했다. 떠나는 날자가 한 3주쯤 남았을 때, 왠 미국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심한 남부 사투리를 써서 잘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국토안보부에 근무하는 심프튼이라고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듯 했다. 햄프턴가 북쪽에 위치한 멕도날드에서 만났다. 그는 김철환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알만한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얻을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하여 모르는 체하고 내 버려 두고 있는 것같았다. 내가 두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나는 미국시민으로서 미국에 해가 되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며 잘 하면 북한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니 필요하다면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둘째는, 국토안보부에 한국인 요원이 있으면 내가 수시로 접촉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일까? 며칠 후 심프튼과 사이몬 리라는 한국인 요원을 만났다. 사이몬 리는 미국 태생이지만 한국인 부모밑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익혔다며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 했지만 발음은 어눌했다. 현제 미 국무부 아태 담당 부서에 근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북한에 같이 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김철환의 새 연락처는 심프튼이 알려 주었다. 참으로 묘하게 돌아가는 요지경 속이구나! 나는 김철환이 한테, 국무부 사이몬 리와 같이 가야겠다고 했다. 사이몬 리의 북한 입국사증을 얻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좀처럼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프튼과 혜어져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무언가 황당하다고 할까? 휘황하다고 할까? 뭔가 좀 이상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내가 시민권자인것만은 틀림없지만 미국 주류인 와스프(WASP)도 아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에도 그만인 무명의 황인종일 뿐이다. 이휘소 박사도 그랬고 또 자기나라 대통령까지도 제거하는 나라가 미국 아니던가! 북한 요원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잡아다 문초하고 얻을것이 없으면 없에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를, 이 보잘것 없는 나를 우호적으로 대해줄 뿐만 아니라 내 요구조건까지 순순히 들어준다 ? 그래! 뭔가 있구나! 그게 뭘까 ? 나를 이용한다 ? 무엇에 ? 왜?
최근 미국의 한 농구선수가 북한을 다녀와서,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
고 했지만, 그당시는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북한이 국제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 실험을 강행하여 국제여론이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또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여권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서 꽃제비를 촬영하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 되었다. 북한은 미리 엄포를 놓았다.
“이 자를 구출하려 특사를 보내도 받지 않을 것이다” 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북한에 간다고 미국에 어떤 이점이 있겠는가? 나를 수행할 국무성 직원에게 모종의 임무를 맡기려는 것이겠지 !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최근에는 한국이 미국에 팽 당하고 있는게 아니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약 한국이 원화를 무제한 발행하여 원화가치를 떨어트리고 급격한 수출신장을 기했다면, 미국과 서 유럽 제국은 당장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몰아붙여 국제무역기구를 통해 가혹한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원화를 찍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엔화를 마구 찍어내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의 경제회생노력을 환영한다.”
며, 일본을 옹호하고 나섰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것이 문제다. 자, 이제 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보자.

미국은 베트남 전, 아프칸 전, 이라크 전에서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무역 적자 뿐 아니라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될수 있으면 국방비를 줄여서 재정 적자 감소를 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미군 대신에 미국이 조종하는 일본군을 내세우고 싶어할지 모른다.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그 힌트를 얻었음직 하다. 커져가는 중국을 억누르려고 미국이 직접 나서기는 곤난하다. 자칫 잘못하면 제 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될지 모른다. 그러니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일본을 대신 내 세운다. 어느 쪽이 상처를 입던 미국은 팔장끼고 구경만 하면 된다. 그런데, 때마침 일본은 극 우파들이 앞장서서 군대 보유를 위한 개헌을 서두르고 있다. 이대로 일본을 밀어 주면 참위원 선거에서도 개헌선을 확보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 내년 국민투표에서도 개헌이 찬성 쪽으로 기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양국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또 있다. 엔저로 인해 일본 상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져서 일본의 수출이 늘어나고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미국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관심의 대상은, 한국 상품의 상대적 고가로 인해 미국민이 입는 손해보다 일본상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입는 미국민의 간접 이득이 훨신 더 크기 때문에 미국민의 소득을 늘려 주는 것과 같은 간접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일본의 인위적 발권으로 인한 엔저로 한국이 죽던 말던 상관할 일도 아니다.
또 서 유럽 국가들은 왜 일본의 조치를 지지하고 나선 것일까? 한 때,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던 그들이? 그들도 지금 심각한 경제난으로 고민 중이다.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과거 식민지 였던 아프리카 국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다. 그리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유로화 지원이 필요하다. 언젠가 필요하다면 유로화도 마구 찍어내야 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일본의 엔저 조작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 또 유럽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지는 것은 유로존 각국민들의 소득을 늘려 주는 것과 같은 간접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만약에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였던 알제리나 아프리카 어느 나라가 자국 통화 절하 정책을 폈다면 역시 환율 조작국으로 몰아 경제 제재를 가 했을 것이다. 요는 강대국은 환율 조작을 할 수 있고 약소국은 할 수 없다는 팍스 강대국 정책이다.
이러한 정세 가운데 미 국무성이 나같은 하챦은 존재를 밀어 준다는 것이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해답은 나를 수행하는 국무성 직워에게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어떤 밀명을 띠고 나를 수행하는 것임에 틀림 없다. 그 밀명이 무엇이던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다만 덕분에 나의 신변은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저 나는 무사히 강의나 하고 돌아 오면 그 뿐이다.

그러면 북한은 왜 나같은 별 볼일 없는 늙은이를 불러 들이는 것일까?
북한은 1차 ‘고난의 행군’ 때 최대 3백 만 명이 아사했고 황장엽이 남한으로 귀순했으며 또 작고한 김용순과 현존하는 xxx가 귀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들은 곧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남한 정부와 협력하여 북한의 취약점을 파고 들어 북한 정권을 무너트리고 남한 주도의 통일을 이룩하여 북한 인민을 구제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무참히 무산되고 말았다. 남쪽에 친북 정권이 들어서며 그들의 계획이 무시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 정권 유지를 위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족 통일의 기회는 날아가고 말았다.
이제 북한에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 2의 고난의 행군이 진행중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한에 제2의 친북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으로서는 전쟁이던 대화던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면 초기의 기습으로 남측에 상당한 타격은 입힐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다다. 더 이상 전쟁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 포탄도 더 이상 없다. 기름은 애시당초 한 방울도 없다. 군 장비는 모두 60년 이상 노후된 고물들이다. 그러니 곧 이어 북한 정권은 남측의 군화발에 짓 밟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과거 소련이 붕괴하면서 흘러 들어온 핵 기술자, 로켙 기술자들을 이용해 핵 실험이나 로켙 발사 실험으로 남측을 위협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 이상 뭘 어떻게 할래야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내심 진실로 바라는 것은 서방과의 대화다. 대화로 무언가 얻어내서 당분간 정권을 유지하고 보는 것이다. 그 몸부림 중 하나로 나같은 필부도 초청해 보는 거다. 물론 중국과의 대화에서 ‘개방’을 강력하게 종용받은 것이 직접적인 동기일 수도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무엇인가 기도해 보기 전에 우선 살펴라도 보고싶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앞세워 국무성 직원을 수행원 자격으로 딸려 보내는 것일게다.

무려 두 달이 지났다. 이제는 북한행이 물거품이 되는구나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북한에 간다고 해서 당장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내 개인적 으로 북한에 꼭 가야겠다는 뚜렸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제학도로서, 북한 인민들을 잘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절호의 기회가 사라지는 둣 해서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철환이도 전화번호가 또 바뀌었는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이몬 리를 만나도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일장춘몽이라더니 나의 경우가 그런거 아닌가! 아니, 사이몬 리가 못가면 나 혼자 가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걸까? 에라! 안되면 그만이지 뭐! 그러면 이제 남은 여생을 어찌 보낸다? 파란만장했던 나의 과거 중 일부인 집사람에 대해서 써 볼까? 탕녀!! 무려 40년 가까이 춤바람이 났던 탕녀중의 탕녀! ‘인생을 그길줄 아는 출세한 여자’로 스스로를 자랑(?)하는 어처구니 없는 여자 ! 이제그 실체를 낱낱이 밝혀 볼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이 기막힌 진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이 40 이 넘은 아이도 40 이 가까운 아이들도, 아주 어릴 때부터 제 어미로부터 세뇌되어 모두 제 어미가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요저숙녀로 알고 있으며 제 어미 말이라면 그야말로 절대 복종하고 있으니……

“따르릉 - - - -, 따르릉 - - -“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라요,박사님! 나 김철환이외다. 됐시요. 됐단말입네다.”
“뭐가 됬다는 건지?”
“아! 거 있잔습네까? 사이몬 리인가 뭰가 하는 사람! 입국사증이 나왔단 말입네다.”
“아, 그래요! 그것 참 잘됬군요”
말할 수없는 절망감 속에 새 희망이 불쑥 솟아 올라 얼떨떨 하기만 했다. 그로부터 일은 착착 진행되어 찬 바람이 으스스 불어오는 어느 가을날 사이몬 리와 나는 북경행 비행기를 탔다.

북경 공항에는 북한에서 파견된 안내원이 나와 있었다. 리 숙경이라 했다. 남남북녀라더니 정말 보기드문 미인이었다. 얼핏 보기엔 30대로 밖에 안보였지만 말하는 태도나 행동거지로 봐서는 40대 후반이나 어쩌면 50대 초반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평양까지 우리를 동행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피차간 말이 없었다. 두렵기도 하고 설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이나 평양의 모습은 그간 단편적으로 듣기도 하고 화면으로 보기도 하였지만 그 실상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평양 순안 공항은 우리네 시골 공항 모습이랄까? 아마도 포항 공항이나 동해 공항이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
공항에 내리자 리 숙경이 지도원이란 사람을 인사시켜 주었다.

“리 순남이외다. 앞으로 박사님께서 우리 공화국에 계실동안 쭉 모시라는 엄명을 받았습네다”
‘응, 이자가 감시원이군’ 키는 땅딸막하고 유들유들하게 생겼다. ‘흥, 꽤 바라겠군. 어쩌면 그게 더 편할지 모르지’
평양 시내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사이몬 리와 한방이다. 리 숙경은 차에서 내리자 인사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리 순남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이따가 저녘 6시에 박사님을 위한 환영만찬이 있으니, 그 동안 푹 쉬시고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오시라요. 내래 만저 내려가 있갔습네다”
왠 일로 자유시간이 다 있나? 한 시간 남짓. 그동안 짐 정리 좀 하고 샤워하고 옷 갈아 입으면 되겠군.
식당 테이불에는 별 하나를 단 군인이 3명, 40대 쯤으로 보이는 살찐 사람1, 2, 3 이렇게3명, 리숙경, 리순남까지 합쳐 모두 8명이 앉아 있었고 그 옆 테이불에는 전혀 생소하고 약간은 꾀째째해 보이는 젊은이들 열 서너명이 있었다. 리순남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뱁새눈을 한 자도 있었다. 나와 사이몬 리가 다가가자 옆 테이불의 젊은이들까지도 모두 일어섰다. 리순남이 6사람을 소개 했지만 모두가 생소한 직책이라 그저 건성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을 후원 내지 감시감독할 자들임에는 틀림 없었다. 식사 도중에는 의례적인 인사말 외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리순남이 내일은 평양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고 내가 계산대 앞으로 다가 가자 리순남이 뒤미쳐 따라와서 우리 10명분은 당에서 이미 지불한 것이니 그 옆자리 것만 내라고 한다.
밤 9시경, 뱁새 눈을 떨어트리고 리순남이 혼자 호텔로 찾아와서 나를 좀 보자고 했다. 혹시나 해서 항상 금일봉을 지니고 나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바닥을 위로 처들고 말없이 흔든다. 내가 준비해 간 금일봉을 내 밀자 말없이 받아 넣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이튿날 아침 10시경 리순남과 그의 그림자 뱁새 눈이 호텔로 찾아와서 어서 가자고 서둘렀다. 내가 일부러 꾸물거리자 리순남이 눈치를 챘는지 내 곁으로 다가와서,
“존게 존거야요”
한 마디 하고 물러난다. 차안에는 살찐이 1이 앉아 있었다. 리순남이 인사를 다시 시켰다. 국가정책을 다루는 부서의 정무서기 김기남이라 했다. 차가 고층 아파트 앞을 지날 때 나는 불현듯 생각나는 게 있어,
“저 아파트 한번 돌아 보고샆은데요”
“건 봐서 멀 하시게요. 일 없습네다.
‘흥, 거절하는 것 만으로도 짐작이 가는군!’ 내가 미국에서 듣기론, 평양 시내 고층 아파트에는 전기도 잘 안 들어오고 수도는 아예 안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겨우 먹을 물 만을 아래층에서 길러 십 몇층까지 나른다고 한다. 화장실에 쓸 물이 없어 대변은 종이를 깔고 보며 보고 나서는 그것을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래층 뒤편은 인분 천지라 발걸음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거절하는 것을 보니 그게 다 사실인가 보다.

이윽고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탄 차는 김일성 아니 김성주 부자 동상 근처 무슨 사업소라는 곳에 멈췄다. 물건도 몇가지 없었고 한쪽 구석엔 거의 시들은 꽃이 몇송이 있었다. 이 순남과 김기남은 꽃가게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내 눈치를 자꾸 본다. 나는,
“아! 나와 이 친구(사이몬 리를 가리키며)는 기독교인이라 하느님 이외 어느 누구에게도 절을 하지 않습니다”
라고 실토하고 말았다. 순간 김기남의 안색이 굳어지며 양쪽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그 때 리순남이 재빨리 그를 데리고 한 쪽으로 가서 뭐라고 귓속 말을 하고는 곧장 내게로 와서,
“속으론 욕을 하셔도 좋으니 묵념은 꼭 하시라요”
하고 나직히 속삭인다.
이윽고 동상앞에 이르자, 나는 김기남의 소매를 잡고,
“같이 갑시다”
하고 단 둘이서만 동상 앞으로 갔다. 나는 꼿꼿이 서서 눈만 내리 깔고, ‘너와 네 자손은 언젠가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물러 나왔다. 김기남은 속도 모르고 대 만족한듯 파안대소하며,
“박사님! 고맙습네다” 라고 외치며 부산을 떤다. 시내를 돌아 보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김기남과 이런 저런 예기를 하다가 ‘우리 공화국’ 식량문제를 언급하게 되었다.

“인민군 100 여만 명을 먹이고 입히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다. 그 문제만은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뭐, 감군이라도 하자는 것이디요?”
“아니요, 현제 그데로 100 여만 인민군의 의식을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도 3시 3끼 이팝과 고기국으로요”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례”
“우선, 여기 계시는 사이몬 리씨와 상의해서, 가급적 휴전선에 아주 가까운 곳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겠습니다. 생산품은 볼펜, 의복류 등입니다. 지금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종목은 볼펜입니다. 각국 정부에 관납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선 1차로 50만 명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 50 만 명이야요. 무시기 꿍꿍이 속이 있는게 아임메? 어라! 군인들을 공장에 꽁꽁 묶어두고 설라무니 실질적으로 감군 효과를 노리자는게 아임메 잉?”
“계속 들어 보시요. 이 50 만 명을 3교대로 나누어 8시간씩 3분의 1만 공장에 투입하면 됩니다. 17 만 명이 투입되면 1년에 볼펜 100 억개는 만들 수 있습니다. 한달이면 대략10억개, 하루 한사람이 200개, 한시간에 10개씩 만드는 꼴이지요. 현제 볼펜 1개 당 납품가격이 대략 개당 50 쎈트인데 그 절반 값에 납품하더라도 개당 30 쎈트. 그러니 1년에 30억불씩은 들어 오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소로 잡은 것이고 한 1년 지나서 숙달이 되면 1인당 1분에 10개씩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1년에 1,800 억 불씩은 들어 오지요. 물론 원료값 제하고 나면 군인들 월급은 못 주더라도 최소한 먹는 것 입는 것 만은 풍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군 효과’ 를 자꾸 말씀하시는데 전혀 모르는 말씀입니다. 내가 묻겠는데, 남조선에서 12.12 사태 때, 당시 최 전방을 맡고 있던 25 사단이 아무런 조치나 예고 없이 후방으로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민군은 무인지경을 왜 밀고 내려가지 않았습니까? 전쟁이란 치밀한 계획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는 것이지 함부로 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남조선이 밀고 올라온다 해도 ‘우리 공화국’에는 핵무기가 있고, 또 유사시 ‘우리 공화국’ 전역을 장악하는 도상훈련까지 마치고 만주에 대기하고 있는 70 만 중국군이 있습니다. 남조선이 무슨 수로 올라 오겠습니까? 또, 반대로 ‘우리 공화국’이 밀고 내려 간다 하더라도, 남조선에는 우수한 장비와 전쟁을 뒷받침할 충분한 경제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지구를 통체로 날려 버릴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면 상호간에 수 많은 참혹한 사상자만 발생할 뿐이지 어느 쪽에도 분명한 승산은 없다고 봅니다. 자! 하여간 저는 전략가도 아니고 전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두번 다시 이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 조선시대에도 소위 ‘농군’이라는 게 있었쟎습니까? 평시에는 농사일에 종사하다가 유사시엔 창을 들고 전쟁에 나가는?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일 하다가도 유사시엔 일선으로 즉시 복귀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고 보는데요? 3교대로 17만명은 공장에서 일하고 다음 17만명은 잠자고 나머지 17만명은 경계근무 서고 이렇게 8시간씩 3교대로 하면 하등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요 ? 밤낮 없이 경계근무만 서는 것보다는 오히려 훨신 더 능률적일 겁니다. 그리고 1차로 50 만명이 성공하면 2차로 나머지 50만 명도 추가로 기타 생산업에 투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글세요 말입네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일라구요?”
“일단 한번 상부에 보고해서 검토해 보세요. ‘우리 공화국’에는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보유한 노동력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 세계는 이런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수 많은 기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길세요? 세상일이 기러키니 쉽게 돌아 가믄 야 ?”
그날은 그렇게 해어졌다.

강의는 평양 시내 모 인민학교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수강 인원은 약 300 여명, 거의 절반 이상이 위관, 좌관 급 군인들이었고 나머지는 고위 공직자들이라 했다. 사이몬 리는 리순남의 허락을 받고 미리 마련해 둔 마이크 시설을 준비 했고 나의 강의 내용을 녹화해 두었다. 그런데, 강당은 그렇다치고 일반 교실에도 학생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냐고 뱁새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전교생이 새벽부터 노력동원에 나갔다고 한다. 수업은 오후에 서너 시간 또는 경우에 따라 한 두시간씩 한단다. 아니! 시골도 아니고 수도 한가운데 있는 초등학교조차 이렇단 말인가! 그러고도 과연 무엇을 배우고 졸업하는지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나의 강의는 하루 4시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쉬지않고 계속하여 6주만에 제 1기생들의 수업이 끝났다. 맨 마지막 날 수강생들에게 무엇이던지 자유 질문을 하라고 했다. 그 중에 정말 특이한 질문을 받았다. ‘남조선의 12.12 사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나는 리순남이를 불러서 어떻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자기들도 이미 대충 다 알고 있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니 걱정 말고 설명해 주란다.

12.12 사태를 설명하려면 먼저 ‘하나회’부터 설명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육사 2기 졸업생이지만, 그때는 6개월 간의 단기 교육이었고, 4년제 정규 육사 제1기에는 전두환, 노태우, 박세직 등이 입학한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매우 엄격했고, 태능 교정에서 남산까지 쉬지 않고 구보를 시키기도 했다. 이 고된 훈련을 감당치 못하고 생도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훈련을 시킨 1기생들 중 어느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반면에 상기 전두환 등이 주동이 되어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똘똘 뭉치고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절대 복종하며 받들고, 또 선배들은 후배들을 알뜰히 보살피고 챙겨 주었다. 졸업후에도 이들은 더더욱 단단히 뭉쳤다.
12.12 사태 때의 한 예를 들어 보자. 당시 수도경비 사령부 사령관 부관에 하나회 멤버가 있었다. 하나회 수장인 전두환이 보직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자는 직속 상관인 사령관의 명령은 듣지 않고 사조직인 하나회 수장 전두환의 명령데로 직속 상관인 사령관에게 총을 쏘며 제압했다.
이와같이 전두환에게 절대 복종하는 심복들이 12.12 사태의 핵심 행동대 노릇을 한 것이다. 또 한가지 12.12 사태가 성공한 주요 요인은 전두환이 모 부대 사령관으로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대는 남조선 육군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부대다. 그러므로 각 부대의 움직임에 따라 신속대응하고 각 부대 하나회 회원들에게 명하여 이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충 이 정도로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사이몬 리를 통해 마련해 둔 쎌 폰 한대씩을 일일히 나누어 주었다.
“이 쎌 폰, 주머니 전화라고 합니까? 아무튼 이 핸드 폰은 특수 주파수를 이용했기 때문에 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통화가 가능하며, 일반 전화와는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 순남이 사용법을 상세히 일러 주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반복해 봅시다. 인민들이 잘 살아야 세금을 많이 걷을 수 있으며 세금을 많이 걷어야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외국의 첨단 무기나 첨단 기계제품 등을 사 오려면 외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외화를 많이 벌려면 어찌해야 하지요? 예. 상품을 많이 수출해야 합니다. 상품을 많이 수출할려면 외국 자본을 끌여 들여야 합니다. 외국자본은 어떻게 끌여들이지요? 예. 개방만 하면 저절로 몰려 옵니다. 왜? 그들은 우리의 값싼 노임과 수준 높은 생산성때문에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누구한테 먼저 개방해야지요? 예. 남조선입니다. 자! 여러분! 앞으로 언잰가 반드시 오고야 말 통일조선의 주역으로, 그리고 또 옛 고구려, 발해의 영토를 회복하는데 여러분이 주도적 역활을 다 해 주실것을 간절히 기원하며 이만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나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300 여명 전원이 기립하여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나는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박사님! 저 청진에 좀 갔다와야 하는데 자동차 좀 빌려 주시라요. 아니면 같이 가시던가?”
자동차는 사이몬 리가 올 때 가지고 들어온 포드 5인승 픽엎 트럭을 말한다. 임시 운행증이 있지만 휘발유가 없어서 처박아 두고 있었다. 제2기생 강의가 시작될려면 한 1주일 정도 기간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번이 북한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 모른다. 청진에는 꼭 가보고 싶은 곳도 있다. 재미 목사 내외분이 운영하는 소위 ‘구강 진료소’라는 곳이다. 내가 달라스에 거주할 때 그 목사 내외분이 우리 교회에 왔었다. 그 목사님은 원래 고향이 북한이라 북한의 실상을 듣고 무엇인가 기여해야겠 다고 작심하고 우선 치과 기공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1차로 북한과 가까운 연변에 치과병원을 개업하고 한국의 치의사들을 데려다가 진료케 했다. 사업은 대 성공이었고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청진에 치과 병원을 차렸다. 그것이 북한식 이름으로 ‘청진 구강 진료소’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완전 무료 봉사한다고 했다. 연변에서 벌어서 북한에다 쏟아 붙는 것이다. 그래도 운영비가 모자라 미국에서 이렇게 가끔 모금운동을 하러 다니는 것이다.
또 북한의 모 인민군 장교가 소위 ‘꽃재비’들의 실상을 일본의 모 TV에 알려준 장소가 바로 청진이었다. 북한에 지금도 그 ‘꽃재비’들이 있을까? 있으면 얼마나 있으며 그 실상은 과연 어떻할까? 내 눈으로 직접 꼭 보고싶다.
그리하여 사이몬 리와 나 그리고 리 순남과 뱁새눈 이렇게 넷이서 청진행을 떠났다. 리순남이 워낙 수완이 좋아서 그런지 가는 도중에 때로는 군 부대에서 때로는 무슨 사업소에서 숙식을 해결해 가며 이틀만에 청진에 닿았다. 역시 듣던데로 드럼통으로 된 쓰레기 통에는 서너명의 ‘꽃재비’들이 달라붙어서 뒤지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먹을것을 찾는가 보다. 길거리 여기 저기에도 ‘꽃재비’들이 더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거나 더러는 길거리에 누워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건물들은 낡을대로 낡아서 마치 뒷골목 스럼가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초라한 거지촌 같다고나 할까? 무너진 건물을 더러는 각목으로 받쳐놓은 곳도 있지만 무너진 채로 그냥 방치해 놓은 곳도 있다. 가끔은 천막같은 천으로 가려놓은 곳도 있다. 행인들이라곤 여기 저기 널부려 있는’꽃재비’ 들 말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비하면 평양은 그야말로 양반중의 양반이었다. 몇 손가락 안에드는 대 도시 청진! 어찌 이같이 폐허가 되었는가? 설마, 지금 내가 지나는 곳만 그렇겠지? 스스로 위안을 해 보지만 그래도 너무나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대 도시가 이럴진데 농촌이나 산골은 과연 어떻할까? 왜 서방에서는 이같은 실상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사이몬 리가 카메라를 꺼내자 리순남이 제빨리 가로막고 나선다. 사진을 못찍게 하는 것이다. 이튿날 리순남이 볼일을 보는 동안 사이몬 리와 나는 예의 그 구강지료소로 갔다. 리순남 대신 뱁새 눈이 따라붙었다. 목사님 내외는 안계셨다. 대신 손수조 소장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구강진료소 준공식날 이전 소장이 인사말에서,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가 다음날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후임으로 온 자일성 싶었다.
‘장군님 감사합니다’ 하지 않고 ‘하느님’을 찾았다고 해임되었다한다. 손 소장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이 무슨 큰 날리라도 난 것처럼 부산을 떨며 우리 일행을 반겨 주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년 열두달 가야 꼬투리만 잡으려는 지도원 이외에는 어느누구 한사람 찾아주는 이 없으니 반가울만도 하리라. 우리는 직원들 먹으라고 마련해 간 과일과 소고기를 내 밀었다. 모두들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이거 얼마만이야“
“모처럼 포식하게 됬수다례”
“오늘이 무슨 날인가?”
나는 이말을 얼른 받으며 물어 보았다.
“왜, 목사님께서 자주 사 주실텐데요”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며 모두들 입을 다무렸다. 나는 앗차 싶었다. 달라스를 떠나기 얼마 전에 목사님이 당국에 구속되셨다는 기사가 떠 올랐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온 지도원이 그렇게도 끈질기게 김일성 동상에 절을 하라고 애걸해도 목사님은 이핑개 저핑개 대며 끝내 거절하셨다더니 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일 때문인지 궁금했던 차이지만 함부로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직원들 눈치를 봐서는 아직도 풀려나지 못했거나 풀려 났다해도 무언가 자유롭지 못한 것이리라.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아, 참, 언재 시간이 있으신지 온천에 목욕이나 하러들 가시지요. 도시락도 좀 싸가지고?”
땔 나무가 없어 물을 데울 수가 없기때문에 목사님 내외가 오시기 전에는 평생 가야 여름 한철 빼고는 목욕이란걸 모르고 산다고 들었다. 목사님 내외가 오시면 직원들을 차에 싣고 청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노천 온천으로 목욕하러 간단다.
“아, 그럽시다례. 마침 내일은 하루종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니 그렇디 않아도 하루 쉬려는 참인데 마침 잘 됬수다례”
그러고 보니 모두 일손을 놓고 우두커니 들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들, 일 안하시나요”
“아, 뎐기가 들어와야 하디요”
그 순간 전기가 들어왔다. 전기가 들어 온 이 순간을 놓지지 않고 모든 작업을 끝내려는 듯 갑자기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인다.
“오늘 박사님 오신다고 뎐기를 넣어 듀겠다 하더니 이제야 들어 오누만”
그러나, 10분도 안되서 전기는 나가고 말았다. 치아를 드릴로 갈다 말고 망연자실 그저 멍하니 서 있는 의사도 있었다. 전력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이튿날 청진에서 북쪽으로 한 8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노천 온천으로 진료소 직원들 20여명을 데리고 목욕하러 갔다. 날씨는 쌀쌀 했지만 온천 물이 뜨끈 뜨끈해서 목욕하기에는 적당했다. 이렇게 좋은 천연자원을 개발 하지 않아 그대로 노천으로 훌러 내리고 있었다. 목욕이 끝나고 빨래를 널어놓고 점심을 먹으려고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소고기 국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꽃재비’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모였다. 시내 한 복판도 아니고 이 깊은 오지에 왠 ‘꽃재비’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동상으로 발가락이 잘려나간 아이들도 있었고 아예 다리 한쪽이 없는 아이도 있었다. 어찌해서 다쳤느냐고 물어 보고싶지도 않았다. 다리 한짝 없어진 연우가 문제아니라 이런 현실이 너무도 서글펐다. 도대체 그 누가, 굶주린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겐 구원의 손길을 뻗으면서 내 동족 어린이들은 이같이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여간 이들에게 먼저 밥을 퍼 주고 우리가 먹는데 많이 모자랐지만 그럭저럭 때웠다. 돌아오는 발길이 너무도 무거웠다.
돌아올 때 청진 시당 직원 두명이 평양에 출장간다면서 덜덜거리는 고물 자동차를 끌고 우리를 따라 붙었다. 중간쯤 왔을때 벌써 날이 어둑어둑 해졌다. 뒤따라 오던 고물차가 움푹 패인 곳을 지나다 덜커덩 소리를 내더니 그자리애 멈춰섰다. 아무리 시동을 걸려해도 걸리지 않는다. 할수없이 리 순남의 주선으로 인근 의무부대를 찾아갔다. 혹 군부대에 정비병이 있으면 고장난 차를 수리하기 위해서다. 차가 고장날때 시당 직원 한 명이 팔을 다쳐 몹시 아파했다. 군 의무대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그곳에 있는 압박붕대로 감아줄려고 했다. 그랬더니 황급히 의무장교가 뛰어 나오면서,
“기건 아이됩메. 여그메 압박붕대는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끼니 장군님이나 위원장님 오실때 뵈와 드릴겁네다”
기가 막혔다. 남쪽에는 그 흔한 압박붕대가 이 부대내에 이것밖에 없다니! 그러고도 의무부대라! 자세히 보니 뉴질렌드 산이다. 이것이 어느 경로로 이곳까지 훌러 들어왔는지, 북한제는 아예 없는 것일까?
곧 이어 고장난 차를 지키기 위해 보초병을 파견한다기에 그깢 고장나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차를 지키려고 보초병까지 다 보내느냐고 물어보았다. 일직장교는 뚱딴지같은 대답을 한다.

“지금 곧 어두워지니끼니, 우리 부대에는 정비부서가 없어서리 이웃 부대에 연락병을 보냈으니끼니 그네들이 올때까지 차를 지키려고 보내는 거야요”
“아니, 고장나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차를 누가 끌고 간다고 보초병을 다 보내느냐니까?”
“무시기 모르시누만, 그냥 둬두면 인근 사람들이 도라이바, 망치, 심지어 부엌칼, 도끼까지 개지고와설라무니 몽땅 뜯어간대니까요. 밤새 감쪽같이 없어딥니다.”
“그걸 왜 뜯어 갑니까?”
“아유 답답해서리 원! 아, 부품을 팔면 돈이 되니끼니 그렇디요”
“그러고 또 전화로 하면 될것을 연락병을 꼭 보내야 하나요?”
“전화가 어디 있깐? 전신도 안되는데”
“전신은 왜 안되며 무선통신도 안되나요?”
“무전 같은건 수 십년 전에 고장난 체로다가 수리도 못하고 있고, 전신은 통일전쟁 이전에 설치한 전선을 한번도 점검해 보디 안아서리 다 썩어빠뎠디요”
그래서 일일히 연락병을 보내야 한다면 유사시엔 어쩐담? 통신은 군의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계속)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천-민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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