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④⑤
-SPn 서울포스트, 심천 자유기고가

제1부 우리는 하나

(1, 북에 가다.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①)
(2, 추방. 3, 제가 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②③)


4, 다시 북에 다녀오다.

재판은 의외로 쉽게 일찍 끝났다. 재산분배에 따른 자금 회수는 전적으로 도 변호사에게 맡겼다. 심신의 피로도 풀겸 낚시터에 앉아 있는데 핸드 폰으로 전화가 왔다. 무심결에 받아드니 리숙경이라 했다. 서울에서 전화 건단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북에 있거나 북경에 있어야 할 리숙경이 서울에? 리숙경을 만날 날자와 장소를 약속하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국가정보원에 전화를 걸가? 하다가 리숙경이 오고가는 문제는 내가 관여할 일도 아닌것같고 또 무슨 일때문인지 일단 만나보고 나서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리숙경의 미모는 여전히 뛰어났다. 북경에 머물면서 국제적 감각을 익혀서 인지 더욱 세련되 보였다. ‘저런 여자와 결혼 했으면 - -‘ 싶기도 했다. 리숙경은 김기남의 심부름으로 왔다고 했다. 김기남이라! 그렇다면 혹시 중단됬던 강의를 계속해 달라고? 아니면 북한에 공장 세우는 문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송장 문제때문인 것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국에 있는 사이몬 리에게 연락해서 같이 가야할 것 아니냐고 물어봤다. 그러라고 했다. 리숙경은 중국대사관 직원으로 와 있으며 미국의 사이몬 리가 오면 같이 모시고 갈 것이라 했다. 집에 돌아오는 즉시 미국의 사이몬 리에게 전화를 했다. 미 국무성과 협의를 해 보고 늦어도 1주일 이내에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막 끊고 나니 초인종이 울렸다. 날이 꽤 저물었는데 누구일까? 현관문을 여니 왠 건장한 젊은 사내 둘이 서있었다.
“문용일씨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같이 좀 갑시다”
불문곡직하고 양쪽에서 내 양 팔을 붙들고 끌고 간다. 옷을 갈아 입을 시간도 심지어 신발을 신을 시간도 주지않는다.
“아니, 도대체 당신들 누구요? 무슨 일인지 알고나 갑시다.”
“잔말 말고 따라와! 가 보면 알아.”
이런 불법천지가 있나? 조폭들인가? 소위 그 악명 높은 기관원들인가? 미국땅에서는 도대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내 조국 대한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관원들이라면 최소한 신분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조폭들인가? 그러나 내 70평생 행적에 비추어 보면 조폭에게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끌려 갈 일은 분명히 없을 것같다. 그들은 검은 색 승용차에 나를 우겨넣고 양쪽에 앉아서 나에게 검은색 천의 안대를 씌웠다. 한 4 – 50분 달려 왔을까? 넓은 마당을 지나는 것같더니 이내 나를 끌어 내리고 어느 건물로 들어서는 것같았다. 그리고는 지하 2층쯤 되어보이는 계단을 내려가서 철커덩 철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나를 그 안으로 끌고 가서 어느 철재의자에 앉히고 내 양 팔을 뒤로 비틀어서 철제의자에 메달고 수갑을 체웠다. 그러고 그들은 나갔다. 건물 구조로 봐서는 조폭은 아닌 것같아 내심 어느 정도 안심은 되었다. 기관이라면 그 악명 높던 군사정권 시대도 아니라 그때처럼 민간인을 함부로 다루는 시대도 아니요 또 내가 국가 보안과 관련하여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같지도 않으며 나라는 사람은 원래가 우리나라에 그 어떤 털끝만큼도 해가 될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야 있으랴 싶었다. 뭐, 무슨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그저 간단한 조사로 끝날 일이겠지? 리숙경을 만난 일이라면 미국 대사관에 상세히 보고가 되 있을 것이며 또 내가 추진하고저 하는 일이 국익에 보탬이 될 일임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밤이 꾀나 깊어가고 시간이 지나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밖에서는 인기척도 없었다. 차거운 쇠 의자에 묶인 체 꼬박 밤을 새웠다. 이제 곧 누가 와서 ‘미안하다’며 내 보내거나 그저 간단한 조사로 끝 나겠지! 그래! 간단한 조사로 끝날꺼야! 그 순간, 덜커덩 하며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청년 둘이서 내 수갑을 풀고 어디론가 데려 간다. 어느 방으로 가서 같은 철제 의자에 앉혔다.
“이새끼야?”
누군가가 누구에겐가 물었다.
“너,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 알았어?”
“예 - -“
“이새끼, 대답 똑바로 못해?”
하며 무엇인가 쇠파이프같은 둔기로 내 옆구리를 후려쳤다. 그 순간 나는,
“허-억 - -“
소리를 내며 입에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내 곁에는 사이몬 리가 내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요?”
거의 꺼져가는 희미한 목소리로 내가 묻자,
“미군 오산병원입니다. 꼭 10일만에 깨어 나셨내요”
하고 사이몬 리가 대답했다. 이어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내 몸 이곳 저곳을 진찰하는 것같았다. 나는 이내 잠이 들었는지 의식이 몽롱해졌다.
잠이 들었는지 의식을 잃었는지 또 이틀이 지나서야 소변이 마려워 깨어났다. 간호사가 ‘호-스를 연결해 놓았으니 그냥 소변을 보면 된다고 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키는데로 했다. 목이 말라 물을 한 컵 들이켜고 그제서야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사이몬 리로부터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옆구리를 한대 맞고 쓸어졌을 때 나의 갈비뼈 세개가 부러지며 그중 한개가 간을 찔렀다. 왠 만한 사람같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목숨은 붙어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간을 찔렀을 때 과다 출혈이 되지 않은 것이 목숨을 부지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이며 왜 출혈이 심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기적이라 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왼 팔을 끌고 이내 발로 내 어깨를 짓뭉갰거나 무언가 육중한 것으로 강타했을 것이라 했다. 팔과 어깨를 이어주는 옹골뼈가 깨져 있었으며 어깨에는 둔기로 맞은 듯한 외상이 있었다 했다. 북한에 가서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는데, 내나라 내 땅에서 이런 일을 당하다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이몬 리가 한국에 도착하여 나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집으로 와 보니 현관 문이 열린체로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내 집 문을 단속해 놓고 그 즉시 대사관에 연락을 했다. 대사관에서는 미국으로 미국에선 국무장관이 한국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강력 항의 했다. 만약 온전한 상태로 즉시 찾아내지 못하면 한미관계에 심각한 영향이 있을거라 했단다. 외무장관은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은 각 산하 기관에 지시를 내려 즉시 찾아내도록 했다. 수색 이틀만에야 정보원 지하실에서 거의 죽은 상태의 나를 발견했다. 미 국무장관은 다시 우리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여 관련자를 엄정 문책하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민을 보호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중 국적자이긴 하지만 70평생을 살아 온 내나라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무려 3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있으니 음식이 맞지않아 몸은 또다시 바싹 말라 있었다. 그동안 미 대사관 직원들과 북한에 내가 가서 해야 할 일들에 관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대책을 세웠다. 한국의 국가 정보원 직원도 옵서버로 참석 했다. 그는 지난번 일에 대해 대신 깊이깊이 사죄한다고 했다. 그 뿐이었다. 한편 만약에 북한에 공장을 세우게 되면 미국이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 측에서는 모나미 볼펜이 기술과 필요한 인력 지원을 하기로 했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부로부터는 단 한 푼의 지원도 지원금도 없었다.

집에서 한 달을 더 요양을 하고 또다시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에 리숙경과 사이몬 리 이렇게 셋이서 북경을 거쳐 평양으로 갔다. 김기남을 만나니 지난번 강제 추방 당한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나는 더 이상 개의치 않겠다고 했다. 예상했던데로 내가 지난번에 슬적 지나가는 말로 제의를 했던 바로 그 공장을 북한에 건설하는 안이 북한 고위층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했다.
나 혼자 예측해서 김기남에게 알렸던 바와 달리 모나미 측과 상의해 본 결과, 10만 명씩 3교대로 30만 명을 투입할 경우, 1년에 약 1조개의 볼펜을 생산할 능력을 갖출 수 있지만 미국 납품이 가능한 량은 년간 약 40억개, 가격을 20쎈트만 보면 년간 4억 불, 기타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있는 물량이 100 - 200억개, 수출량이 10억 – 20억 불을 달성할 수 있다. 만약 3%의 이익이 난다면 3,000 – 5,000 만불, 이것으로 북한에 매년 쌀 30 – 50 만톤을 보낼 수 있지만 북한의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이나 생산 라인 자동화 설비가 가능해 인력을 1,000명 정도만 투입해도 년간 100 - 200억개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게 된다. 따라서 1차 30 만 군대를 먹이는 일에 차질이 생긴다. 하여 30만 명을 10만명씩 3교대로 투입할 수 있는 다른 품목, 즉 인력이 많이 필요한 봉재공장을 세울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봉재업은 어느 품목을 다루느냐에 따라 그 가격과 생산 물량이 천차만별이지만, 제일 저렴한 군 작업복의 경우, 1일 1인당 평균 생산량 20벌, 납품 가격 $10.-/pc인 경우 10만 명이 1년에 60억 – 70억 불을 수출할 수 있다. 일이 잘 되어 5%의 이익만 나도 년간 3- 4억 불이되며 이것으로 쌀 100 -200 만톤을 살 수 있으니 북조선의 해묵은 숙재인 식량난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잘만 되면 투입 인력을 얼마던지 늘려 나갈 수 있다. 물론 뜻데로 될 수 있을지 해봐야 알겠지만 어쨌던 군30만 명의 식량만은 최소한 내가 책임을 지겠다. 하여 김기남은 최소한 30만명의 식량 문제 해결, 잘만 되면 북조선 전체 인민의 식량문제 해결이라는 가능성을 상부에 보고한 결과 고위층에서는 파안대소하며 대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북측이 대지를 제공한 대가로 40%, 사이몬 리와 내가 자본, 기자재 등을 투자한 대가로 60%의 지분을 각각 갖기로 양해 각서를 작성했다. 내가 단서를 달았다. 첫째, 결산은 아무도 관여할 수 없고 오직 사이몬 리와 내가 하며 결산 결과에 대해 북측은 하등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둘째, 공장 운영은 전적으로 나와 사이몬 리 또는 나 또는 사이몬 리가 지정하는 사람이 하며, 북조선 인력은 인민군 서부전선 병력 30만으로 하고 공장에 투입되는 인민군의 인사이동도 나와 사이몬 리 또는 그 지정하는 사람만 할 수 있으며 북측은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설명을 듣고난 김기남이 인사문제를 물고 늘어진다.
“공장 내의 작업관계 인사이동 말이요 아니면 공장 외적인 진급, 제대, 배치 이동 등 군사적인 인사문제 말이요?”
“둘 다 입니다”
“아니, 뭬요 ? 우리 닌민군의 인사문제를 우리 맘데로 못한단 말입네까?”
“공장이라는 특성상 숙련공이 되어야 생산성이 향상되고 그래야 이익이 보장됩니다”
“그딴거 내래 모르갔시오. 아무튼 인사문제만은 아이됩메.”
“내 말 잘들어 보시요. 이제 막 숙련공이 되어 생산성이 향상될 찰나에 다른 부대로 전보시키면 우리는 닭쫓던 개 지붕 처다보는 꼴이 되쟎소. 그래가지고는 생산성 향상이고 뭐고 기할 수 없게 됩니다. 군단장 이상의 정책적인 인사 이동이야 당연히 공화국 당국의 일이겠지만, 사단장 이하 공장에 투입하는 인사 이동은 나에게 권한을 맡겨야 합니다.”
“아, 아이된다고 하지 안습메.”
“북조선 식량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포기하시겠다는 거요?”
“- - - - -!”
“이것 봐요! 내 나이 올해 일흔 다섯이요. 손자 재롱이나 보고 여생을 즐길 나이에 내가 무엇이 답답해서 이 노구를 이끌고 이리 날뛰겠소? 나는 그 동안 북조선 인민들이 굶어죽는 비참한 모습을 골백번도 더 듣고 보아왔소. 김동무는 나만큼 이 비참한 실정을 알기나 하시오? 알아도 애써 모르는체 하시기요?”
“- - - - -! 내래 상부와 상의 해 보기는 하겠디만, 아마 되지 않을거외다.”
김기남이 돌아갈 때, 분에 넘치도록 두툼한 봉투를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그는 정확히 닷세만에 내 숙소를 다시 찾아 왔다. 손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고 만면에 웃음을 띄고 반겨 주었다.
“됬시요. 문박사님 소원데로 됬단 말입네다”
군단장 이상은 북조선 당국이, 서부전선 사령관, 사단장의 인사관계는 우리와 상의하여 북측이 행사하기로 하고 그이하의 진급, 예편은 우리의 복안데로 북측이 무조건 응하기로 하며 배치, 이동 등의 모든 인사권은 우리측이 단독으로 갖기로 했다. 그외 모든 기자재와 원료공급은 휴전선을 통해서 하기로 하고 여기에 필요한 전력공급은 남측에서 하며, 도로건설, 공장건설 및 그 부대시설 건설은 나와 사이몬 리 또는 그 정하는 사람이 하기로 하고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부지 선정 작업에 들어가기로 하고 모든 기초조사가 완료되는데로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나중에 정식으로 측량해 보기전에 우선 육안으로 둘러 보고 휴전선을 통해 넘어 왔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북한군을 살찌게 한다는 것은 좀 - - -“
우리측으로 넘어와서 외교통산 장관, 국정원장, 주한 미국대사, 사이몬 리, 나 그리고 옵서버 자격으로 국방부 참모장이 참석한 후속대책회의 자리에서, 나의 경과보고를 듣고 국정원장이 대뜸 항의조로 한 말이다.
“뭘 걱정하시오. 30만 북한군의 인사권을 내가 쥐고 있쟎습니까? 앞으로 세뇌교육을 잘 시켜서 완전 우리편을 만드시오. 그것이 국정원장이 할 일이요. 앞으로 암암리에 군단장, 사단장들 서울 구경도 좀 시켜 주고요.”
나를 폭행한 과오때문에 국정원장이 교체되었지만 그래도 어째 국정원이 하는 짓이 못믿어웠다.
“- - - 으음!!! 아, 그리고 이익은 확실히 보장 되는 거요?”
외교통상 장관이 묻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모든 공장에서는 월급을 주며 종업원을 쓰는데 나는 밥만 먹여주고 쓰지않소? 손해 볼 리가 없지요.”
“그리고 또 수 틀린다고 느닫없이 공장을 폐쇠하던가 하면 - - -“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요. 북한의 식량난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다른 문제인데, 삐라 살포는 앞으로 서부전선 쪽에서는 자제하도록 하고 부득이한 경우 강원도 산간 지방을 이용하도록 유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NLL 문제는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지 선정을 하고 공장 짓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장비 일체는 우리측이 가지고 갔고 인력은 북한군을 이용했다. 그 동안 서울에 <조선의류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나와 사이몬 리가 공동 대표로 일하기로 했다. 1차로 1억불짜리 신용장을 미국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무역등록을 마쳤다. 서울에서 주요 간부들을 선발해 데리고 가서 북측 군인들에게 봉재 훈련을 시켰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지금까지 세계 역사상 무려 30만 명이 투입되는 대규모 봉재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우선은 미국에 납품할 군 작업복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서울 사무소에서는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각종 기성복 의류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바이어들이 속속 입국해서 현지 공장을 시찰해 보고는 혀를 내 둘렀다. 적게는 몇 만 불에서 많게는 몇 억 불에 이르는 신용장이 계속 밀려 들었다. 중국보다는 무조건 싸게 주문 받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품질이다. 무조건 중국제보다는 품질이 우수해야 한다. 수 십년씩 경력을 쌓은 베테랑들이 매일같이 매달려서 북측 군인들을 훈련시켰다. 봉제는 여성이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어느정도 무너졌다. 군인들은 투박한 손으로 곧잘 따라했다. 생전 처음 이팝에 고기국을 매일 먹을 수 있기에 결사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대남 경계근무 성적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서 국방부 측에서는 못마땅해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서부전선에서만은 군사적 긴장을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북한 고위층에서도 대 만족이라 했다. 우선 인민군 30만명에게 지급하던 양식을 돌려서 평양시민들에게 배급을 주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의 요소가 있다고 우려들을 하지만 역시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적의 마음을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적의 마음을 사로잡아 놓으면 반드시 중요한 때에 요긴하게 쓸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북은 북데로 이 기회를 이용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두늬 싸움이다. 어느 쪽이 더 민심을 얻어 적기에 유용하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대 이상의 결과도 나왔다. 우리의 당초 예상은 서부전선 인민군에게 지급되던 군량을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으로 전용하는 것이었다. 그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북측 당국은 그러나 엉뚱하게도 그것을 평양시민 배급으로 전용했다. 고위층 주변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겠지만 중부전선과 동부전선 인민군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우리가 노리던 목표의 일부분이 이룩되려는 것이다.

한편 나는 노구를 이끌고 업계 후배들을 찾아다니고 중국에 있는 봉재공장을 견학하러 20회 이상 왕래하며 죽어라고 뛴 결과 상상외의 놀라운 결과의 결산이 나왔다. 하지만 그 막대한 금액을 모두 사내 유보 자금으로 처리하고 북측에는 10만톤의 쌀만 보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아마도 100만톤 이상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측에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군 서부전선 사령부 산하 몇몇 장병들이 서울 사무실을 다녀간 것이다. 순전히 업무차 다녀갔지만 국정원에서도 상당한 소득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 각지로부터 주문량은 늘어 났다. 전반적으로 보면 세계 경기는 침체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업이 이대로만 지속된다면 년간 100억불, 아니 200억불 달성은 별 문제가 없을성 싶다. 회사는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하고 나와 사이몬 리는 이사회 공동 회장으로 물러나 앉았다.

5, 제가(濟家) – II

내가 미국서 살다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러니까 리숙경이 한국에 오기전, 나는 그동안 틈틈히 써 놓았던 수필을 모아서 수필집 2권을 냈었다. PEN 크럽 한국 본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PEN 크럽 기관지에 내 수필들 중 일부를 골라서 싣기도 했다. 윤세아라는 담당 직원이 잔 심부름을 맡아놓고 해 주었다. 그녀는 모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좀 더 공부한 다음 귀국해서 지금까지 PEN 크럽 한국 본부 일을 보고 있는 재원이다. 키가 훤칠하며 이목구비가 수려하게 뛰어나며 특히 피부색이 유난히 희고 어린아이처럼 보드라웠다. 당시 나이 마흔 두살인데 여태 시집을 가지 않았다. 아마도 애꾸눈 탓일가? 남들이 그것을 탓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그것때문에 자격지심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보기가 흉칙해서 짙은 색안경을 쓰고 다녔단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 수술을 하여, 시력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눈 동자도 움직이고 적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특히내 마음에 든 것은 그녀의 작고 도톰한 손이다. 살림 솜씨가 뛰어날 성 싶다. 나이 차이가 너무나고 아직 결혼 한번 해보지 않은 숫 처녀이니 언감생심, 어디 좋은 자리 있으면 중매라도 서 줄까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내가 미군 병원에 입원해 있을 적에 그녀가 문병을 왔었다. 단순한 문병이 아니라 내가 의식이 없을 때에도 모든 가능한 뒷바라지를 성심으로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처음 수필집을 출판하기 위해 연락을 자주 할 때에도 별일 아닌데도 내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청소도 해 주며, 때로는 할일없이 오래도록 머물기도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한번은 총무부장이 나를 불러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귀띔해 주었지만 그것은 단지 작가로서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으로 문병 온 총무부장이,
“박사님! 그렇게 귀띔해 주었는데도 뭘 망서리십니까? 망서리는 게 아니라 무딘겁니까? 아니면 그녀를 싫어하는 겁니까?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그렇게 모질게 내 팽개쳐도 되는 겁니까?”
“아니, 뭐요? 내가 그녀를 싫어한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후배로서 딸처럼 아껴서 그런거지요.”
“이것 보세요! 그녀는 박사님을 이성으로서 사랑한다니까요!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들으세요?”
“뭐, 뭐, 뭘? 그녀가 이성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애이, 여보시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같은 늙은이를 놀려도 분수가 있지 원!”
“아이고, 답답해! 원, 에이! 안되겠다. 그녀를 직접 데려다 단도직업적으로 물어 보시오.”
총무부장이 나가고 나서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의자도 아니고 내 침대위에 엉뎅이만 걸치고 땅바닥을 내려다 보며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박사님! 저는 처음 박사님을 뵌 순간부터 ‘아, 이분이야말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분이구나!’라고 느겼어요”
“아가씨! 아가씨는 원래부터 아빠같은 늙은이를 이성으로 좋아하세요?”
“아니요!”
“그럼, 왜?”
“처음 뵈었을 때, 박사님께서 50대인줄 알았거든요”
“그럼, 이제 70대인 것을 알았으니 그만 두셔야지요?”
“사랑이란게 뭐 맘데로 그만두고 말고 하나요?”
나를 사랑한다? 이 늙은이를 ?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 그녀의 목 선이 유난하도 희고 보드라워 보였다. 정말이지 이런 젊고 예쁜 여인을 아내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 그녀를 와락 껴 안고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그녀의 손을 슬며시 끌어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는다. 나는 약간 움칠하면서도 내 진심을 말했다.
“나도 세아씨를 처음 본 순간 ‘아, 저런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다음 순간 ‘꿈이란 고이 간직할수록 아름다운거지!’라고 여기게 되었다오. 세아씨에게는 진심으로 좋은 배필을 얻어주고 싶었소”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에게 좋은 배필은 여기 누워 계신걸요”
“세아씨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천국에 온 듯 행복하겠지만, 앞으로 과연 불과 몇년 동안 세아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요.”
“단 1년이라도 저는 그 행복을 영원히 간직할레요. 아니에요, 앞으로 오래도록 서로 행복하게 될거에요.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요. 저도 처음에 박사님 연세가 높다는 말씀을 듣고 꾀나 망설였죠. 그러나 그럴수록, 또 박사님을 만날수록 제 마음은 더욱 더 굳어져 갔지요. 이제는 저도 제 마음을 돌이킬 수 없어요.
부디 이 못난 여인을 걷우어 주세요”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감미로운 촉감이 전신을 파고 든다. 유비가 강동에 가서 손권의 누이 손희를 품에 안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북한에 다녀와서 후속 대책회의를 한 다음날 대통령께 보고하는 자리에서 대통령 국정 대북관계 자문위원으로 임명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몇가지 현안을 진언 드렸지만, 일정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내 소관이 아닌 현안이라서인지 별로 귀담아 듣는 것같지 않았다. 머쓱하기 짝이 없었다. 그 후 휴전선 이북 공장건설에 메달리랴 쎄일즈 일에 메달리랴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나느라 자문위 소집이 세차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 바쁜 와중에서 그래도 결혼식은 치렀다. 세아씨가 용하다는 데 가서 궁합도 보고 혼인 날자도 봤더니 궁합이 너무너무 좋지만 당해내에 혼사를 치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하여, 꼭 주역인지 사술인지를 믿어서가 아니라 이왕이면 좋다는 때 하자고 해서 급히 서둘러 치렀던 것이다.
결혼식장에 각부 요인들은 물론 대통령께서도 참석하셨다. 내심 소원해진 듯하여 기대를 안했었는데 의외였다.
“젊은 오빠! 결혼 축하해요”
라며 농담까지 하셨다. 그리고 귀속말로,
“다음 자문회의 때는 꼭 참석하세요”
하신다.

신혼여행은 중국 하이난으로 갔다. 광동성 봉제공장에 방문 수케쥴이 있어 겸사겸사해서 택한 것이다. 워낙 노구라 신부보기에 미안하기도 하여 한 달 전부터 특별 크리닉도 받고 누가 잊지말고 꼭 먹으라며 산삼도 구해 주어서 몇번 달여 먹기도 하였다. 정력에 좋다는 것은 약이던 음식이던 가리지 않고 열심히 먹었다. 내 딴에는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청심환도 가져갔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두어달쯤 지나 또다시 북경에 가서 머물고 있을때 서울 세아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축하드려요. 저, 애기 가졌어요”
“앗! 예 - - -, 예? 아이고 고마워요 그리고 추, 축하해요. 아, 그리고, 저- - -, 뭐더라? 아, 예, 무엇보다도 개걸스럽게 먹어야 되요. 그래야 아들이 된데요. 끼적끼적 시원챦게 먹으면 딸일 수 밖에 없데요. 그러니 무엇이던지 먹고싶은거 있으면 주저말고 먹도록 해요. 아, 그리고, 중국에서 뭐 사 갈 것 없어요? 말해봐요 새 아씨!”
그러고는 그길로 중국약방으로 달려 가 사정을 설명하고 좋다는 약을 바리바리 사들고 와서 귀국할 날을 서둘러 앞당겼다. 귀국하는 길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수소문하여 가물치도 큰것으로 두마리 사 들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 내가 경황중이라 오락가락 해서 입국시간을 말 안했었나? 아닌데, 어제 저녘에 분명히 말했는데- - -. ?’ 씽크대 물에 담궈놓은 가물치만 애꿎게 바라보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현관 문소리가 났다. 세아씨는 반색을 하며 뛰어와서 내 품에 안긴다. 그리고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들이레요! 지금 병원에서 - - -“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꼭 - -, 정말로 꼬옥 껴 안았다.
“어! 헉! 이런 홍복이 있나? 이 복덩이!”
나는 새 아씨인 세아씨 볼을 살작 꼬집어 주었다. 세아씨는 짐짓 딴청을 피운다.
“아이 참! 식사 안하셨지요? 내 금방 밥해 줄께요”
그러고는 부엌쪽으로 달려 간다.
“어머! 이게 뭐에요? 아이, 징그러”
“징그럽다니! 서방님이 사 오신건데. 어디 보자! 내가 끓여 드리지!”
내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자, 세아씨가 가로막는다.
“아이고! 가만히 계세요, 나도 할줄 알아요”
이렇게 가물치도 꽇아 먹이고 중국에서 사온 보약도 달여 먹였다. 태아와 산모에게 좋다는 것은 다 해 주었다. 태몽을 꾸었는데 신기하게도 용꿈을 꾸었다. 눈이 부리부리한 용의 머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내 얼굴을 스쳐 가더니 발톱으로 내 오른쪽 팔을 움켜 잡고 땅에서 커다란 차돌맹이를 물더니 이내 하늘로 치 솟았다. 너무 높이 올라 갔는지 지구가 열기구처럼 보였고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지구의 구석구석을 오래도록 구경하고 나를 좀 내려 달라고 했다. 용은 못마땅한 듯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어느 나무위에 나를 내려 놓았다. 나뭇가지에 오른쪽 어깨를 부딛히며 깜짝 놀라 잠이 깨었다. 여태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린다. 용꿈이라! 내 생애 처음 꾸어보는 용꿈 아닌가! 분명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너무 정성을 드려서 일까? 마치 쌍둥이를 밴 것처럼 배가 불러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본 결과 태아는 하나였다. 의사 선생님은 태아가 너무 커서 걱정되니 산모가 운동을 좀 열심히 하라고 권했다. 뒤늦게 아파트 계단도 오르내리며 열심히 운동도 했다. 태아의 이름을 ‘차돌맹이’라고 지었다. 굴러 다니는 돌맹이처럼 모든 풍파 다 이겨내고 굳건하게 자라라는 뜻이다. 차돌이 돌맹이는 제왕절개로 세상에 태어났고 태어날 때 몸 무게는 자그만치 5.05 kg이나 되었다. 세계적인 기록을 보면 6kg이 넘는 아이들도 있지만 우리 아이도 결코 만만치 않은 기록이란다. 용꿈을 꾸고 태어났으니 이름을 <용식>이라고 지었다. ‘식’자는 돌림자이다. 세아씨는 너무 속되고 촌스런 이름이라고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문용식>이라는 속되고 촌스런 아이가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내 나이 일흔 일곱에 얻은 늦둥이 중 늦둥이이지만 내게는 더 없는 보배같은 귀하디 귀한 자식이다.
오 ! 하느님 ! 감사합니다. 이 아이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계속)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천-민영일)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