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⑥
-SPn 서울포스트, 심천 자유기고가

제1부 우리는 하나

(1, 북에 가다.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①)
(2, 추방. 3, 제가 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②③)
(4, 다시 북에 다녀오다. 5, 제가 - II - [소설] 조선민국(朝鮮民國) ④⑤)


6, 눈물 매대

서부전선 인민군을 먹일 쌀과 소고기 등 식료품을 쉴새 없이 하역하고 운반하는 해주항 주변에는 식량을 구하려는 일반 인민들과 꽃재비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북조선에는 왜 이렇게 꽃재비들이 많은가? 그들 중에는 부모가 반동으로 몰려 사형 당하거나 탄광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더러는 탈북하여 소식은 고사하고 생사조차 알길 없는 가운데 집에 남은 아이들은 먹고 살 길이 없어 거리를 떠돌며 도둑질과 구걸로 연명해 가는 꽃재비로 전락해 버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재비들은 북조선 말로 소위 ‘눈물 매대’라는 기막힌 사연으로 양산되었던 것이다.

쏘련이 붕괴되면서 원조도 끊어지고 모든 생필품을 국가가 계획 생산하던 북조선에서 식량 생산은 전체 인민에게 지급되어야할 절대량의 반 정도 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가뭄이나 홍수가 지면 식량 생산은 당 간부와 기관원 그리고 인민군이 먹을 것도 부족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일반 인민들에게 배급이 중단된지 어언 20년이 넘었다. 북조선 당국은 허울 좋은 <자력갱생>이란 구호를 내 걸고 인민들 스스로 알아서 먹고 살라는 것이다. 인민들에게 농토를 주어 농사를 지어 먹고 살라는 것도 아니고 농토는 모조리 국가 소유이며 농사지은 곡물과 식량은 모조리 국가에서 자져가면서 인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먹고 살라니, 무얼 먹고 살라는 말인가 ? 그동안 산 꼭대기에 ‘뙈기밭’이라도 장만한인민들은 그래도 간혹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못한 인민들은 산과 들을 헤메며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무껍질은 모조리 뜯어 먹고 베껴 먹어 이제는 더이상의 나무껍질도 풀도 없어지게 되었다.
집안에 팔 수 있는 물건은 거의다 장마당에 내다 팔아서 음식료품을 구해 연명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다 팔것도 없다. 구걸로도 더 이상 견디어 내기 어렵게 된다. 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덮고 자던 이부자리, 입던 옷가지를 비롯하여 밥그릇 수저 등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다 판다. 이리하여 생긴 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길로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히 흩어진다. 부모들은 탈북을 하거나 탈북하다 잡혀 죽기도 하고 아이들은 돈이 떨어지면 꽃재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가족 최후로 팔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내다 팔기위해 차린 판매대를 ‘눈물 매대’라고 부른다.

인민학교 4학년을 다니다 만 올해 열두살된 혜숙이네도 ‘눈물 매대’를 거쳐서 뿔뿔히 헤어졌었다. 그러나 혜숙이 밑으로 여덟살 난 혜미와 네살 난 철민이를 두고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던 혜숙이 어머니는 두 아이에게 배당된 돈으로 겨우 겨우 연명하며 집에 남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집나갔던 혜숙이가 돌아 왔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어 왔단다. 두 모녀는 한없이 끌어 안고 울었다. 한 참을 울고나서, 혜숙이가 기막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오마니! 장마당에서 들은 예긴데, 해주 역전에 가면 군량미 운반하다 더러 떨어진 쌀이 철로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데요. 감시가 심해서 접근하지 못하지만 한 밤중에 가서 화차 밑에 숨어 있다가 이른 세벽에 찾아보면 쌀 한 되빡은 쓸어올 수 있데요. 오늘 밤에 한 번 가 보시디요.”
혜숙이네는 해주 시내에서 한 20리 떨어진 한 시골 농촌에 있었다. 혜미와 철민이를 남겨 둔체 혜숙이와 어머니는 초저녘에 일찌감치 집을 나서 우선 시내에 있는 혜숙이 외삼촌 댁으로 가서 포대자루 두개를 빌려 가지고 나왔다. 막 일어 서려는데 혜숙이 외숙모가,
“이거래도 좀 먹고 가라우”
라고 말하며 강냉이 죽 반그릇을 내 민다. 유난히도 정이 많은 외숙모였다. 그 전에도 수도 없이 신세를 져서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낯을 들고 쳐다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놈의 푸대자루 얻으러, 아니, 빌리러 염치불구하고 들렸던 것인데 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먹고 가라’는 말에 혜숙이도 어머니도 눈이 번쩍 뜨여 바라 보았지만 다음 순간 혜숙이 어머니는,
“형님! 형님네 드실것도 없는데 제가 어떻게 - - -“
라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혜숙이 손을 잡고 일어선다.
“내 다시 안볼테면 몰라도 그렇디 안으면 날래 먹고 가라우”
외숙모는 한사코 붙잡는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며 숫가락을 혜숙이 쪽으로만 내 밀고,
“그러면, 형님! 요것 반은 좀 싸 주시라요. 우리 철민이 - - -“
어머니는 말을 더듬으며 눈시울을 붉힌다.
“혜미, 철민이 먹을 건 내래 벌써 조금 싸놨으니끼니, 어서 날래 먹으라우. 안 먹겠으면 내래 콱 쏟아 버릴테니”
그러면서 외숙모는 그릇을 빼앗는 시늉을 한다. 혜숙이와 어머니는 너무도 깜작 놀라, 행여 쏟아질세라 네손으로 그릇을 눌러쥐고 겨우 숟가락을 든다. 어머니는 자기 입에는 넣는 시늉만 하고 연신 혜숙이 입에 퍼 넣는다. 혜숙이는 두어 숟갈 받아 먹고는 ‘엄마 먹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외숙모는,
“아, 이 에미나이들이, 보자보자 하니 - - -, 이리 내라 내 콱- - -“
하며 또 다시 그릇을 뺏는 시늉을 한다. 두 모녀는 혼비백산하여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금새 그릇을 비웠다.
외숙모는 아주까리 잎에 겹겹이 싸고 짚으로 묶은 강냉이 죽 반그릇을 푸대자루에 넣어 주며,
“배고파 못견디겠으면 언제던지 또 오라우”
라고 다정히 말하며 혜숙이 어머니 등을 토닥여 준다.

혜숙이 모녀는, 연신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외숙모를 뒤로 하고, 해주역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짙은 어둠이 깔린 해주역 적당한 곳을 어림 잡아 철조망 밑을 기어들어 가서 선로위에 세워 놓은 화차 밑으로 숨어 들었다. 아직 별다른 인기척이 없다. 날이 밝자마자 행동을 개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모두 선점 당할지 모른다. 혜숙이 말에 의하면, 쌀이 흩어진 자리의 자갈을 우선 들어내고 쌀알이 보이면 불문곡직 흙모래와 함께 순식간에 퍼 담아야 한다. 그렇게 30 – 40 kg이나 되는 푸대자루를 낑낑데며 짊어지고 20리 길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하루 종일 쌀알을 골라내야 한다. 운이 좋으면 한홉정도의 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나물을 뜯어 넣고 죽을 끓여 네 식구가 한 끼를 떼울 수 있다. 그러면 또 몇일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콰광 쾅, 찌 – 익”
기관차가 화차를 연결하기 위해 화차를 밀어 부치자 나는 소리다. 여기저기서,
“어이쿠 - - -“
“아야야- - -“
“어이구 나 죽네 - - -“
하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혜숙이 어머니도 이를 악 물고 끙끙거린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혜숙이가 번쩍 눈을 뜨고 기어서 어머니를 더듬어 본다.
“내 다리 - - -, 내 다리가 - - -“
엄마의 희미한 비명소리에 혜숙이는 엄마의 다리를 만져 보았다. 오른 쪽 다리가 반 바퀴 틀어져 있고 발에서는 뜨끈하고 끈끈한 액체가 손에 흥건히 젖어온다.
혜숙이는 기겁을 하고, 화차가 잠시 멈춘 사이 결사적으로 끙끙데며 엄마를 선로 밖으로 끌어냈다.
“오마니, 오마니 - - -“
그러고는 치마단을 찢어서 다친 다라를 대충 묶어놓고,
“오마니, 잠깐 기다리시라요”
라고 말하고는 냅다 뛰었다. 단숨에 외숙모집에 달려가서 대문을 두드렸다.
“외숙모 -, 외삼춘 -, 쾅쾅 쾅”
잠시 후 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뉘귀야! 이 꼭두 새벽에”
대문이 열리자 혜숙이가 소리 쳤다.
“외숙모, 오마니 좀 살려 주시라요, 아니, 저, 리어카 -, 날래, 날래요.”
“아니, 혜숙아! 왜 이리 난리 피우니?”
“오마니 다리가 부러졌시요”
“뭬야? 어드메냐?”
외숙모는 다 부서져서 바퀴 두 개 만 겨우 붙어있는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
“어서 앞장 서라우”
해주역 화차가 서 있던 선로 주변은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좀 살려 주우 –“
“아야! 아 - - -“
혜숙이는 한참만에야 엄마를 찾았다. 누군가 검은 치마자락을 찢어서 엄마 발을 잘 동여메 놓았다.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외숙모가 들쳐 업고 역사 밖으로 나와 리어카에 뉘이고 보건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혜숙이가 뒤 따르며 엄마를 부축했지만 다 찌그러진 리어카에서 엄마가 자꾸만 미끄러져 내렸다. 세 번이나 길바닥에 떨어졌다. 그때마다 혜숙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엄마를 끌어 올렸다.

보건소에 도착했어도 부상자들로 북적거려 의사 선생님은 그림자도 만날 수 없다. 외숙모가 안으로 들어가 어찌 했는지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대충 응급조치를 하고는,
“무릅뼈도 부스러졌는데 빨리 절단해야지 그리 아이하면 생명이 - - -“
“그럼, 날래 절단 하라우요. 사람을 살려 놓구 봐야디”
“긴데, 항생제가 없어서리 - - -, 빨리 가서 항생제를 사 오시라요. 그거이 없으면 절단해도 금방 썩어들어 가니끼니 - -“
“? - - -“
‘어디 가서 항생제를 사온다? 돈은 어디서 얼마나 구해야 되나?’ 다음 순간 혜숙이는 해주역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멀건 대낮에 철조망 밑을 기어 들어가, 운반하려고 쌓아 놓은 야적장으로 곧장 달려 갔다. 불문곡직하고 쌀 푸대를 등에 지고 일어 서려고 발버둥을 쳤다. 몸무개 30 kg도 안되는 열두 살 난 계집아이가 40kg 들이 쌀푸대를 질 수가 없었다. 오직 오마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하여 겨우 한 발자욱 내 디디자말자 앞으로 콱 꼬꾸라졌다. 워낙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그때까지 아무도 제지하는 이가 없다가 그 아이가 꼬꾸라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부대로 쌀 운반을 지휘하던 중대장이 혜숙이를 붙잡았다.
“이 에미나이 여기서리 뭬하는 기야?”
그는 결사적으로 발버둥치는 혜숙이를 보위부로 넘기지 않고 얼떨결에 운반 트럭에 태워 부대로 데려왔다. 때마침 부대에 나가서 봉재 상황을 점검하던 나에게 수송 부대장이 혜숙이 건을 보고 해 왔다. 나는 수송 중대장과 혜숙이를 내 사무실로 데리고 오라 했다. 혜숙이는 6.25때나 보던 ‘떼거지’ 모습 그데로였다. 전후 사정을 듣고난 후 나는 중대장에게 명하여 보건소에 당장 달려가서 혜숙이 엄마를 데려오라 했다. 의무대장을 불러 그녀를 치료하라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무릅위를 절단해야 하는데 항생제가 없어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이몬 리가 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미군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사이몬 리와 나는 혜숙이 모녀를 승용차에 태우고 그길로 오산 미군 병원으로 달렸다. 의사가 진찰을 마치고 보고해 왔다. 다리가 뒤틀리면서 무릅관절을 이어주는 뼈가 쪼개졌고 이를 교정하여 철심으로 고정시키면 무릅과 다리는 완치될 수 있단다. 문제는 발인데, 엄지 발가락만 살릴 수 있고 그 나머지는 뼈가 박살이 난데다 괴사가 시작되어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뒷굼치가 남아 있어서 완치가 되면 보조 의족을 사용하여 걷는데 크게 지장이 없을 듯 하다는 것이다.

혜숙이는 병원에서 목욕과 미용을 하고 또 사이몬 리가 사다 준 새옷과 신발을 신고나니 딴 사람처럼 달라졌다. 나는 혜숙이를 데리고 부대로 돌아가서 혜미와 철민이를 데려다 부대에서 숙식하도록 조치해 주었다. 혜숙이 엄마는 모든 수술을 마치고 한 달동안 요양한 후에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역사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북한 환자를 남한에서 치료한 것 말이다.
혜숙이 일을 계기로 나는 두 가지 추가 사업을 벌였다. 첫째, 부대내 공장부지 공터에 부녀자가 일할 수 있는 봉재공장을 하나 더 지었다. 둘째로, 사이몬 리에게 부탁하여 최신 의료기기를 갖춘 부대내 종합병원을 건설하였다. 이 모든 비용은 회사 예비비로 충당했다.
해주역 곡물 야적장 주변에 위험을 무릅쓰고 몰려드는 부녀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부대 봉재공장에서 일하면 이팝에 고기국은 얼마던지 실컷 먹을수 있다’고. 또 ‘딸린 식구들도 먹일 수 있다’고. 몇일이 지나지 않아 해주역 주변에 북적거리던, 양식을 구하려는, 부녀자들은 싹 없어지고 부대내 부녀 봉재공장은 일시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하루 8시간 일만 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의식주 문제는 모두가 당장 해결되었다. 또한 시간외 초과 근무시에는 수당도 지급되었다. 그것도 미화 달라로 지급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이를 악 물고 악착같이 일 했다. 또 누구나 시간외 초과근무를 원했다.

부대마다 위치가 조금씩은 다르지만, 대개 부대 취사반 북쪽에는 식재료 보관 창고가 있고 그 북쪽에 이중으로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취사반에서 철조망까지는 한 60 m 내지 100 여 m 쯤 된다. 그런데, 취사 때만 되면 어디서 몰려드는지, 이 외딴 산간오지에 꽃제비들이, 적게는 서너명, 많으면 20 -30 명이 모여들어 철조망을 붙들고 늘어 서 있는다. 멀리서도 밥 내음을 맡은 것이다. 내가 우연히 이를 목격하고는 모두들 차에 태워 데려 오라고 했다. 우선 단팥빵 하나씩을 주고 옷을 벗겨 쓰래기통에 버리고 목욕과 이발부터 시켰다. 때가 밀리는 아이는 목욕탕에 다시 집어 넣었다. 때가 말끔히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내의와 작업복 양말과 운동화까지도 새것으로 지급하고 밥을 반 그릇씩만 먹였다. 모두들 고깃국에 환장을 하고 게눈 감추듯 후딱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부녀자 봉재공장에서 쪽가위 하나씩을 주고 봉재품 실밥을 따거나 재단된 천을 재봉사에게 날라다 주는 일을 시켰다. 일이 끝나고 저녁은 먹고싶은 만큼 실컷 먹도록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 세 그릇씩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어느날 벼란간 평양의 김기남이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대뜸 부녀자 공장을 가 보자고 했다. 돌아보고 사무실로 온 그는,
“아니, 이러시기요? 계약 위반 아이요? 부녀자를 체용하겠다는 조항은 없지 않소?”
“체용하지 말라는 조항도 없지요”
“아니, 무시기요?”
“이것 봐요. 해주역 식품 야적장에는 수많은 부녀자들이 식품 찌꺼기라도 구하려고 몰려 듭니다.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지요. 꽃재비들도 우굴거리지요. 외국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 공화국을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녀자 봉재공장을 지은거요. 이제 해주역에 가 보시오. 꽃재비 한 사람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근처에는 의료시설이 너무나 열악하오. 그래서 부대내에 최신 의료기기를 갖춘 종합병원도 하나 지었소. 한번 둘러 보실라오?”
“내레 그딴거 일 없소. 계약위반으로 상부에 보고 하갔시요”
나는 직원에게 눈짓하여 김기남을 구석방으로 데리고 가라고 턱짓을 하였다. 그는,
“당 서기 동무! 나좀 보시오”
이렇게 말하고는 구석방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미리 준비된 봉투를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아니! 이런걸 뭐!”
김기남은 금방 태도가 돌변하여 웃음조차 띈 얼굴을 하고 나왔다. 나는,
“병원에 가서 종합진단이나 받아보시고 이따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하이고, 뭐 이렇게 까지 - - -“
저녘때 술이 거나하게 돌고나서 내가 김기남을 부추겼다.
“중앙당 서기 동무!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공화국’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될 거요. 그러나 좀 더 확실하게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부전선 인민군도 동원해야 할것같소.”
“봉제품 수출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갔시요?”
“아니요. 이번에는 가득율이 높은 전자제품을 생산해야 되겠소. 우리 노동자들이 기술도 습득할 수 있도록”
“가득률이라 했시오?”
“예, 수출액이 원자재 수입액보다 많을수록 가득율이 높다고 말하지요. 쉽게 말하면 소득이 높다는 예기지요”
“전자재품이라면?”
“예, 콤퓨터, 손 전화 등입니다.”
“아니, 그딴걸 우리힘으로 생산할 수 있습네까?”
“재료와 부품은 전자회사가 공급해 주고 우리는 조립만 해 주는 겁니다.”
“긴데, 인민군을 죄다 공장에 동원하면 우리 공화국은 누기레 지킵네까? 박사님, 이거 내래 냄새가 납니다례”
“무슨 소리요? 지금 당장 서부전선을 보시요. 전보다 방위태세가 열배는 더 튼튼해졌을 거요. 탈주병도 단 한 명도 없질 않소? 옛날에도 ‘농군’이란게 있질 않았소. 평상시엔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엔 군인이 되는 농사 짓는 군인말이요.”
“아! 기례서리 농군이라 부른기야요?”
“어쨌던 지금처럼 3교대로 하면 아무 문제 없으니까 염려 마세요”
“알갔시오. 내레 상부에 보고하디요”
“보고가 아니라 허락을 얻어 와야지요”
“알갔시요. 알았다니끼니. 내 조만간 허락을 받아 오도록 하디요”

김기남 일행을 배웅하고 돌아 들어오는데, 직원 한 사람이 달려와서,
“저, 회장님! 또 어떤 여인이 여아 둘을 데리고 오다가 정문앞에서 쓰러졌었다는데요”
“그럼, 우리 나갈 때는 왜 못봤어요? 김기남이 봤어야 하는데”
“그땐 정문 초병이 피신시켰나 봅니다”
“데려다 조처하시오”
“네, 알았습니다”
담당 직원이 그들 세 모녀를 데리고 들어가서 우선 영양제 주사부터 놓아주고 미음을 끓여 먹였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환장을 하고 후다닥 먹어 치우더란다. 그 다음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혀 입원을 시켰다. 몇일이 지나 내가 병원 입원실을 돌아 보다가 몇일전 김기남 일행이 떠나던 날 정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는 그 여인이 입원한 병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연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군에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기는 심했지만 굶어 죽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대하고 고향에 가 보니 부모님 두분이 굶어서 돌아 가셨고 형제자매도 모두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군에 있을 때 알던 남자가 제대하고 당원이 되어 만나서 결혼을 하고 딸 둘, 아들 둘을 낳고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무슨 일엔가 남편이 연류되어 당에서 쫓겨나고 2 - 3년은 겨우겨우 버텨 냈지만 결국 시부모님들이 굶어 죽고 남편이 식량 구하러 간다고 집을 나간 이후로 그녀 혼자서 자녀 넷을 키우기란 불가능 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거의 안해본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굶기를 밥먹듯 했다.

어느날 사촌 남동생이, 중국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며, 달라 몇푼과 성경책 한 권을 주고 갔다. 성경책은 안중에도 없고 달라 몇푼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이것을 장마당에서 몰래 바꿔 연명하고 있던 어느 날 보위부에서 그녀를 잡아갔다. 가보니 사촌 동생 온 가족이 다 잡혀와 있었다. 몇일 후 그녀와 사촌동생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사촌 남동생은 총살 당했다. 그녀에게도 혹독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먹고 산 죄 밖에 없고 성경책인지 뭔지 볼 틈도 없었고 뭔지도 몰랐다고 사실데로 대답했다. 다행히 그녀는 군복무도 마쳤고 전과가 없다고 방면해 주었다. 집에 오기 전날 막내 아들이 죽는 꿈을 꾸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정말로 막내 아들이 굶어 죽어 있었다. 그녀는 막내 아들 시신을 끌어 안고 울다 울다 드디어 결심을 하게 된다. ‘친정 부모 시부모 모두 굶어 죽고 아들까지 굶어죽고 - - -, 뼈가 으스러지도록 돌아 다녀도 네식구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는 나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설마 다른 나라에 가서 죽어라고 일하면 굶어 죽기야 할라고.’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탈북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다음 날, 그녀는 집안에 있는 팔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보따리에 싸들고 장마당에 ‘눈물 매대’를 차렸다. 몇푼의 돈이 모이자 세 자녀를 데리고 무작정 북으로 걷기 시작했다.

말이 걷는 것이지 두만강까지는 천리가 넘는 길이다. 장정도 아니고 아이 셋을 데리고, 탁 트인 대로도 아니요 꼬불꼬불 산길을 가야 한다. 한 달이 넘게 걸어 오는 동안, 가지고 있던 돈도 거의 다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신발 밑창이 다 떨어져 나가고 맨 발바닥이 돌뿌리에 찢겨 나가면서 피가 철철 흘렀고 핏살이 바닥에 스칠 때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른이 이 모양인데 어린 아이들은 오죽하랴! 할 수 없이 일곱살짜리 남자 아이는 업고 걷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먹을 거라고는 길가에 쌓인 눈밖에 없었다. 이렇게 또 일주일이 넘게 걷고 나니 이제는 한걸음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이데로 쓰러질 수도 없고 가긴 가야하는데 일곱살짜리가 왜 그렇게 무거운지 땅에 내려놓고 걸으니 살것 같다. ‘죽어도 더는 못 업고 걷겠다’ 싶어 혼자서 계속 걸어 갔다. 한 한시간쯤 걷다가 다리가 아파 잠시 쉬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들었다. ‘내가 막내아들 하나 죽였는데, 이제 남은 아들마저 죽게 할 수는 없지!’ 그러고는 아들을 데리러 오던 길을 뒤돌아 갔다. 한 참을 가다 보니, 딸 둘이서 아들을 부축해서 데려오고 있었다. 데려 온다기 보다 거의 끌고 왔다.

“철웅아! 이 엄마가 잘못했다. 내 다시는 너를 버리고 가지 않겠다.”
그러고는 아이의 신발을 벗겨 보았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찢겨나가 피가 흐르다 말라 붙었다. 찟겨진 살 속으로 모래흙이 파고 들었다. 눈으로 발바닥을 대충 닦고 나무가지를 꺽어 살속으로 파고든 모래훍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 지르면 누가 듣고 잡혀갈지 모르니 울지 말라고 아이 머리를 쥐어 박아 가며 대충 마무리 짓고 치마자락을 찢어서 신발 대신 동여메 주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신발을 벗어 보았다. 아이 발보다 더 심했다. 역시 눈으로 닦아내고 모래흙을 긁어냈다. 그리고는 바늘과 실을 꺼내어 발바닥을 깁기 시작했다. 이를 악 물고 바늘을 찔러댔지만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흐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천으로 동여메고 밑창이 없다시피 한 신발을 신고 그 위에 다시 천을 둘러 동여메었다.

이번에는 계집아이들 차례다. 울지 말라며 나무가지를 입에 물리고 작업을 했다. 바늘이 발바닥을 꿰뚫을 때마다 눈을 찔끔 깜고 파르르 떨었지만 소리내어 울지는 않고 참아냈다. 막내 아이도 발에 감았던 천을 풀고 꿰메기 시작했다. 죽는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박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럭 저럭 일을 끝내고 버렸던 아이 신발을 도로 주어다 신기고 다시 천으로 동여메 주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나니 걷기가 한결 쉬웠다. 그러나 또다시 고행은 계속됬다. 일주일 이상을 눈으로만 허기를 달래며 겨우겨우 버텨 왔는데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길거리에 쉬고 있는데, 막내 아들이 말했다.
“엄마! 힘든데 나를 여기 두고 엄마 혼자 가”
“그러면 너는 어찌 하려고?”
“나야 뭐, 어찌 되던가!”
그녀는 아들을 껴 안으며,
“이제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그러고는 천신만고 끝에 중국땅 연변에 발을 딛였지만 이곳은 감시가 심하고 탈북자들이 북적거려 자칫 잘못하면 발각될까 두려워 더 북쪽으로 올라 갔다. 이름도 모르는 마을 어느 가게에 들어가 밥을 구걸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우선 입을 가리키고 손가락 열개를 쳐들고 옆으로 흔들었다. 그리고 배를 가리키고 두손을 내 밀었다. 그랬더니 이내 알아듣고 빵 두개를 바닥에 던져 주었다. 이것을 아이들 있는 곳에 가져와 반쪽씩 넷이서 나누어 먹었다. 실로 거의 보름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입에 댈 수 있었다. 그동안은 길거리 눈을 집어 삼키며 근근이 버티어 왔고 입술과 얼굴은 갈라지고 터서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빵을 준 집을 다시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짜고짜 부엌으로 들어가 수북이 쌓인 그릇을 설거지 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설거지를 다 하고 막 나오려는데 주인이 붙들었다. 만두국 두 그릇을 탁자위에 올려 놓으면서 아이들이 있으면 데려와서 같이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염치 불구하고 밖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들여 순식간에 만두국 두 그릇을 비웠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 집에서 일하고 숙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이 불러 말했다. 아이들이 셋이나 딸려 있으면 북조선에서 온 것으로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듯하여 아이들을 근처 고아원에 맡기고 돌아 서는데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언제 우리 데리러 와?”
“응, 이제 첫번째 방학이 되면 데리러 올께. 그때 되면 돈이 조금 모일테니 우리 함께 살자.”
고아원에서 아들아이가 반장이 되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질투심을 느낀 중국 아이 부모 중 어떤 이가 공안에 고자질을 한 것이다. 어느날 공안이 들이 닦쳐 두 딸과 함께 엄마를 잡아갔다. 아들은 용케도 그 자리에 없어서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그들 3 모녀는 즉시 북조선으로 송환 되었다. 군화 발로 옆구리를 차이는 등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했다. 어느날 고문 현장을 지나던 여군이 아이 엄마를 유심히 살피더니,
“너, 혹시 경애 아니가?”
하고 묻는다. 쳐다 보니 군에 같이 복무했던 순덕이다.
“아니, 순덕아! 이게 어드렇게 된기야?”
이렇게 되어 세 모녀는 구출되었다.
“나 이제 며칠 있으면 중부전선 본대로 돌아 가는데 같이 가자야. 거기서 서부전선으로 조금만 가면 봉재공장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면 이팝에 고기국은 실컷 먹는다더라. 벌써 소문이 쫙 퍼졌어야. 딸린 가족들도 걷우어 준데”
“근데, 아들 아이가 연변에 남아 있어서리 - - -“
“날래 가서 데려 오라야. 3일 안에 꼭 와야 한다. 딸 둘은 내가 데리고 있을끼니”
2월달이라 강물은 녹았지만 아직도 얼음 덩이가 둥둥 떠 다니는 혹한이다. 아들 찾으러 이 강물을 건너야 한다. 이를 악 물고 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금방 뒤돌아 나오고 말았다. 살을 애이는 듯 차거울뿐 아니라 떠 다니는 얼음 덩이가 살갓을 들이 받을 때마다 살이 뜯겨져 나가는 듯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음 순간, ‘죽어도 아들은 찾아와야지!’ 정말 죽을 각오로 다시 물에 뛰어 들었고 몸서리 쳐지는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중국쪽 강변에 있었고 가마니로 덮여 있었다. 그녀는 발버둥치며,
“사람 살려요!!!”
하고 외쳐댔고 이내 근처를 지나던 사람에게 구출되었다. 아들이 있던 고아원으로 달려 갔지만 아들은 온데 간데도 없고 행방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일하던 가게 주인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여 같이 찾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약속된 3일이 다 되어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 모녀는 중부전선을 거쳐 이곳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곳 부녀동 공장에서 일하는 아녀자들은 모두가 이보다 더욱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모인 것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건만, 모두가 하나같이 뼈가 으스러 져라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배불리 먹는 것만 보아도 행복해 했다. 그리고 7세 이상은 희망에 따라 엄마들 곁에서 잔 심부름도 하며 일을 돕고, 7세 이하는 따로 육아실에서 보살폈다. 또한 초과수당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연장 작업에 메어 달렸다. 이러니 사업은 날로날로 번창해 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천-민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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