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용마산에서 북한산 비봉 위로 떨어지는 해(일몰)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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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용마산 산책 중 ⓒ2015081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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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에서 본 비봉능선 과 보현봉 ⓒ2014 서울포스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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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에서. 보현봉 과 사자능선, 형제봉능선 너머 용마산이 어렴푸시 보인다. ⓒ2014 서울포스트자료 |
용마산에서 북한산 모습을 잡을 때, 보현봉에서 인수봉 까지를 언제부턴가 비봉(능선)과 영봉까지 확장했다. 그러니까 비봉을 오르고, 거기서 용마산 내 산책길을 볼 수 있는 다음부터다.
비봉이 북한산비석이 있어 비봉으로 이름되었지만, 북한산비가 신라진흥왕순수비(555년)라는 김정희의 주장과 고증했다는 그의 음각은 역사 날조와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후에 역시 김정희의 독려(?)에 의해 발견된 황초령비(568년)가 진흥왕순수비라는 것도 역사학계에서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도 많다. 김정희는 신라가 '어디'까지 영향력이 있었다는 역사만들기에 혈안이 된 인물이었다.
다른 것은 모르나, 555년에 진흥왕이 북한산을 순수했다는 김정희의 주장은 필자의 판단으로는 사기다. 신라가 과거 한강유역을 점령한 적이 있고 이게 삼국통일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건 맞다. 그러나 과연 신라가 550년대 이후 한강유역을 쭈욱 지배했을까. 백제는 660년에 망했다. 현재 서울경기지역에서 신라(통일신라 포함)의 유물이나 유적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하다. 800년대 안양 중초사지가 그 본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어도 600년대, 700년대, 800년대에 서울경기 지배권 자체가 매우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비봉의 중요성은 지금의 광화문과 경복궁이 중요한 역할을 할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고 나는 단정한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경봉궁 역에 가 보라. 그 자리(비석)은 신라 진흥왕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좋은 풍광을 보고, 잠시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했다, 제기럴!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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