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비봉1편, 북한산 비봉(碑峰) 신라진흥왕순수비유적비에서 "김정희를 고발한다!"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탐사예정] 비봉2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巡狩碑)는 왜 '순수(純粹)'하지 못한가!
[탐사예정] 비봉3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 는 김정희가 위조,날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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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진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현재는 모조품을 세운 유지비 다. ⓒ2014092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1. 김정희는 북한산에 전해온 유물(비석)에 자신의 이름을 불법으로 새겼다. - 유물 훼손범
2. 아무도 해석할 수 없는 비석에 진흥왕순수비 라고 새겨, 후세가 정확히 판독할 근거를 없앴다(?) - 사실 위조범(?)
3. 금석학(쇠를 이용하여 돌에 글자를 새기는 기술 포함) 전문가의 이런 행위는 학자적 자세가 아니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히려 비난 받아야 할 행위다(?) - 역사 날조범(?)
삼국시대 때 한강을 손에 넣는 국가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유리해짐에 따라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북한산(삼각산)이 의미 있을 때는 고려 때이며, 삼각산과 비봉이 의미가 있을 때는 조선의 광화문시대가 열리면서다. 북한산은 고구려에서 나온 비류,온조 형제가 당시 부아악(꼭 인수봉을 지칭한 것이 아님)에 올라 도읍을 정하고자 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백제는 한강 이남(지금의 강동구 풍납동)에 위례성 을 수도로 삼아 번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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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중심 특히 광화문과 경복궁 진입로에서 훤히 보인 비봉의 비석. 누가 언제 무슨 용도로 새겼을까? ⓒ서울포스트 |
역사와 문화를 있는대로 답사가 아니라 뒤집고 비틀어 보는 시각도 의미있는 탐사라는 생각에 변함없지만, 지금부터 이 비봉에 관한한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
조선후기 유학이 창궐할 때 김정희가 몰자비 또는 무학관련비 로 전해진 것를 진흥왕순수비로 바꾼 것은 사찰,승 에 대한 유생들의 패악질이 극에 달한 시기로 불교와 반유학자를 일거에 일소한 의미도 있다.
하지만 김정희가 "내가 찾았다"라고 한다면, 난 "아직도 지구는 돌고 있다"로 응수한다. 위 사진에서 보면 광화문,경복궁에서 비봉이 훤히 보인다. 때문에 비봉에 새겨진 비문은 적어도 이 지역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삼국시대 때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것을 기념했다면 저곳 말고도 더 상징적인 위치가 얼마든지 있다.
이 비석도 우리의 다른 문화재처럼 매우 의도적으로 훼손되었다. 우선 개괄적으로 저기 비석이 진흥왕순수비 가 아닐 가능성을 나열하고, 몇 번 더 탐사 후 기록을 이어 나가자.
1. 비석 장소의 문제점: 상기했음 → 신라후기,고려,조선 때 제작되었을 가능성 (고려 태조 왕건 관련설도 있음)
2. 비석의 형태 문제점: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도 그렇고 황초령비, 마운령비 등 삼국시대의 비석은 '길쭉한 기둥모양'의 자연석이 대부분이다. 북한산비처럼 납작하고 폭이 넓어져 기술과 예술적 요소가 가미된 형식은 800년대 이후 통일신라,고려 때 들어서다. 북한산비는 오히려 파주 감악산비(삐뚤대왕비→빗돌대왕비,설인귀사적비,몰자비,신라고비-진흥왕순수비?)와 형태에서 똑같다. 또한 비신에 옥개석을 씌운 형태는 삼국시대 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3. 글씨 형태 문제점: 황초령비,마운령비, 신라하대 때의 안양 중초사지당간지주(탐방예정)의 글씨는 아직 세련되지 않은 채 동일하나, 북한산비는 이보다 훨씬 세련된 추사체에 가깝다.
4. 앞 부분의 '진흥태왕(眞興太王)'과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글자는 김정희 감정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볼 수 있는 글자다. 위 3과함께,
김정희는 황초령비,마운령비가 진흥왕순수비로 확인된 다음, 그 탁본을 보고 북한산비의 '南川軍主'라는 글자에서 신라,진흥왕 을 확신하고 연역적으로 심정(審定)했다고 한다. 현재 김정희의 초벌 탁본이나 심정 후 탁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비문을 지우고 훼손된 가운데 '太王'만 남아 있다면 이는 김정희가 목적을 갖고 비문 전체에 손을 댓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진흥태왕(眞興太王)이란 한자구조는 무학대사(無學大師)와 매우 흡사하다. 비석도 과거부터 글자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우고 훼손한 흔적이 선명하다.
5. 비석의 방위각 문제점: 영토확장을 염원했다면 북방을 향해야하나, 이 비석은 서쪽 강화도쪽을 보고있다.
※ 준비 : 비석 이미지, 비문탁본 이미지, 지도 방위각 표시, 기타 자료 정리할 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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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은 인왕산과 관악산과 일직선에 놓여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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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에 파진 물웅덩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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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석 정동은 저기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사자능선,형제봉능선 너머 용마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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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석 정남은 안산과 백련사 사이로 옛 백제고도, 고려남경터(현 이대,연대 근처)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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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석 정서는 강화도 고려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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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석 정북은 백운대 ⓒ서울포스트 |
※2013년 11월 탐사
※2014년 1월 탐사
▲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진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현재는 모조품을 세운 유지비 다. ⓒ2014092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서울중심 특히 광화문과 경복궁 진입로에서 훤히 보인 비봉의 비석. 누가 언제 무슨 용도로 새겼을까? ⓒ서울포스트
▲ 비봉은 인왕산과 관악산과 일직선에 놓여 있다. ⓒ서울포스트
▲ 비봉에 파진 물웅덩이 ⓒ서울포스트
▲ 비석 정동은 저기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사자능선,형제봉능선 너머 용마산 ⓒ서울포스트
▲ 비석 정남은 안산과 백련사 사이로 옛 백제고도, 고려남경터(현 이대,연대 근처) ⓒ서울포스트
▲ 비석 정서는 강화도 고려산 ⓒ서울포스트
▲ 비석 정북은 백운대 ⓒ서울포스트
▲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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