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북한산 비봉능선, 김정희의 진흥왕순수비(?) '비봉(碑峰)' 오류분석, 사모바위(紗帽岩 사모암, 모자바위)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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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3번째 오른 비봉능선. 비봉에서 향로봉 너머 한강, 서해 강화도쪽 석양 노을이 아름답다. ⓒ2014092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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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역 근방 통의동 일대 옛 영조의 잠저에 백송(白松)이 있었다고 해 백송길이다. 재미난 벽화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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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희 살던 곳. 여기서 비봉이 정면으로 올려보인다. ⓒ서울포스트 |
'비봉(碑峰)'이라 명명된 봉우리는 조선팔도에 '길마재'처럼 많다. 오늘도 또 북한산 비봉탐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 북한산비 -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가 김정희에 의해 위조,날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에서다. 진흥태왕(眞興太王)이란 한자구조는 무학대사(無學大師)와 매우 흡사하기도 하다.
김정희는 비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현 경복궁역 통의동,적선동 근방 옛 영조의 잠저에서 살아, 매일 이 봉우리를 봤을 것이다. 어느날인가 승가사에 놀러가는 차 비봉에 올라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했다고 한다. 김정희가 두세 번 올라 확인했다기에, 그의 주장을 반박할려면 난 대여섯 번은 탐사해야 명분이 선다.
이미 *이중환[李重煥 1690~1752) 택리지(擇里志 1751년(영조 27)에 저술]에, 이 비는 '(요승)무학오심도차(妖僧)無學誤尋到此'라는 구체적 문구로 무학대사 관련비로 소개된 것이, 김정희에 의해 진흥태왕순수비로 재탄생해 현재 국보(제3호)로까지 지정돼 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이중환은 이익의 족손(族孫)으로 실학적 풍토에서 수학했으나 관직에서 탈락된 후 인문지리학에 몰두했다. 그는 당시의 주자학적이고 중국 중심적인 학문풍토를 비판하고 실제적인 사고를 추구했다. 비봉 의 비 는 무학대사와 관련된 도선국사비(道詵國師碑)이거나 몰자비(沒字碑)로 알려져 왔었는데, 김정희는 1816년(순조 16) 7월 진흥왕순수비라고 읽어 자신의 이름을 파 넣은 후, 1년간 연구해 1817년 6월 조인영과 함께 남아있는 글자 68자를 또 심정(심증적 증거로 비문을 자기 글씨로 썼다는 뜻)했다고 자기 이름을 두 번째 새겼다.]
'무학오심도차' 는 신라 도선대사가 몇 백년 후를 예언하고 써놨다는 설화가 전해지지만, 이 전설은 한양천도에 극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한 꾸민 얘기이거나, 당대 한양천도 세력간의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또 불교탄압이 극에 달한 조선중기 어느 시기에 (기존의 비 에) 파놨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산과 비봉은 무학대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라 온 길의 금선사 는 무학이 창건, 수도했으며 비봉 바로 아래에 폐사터가 또 하나 있다.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전 한양천도를 위해 무학대사와 북한산 백운대(이성계의 백운봉 시에서 봉우리명 유래)와 만경대(국망봉)에 올라 국사를 논했다. 백운대, 만경대(문수봉, 오늘 발견한 비봉 등) '물웅덩이'는 한양의 화기를 누르기 위한 풍수적 흔적일 가능성이 커 당시 무학이 이 일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600년 전 비봉에서 보이는 북악산,인왕산,용마산,무악재(무학재 라는 주장 있음),남산,관악산 등이 북한산 비봉능선을 뻔질나게 돌아다녔을 무학대사의 눈에 여러 의미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그런 무학과 이성계가 이 비석을 모를 리 있었을까?
자, 비문은 전파투시기 파장분석이면 글자에 손을 댓나 안댓나는 밝혀진다. 내가 거기까지 나갈 필요는 없는고로, 지금부터 560m 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오늘의 할 일이다.
비봉안내소에서 출발한 이 길도 아름다운 길이다. 향로봉으로 연결된 탕춘대능선 너머로 손에 잡힐듯한 족두리봉과 이쪽 비봉능선의 암릉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써 베스트셀러 가 되었다고 하는데, 난 '나의 자연·문화유산탐사기'를 써볼까 한다. 답사 와 탐사 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나의 취향도 문화재보다 자연(물)을 더 선호한다. 유네스코 도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구분해 놓고 있지.
작은 슬랩을 못오르고 돌고돌고 성벽같은 바위아래를 지나 폐사지를 경유했다. 산밤 몇 톨의 달콤함, 바위 위 커피 한 잔과 쭉 뻗어 누운 한가로움, 사진 전송.. 해가 떨어질 무렵 정상에 올라 '비가 놓인 방향(서쪽-강화도)'을 면밀히 분석했다. 한강 하구, 서해바다에 비친 일몰, 잔잔한 노을을 담고 사모암 을 경유 승가사쪽 하산길을 택했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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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방로 초입에서 뒷쪽 비봉과 비봉능선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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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춘대능선 너머 족두리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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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폐사터 의 기둥 고정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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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의 돼지바위(?). 뒤로 백운대 등 북한산 정상부와 남쪽 문수봉,보현봉(우) 등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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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의 비석 왼쪽 날개방향은 무악산과 백련산 사이 고려 옛 수도 남경 터(현 봉원사, 연세대,이화여대 일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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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에도 물웅덩이가 있다. 한양의 불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북한산 곳곳 파 놓은 흔적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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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자바위(사모바위) 안 거치면 섭섭하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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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바위에서 비봉,향로봉 실루엣 ⓒ서울포스트 |
▲ 작년부터 3번째 오른 비봉능선. 비봉에서 향로봉 너머 한강, 서해 강화도쪽 석양 노을이 아름답다.
ⓒ2014092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경복궁역 근방 통의동 일대 옛 영조의 잠저에 백송(白松)이 있었다고 해 백송길이다. 재미난 벽화 ⓒ서울포스트
▲ 김정희 살던 곳. 여기서 비봉이 정면으로 올려보인다. ⓒ서울포스트
▲ 탐방로 초입에서 뒷쪽 비봉과 비봉능선 ⓒ서울포스트
▲ 탕춘대능선 너머 족두리봉 ⓒ서울포스트
▲ 어느 폐사터 의 기둥 고정대 ⓒ서울포스트
▲ 비봉의 돼지바위(?). 뒤로 백운대 등 북한산 정상부와 남쪽 문수봉,보현봉(우) 등 ⓒ서울포스트
▲ 비봉의 비석 왼쪽 날개방향은 무악산과 백련산 사이 고려 옛 수도 남경 터(현 봉원사, 연세대,이화여대 일대) ⓒ서울포스트
▲ 비봉에도 물웅덩이가 있다. 한양의 불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북한산 곳곳 파 놓은 흔적들 ⓒ서울포스트
▲ 모자바위(사모바위) 안 거치면 섭섭하지 ⓒ서울포스트
▲ 사모바위에서 비봉,향로봉 실루엣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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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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