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 아산 '현충사(顯忠祠)'(1)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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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방화산 기슭,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까지 살던 곳에 현충사가 지어졌다. 1706년(숙종 32)에 세운 사당(祠堂)을 1969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성역화사업으로 새로이 조성됐다. 구본전 '현충사(顯忠祠)' 현판은 숙종이 친필로 내린 것이고, 본전 '현충사' 및 모든 한글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 ⓒ2014112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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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이 친필로 내린 구본전 '현충사(顯忠祠)' 현판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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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들렀던 온양, 따뜻한 노천온천에 시민들이 족욕을 하고 있다. ⓒ서울포스트 자료 |
전철을 타면서 나의 여행은 시작됐다. 목적지는 충남 아산(牙山)이 맞으나, 나같은 여행자에게는 모든 수단과 과정이라는 '길'이 곧 목적이다. 평택을 지나고 천안을 지나고 텅 비어 안개 가득한 들판이 펼쳐진다.
서울에서 부러 아산까지는 멀다. 어릴적 내 교향에서는 서울보다 더 멀리 느껴졌던 곳이 아산이다. 11월 경기도 화성땅을 밟았으니 내친 김에 충청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새로이 성역으로 조성한 아산 현충사는 국가에 충성을 강조한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경주 왕릉,불국사,토함산과 더불어 유명한 (수학)여행 코스 가 되었었다. 충분히 한반도 동쪽의 신라사관이 주입된 보수적인 역사교육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서쪽을 보면 개혁성향이 두드러진다. 조선때 영남학파가 지배한 성리학에, 서학이라는 기독교세력의 상륙은 서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강화도(경기도), 충청도에 천주교,기독교가 상륙했고 동학이 시작되었다. 체면을 중시한 유학자들에게 자신의 아녀자들이 파란 눈의 목회자들을 신처럼 받들고 새벽에 기도한다고 나다니는 것이 용인되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보수가 기독교세력을 등에 업은 이상한 사상적 구조를 보인 것도 한국사회의 일면이다.
아산에 당도한 온양온천역앞 이충무공기념각 이 눈에 띈다. 한참을 기다린 버스에서 보인 곡교천, 그 뚝방을 노랗게 덮고 있는 은행나무길을 지나 현충사에 들었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必死則生 必生則死)' 이순신 장군의 필적뒤로 방화산이 보인다.
늦가을을 만끽하기에 딱 좋은 연못의 풍경과 애기단풍군락을 지나 활터에서 시위를 당겨보고, 500년 된 은행나무 뒤로 장군의 후손 묘소와 고택을 들러 사당에 참배했다. 현충사 기념관에는 '난중일기(亂中日記 국보 제76호)'를 비롯 보물326호로 지정된 장군의 장검 이 있다한다.
현충사(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100, 방화산)는 1706년(숙종 32) 아산의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건립을 상소함에 따라 건립되었고 이듬해 '현충사(顯忠祠)'로 숙종의 친필이 사액되었다. 1865년(고종 2)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황폐화되었다가, 1932년 6월 이충무공 유족들이 중심되어 중건, 1967년 3월 현충사를 사적 제155호로 지정하고 1969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성역화되었다.
얼마전 우리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장군의 해전 '명량대첩(鳴梁大捷)'을 다룬 '명량'은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을 말한다. 울돌목 물길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장군의 나라에 충성한 공에 국민들이 환호할 때, 역시 그 진도 맹골수도 물길에서는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과 분노의 시간을 보낸 이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경남 남해와 하동 사이-에서 승리하며 최후를 맞는다.)
국민학교때 학교단체로 15원(?)을 주고 본 '성웅 이순신', TV에서 김명민의 '불멸의 이순신'까지는 잘 봤으나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아직 못봤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토장비결의 이지함, 조선조 과학자 장영실, 조선조 문인 맹사성, 조선후기 개혁가 김옥균,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 을 배출한 온천도시 아산에서!!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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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이순신 생가 터 : 서울 중구 을지로2가 명보극장 앞 ⓒ서울포스트 2009년 자료 |
참고로, 이순신 장군의 고향은 서울 건천동(출생지). 서울에서 살다가 혼인 전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현 현충사 터)으로 이주,성장했다. 1598년 11월 노량해전(露梁海戰 로량해전, 경남 남해와 하동 사이)에서 전사, 전남 완도 고금도 에 모셔졌다. (충렬사 한글 비문에는 '로량바다는 리충무공 전사하신 데라 여긔에...'라고 쓰여 있다.)
이듬해 아산으로 안장되기 전 남해 충렬사에 잠시 안치되었다가 충남 아산 현충사에 안치, 금성산에 안장되었다. 다시 16년후(광해군 6년 1614년), 현충사에서 약9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 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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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을 타며 나의 여행은 시작됐다. 두리번두리번 기웃기웃~~!! ⓒ서울포스트 |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방화산 기슭,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까지 살던 곳에 현충사가 지어졌다. 1706년(숙종 32)에 세운 사당(祠堂)을 1969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성역화사업으로 새로이 조성됐다. 구(옛) 본전 '현충사(顯忠祠)' 현판은 숙종이 친필로 내린 것이고, 본전 '현충사' 및 모든 한글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
ⓒ2014112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숙종이 친필로 내린 구본전 '현충사(顯忠祠)' 현판 ⓒ자료
▲ 2012년 들렀던 온양, 따뜻한 노천온천에 시민들이 족욕을 하고 있다. ⓒ서울포스트 자료
▲ 전철을 타며 나의 여행은 시작됐다. 두리번두리번 기웃기웃~~!!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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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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