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1.5.8 (토)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트위터 페이스북
 https://www.seoulpost.co.kr/news/22904
[탐방] 겨울, 국립수목원길 과 세조의 광릉(光陵)
광릉'숲'에 가서는 '나무'를 보라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3/01/18 20:26:09)

[탐방] 겨울, 세조의 광릉 과 광릉수목원길
광릉'숲'에 가서는 '나무'를 보라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수목원 길의 소나무와 전나무. 국립수목원과 광릉은 전나무 숲이 볼거리다.
ⓒ2013011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오랫동안 광릉숲, 광릉수목원 이라고 불려왔던 국립수목원(國立樹木園 Korea National Arboretum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51-7)은 국립광릉수목원, 광릉국립수목원, 또 포천수목원 이라고도 불린다. '광릉' 과 '국립수목원'은 한 지역에 있으나 행정구역과 관리주체가 달라 나눠야겠지만, 오늘날 수목원은 광릉때문에 존재했다는 - 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 숲은 산림청의 연구기관에서 꾸준히 관리하다가 1984년 광릉 수목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99년에는 국립 수목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선 세조는 자신과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을 지금의 광릉 자리로 정하면서 주변 산림도 보호하라고 엄격히 일러 현재까지 5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 국립수목원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11호로 보호하며, 국립수목원이 자리한 광릉 숲은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2010년에 지정되었다.

▲ 남양주 진접 광릉내 '왕숙천(王宿川)'. 태조 이성계가 태종 때 태상왕으로 물러나 함흥에 있다가 한양으로 오면서 8일밤을 묵었다는 팔야리(八夜里)가 여기서 가깝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광릉'숲'에 가서는 '나무'를 보라

흔히 균형감이 없는 시야를 두고, 숲만보고 나무는 못본다 또는 나무만 보고 숲은 못본다,는 말을 한다. 울창하기로 소문난 수목원이 우리들에게 어쩜 숲만 구경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릉임업시험장과 산림박물관이 있어 방문자들은 풀꽃과 생태, 짙은 숲의 향과 경관에 취하기 딱 좋지만, 광릉숲은 '수 백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가 사시사철 푸르른 것이 특징이다.

나도 시골에 틈만나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상록수를 심곤했다. 어린때도 과수원 하는 아제집 옆산 그 숲이 너무 좋아 보였다. 그러고보면 서울은 나무와 숲의 역사가 빈약하고 조경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계획한 것이 없을 정도다. 5.16광장이었던 여의도가 공원으로 되었으나 내 눈에는 매우 조악해 보인다.

몇 해 전까지 의정부가는 곳 거래처를 가끔 들렀을 때를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나중에도 그렇겠지만 수목원이 목적이 아닌 순전히 전나무숲 길 때문이었다. 이 곳 인공적으로 조림된 전나무는 한국에서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숲이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봉선사천(奉先寺 川)' ⓒ서울포스트

광릉(光陵) ('릉'자와 '능'자의 혼용)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그의 비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의 릉(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100-1). 사적 제197호

광능은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봉안하고 두 릉의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同原異岡)능. 좌측 릉선의 봉분이 세조능(릉)이며 오른쪽의 봉분이 정희왕후릉(능)이다.

세조(世祖)는 역사에서 극과 극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文宗)의 동생이며 단종(短宗)의 삼촌(작은아버지,숙부)으로, 조(祖)를 쓸 정도로 조선왕조의 물줄기를 바꿨다. 치적도 많은 반면 인륜과 천륜을 버리고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임금 중 한 사람 - 태종(太宗)이 조선 초기 왕권강화 목적이었다면 세조는 왕권찬탈 목적이었다.

ⓒ서울포스트
▲ 릉 진입로. 베진 전나무는 2010년 태풍 곤파스 피해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우측 정희왕후 릉 ⓒ서울포스트
▲ 좌측 세조 능ⓒ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정희왕후능 ⓒ서울포스트
▲ 정희왕후릉상 오른쪽 멀리 용암산(480m)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세조릉 ⓒ서울포스트
▲ 세조능상은 저기 무명봉에 축이 맞춰져 있다. 그 아래 세조릉침사찰인 봉선사가 있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광릉, 국립수목원 가는 버스(대중교통) 길 :

1. 강남역, 잠실역에서 7007번 → 광릉내. 광릉내에서 21번, 3-3번 환승 → (광릉,국립수목원)
2. 청량리에서 88,707번 → 광릉내, 광릉내에서 21번. 3-3번 환승 → (광릉,국립수목원)
3. 동서울터미널에서 1번, 23번 → 광릉내. 광릉내에서 21번, 3-3번 환승 → (광릉,국립수목원)
4. 노원역에서 70번 → 광릉내. 광릉내에서 21번, 3-3번 환승 → (광릉,국립수목원)
5. 의정부역에서 21번 → (광릉,국립수목원) (龍)

※ 부기

1. 세조와 계유정란(癸酉靖亂) :
세종은 첫째 아들(문종)과 둘째인 진평대군(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 등 총 18남4녀(첫째 부인 소헌왕후에게서 8남 2녀)를 두었는데, 수양은 문무예에 뛰어났다. 세종이 진평을 '수양'으로 부른 것은 야망이 있어 왕권에 도전하여 나라가 혼란에 빠질까봐 충절의 상징 중국의 수양산에서 따 붙였다고 한다.
염려대로 수양대군은,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정란을 일으켜 왕권을 잡은 뒤, 단종을 복위운동사건으로 빌미 삼아 사사하여 영월 동강에 버린다. 계유정란부터 미완의 단종복위 계획까지 김종서, 성삼문 등 세종때부터 충신들을 몰살시켰다. 문종의 병사에 관여되었다는 설도 있어 떨어진 왕권 복위가 아닌 왕위찬탈이 오래전부터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뒷바침한다. 세조(世祖)라는 묘호는 예종이 '대왕이 나라를 다시 일으켰다'고 해 올렸다고 한다.

집권 후 육조직계제를 부활시켰으며 호적·호패제를 강화했다. 각종 법전을 정비하고 조선의 공식 통치규범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하기 시작했다(중종 때 완성).

2. 정희왕후 :
본관은 파평(坡平). 판중추부사 윤번(尹璠)의 딸. 장남 의경세자(덕종)가 20세에 요절한 뒤 둘째 예종이 19세에 즉위했으나 14개월만에 죽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자산군,성종)이 13세에 왕위에 올라 7년동안 수렴청정하였다.
정희왕후는 세조의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한다. 계유정란때는 거병을 망설이는 수양대군을 독려하여 직접 갑옷을 입혀 말 위에 오르게 한 여장부였다고 한다.

3. 한명회(韓明澮) :
호는 압구정(狎鷗亭), 시호는 충성(忠成). 변방에서 떠돈 하급관리 한명회는 계유정란을 주도해 성공했다.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4대 35년간 정치일선에서 부와 영화를 누렸다. 특히 두 딸이 왕비가 돼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 되었으나 둘 다 20세를 넘기지 못했다.

성종조(成宗朝)에 한명회의 딸 공혜왕비(恭惠王妃)가 죽은 후, 숙의(淑儀) 윤씨가 계비(繼妃)로 연산군(燕山君)을 낳는다. 그러나 윤씨는 교만방자하고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는 등으로 쫓겨난다. 결국 폐 제헌왕후 윤씨(廢 齊獻王后 尹氏)로 돼 사사(賜死)되었다. 연산군 제위때 이 사실이 알려져, 당시 관여된 한명회도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갑자사화, 후일 복권). 이로써 세조때부터 득세한 훈구파는 세를 완전히 잃었다.

4. 퇴계원(退溪院) :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명칭은 예종이 선왕인 세조의 능(광릉)을 참배하려고 행차하는데 교통이 불편하므로 하천바닥으로 길을 만들기 위하여 당시의 하천을 바깥쪽으로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5. 봉선사(奉先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969년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 하였다. 그 후 1469년(예종1) 정희왕후(貞熙王后) 윤씨가 광릉(光陵)의 세조를 추모하여 89칸으로 중창하고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奉先寺)'라 하여 능침사찰로 말년을 보내다가 온양(온천)에서 죽음을 맞았다.

명종때는, 교종(敎宗)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시(僧科試)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敎學)진흥의 중추적 기관 역할을 했f다.
봉선사는 일반적인 사찰과 분위기가 달라 대저택에 들어 선 느낌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여러 번 수축했고, 1951년 6 ·25전쟁 때 다시 법당과 함께 14동 150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화엄(華嚴)이 56년 범종각을, 1961~1963년에 운하당(雲霞堂)을 세우고, 1969년에는 주지 운허(耘虛)가 법당을 중건, 1977년에는 월운(月雲)이 영각(靈閣)을 세웠다. 절 종각에 보존되어 있는 동종(銅鐘)은 조선 전기의 것으로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 봉선사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 1950년 화재로 소실됐던 조선 숙종 어람본 '곤여만국전도'가 복원 작업을 마치고 60여 년만에 원래 소장처인 남양주 봉선사로 돌아갔다. 경기도와 실학박물관은 2011년 복원해서 2012년 원래 있던 봉선사에 기증했다.


▲ 봉선사 경내는 일반 사찰과 분위기가 다르다. ⓒ자료
▲ 작년, 경기도(김문수 지사)는 곤여만국전도 를 복원하여 원래 있었던 봉선사에 기증했다. ⓒ자료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에 전재·복사·배포 허용


관련기사
[탐방] 눈 내린 광릉숲, 국립수목원 길  양기용 기자 (2013.02.04)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게시판모음

서울포스트
 
뉴스소개 | 광고제휴 | 이메일구독 | 공지알림 | 개인정보보호 | 기사제보

신문등록: 서울 아00174호[2006.2.16, 발행일:2005.12.23]. 발행인·편집인: 양기용.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49길 40. Tel: (02)433-4763. seoulpost@naver.com; seoulpostonline@daum.net
Copyright ⓒ2005-2021 The Seoul Post. Some rights reserved. 청소년보호책임자: 양기용.
서울포스트 자체기사는 상업목적외에 전재·복사·배포를 허용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