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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변 '화석정(花石亭)'과 파평산 등 풍경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20/03/28 18:55:59)

[탐방]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나루변 '화석정(花石亭)'과 파평산 등 풍경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우리동네 용마산에서 북쪽 까마득히 보이는 감악산 뒤,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서 소풍하듯 생업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몇 번이고 율곡의 자운서원을 탐방할려고 했지만, 언젠가는 문산역에서 내려 윤관장군 묘역을 지나 광탄면 용미리 용암사 마애이불입상만 알현했다. 이 마애불입상은 원립불의 남상과 방립불의 여상이 나란히 서 있는데, 전등사본말사지 기록에 고려전기(13대 선종)때 설화가 전해온다. 또 불상에 새겨진 조성명문에는 조선 세조때 정희왕후(파주 파평 윤씨)의 기원문이 새겨져, 이 불상이 세조와 정희왕후를 형상화했다는 설도 있다(기원문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불상이 조선 때 조성되었다는 말은 아님).        

 

새벽을 가르며 1시간 반을 달려 간 곳. 역사적으로 유망한 집안의 파평 윤씨의 고장이지만 화려한 고적은 많지 않고, 법원읍 동문리에 율곡 이이 의 가족묘지와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 정도-지금은 율곡기념관으로 통칭되고 있다.

 

▲ 생업과 함께한 일상의 여행. 파주 파평면 임진강변 율곡 이이 선생 관련 '화석정'과 파주군 산야 풍경. '花石亭' 현판(편액)은 박정희 대통령 존함이 새겨진 친필. ⓒ2020032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조선 성리학에서 퇴계 이황이 영남지역 영남학파를 어우른다면, 파주는 기호학파 의 본산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가며 이 지역 출신 휴암 백인걸, 우계 성혼 사적지 표지판도 보인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은 휴암의 문하생이었다.

 

이이 의 부친 이원수는 1501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태어나 강원도 강릉 신명화의 딸 신씨(훗날 호는 '사임당', 신사임당)와 혼인하여 처가 오죽헌에서 이이 를 낳았다. 이후 서울로 옮겨 살다가 다시 경기도 파주군 율곡리로 이사했다. 밤나무가 많았는지 밤 계곡 이란 뜻의 율곡리(栗谷里)에서 이이 의 호 '율곡'이 유래한다. 

 

율곡 이이는 8세 때에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에 올라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 났다고 한다. 1548년(명종 3)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 1551년 16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자,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장례하고 3년간 시묘(侍墓)한 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고 1555년 20세 때 하산해 다시 유학에 전심하였다고.

 

↑ 인터넷지도검색 자료
↑ 인터넷지도검색 자료
↑ 인터넷지도검색 자료

 

한국은행 발권 화폐에 율곡 이이 5천원권, 신사임당 은 5만원권이다. 당시 여성계 눈치를 많이 본 디자인이었지만 자운서원 내 가족묘역은 이이 가 맨 위에 있는 역장(逆葬)형태라고 하는데, 동방예의지국,성리학과 유교범절에 있을 수 없는 아이러니. 어쨌든 이이 는 성균관 문묘에 동방18현(東方 十八賢)으로 위폐가 모셔져 있다. 신라·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의 최고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에 종사된 유학자-18명의 현인, 동국 18현(東國 十八賢)이라고도 한다.

 

[※ 화석정(花石亭) (자료 참고)

화석정 현판(편액)은 박정희 대통령 존함이 새겨진 친필로,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원래 고려 말기의 문신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였다. 1443년(세종 25)에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였고 1478년(성종 9)에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내용

이명신의 증손인 이이(李珥)가 중수하여 퇴관(退官) 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시를 지으며 학문을 논하고 이(理)를 구(究)하니,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정자를 찾아와 음시(吟詩), 청유(淸遊)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장단(長湍) 쪽을 향하였는데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五冠山)이 아득하게 보인다. 정자 안에는 ‘화석정중건상량문’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숙함의 정기(亭記)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서(別墅)인 평천장(平泉莊)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화석(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 있었다가 그 뒤 이이의 후손들이 1673년(현종 14) 중건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된 것을 1966년파주(坡州) 유림(儒林)이 성금을 모아 복원하였다.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申師任堂)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화석정이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과거엔 아래 임진리의 임진나루터를 거쳐 개성을 오갔고, 맑은날엔 임진강 너머 송악산이 잘 보인다. 파평산을 돌아 지방도를 타다보니 거친 암봉을 오르는 크라이머 들도 눈에 띈다. 다른 사진의 지리를 알려고 인터넷지도 검색을 해보니 더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외국 유명 관광지까지 언제나 편리하게 손가락투어가 가능한 시대.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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