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노량진(鷺梁津 로량진) 사육신공원(死六臣 사륙신, 사칠신묘역), 인근 주택가 천연기념물급 느티나무(수령 약 1000년 추정)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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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작구 노량진 사육신공원 탐방 ⓒ2018031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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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 - 경희궁 느티나무(수령 380년) ⓒ서울포스트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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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 - 경희궁 느티나무(수령 380년) ⓒ서울포스트 자료 |
1990년대 초, 영등포 살다가 은평구를 돌아 노량진 학원가에서 산 적이 있다. 집에서 200m도 안된 거리에 사육신묘역이 있고 버스를 타면 안내방송을 항상 들었지만 발걸음을 하지 못한 곳이다. 회사생활로, 또 뭔가를 배워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눈을 닫게 했던 시절이었다.
지명이 한문으로 두 뜻을 가진 글자가 드문데, 노량진(露梁津)·노도진(露渡津)·노량진도(鷺梁津渡)·노들나루 라고 쓴다. 해오라기 '로(鷺)'자를 써, 백로(白鷺)가 다리나루터에 노닌 데서 유래했다. 신도비에도 露梁津이라고 음각돼 있으나, 나루 남쪽 언덕에 노량원(鷺梁院 로량원)이 있었기에 '노량진(鷺梁津 로량진)'으로 통일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육신공원 은 명칭만 그럴 뿐 사실상 사칠신공원 으로 돼 있다. 세조 때 단종복위가 발각되어 '죽은 여섯 신하'라고 해 '사육신(死六臣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하위지,유성원)'이고, 살았지만 세조세상과 담 쌓은 사람을 생육신(生六臣 이맹전,남효온,김시습,조여,원호,성담수)이라고 조선왕조실록 에 기록돼 있다. 사육신은 1977년 김녕 김씨 가문에서 김문기 를 추서하여 일곱 명-사칠신 이 됐다. 수 백년 간 각종 사료에 많은 사람이 참화를 당했음에도 '사육신'이라고 한정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김씨 가문에 충신 난 영광이라지만 이렇게 된 데 고개가 갸웃해진다.
인근 주택가에서 '할아버지' 소리 들으며 느티나무 아래 아이들을 같이 담아 보았다. 다른 개발지역에서 이주해 온 천연기념물급(天然記念物). 아프리카 바오밥나무와 비슷하다. 이 나무님은 경이적인 자태에서 수령이 1000년을 잡숴 보인, 그야말로 천년기념물(千年記念物)이다. 보호수 지정은 물론 천연기념물 지정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사료됨. ('종로구 아름다운나무'로 보호 받으신 경희궁 느티나무 는 380살을 잡수셨다.)
취준생을 위한 노량진 컵밥거리 는 또 다른 풍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으며, 우리들 역사나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은 객관적으로 정확히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또 '옳다.그르다' 판단도 다분히 개인적 시각이다. 특히 한반도는 남한의 신라사관과 북한의 고구려사관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70년대 국민학교 때 단체관람 10(15)원씩 주고 본 의적 홍길동, 성웅 이순신,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성삼문의 충심됨을 알린 영화가 기억난다. 분명한 것은 '힘과 권력'이 정의라는 사실을 세상은 우리에게 가르쳐 왔다.
사육신 성삼문의 경우, 세종의 교시대로 장자세습 원칙에 문종과 단종을 잘 보필한 충신됨이 죄가 되는가, 수양대군(세조)의 눈에 문종과 단종 옆에 있는 성삼문이 전권을 휘두른 간신이었는가.
개인의 치적을 꼭 치부와 연계하여 몰락케 한 미투(MeToo)운동이 오직 정의인가. 인간에게 공 과 과 는 통상 따로 평가된다. 우리는 역시 옛 위인들의 공적인 면 만을 부각하여 그의 위대함을 배워왔다. 난 노벨문학상을 탈 거라는 기대를 한번도 안했지만, 우리들이 만든 우상 고은 시인의 경우는 매우 복잡하다. 최영미 가 고발한 고은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상,우리 사회가 얼마나 허술한가,에 난 더 절망감이 든다. 더 큰 절망은 이 엉터리같은 사회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쭈욱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포스트 가 특종으로 다루고 있는, 김정희 의 역사 사기극 - '북한산비는 진흥왕순수비 가 아니다', 김정희가 조작,날조한 그 몰자비 는 국보3호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
[※ '진흥태왕(眞興太王)'이라는 글자는 김정희가 손을 봤을 것이며, (무학대사비가 아니더라도) 무학대사왕심비('無學大師'枉尋碑)와 글자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또한 김정희는 (비틀어진 개인욕심으로,) 조작 당시 '비석양식' 이 시대별로 다른 것을 생각조차 못한 어리석음을 드러냈다.
삼국시대 때는 정교한 육면체로 가공한 '비석'을 상상할 수 없어 보통 돌덩어리를 약간 가공해 쓸 정도. 즉, 김정희는 구석기시대에 신석기 양식을, 타제석기시대에 마제석기를 제시한 오류 - 고려청자에 '진흥왕'을 새겨, 청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자화자찬했다. 김정희는 조선 중종,명종 때 문정왕후와 가까운 보우대사 를 요승으로 지목한 율곡 이이 등의 유생들처럼, 불교를 천시하며 무학대사를 요승 으로 지목했다.]
청량리 선배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고전 팝, 비틀즈, 롤링 스톤스, 비지스,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예스, 레드 제플린, 산타나, 이글스, 아메리카, 퀸, 배드 컴퍼니, 건즈 앤 로지스... 지미 헨드릭스, 데이비드 길모어, 리치 블랙모어,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마크 노플러... 를 듣고 귀가한 날.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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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묘(사육신 공원 死六臣公園)]: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1972.05.25 지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사육신묘는 오늘날 성역으로 가꾸어져 있다. 한강 인도교와 노량진역 중간의 높은 언덕에 자리한다.
숙종은 1681년 사육신의 충성심을 기리는 듯에서 이곳 산 기슭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총 면적 49,40㎡에 33종 15,000주의 수목으로 조경된 사육신 공원에는 사당인 의절사, 홍살문, 삼문(불이문), 육각비, 신도비 등이 있다. 신도비 비각과 마주보고 있는 육각형의 사육신비는 1955년에 세워진 것이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1445년)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고, 왕이 되자 이에 불복하고 단종 복위에 힘 쓰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에 추가로 김문기를 현창하여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 3년(1455년)에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노리던 중, 1456년 6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과 유응부가 세조 일파를 처단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이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이들의 계획이 좌절되자 거사 동지이며 집현전 출신인 김질(金礩) 등이 세조에게 단종복위 계획을 밀고하여 연루자들이 모두 붙잡혔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렀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진상을 자백하면 용서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형벌을 받았다.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는 단근질로 죽음을 당하였고, 하위지는 참살 당하였다. 유성원은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고, 김문기(金文起)도 사지를 찢기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밖에 사육신의 가족으로 남자인 경우는 모두 죽음을 당하였고, 여자의 경우는 남의 노비로 끌려가는 등 70여명이 모반 혐의로 화를 입었다.
조선 세조 2년(1456)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박팽년(박씨지묘)·성삼문(성씨지묘)·이개(이씨지묘)·하위지·유성원·유응부(기계유씨지묘) 6명의 신하 즉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 3년(1455)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몰아내자 이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하위지.유성원.김문기는 가묘가 있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7년(1681)에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를 세워 두었다.
1955년에는 사육신비를 세우기도 하였고, 이후 묘역을 확장하여 새롭게 정비하여 충효사상을 기리고자 하였다. 원래의 묘역에는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후에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묘도 만들어 함께 모시고 있다.
세조는 1417년(태종 17)에 세종과 소헌왕후의 8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유(瑈), 자는 수지(粹之)다. 문종이 형이고,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이 동생이며, 단종은 조카다.
참고: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사육신 사건으로 김문기(金文起)·박쟁(朴崝)·권자신(權自愼)·성승(成勝)·윤영손(尹令孫)·허조(許慥) 등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세조는 이 사건에 집현전학사 출신이 주동이 되었다 하여 집현전을 혁파하였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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