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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적나라한 일상] 회자정리,리자정회,재회자정재리(會者定離 離者定會 再會者定再離)
흑백 다큐멘터리 또는 독립영화, 단편영화 시나리오 몇 제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5/09/01 20:47:53)

[소설처럼 적라라赤裸裸한 일상] 회자정리,이자정회,재회자정재리(會者定離 離者定會 再會者定再離)
흑백 다큐멘터리 또는 독립영화, 단편영화 시나리오 몇 제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2015년 9월1일, 오늘은 북아현동 이화여자대학교 기숙사 신축현장에서 용접일을 하고 왔다. 안산(무악산) 정상이 보이는 곳, 남산이 지척인 전망 좋은 일대의 금화산 기슭 북아현동에 있는 이 이대 현장은 녹지파손이라는 문제로 매스컴 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모든 보도는 보도일 뿐, 맹목적이어서 허위든 사실이든 아무 효과도 없고 아무 결과도 없다. 그냥 행위자는 행위하고 보도자는 보도하고 시청자는 시청만 한다. 그게 각자의 직업이고 본업이다.

↑ 너무 아름다운, 용마산에서 본 북한산 노을. 난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핑크 프로이드 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떠오른다. 우리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달의 저편은 어떤 세계일까. ⓒ20150700 서울포스트자료

↑ 안산 정상 봉화대에서 본 서울시가. 가운데 관악산이 보이고 그 아래 가운데 녹지가 북아현숲, 뒤에 약간 보인 하얀 건물이 이화여대산학협력관, 그 뒤산이 금화산이다. 연세대학교와 이 일대가 옛 고려 수도인 남경터라고 한다. ⓒ20140700 서울포스트자료

지금 대부분 대학들 소유의 땅개발과 복지는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어 학업에 매진케 하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학이 기업화되어 땅을 그린벨트 로 놔둔 것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개발한 자체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내용들을 살펴보면, 엄청난 등록금으로 폭리를 취해 온 대학(유치원부터 전 교육기관)들이 사실상 학생들의 밥그릇을 그간 1/10로 줄이고, 이제 줄인 상태의 두배 정도의 밥그릇을 복지의 가면을 쓰고 채워 준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교육을 위해 선심을 쓴단들 밥그릇은 1/5로 이미 줄어들었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퇴근길 지하철을 탔는데 등에 메고 있는 가방에 뭔가 자꾸 걸그적거렸다. 돌아보니 60줄의 아저씨가 스마트폰 에서 고스톱 을 치면서 내 가방이 방해돼 밀친 것이다. 백팩 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에티켓 정도는 알지만 순간, 화가 더 치밀었다. 이런 부류의 놈들이 배가 뒤집힌다해도 배를 몬 선장일 경우 똥 쌍피에 더 군침을 흘릴거고, 배에 탄 승객일 경우 똥쌍피에 더 열중일 것이다.

(나이 쳐먹은 놈이 고스톱 에 정신팔려 노동에 피곤한 나를 자극한다? 이 새끼, 확 밟아버려? 흐미... 어떤 놈-분이 스마트폰 에 정신 판 저 자식 뒤통수를 야구방망이로 좀 까주면 좋겠다... 눈알이 툭툭 튀어나오게... 야 이 놈아, 차라리 여자 가랭이에 군침 흘리는 게 더 낫지 않나? 이 개자슥아!!)

()안의 내 고고한 생각을 입 밖으로 토했다면, 반사회적 인간, 인격장애자라고 의사들은 진단할 것이다... 눈 아래 미니스커트 여자 가랭이에 자꾸 눈길이 간다. 아니, 가랭이가 낸 눈을 잡아 땡긴다. 정상적인 여자들은 이런 남성들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내 행위를 관음증으로 분류하겠지만 그게 보기 흐믓할 뿐, 노골적으로 즐기거나 몰래카메라 를 들이댄 적이 없다. 오히려 살아 오면서 여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만 몇 차례된다. 한번은 치과여의사가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왜, 이제 왔냐(이빨이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냐?)"고 물었다. "그럴 여유(시간과 돈)가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또 모 처의 여자는 내 엉덩이를 가끔 툭툭 치며 업무적인 것을 물은 적도 있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일련의 삶의 가변성은 예측불가다, 내가 언제 사회적으로 공인된 또라이가 될지. 하지만 오늘 전철에서의 순간은 '남자는 머리로 생각하고 여자는 자궁으로 생각하다'고 하지만, 내 페니스 가 대신 상상해 준 덕분에 침 질질 흘리는 상태가 되어서 좋았다.

↑ 지하철 내 스마트폰 사용 자제 캠페인 광고 중 ⓒ자료

엊그제 미명의 새벽, 인력사무실을 나가는데. 허름한 노동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북한 빨갱이들보다 남한에 있는 빨갱이가 더 많다,고. 무엇이 그를 허공에 홀로 목놓아 외치게 한 또라이로 만들었을까, 그것도 이념적으로. 혹시 흐리멍텅해진 나를 겨냥한 소리가 아닐까. 무섭다, 맹목적인 빨갱이예찬자와 맹목적인 빨갱이척결자. 인류를 발전시킨 진보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 놓여 있는가. 한국사회는 걸레처럼 갈기갈기 여러 갈래로 찢겨 있지만, 선명한 이분법적인 이 이념. 그러나 근래들어 빨갱이 개념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듯 하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에게 빨갱이는 새정연이지만 새정련에게 빨갱이는 새누리다. 결국 5천만명이 다 빨갱이다?

회자정리, 리자정회(會者定離 離者定會)라고, 만남은 이별을 낳고, 이별은 만남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자정리'를 찾아보니 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라는 거창한 말이 나온다. 불교에서 유래되었다고하나, 지극히 기본적 철학일 뿐이다.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메시지 가 들어왔다. 지인이 국회에서 새누리당 책임당원 행사를 해, 정의화 국회의장의 서면 축사.. 이혜훈 전의원 등도 참석했단다. 이 전 최고위원은 충실한 친박세력으로, 장관을 해도 몇 개 부처를 돌 수 있는 재원인데, 박근혜정부에서 팽을 당했는지 현재는 실업자(?)다. 내년을 겨냥하지만 정치지형은 어찌될지 모른다. 참 정확하고 똑똑한 인재가 더 올라갈 사다리를 누가 부러뜨려 놨다. 2007년인가, 박근혜캠프 에서 그와 찍은 사진은 내가 고개를 거의 90도 꺾어 어깨에 기댄 모양으로 나와있다. 호감과 신뢰감과 장난끼의 표현이지만, 이제보니 부끄럽기도해서 공개하기 어려운 사진. 지금, 오늘 번 돈으로 고기를 두어근 사 끓이고 있다.

2015년 8월 31일 하루는 56해를 살고있는 나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진 날.

※ Pink Floyd - The Dark Side of the Moon

 

 



1. 32년만에 몹시도 궁금했던 고등학교 1년선배를 만났다.

1979년 부산 병기학교 후반기교육을 마치고, 동기 중 광주 상무대 보병학교에 1명(나), 포병학교 1명, 기갑학교 1명, 전교사(전투병과교육사령부) 1명 등이 자대배치를 받았다. 교육기관에는 우리 4기때 와서 RNTC기술하사관이 처음 배치되었으나 사령부에는 선배들이 많았다. 동기 네명은 제1전투비행단(공군) 동기들과도 자주 만났고 전교사 선배기수들하고도 가끔 어울렸다. 그 중 3기 선배 한 사람이 오늘 만난 사람이다. 잘 생긴 얼굴에 좋은 인상, 항상 여유있는 미소, 축구를 아주 잘했고 약간의 팔자걸음, 뒤로 젖힌 상체, 웃음이 껄껄껄 호탕했다.

↑ 1979년 10월 무렵. 상무대 보병학교 영내에서 필자 ⓒ서울포스트 양기용
↑ 1982년인가.. 80년 광주사태 때 탱크들이 대기하고 헬기들이 이착륙하던 상무대 전교사 종합연병장에서 보병학교 기간사병 중대대항 체육대회 축구결승전, 선임하사(중사)로 본부중대팀 을 이끌었던 필자(빨간 스트라이프 유니폼). 2-3으로 교도대 중대에 패했다. ⓒ서울포스트 양기용

79년 10.26,12.12와 80년 5월 광주를 공유한 동기와 선배들. 그러나 계엄군으로 시가전에 배치된 사람은 보병학교 '나' 혼자 뿐이었다. 전교사령관 소준열 중장 지휘하에, 보병학교장 김윤호 소장(이후 공훈으로 합참의장 예편)이 신군부를 적극 도운 것이 보병학교 기간장병만 진압군 본대를 지원하게 된 결과다. 80년 5월 18일(일요일), 몇 년동안 괴롭힌 치질로 통합병원 후송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골 고향집을 다녀온 밤에 비상, 경계가 최고로 올라갔다. 완전군장에 전투화를 신고 가면을 취하는 것. 517계엄령이 내려진 18일 금남로는 깨진 보도블럭이 수북히 나뒹굴고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대인동 터미널에서 내리는데 마침 방위로 제대한 예비역(오 일병)이 "양하사님, 지금 시민들은 경찰과 군인들에 극도로 흥분해 있습니다. 제가 모실테니 따라 오십시오."하며 광주천변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 6번 버스를 타고 귀대했다. 이른바 '5.18광주사태' 날이다.

며칠동안 충정작전 전문부대인 20사단에서 공수부대로 주력군이 바뀌었다. 상무대 대연병장에 탱크가 시동을 걸고 상시 대기했다. 헬기가 자주 뜨고 내리더니 상황이 급변해져 갔다.

입원은 무기한 연기되고 내무반장으로 소대 선임하사 역할을 해야했다. 각자 M16탄약 420발,수류탄 2발씩을 지급받아 경계지로 배치되었다. 후방지원은 탈환된 보안대와 통합병원, 광천동 터미날, 백운동에서 소위말한 폭도들의 이동을 차단하는 임무였다. 장갑차로 이동하거나 야식으로 통닭튀김이 나온 날도 있었다. 어느날 보병학교 교도대원(조교)들이 새벽 나주쪽으로 이동하는 공수부대장갑차를 90mm무반동총으로 폭격해 아홉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접했다. 사전 통보가 없어 장갑차를 적으로 오인한 사격이었다. 광주 하나쯤은 지도에서 지워도 된다는 내부 목소리도 공공연했다. 산모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는 소리 등은 유언비어이니 동요되지 말라는 시달도 있었다.

비가 내리는 통합병원에 무덤 크기만큼 쌓여있는 군복더미에서 핏물이 흘러 내렸다. 어느날에 삐라가 뿌려지고 어느 날 어느 시에 총소리가 요란했다. 부대를 떠난 1주일 정도 후 철수명령이 내려왔다. 영내 박격포교장과 콘서트막사에는 잡혀온 민간인들이 가두리 안에서 오가고 있었다. 총포,탄약 관리가 본 임무라서 전투장비와 실탄을 반납받은 후, 만신창이 몸으로 즉시 입원했고 그 다음날 수술에 들어갔다.

※ 역사다시보기 - 5.18민중항쟁 (자료)

 

 

 


↑ 광주는 1980년 5월 14일, 이미 시내 7개대학 총학생회 주관 '신군부독재 타도' 를 외치는 가두 시위가 금남로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이 시위에 시민들까지 합세했다. ⓒ자료

나나 우리들의 젊음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4기 동기를 중심으로 몇몇 선후배들 수년전 소식을 종합하면, 입법,사법,행정부 고위직 선후배, 대학 교수 선배, 대기업 상무,상무이사 선배, 육군 대령예편한 선배-선배는 보병학교에서 소위 때 봤다. 동기는 역시 소위,중령 때 본 광석이, 해군제독 재만이, 삼성 부사장 준형이, 공사 나온 국정원 창겸이는 회사때 만나다가 몇 년전 광화문에서 우연히 만났고, 철,해정,영봉이는 거기서 확고하다. 의사 권하..금융인 문석,학봉..회계사 영완..벤쳐기업으로 성공한 충기,춘성,관섭..노동계 용묵..방송언론사 승규,재실.. 국회사무처 선배, 노무현대통령 마지막 경호원 후배, 변호사 선후배와 동기, 검찰 선후배.. 연구기관, 공기업 등 동문들. 오늘의 반도체강국이 있게한 것도 80년대, 동문들이 대거 삼성전자에 입사해 근면한 기술력을 일조한 부분도 있으며, 이혼하고 공사판을 떠돌다 죽은 동기동문소식도 있다.

새벽 인력사무실 문을 열자 소장이 잠실 제2롯데월드 로 가라는 것이다. 50여층 올라갈 작년 4월에 현장을 떠나와 별로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롯데라는 기업이미지가 하청업체 노임까지 문제가 생겨 현장에 있을 때 개판으로 인식되었고, 한국 최고층 건물이라는 랜드마크 와 달리 별 특징이나 미적 가치도 없다는 개인적 시각이다. 그저 대형 옥수수나 포탄 또는 한국인의 거대 성기콤플렉스 를 극복한 모양 정도일 뿐이다.

현장앞에서 출입절차가 혈관인식으로 바뀌어 못들어간다는 것, 보기좋게 대마찌 를 맞았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니 대여섯이 앉아있는데 그 중 나를 포함한 셋을 불러 철거하러 가라는 것. 현장앞에서 기다리다가 아침을 못먹은 그들이 빵을 사오고 식사했다는 나에게 캔커피 하나를 권했다. 간단히 인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에서, 난 가끔 인테리어 쪽이나 용접도 나가며 여기 인력 6년전부터 뜨문뜨문 인연을 맺었고 최근 사무실이 이쪽으로 이사한 바람에 다시 나오게 된 56세 양씨라고 소개했다. 젊은 한 명은 그 전부터 알았지만 껄끄러운 놈, 말 많고 제 멋대로다. 동년배쯤 보인 한 사람이 자신은 망우리 사는 57세 J씨라고 한다. 그러면서 용접도 하냐고 묻는다.

좋은 바탕 얼굴에 나보다 한 살 많은 J씨, 게다가 경상도 말투, 담배도 안핀다. 얼핏 긴장감이 들었다. 설마.. 그 선배겠는가. 아까부터 팔자걸음, 뒤로 젖힌 상체, 웃음이 껄껄껄... 판금용접이 전공인 그 선배, 나에게 용접도 하냐고(공고 나왔냐고) 묻는 그 사람. 그렇다면 그 선배가 맞고, 내 얼굴이 많이 변한 편이지만 나를 알아 봤을까. 우리 동문들은 기숙사생활을 공유한 기수라면 웬만해선 서로를 기억한다. 해서 눈썰미 좋은 내가 보기론 학교선배라는 것이 90%쯤 굳어진 상태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짧은 대화도 나눴다. 얼굴은 시커멓지만 나만큼 망가지진 않았고 왈가닥 치우는 것은 서툴러 보여, 노가다 경력은 많지 않게 짐작되었다. 그 선배라면 최근 몇 년사이 급격히 생활구조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게 느껴졌다.

일단, 고등학교나 군대를 물으면 사오정으로 임하기로 했다. 방위제대나 월남스키부대원이었다고 말할 참이었다. 최종적으로 이름을 확인해야했다.

노임을 받으며 출역현황을 봤다. 맞다, 그 선배가. 아.. 이렇게 만나다니..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선배가 화장실에 간 사이 임금을 받아 재빨리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직선도로의 대형마트 옆으로 돌아 경마장 앞을 지나 모텔골목을 빠져 나와 상봉터미널쪽으로 걸었다.

야.. 어떻게 그를 대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냥 이런 현장에서 만난 J씨와 양씨 사이로 오늘처럼 (알아도 모른 척) 당분간 대하는 거다. 내가 10월까지 목표로 인력사무실을 나간 것처럼 선배도 무엇 때문에 여기를 나올 것이다. 각자 계획대로 한 후 내가 떠날 때 쯤 혹은 선배가 떠날 이유가 있을 때쯤 회포를 푸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아니면 피천득이 세번째 아사코 를 만난 것을 후회한 '인연'처럼 되지 않을려면 아예 재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만난다면 선배랑도 세번째다. 이는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다.

사령부 남문쪽 부대에 근무한 선배는 내가 궁금해 한 이상으로 지금까지 나의 멘토 였다. 사람앞에서 항상 당당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웃음을 잃지 않은 태도, 호탕한 자심감, 정확하고 딱부러진 말투.. 고등학교 때 국군의 날 516광장 군사퍼레이드 를 갖다온 선배라면 걸음걸이부터 달랐다. 내가 참여한 건군 29,30주년(1977,1978년)엔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가 영부인자격으로 우리들의 사열을 받았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적성국가인 중국의 항일승전 70주년 군사퍼레이드 에 참석한다.

우리들은 부녀대통령의 일대기를 잘 알고 있다. 모교설립자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당시 자식중에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여 60년대에 강원도 땅 울진을 경상도에 편입하고, 김종필총리의 충청권은 전라도로부터 금산,논산을 편입했다. 산업단지를 영남에 집중시킴으로써 인구증가를 도모했다. 2012년 선거결과를 보면, 60년대 그려 놓은 지형도대로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다. 문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의 명운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혁명했다면, 군림의 단맛을 안 박근혜 대통령은 목표가 대통령, 그러니까 직장으로 청와대 사장을 선택한 느낌이 자꾸 든다. 그러기에 많은 지식인들은 박근혜 정권을 무능,무식과 무책임 등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을까.

선배도 어쩜 인터넷에 내가 언급한 금오공고라는 모교도 봤을지 모른다. 그런 동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언론의 양기용 기자(記者)와 여기 용접사 양기용 기사(技師)는 현재 동명이인일 뿐이다. 다만 인력에서 만난 그들 J씨나 양씨에게 신의 가호를 기원한다.

※ 1977년 건군 29주년. 박정희 대통령 국군의 날 행사 유시 (분열이라는 퍼레이드 중에는 우리 고등학교 학도호국단 대열도 보인다)

 

 

 


↑ 선배들이 참여한 27주년(1975년 10.1) 행사 자료 ⓒ서울포스트
▲ 1978년 10월1일 '건군 30주년 국군의 날' 우리의 서울시가행진. 광화문, 종로통 환영인파에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이채롭다. 사진은 종로. ⓒ양기용 서울포스트

2. 5년만에 그 자식에게서 '형님'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오늘, 같이 일한 젊은 녀석은 오래전에 안면은 텄지만 대화할 일이 없었고, 설치고 다닌 이미지 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업체 일로 잠실현장에서도 봤고 또 후배를 매개로 밥까지 먹은 적은 있다. 일은 오늘 처음 같이 나갔다. 덩치가 좋은 편이라 녀석이 빠루를 잡고 우리가 데모도 역할을 했다. 철거일이 조금 찍히고 어디에 찔린 일이 많아 나도 피를 봤지만 녀석은 오비끼 가 튀어 입술이 터졌다. 그나마 약간 스친 게 다행이었다. 장갑으로 입술을 슬쩍 닦아주며 "야, 대리운전이나 하지..." 하며 농담을 건넸다.

오후엔 근처 아파트현장으로 옮겼는데, 기공입장의 녀석이 "형님, (이것 좀) 같이 들고 옮기고 합시다"는 것이다. 녀석과 비슷한 연령대가 없어서였겠지만, 전보다는 꼿꼿함이 많이 사라졌다. 막노동판이란 인간 개판도 많다. 그러나 내가 수 많은 업종, 사람들을 접했고 고명한 사람, 절대 권력자도 보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박근혜같은 사람이 아니고 나에게 일감을 준 인력소장과 매일 마주치며 일을 같이 하는 막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 정말 잘해야한다는 것도 잘 알고있다.

남자가 갈때까지 가서 선택한 곳은 몸을 파는 막노동, 여자의 최후 생계 수단은 몸 파는 매춘이다,는 인류의 생계원칙이 있다. 못배우고 무식해서 또는 삶이 엎어져서 아무 데도 받아주지 않을 때 먹고사는 최후의 보루가 남녀 공히 '몸을 파는 것'이다.

그러니 노가다판의 남성이나 성매매직종 여성은 정규직이나 합리적 직업보다 인성(성격)에서나 가정상태가 열악한 경우가 많다. 집값 열배 오르고 공직자,정규직 임금 다섯배 오르는 동안 막노동자 일당 두어배 오르고 이들에게 사회보장보험도 없는 것 빼고 어디까지나 확률상 그렇다는 얘기지, 고관 공무원이나 창녀가 어떤 부분에의 절대적 가치에서 차이가 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여러 날이 지날수록 80%정도의 타인은 나와 함께 '다시' 일하고 싶어했다. 여자를 만나도 거의 애프터 가 들어왔고, 어떤 무서운 것들이건 시간이 지나면 다 내 편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대단한 년놈이건 처음 냉담했을지라도 거의 나와 좋은 관계로 만들어진다.

그 기술은 간단하다. 원래 사람관계건 일이건 갈등과 고민, 고통과 치욕을 겪으며 한 단계씩 성장함을 기본으로 여기며, 나의 변화무쌍한 다양성에 모든 분야에 관심표명이다. 게다가 잔머리 안쓰고 주어진 일에 내 힘의 능력 안에서 80%정도를 발휘하는 것. 경합일 경우는 상대에게 양보한다. 즉, 일에서 더 좋은 연장을 상대가 갖도록 한다. 더 좋은 여건,환경을 상대에게 준다. 소외된 사람,약자에 더 관심을 갖고 강자는 원칙으로 대한다. 동료의 뒷담화는 피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은 정확한 근거에 의해 유머수준에서 권력자 등과 함께 질근질근 씹어준다. 엊그제의 종합된 예를 보면, 전혀 다른 인력에서 과거 무시무시한 이력으로 감빵에 들락거린 년배가 나한테 술술술 고백하듯 말을 많이 했다나? 그러면서 은근(?) 자랑한 것이, 자기가 막노동으로 돈 몇 푼 들고 들어가도 마누라가 무릎 꿇고 (돈을) 받는다고 한다. 그가 정력이 좋아서 일까, 물려 받은 재산이 많아서 일까, 인성이 좋아서 일까, 미남이어서 일까, 무서워서 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노가다 분야만 좀 더 술회하자면, 우리들 의식구조는 아직도 후진국수준이다. 오야지들은 조지면 되는줄 아는 몰상식에 이리저리 내몰리는 노동자, 일의 맺고 끊음도 불명확한 경우가 많고, 중량을 비상식적으로 포장하는 것도 그렇다. 오죽했으면 기초안전교육 때 강사에게 강력히 건의한 사항이, 시멘트 포장을 현행 획일적인 40kg에서 20kg도 만들어라고 생산업체에 권고해달라고 했겠는가. 이 40킬로는 과거 서양인 기준으로 만들었기에 보통의 한국인이 장시간 곰빵하기엔 큰 무리가 따른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나는 단순한 사람보다 다양한 기질의 사람이 더 좋다. 나의 경우 '다양성'은 내 어머니,아버지가 농사 짓는 법부터 고뇌하는 법까지를 가르쳐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나의 삶에서 '고뇌는 지혜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다재다능으로 인해 맨날 실패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설 수 있었던 것도 칼라풀(한) 스펙트럼 때문이다. 난 노동판에서도 땅파는 삽질부터 기능,기술적인 것까지 일 자체를 즐긴다. 서툰 일도 하면 할수록 늘어가는 맛이 즐겁다. 운동선수에, 공고출신(공대중퇴)이 금융업에, 장사에, 연장잡는 것에, 잡기에, 노는 것에... 아, 정말 치열하게 놀고 싶다.

이러하니, 내 스스로 평가하기에, 난 인생을 아주 적라라하게 실패한 사람이지만, 확실하게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의도하지 않은 80%가 재산일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은행에서 1원짜리 하나 빌리지 못한 신용을 가지고 있고, 이혼도 했다. 한 놈 있는 고2짜리 아들은 타자를 800타 친 게임중독. 담임과 통화해보니, 맨날 지각에 학교와 교우와 세상에 부적응, 중학교때부터 중독치료도 몇 번 받았다고 한다. 은행원인 지 엄마는 7,8천 연봉 타면서 아이 가르칠 생각조차 없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 가르치는 일을 첫째로 삼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아들이 지극히 정상인 줄 알고 있다. 그 중독이 마약이나 도박과 똑같다는 것도 모르고, 자식이 원하니 돈 많이 번 프로게이머 를 만들겠다나? 개나 소나 프로게이머 가 될 수 없으며 게임업체는 수많은 심리학자까지 동원해 중독에 빠뜨릴 게임을 만드는 게 돈버는 일이란 걸 안다. 게임자가 마약 쳐먹은 것처럼 환각상태가 되어 게이머 가 되겠다는 마약 쳐먹은 것처럼 환상을 갖게하는 게 오로지 목표다.

작년 5월 같이 만나 밥먹으면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지금까지 내 기가 막혀있다. 그 여자야 여상 나와 은행 다니니 성질 더러워도 봉급이야 받겠지만 아들 문제는 전혀 다르다. 장애인 부모들도 장애아이 교육시킬려고 엄청 투자하는데 지금도 부동산 투기에 돈 아까워 아이 교육 안시키다니... 이혼당시 나 몰래 장만한 아파트 가지고 애 가르치며 네들끼리 살아라고 할 때, 아들 놈도 그와 똑같이 단순무식해질 것을 생각하니 피눈물이 났다. 지금은 무서운 흉기들로 보인다.

사실, 단순한 사람이 성공할 방법은 책보는 게 최상이다. 단순하게 책을 외기만하면 인생이 보장된다. 달달 외면 행시,사시,의사고시도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아들에 있어서는 수년 전 내 예측상황들이 그대로 전개되고 있다. 아주 단순한 그 녀석이 자라 노가다판이나 다닐 정도면 다행이다. 그러나 세상 구조는 삽질도 짜장배달도 배운 놈이 더 잘하게 돼 있다. 고작 피시방,주유소,편의점 알바, 비정규직.. 군대가면 관심사병.. 그 인생 전개될 게 눈에 보인다. 이런 스타일 의 사람들은 누가 퍼 줄 여건이 되도 도와주지 않는다. 끔찍한 현실이다. 스티브 잡스 는 '손에 책 든 사람이 스마트폰 든 사람을 지배하는 잡(직업 jobs) 체계'를 만들고 죽었다. 교보문고 앞에 가면 이런 말이 쓰여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3. 5년만에 이종사촌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의 큰 딸인 누나가 뜬금없는 전화를 해왔다. 감으로 조카 결혼쯤은 생각했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고, 둘째 누나 아들 결혼때 보고 못봐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결혼(재혼)했냐는 물음에, 60넘어서 20대 여자랑 살 거라고 답했다. 아들 연락오냐는 물음에 무자식이 상팔자 라는 말이 뭔 말인지 이제야 알겠다고 답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플래카드 가 붙어있지만, 공소시효도 만료된 16년전 평택에서 고등학생으로 실종된 송혜희 양의 아버지는 예쁘고 공부잘하는 딸을 지금도 찾고 있다. 그의 부인은 충격으로 진즉 사망했다고 한다. 거기 비하면 한국인들이 핏줄과 가족을 중요시한 정서에 비해, 아들도 접을 수 있는 난 행복한 편이다.

다시, 사회적 책임과 중독증과 세월호사고를 생각해 보자. 난 이제까지 인터넷업을 하면서 고스톱 이나 포커게임 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스타그래프트 가 뭔지 모른다. 그런 게임 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다. 기사를 쓰거나 편집이 끝나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내가 스마트 해질 때까지 스마트폰 은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공공의 피시방에 사람들 90%이상이 게임 에 열중이다. 쭈욱 봐보면 중독돼 있는 사람이 상당 수다. 그들 공통은 꼬라지부터가 말이 아니다.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간군이다. 아들만한 놈들이 "잡아,먹어,죽여,부셔...."를 반복해 외친다. 피시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하니, 날더러 헤드폰 을 써라고 한다. 이런 좆만한 놈들한테 적반하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또 노동현장에서 SNS나 게임 으로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 을 들여다 본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하면 손발이 맞지 않는다. 위험작업을 같이 한다면 사고가능성이 커진다. 그 사람만 사고가 나야하는데 그 사람의 사고로 여러 사람이 사고를 당하기 마련이다. 난 이런 사람들을 절대 신뢰하지 않으며, 시간이건 물질이건 투자하는 게 아깝다.

작년 게임중독된 아들을 보니 쉴새없이 스마트폰 으로 대화하고 전화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밥먹는 데도 집중하지 못했다. 소소한 일상의 대화꺼리도 없다. 진즉 그 현상을 파악했기에 등산도 데려가고 좋은 곳 탐방도 했지만 아무런 공감이 없었다. 야구 캐치볼 연습을 하는데도 역정을 냈다. 이런 경우를 살아있는 시체(좀비)라고 한다. 세월호 사건이 작년 4월에 났으니 5월에 그 녀석을 애 엄마와 만난 것도, 녀석도 위험상황에서 똑같이 개죽음을 당할 것 같은 급박함 때문이었다.

세월호는 분명 국가시스템 과 운항하는 주체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사망자 다수도 상황인식을 못한 불찰이 많다. 이는 선생들도 마찬가지. 만약 내 아들이 그 배를 탔다면 배가 기울고 있는데 게임 하거나 즈이들 영상놀이나 했을 것이다. 역으로 아침바람이 좋아 갑판에서 사진도 찍고 풍광을 감상한 애들은 살았을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다. 그래서 인도주의적으로, 도망쳐 산 사람과 관리주체는 나쁘고, 죽은 사람은 마냥 억울한 건 아닐 것이다. 우리끼리 했던 막말도, 죽은 아이의 부모중에는 수억원의 보상으로 시원섭섭해 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게임중독인 내 아들만으로 국한해 청소년들을 생각한다면, SNS나 게임 에 빠져 책(공부) 안볼 바엔, 차라리 발랑 까져 춤추고 노는 게 더 낫다. 연예인된다고 술먹고 담배피고 싸돌아 다니며 연애질하는 게 더 낫다. 운동선수되겠다고 밤새 소리 고래고래 지르며 노는 게 더 낫다. 부랑아가 되어 쌈박질하고 경찰서 들락거리는 게 더 낫다.

아프리카, 동남아 등의 10대 아이들을 보면 매우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나이에 가장역할을 하거나 가정에서 확실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그들 10대들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 필요하면 노동판에, 군대에 또 필요하면 기꺼이 조국을 탈출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기생충처럼 자라 어른이 되어도 정신 못차린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왜 우리 교육은 마땅히 시켜야 할 교육을 강제하지 않을까.

지금 나이들어 생각하니, 세상엔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두어 가지가 있다. 하나는 '농사'고 또 하나는 '공부'다. 농사를 두고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는 격언도 있다. 땅(농사)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공부도 똑같다. 부모의 관심과 아이의 성적은 '대부분' 비례한다. 아이 스스로 책보는 시간과 성적은' 반드시' 비례한다. 수 년 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낸 막노동꾼 서울대출신 장승수 사시출신의 말은 맞다. 공부는 그냥 하면 된다. 특히나 외우는 일은 계속 읽으면 외워진다. 같이 정직한 결과를 가져온 농사보다 100배쯤 더 쉽다. 공부보다 더 쉬운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암기위주로 출세서열이 정해진 우리사회가 못마땅한 부분. 그리고 그런 단순 암기실력 탓인지, 싸이코패스 가 법조계(판,검사,변호사), 의료계(의사)에 유독 많다는 통계도 있다. 조사중에 사무실에서 유부녀를 성폭행한 검사나 진료행위와 성행위를 혼용한 의사... 일일이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5년 전엔 사법고시와 행시를 패스한 3형제에게 서울포스트 발행인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공직에 출마한 사람을 두고 내가 썼던 칼럼 때문에 사실 관계가 다르다는 그들의 이의를 받아 설전을 벌이다가, 기사 중 '형제 한 사람이 카지노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것이 결코 도박권장하는 지위가 아니다'라는 이의를 받아들여 해당 기사를 삭제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는데, 한참 후 그들이 검찰에 고소해 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논리적이어야 할 법조인이 첫 대면부터 감정적인 변을 남발하는가 하면, 마무리 된 일을 뒤에서 다시 거론해 문제를 삼는 행태에서, 그나마 언론인으로서 동등하게 대화했고 당당하게 변론해 문제가 없었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찌될까,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자, 이런 경향의 사람들이 지식인이고 법적으로 보호받고 떼돈을 긁어 정치인이 되고 우리사회 상류층을 형성하고..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다. 그들이 반사회적 인물일까, 내가 반사회적 인물일까.

그러나 지금 참 다행인 것은, 의사가 되겠다고 재수하던 때 법조인이 되겠다는 친구랑 나눈 내 말 중, "리어카 끄는 삶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했던 대화가 새삼 생각난다. 현장에서 리어카를 끌며, 내가 상대적으로 질펀한 길,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야만 짐 실은 바퀴가 더 수월하게 끌려온다는 사실도 알았기 때문이다.

4. 5년돈안 앓던 앞이빨이 빠졌다.

얼마전 다시 읽은 헨리 밀러 소설중,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은 영국인 페코바 의 의치(틀니) 부분이 떠오른다. 최근 '읽는 인간'을 낸 1994년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는 한번 읽은 책을 재독하는 독서법을 권장했다. 나 역시 그런 편이지만 몇 페이지 읽다 널부러진 책도 많다.

겐자부로 의 '반복' 개념은 독서 뿐만이 아니고 우리 삶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학생들의 모든 공부,학문.. 운동선수의 모든 동작.. 가수의 모든 소리지름.. 화가의 모든 붓질.. 글쟁이의 모든 실험.. 장인의 모든 손동작. 북한산 같은 등산길도 다닐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다시 밀러 로 가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면, '창녀'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와 도시는 프랑스 와 파리 다. 파리창녀, 파리술집은 예술가에게 뗄 수 없는 영적 근원지. 스페인 출신 피카소 가 이주해서 활동한 주 무대 파리, 이태리 출신 모딜리아니 의 몽파르나스,몽마르트르 가 있는 파리, 네덜란드 출신 고흐 의 별이 빛나는 파리, 보들레르 의 우울한 파리, 랭보 의 지옥 속 파리, 아폴리네르 의 미라보다리가 있는 파리. 매독과 폐병으로 점철된 파리...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와 몽마르트르(몽마르뜨 Montmartre)가 자주 등장한 북회귀선을 보자니,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중인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가 겹친다.

↑ 예술의전당 모딜리니아 전 스틸 화보 ⓒ자료
모딜리아니 는 결핵으로 사망하기까지 35년의 짧은 생을 피카소 등과 교류하며 조각가를 거쳐 화가활동을 했다. 피카소 가 초현실적 기법을 완성했다면, 모딜리아니 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리얼리스트 였다. 피카소 가 대여섯의 여인과 결혼,동거하면서도 다른 여성편력이 화려한 반면, 모딜리아니 는 1917년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을 만나 한 여자와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 그러나 처가의 반대와 생활고,병요양으로 아내와 떨어져 살던 중 1920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이 비보에 잔 은 머물던 친정집 5층에서 뱃속에 8개월 된 둘째 아기를 가진 상태로 투신자살한다.

여기 '모딜리아니' 라고 명명한 수석을 잠실 롯데현장 터파기 공사 때 '두꺼비' 와 함께 모았다. 내 빠진 이빨과 엄청나게 빗나갔지만 건강과 생활고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의치를 하기도 많은 비용이 들고 잇몸이 약해 임플란트 는 생각할 수도 없다. 잉여보험료가 쌓이면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의료보험료가 낮아져야 하는데, 그걸 점점 늘어나는 의사가 의료비를 올려 가져가고 공단 직원이 나눠 먹는다. 이런 폐단은 장기 미진료납부자에게 환원하는 정책도 따라야 한다. 나의 경우 80년대 의료보험조합이 생긴 이후 이몸 염증치료, 이빨 빼는데 혜택을 받았을 뿐, 보험료는 엄청 때려박고 연체되면 차압당하면서, 기실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다. 아직 젊으니 돈벌어 니 돈으로 해라,는 것이 국가 방침이다. 씹어 먹어야 할 날은 많은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기업(병원), 정부(보험공단), 백성(환자)이라는 삼각 축에서 정부가 중개자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어리버리하면 국민은 허구한 날 피박만 쓴다. 과거 무식,무능정부에서 발생한 외환사태 결과가 정부와 기업은 살고 서민만 극한으로 몰렸지 않았던가. 지금 한반도는 주변 국가간 갈등까지 겹쳐 예사 문제가 아니다.

며칠 전, 건강보험외 진료비용이 천차만별이고 환자들이 가공할만한 진료비폭탄을 맞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피둥피둥 살찐 의사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보험료가 치솟고 환자부담이 폭등한 것은 당연하다. 이빨 하나에 백만원, 200만원이 기본이면, 맹장수술이 1000만원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영리병원허가가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본시 (그들은 히포크라테스 나 슈바이처 가 아니기에)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계는 건강보험료를 축내고 환자를 쥐어짜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예술가적인 기질로는 가학적 사회현상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과 현상의 피학적 관조일 때 리얼리스트 가 된다. 모딜리아니 가 파레트 에 붓칠로 잔잔하게 보였다면, 밀러 는 원고지에 펜 으로 그 기저를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나의 메시아 는 썩어 빠진 자본주의나 정치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요즘 절절히 알아간다고 커밍아웃 해야한다.

그래서 밀러 표현을 오마쥬 하자면, 거울을 보자니 난 피골이 상접한 한마리 하이에나 다. 내 뼈다귀를 포장한 살을 지키기 위해 걸신처럼 닥치는대로 먹어야 한다. 역사가 진행되는 한, 나를 살찌우기 위해 나는 전진한다. 필요하다면 아이큐 1000의 외계인으로 재탄생해 아이큐 120정도 된 인간들을 닭장에 기르는 식인생명체가 돼야한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를 꿈꾸며. (龍)

↑ 길쭉한 두상이 특징인 모딜리아니 작품. 모딜리아니 는 아방가르드 운동에 초연하고 리얼리즘과 모던이즘에 충실했다. 그게 화단에서 고립을 자초한 면도 있지만, 어떠한 작품에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주지 않은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직관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자료
↑ 모딜리아니 그림의 특징에서 쭉 잡아 늘린듯한 얼굴과 긴 목을 가진 수수한 여성상은 오히려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자료


▲ 2012년 잠실 제2롯데월드 지하4층 터파기 현장에서 수집한 '얼굴 - 모딜리아니' ⓒ서울포스트 양기용
▲ 2012년 잠실 제2롯데월드 지하2층 터파기 현장에서 수집한 '두꺼비' ⓒ서울포스트 양기용
▲ 1986년, 나주 남평 영산강 샛강에서 수집한 '산수(山水)' ⓒ서울포스트 양기용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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