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남산에서 본 북한산국립공원과 서울의 내사산 외사산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 남산에서 본 북한산국립공원과 북악산. 좌측 북한산 수리봉(족두리봉)부터 향로봉,비봉,문수봉,보현봉, 산성주능선 뒤로 백운대,만경대,인수봉 과 우측 도봉산 일대가 보인다. 남산에 올라보니 풍수가들이 말한 명당이 되는 혈(穴)자리는 경복궁이나 청와대 자리가 아니고 삼청동 같다. (큰사진) ⓒ2013090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
ⓒ자료 |
 |
▲ 인왕산 정상 과 남산 ⓒ2012 서울포스트 자료 |
걷는 김에 시계가 좋은 날씨라 잘 가지 않은 남산까지 올라 서울의 내사산과 외사산을 살펴 보기로 했다. 며칠 화창한 초가을 분위기에 햇살은 따끈따끈하다. 이런 때 곡식은 알알이 영근다. 올핸 큰 바람이 없어 대풍년이 될 것 같다.
남산에 오르니 서울 중심은 외국인들 관광코스 가 돼있다. 일본인,중국인,미국인이 한국사람보다 더 많으니 새삼 그들의 위치가 실감된다.
 |
ⓒ서울포스트 |
 |
▲ 봉수대 ⓒ서울포스트 |
북쪽은 북한산이 서울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할 때 풍수도참설이나 지리설을 참고한 모양인데, 삼국형성기에 고려 주몽(편의상 고구려 라고 부름)에게서 떨어져 나온 비류(沸流),온조(溫祚) 형제 중 동생 온조 가 십제(十濟, 나중 百濟)를 세워 위례성으로 정한 땅이라하니 예수 이전이던가?
관광이 목적인 사람들은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로 사물을 보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들이 더 고차원의 철학을 가졌을지 모른다. 북한산이,북악산이,인왕산이,낙산이,용마산이,덕양산이,관악산이,남산이, 한강이 살아가는 데 도대체 어떤 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남산에서 그런 산들이 어디에 보인단 말이냐, 그냥 "캬~~! 아름답다, 원더풀!!"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맞다.
그러고보니 나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 같았다. 나만 조망을 어지럽히는 건물들은 치워야한다고 불평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턱없이 수양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찰칵 찰칵...!!
 |
▲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 앞에 삼각형 녹지와 주택의 경계가 반듯한 곳이 동쪽 '낙산' ⓒ서울포스트 |
 |
▲ 서쪽 '인왕산'과 북한산 수리봉 기세가 당당하다. ⓒ서울포스트 |
 |
▲ 북한산 앞의 북악산 ⓒ서울포스트 |
 |
▲ 동쪽 '용마산'도 바위투성이다. ⓒ서울포스트 |
 |
▲ 중앙 도드라진 곳이 서쪽 '덕양산'. 좌측 멀리 강화도 마니산 ⓒ서울포스트 |
 |
▲ 삿갓 과 불 이미지를 가진 남쪽 '관악산'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 한북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용마산,인왕산 등과 한남 관악산은 정상이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특징이 있다. 이 특징으로 한국에서 최고 명산들이 서울주변에 모여있다.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 웹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사진은 위 사진과 동일 장소에서 촬영된 듯하다. 지금은 헐린 가운데 큰 건물이 일제때 조선총독부 - 옛 중앙청 ⓒ자료 |
 |
▲ 난간에 올라 서 가까스로 인왕산부터 도봉산까지 렌즈에 담아봤다. ⓒ서울포스트 |
 |
▲ 봉수대에서의 좋은 전망은 케이블카 정거장이 망쳐놨다. 2층은 추가로 올린 카페 다. 세계인이 올라 구경한다는 최적지를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색채나 형상을 자연스럽게 리모델링 할 수 있으며 안테나는 다른 데로 치워도 된다. 서울시는 뭐하고 있을까. ⓒ서울포스트 |
 |
▲ 남산에 있는 서울의 중심점(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산 5-6) ⓒ서울포스트 |
 |
▲ 남산을 '누에 머리'같다고 해 '잠두봉(蠶頭峰)' 이라고도 한다.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
ⓒ서울포스트 |
[참고]
1392년 7월17일 고려국 35대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명나라로부터 '고려국 권지국사(高麗國 權知國事)' 칭호를 받는다. 이후 국호만 '조선국(朝鮮國)'으로 승인받아 1393년 2월 15일 개국하게 된다. (조선은 1392년 7월17일부터 시작됨)
한양은 고려때도 '남경(南京)'이라도 부른 곳으로 고려 중반부터 천도지로 자주 거론된 지역이다. 태조(太祖)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 전조후시(左廟右社, 前朝後市)'라는 동양 고래의 수도 배치 원칙에 따라서 새도읍을 건설하기로 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개경은 지덕(地德)이 쇠하여 새 왕조에 불길하다거나 전통적 반대세력을 거기에 남겨두기 위함이었다.
1394년(태조3) 10월, 개경에서 한양(漢陽)으로 수도를 옮기고, 북악산과 낙산(駱山)·남산(南山)·인왕산(仁旺山)을 잇는 약 17km의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각기 구간을 맡아 해당 성벽에는 관직과 군명(郡名)을 새겨넣어 책임을 지웠으며 그 흔적들은 지금도 남아있다.
이를 주도적으로 실행한 사람은 이성계의 책사 정도전. 무학대사의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에 대문과 소문, 성곽 등이 축조되었다. 현재 서울성곽은 동 - 좌 청룡, 낙타산(駱駝山 또는 낙산(駱山) 125m), 서 - 우 백호, 인왕산(仁王山 338m), 남 - 주작, 목멱산(木覓山 또는 남산(南山) 262m), 북 - 현무, 백악산(白岳山) 또는 북악산(北岳山) 342m)을 잇는 그때의 길이다.
1395년에 한양을 '한성(漢城)'으로 개칭하고 행정구역을 정했다. 1399년(정종1), 왕자의 난으로 다시 개경으로 옮겼으나 1405년(태종5)에 다시 돌아와, 이후 한성(漢城)은 조선의 수도로 확정된다.
시대는 불분명하나 후세 풍수가에 의해 궁을 둘러 싼 내사산(內四山) 이며, 한성의 외곽 외사산 도 정해졌다. 외사산은 동 - 용마산(龍馬山 348m), 서 - 덕양산(德陽山 124m), 남 - 관악산(冠岳山 632m), 북 - 북한산(北漢山 836m)을 각각 일컬으며 북한산을 조산(祖山)이라고 하여 주산(主山), 관악산을 조산(朝山)으로 본다.
현재 서울의 중심점(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산 5-6)은 남산에 위치하며 '위도 37˚ 33' 06.6"(37도 33분 6.6초), 경도 126˚ 59' 19.6"(126도 59분 19.6초), 높이 267m'다. 이는 국가기준점(서울25삼각점) 지리적삼각점으로 측지와 지적측량의 기초가 된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에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