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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리뷰] 동서, 남북 - 인류의 십자가를 짊어진 아프가니스탄(아프카니스탄 2007/08/07)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22/02/17 19:09:54)

[역사리뷰] 동서남북 - 인류의 십자가를 짊어진 아프가니스탄(아프카니스탄 2007/08/07)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필자는 2007년-벌써 15년전에 아프카니스탄에 관한 자료를 정리한 적이 있다. 2001년 9.11테러 배후로 탈레반 오사마 빈 라덴 을 지목해 그때부터 미국이 침략전쟁을 하고 있었으니 관심이 가긴 했으나, 작년 전쟁이 탈레반의 사실상 승리로 끈나는 것을 보고 당시 자료가 새롭게 다가와 리뷰 한다. 그때 유적지-바미얀석불파괴가 이슈될 때였다.   

 

아프카니스탄(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Afghanistan)은 자라투스트라교(짜라투스트라,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교)가 발생했을 곳으로 추정된 지역으로, 기원전 찬란했던 페르시아제국 이후 호라즘왕국, 몽고 칭기스칸의 전통을 이었다는 티무르제국의 영역이었고, 중국과 서아시아를 잇는 실코로드가 경유했던 지리적 장접을 가졌었다. 

 

19,20세기 초 인도보호,러시아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영국과 3차례 전쟁을 했고, 이후 1979년 소련이 침략해 10년전쟁, 2000년대 들어서는 2011년 911테러의 배후로 탈레반이 지목되면서 미국과 전쟁, 지난해 2021년 8월 미군이 최종 철수하면서 20년간의 전쟁을 끝냈다. 거의 불모의 땅에서 아직도 부족단위 내전이 끊이지 않는 이슬람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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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고난이 있다고, 핍박이 있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기쁨으로 내어준다. 때리는 자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에게 뺨을 맡기고 침뱉는 자에게 얼굴을 맡긴다...

위는 선교자이거나 순교를 각오한 종교인들이 생명을 담보로 사역을 담당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선교가 사실상 침노요, 땅을 빼앗는 행위이기에 정치행위와 종교행위는 그 근본이 일치한다. 중동국가의 역사는 정종일치의 대표적인 땅의 역사다. 특히 이슬람교가 80%정도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나라이름에서 땅(land, 國)을 의미하는 -stan이라는 접미어가 붙을 정도다.

이중에서 아프카니스탄은 100%가까운 국민이 이슬람신도다. 이슬람 순혈주의와 원리주의를 외쳐 메카보다도 더 메카적인 곳이라고 하여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나라에 베들레헴보다 더 베들레헴적인 서울의 한국인이 선교든 봉사든 - 어떤 목적으로든 그 땅을 밟는다면 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목숨이 아깝거든 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기왕의 목적으로 간다면 그들에게 붙들리지 말아야하며, 붙들린다면 살려달라고 말하지 말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지니 기다릴지어다. 아멘!!"

한국인 23명이 아프카니스탄 내 탈레반군에 의해 피랍되어 두 명이 생명을 잃었고 생존자도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지 3주가 지나고있다. 지금까지 우리국민을 구하기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그 어느때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기독교내에서는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중보하지만 넷상에서는 소풍쯤으로 여긴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국기독교인들의 '화려한 휴가'는 척박한 이슬람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나들이요 사치였을 것이다. 아래 자료에 나오지만 탈레반은 외국인과 정부요인들을 테러하겠다고 공언해 왔었다.

아프칸은 먹고 살 것이 별로 없으리만한 불모의 땅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 북변을 경유하는 실크로드 서역남도(西域南道)가 있는 지역이며 러시아 정교, 인도의 힌두교, 불교, 회교, 기독교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으로 기독교계에서는 현재 미국과 탈레반이 대치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최고의 전략적 선교지로 인식하고 있다.

정략적으로 아프카니스탄은 한때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아 인도를 보호하기 위한 영국의 역할이 다한 다음, 이번에는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유리한 질서 재편과 석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한 교두보로 파키스탄과 더불어 절실하게 필요한 지역이기에 무슬림 전사 무자헤딘을 지원해서 소련과 국지적 대리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제 아프칸 문제는 이념이라는 동서와, 빈부라는 남북문제에다 종교까지 복잡하게 얽혀 인류가 공존번영하기 위해 풀어야 할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곳이다. 2001년 공중파에서 세계문화제인 석불(石佛)을 파괴하는 장면이 스쳐간다. 이슬람주의 탈레반이 불교 유산을 파괴하는 CNN화면이었다. 역시 단군상을 철거하려는 대한민국 기독교 극렬주의자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럼 지금부터 아프카니스탄을 좀 더 자세히 알아 보자.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한국은 살만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 H=mc*c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래는 수집한 자료]


1. 아프카니스탄은


서남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서로 위치한 내륙 국가로, 국토는 한국의 약 3배, 전 국토의 75%가 고산지대다. 예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연결하는 요충지였으며 기원전부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전파된 그리이스 문화, 인도로 부터 전래된 불교 등에 의해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1세기에 쿠샨왕조가 건국되어 불교 문화를 형성하였고 7세기에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3세기 이후 이르칸국, 티무르제국, 무갈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8세기 초에 독립했다. 19세기에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고 1921년 재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프칸 민족은 인근의 인도나 파키스탄 혹은 이란이나 터어키랑은 종족이 완전히 다르다. 푸른눈의 백인계로 알렉산더왕이 동방원정길에 데려온 그리스계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역사는약 5000년. BC 3000-2000경 현재의 칸다하르에서 아프간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BC 2000-1500년에 아리안족이 이주하면서 철기문화 전수 후 카불이 주요 도시로 부상. AD 652년 아랍의 확장과 더불어 이슬람 왕국이 시작. 한때 징기스칸이 침공하여 수로를 파괴하여 비옥한 토지를 사막으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18세기 독립후, 중앙아시아, 인도, 아라비아해까지 계속 영토를 확장 후 수도를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이전하면서 근대사 시작. 영국의 보호국일 때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와의 국경을 확정, 영토보전을 인정. 소비에트 연방의 첫 번째 독재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를 반대한다고 천명.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프칸은 미국의 영향하에 있었지만 쿠데타로 수립된 공화정이 소련의 힘을 업고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개혁을 단행했으나 그때까지의 이슬람 전통이 크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성전, 즉 자하드(Jehad)가 전역에서 일어남. 공화부는 급속히 쇠약해졌고 1979년에는 하피줄라 아민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나 정국 운영에 관한 소련의 간섭을 거절하고 미국을 선호했기 때문에 1979년 크리스마스에 마침내 10년에 걸친 소련의 침공을 초래하는 결과.

아프카니스탄 지형.

1980년대에 아프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을 돕기 위해서 미국,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는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군사 지원을 쏟아 부었다. 아프간 게릴라들과 10년 간의 전쟁 끝에 1989년, 소련의 헬리콥터가 미국의 스팅어 미사일에 격추된 후에야 2월 15일에 비로소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였다.

소련이 철수한 후 이제는 무자헤딘들 자신들 속에서 분쟁이 일어나 국토가 피폐되면서 역시 외국의 도움을 받은 탈레반이 정권을 쥐게 된다. 텔레반은 북쪽 연합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외의 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후 미국과 연합군이 2001년 9.11테러 이후 빈라덴에 협조했다는 아프칸을 침공하여 2주만에 탈레반 정권을 카불외곽으로 몰아낸 상태다.

2001.12.22 하미드 카르자이가 그 의장이 되어 잔존하는 세력들과 탈레반 요소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탈레반은 남쪽도시 칸다하르와 중부 지역을 통해서 테러의 기회를 엿보고 있고, 외국인들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을 테러하겠다는 편지를 자주 보내면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거의 전 국민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그동안 서로 갖고 있는 반목과 질시, 원수 맺는 것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다만 지난 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본 몇 계층들이 불안을 조성하기 위해서 탈레반 잔존 세력들에 아직 자금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동안 숙원사업인 카불-칸다하르 도로 정비사업이 미국과 일본 등의 도움으로 건설되었고, 13시간 이상 걸렸던 길이 6시간으로 줄어 들었다. 서쪽 칸다하르-헤랏, 동쪽 카불-잘랄아바드의 길이 완공되었으며 현재 아프간치안을 위해서 나토군들이 점점 카불에서 지방으로 배치되고 있고, 몇 년 동안 훈련시키고 배출된 아프간 정부 군인들 역시 함께 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치안은 갈수록 안정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아프카니스탄 지형.

서남 아시아 지역에 있으나 중국(76KM)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프칸은 북쪽으로는 우즈벡(137KM), 투르크메니스탄(744KM), 타지키스탄(1206KM)이, 동남쪽으로는 이란(936KM), 서남쪽으로는 파키스탄(2,430KM)과 연결되어 있고 바다가 없는 내륙에 위치해 있다.
고도는 해발 258M(아무다리야)에서 노샤크(7,485m)산까지 다양하고 기온은 우리와 비슷하며 인구는 총 28,717,213 (2003.7월)명. 종교는 모슬렘 수니파 84%, 모슬렘 시아파 15%, 기타 1%, 사단이 하늘에서 쫒겨난 곳이 수도 카불이다.


2. 탈레반은 바미얀 계곡의 석불(石佛)을

파괴 전 바미얀 석불.

파괴 전 바미얀 석불.

파괴 전 바미얀 석불. 바미얀석굴의 거대한 석불 중 가장 큰 것은 55m다. 이 석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당나라의 현장법사는 이 석불을 ‘황금이 번쩍이는 화려한 불상’이라고 극찬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신라의 혜초(慧超)도 772년 이 곳을 방문하였다. 바미얀 석불은 높이가 동대불의 경우 38m, 서대불의 경우 55m에 달해 역사상 단연 으뜸의 자리에 놓인다. 1천700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이 거대한 불상은..
↑1천700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이 거대한 불상은 20세기 말에 크게 파손됐다가, 2000년에는 아예,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바미얀'.의, 북쪽 암벽에는; 모두 750여 개의 작은 석굴이 파여 있고, 이중 상당수 석굴은; 벽화와 천장화를, 간직하고 있다.


파괴 전 바미얀 석불 얼굴, 8세기 전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불상의 얼굴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지역에는 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면서도 세계최대의 마애석불인 바미얀 석불이 있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앙하는 탈레반들은 공개적으로 바미얀 석불을 파괴할 것을 공언했고 국제사회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석불파괴를 실행해 옮겼다.

아프가니스탄에 간 법륜스님 일행과 JTS 자원봉사자들은 유산파괴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한편 구호사업을 위한 지역 답사를 위해 카불 서쪽 200Km 지점의 바미얀을 방문하였다. 중국 당나라의 현장법사(玄裝法師)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바미얀국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신앙이 두터운 마음은 이웃나라보다 더하다. 위로 삼보(三寶)로부터 아래로 백신(百神)에 이르기까지 진심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으로써 공경하고 있다.

[중략] 가람은 수십군데, 승려는 수천명으로 소승의 설출세부(出世部)를 학습하고 있다. "또한 바미얀 석불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왕성 동북의 산 귀퉁이에 입불(立佛)의 석상이 높이 1백 4-50척이나 되는 것이 있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며 보식(寶飾)이 빛나고 있다. 동쪽에 가람이 있는데 이 나라의 선왕이 세운 것이다. 가람 동쪽에 유석(鍮石)의 입상이 있는데 높이가 1백여 척이다. 몸체를 부분으로 나누어서 주조하여 맞춘 것이다. 바미얀 석불 파편 잔해들은 유네스코에서 마련한 보호용 천막에 뒤덮여 있고 유네스코의 안내문만이 이곳에 대불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탈레반 반군에 의해 2001.3. 파괴되고 있는 바미얀 석불.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2003.3.13.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의해 바미안의 고대 석불들이 파괴되었음을 피에르 라프랑스 유네스코 특사를 통해 확인했다.


파괴된 석불의 절벽에는 수십개의 동굴이 파여있었다. 지금은 현지의 주민들이 그 곳에서 생활을 하지만 예전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승방이었다고 한다. 절벽전체가 하나의 사원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바미얀 석불은 1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법사의 증언대로 크기는 조금 작지만 같은 방식으로 절벽을 파서 만든 석불 1기가 동쪽편 절벽에 가까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석불 역시 파괴되었기는 마찬가지다.

현지인들은 큰 석불은 '살살', 작은 석불은 '보만'이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탈레반 정권이 이 석불들을 훼손한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탈레반의 석불을 파괴할 것을 세계에 공표했을 때 이슬람 국가들의 보편적인 반응은 석불파괴에 대한 반대였다. 그것은 불교유적이지만 인류공동의 문화재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파괴된 바미얀 석불에 대한 사후대처는 의견이 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어렵겠지만 파편들을 다시 모아서 복구를 하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괴된 석불 자체가 만행의 증거이기 때문에 교훈으로써라도 후손들에게 파괴된 그대로 남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바미얀 계곡 석굴 군. 바미얀 계곡의 풍경, 해발 2,500m, 힌두쿠시산맥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교통로로 번성했던 곳이다. 병풍처럼 둘러 처진 바위산에는 거대한 불상과 석굴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2001년 탈레반에 의해 부서진 두 불상이 있던 감실이 바라보인다.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바미얀 지역은 탈레반 정권 시절에 다른 지역에 비해 탄압이 극심했던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바미얀에는 몽골리안 계통의 하자르족들이 사는데 이들은 징기스칸의 정복로를 따라 이주했던 몽골의 후예들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다른 아프가니스탄의 주요종족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외형상의 차이는 인종차별의 꼬투리가 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파슈툰 족에 근거를 둔 탈레반이 그렇지 않아도 차별의 소지가 많은 몽골리안 계통의 하자르 족에게 결코 잘 대해줄 리가 없었고 탄압이 어찌나 가혹한지 말로 다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국제기구들에 의해 재건된 새시가지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탄압이 극심했던 덕분에 지금은 카불 이외에 외국의 구호단체들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이 바미얀이기도 하다. 아프카니스탄은 제4차 결집을 했던 카니시카왕의 쿠샨왕조가 흥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던 대승불교가 이 곳을 통해서 북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는 3,700여개의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땅속에 묻혀있는 불교유적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였고 파키스탄이 간다라 미술의 발상지였고 아프가니스탄은 불교의 중흥지이면서 대승불교의 시작점이었다. 동남아시아나 동북아시아에만 불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제 불교가 역사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불교가 생활의 일부인 것이다.


3. 무명氏는

구 소련이 끝임없이 집어삼키려 했던 난공불락의 나라, 지금은 미국이 가세한 나라. 형편없는 경제력에 끝없는 분쟁이 있는 나라, 그러나 그들 나름대로 고수할 게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지금 아프칸은 세계를 향해 내뿜는 항거의 소리이자, 반제국주의에 대한 몸부림이다.

미국이 이슬람 세계를 향해 9.11테러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초토화시킨 나라. 아프카니스탄은 친미행정부를 세웠어도 여전히 미국이 두려워 한 나라. 그건 미국식의 네오콘이 갖는 무모함을 내세운 팽창주의거나 평화주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의 집에 일어난 가족불화를 빌미로 남의 식구들을 마구잡이 폭력으로 설복시킬 수 있을까?

그건 매우 독단적 처사이자 미국식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적 팽창주의 사고, 혹은 자신들의 행위와 선, 혹은 종교만이 전부라는 편견이 빚은 역사의 비극이다.

아니 그건 신의 저주이거나 모순적인 신의 변론인지도 모른다.
아! 이렇게 무모한 짓거리를 하도록 내 버려두는 신은 과연 누구의 편입니까?
탈레반이란 훈장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정당성을 자체내에 이미 확보하고 있다.
그걸 우린 무지나 폭력집단이라고 단죄할 권한이 별로 없다.


4. 오성삼, 한우리교회 담임목사는

선교적 관점에서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은 세 군데이다.
첫째는 타 종교와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교두보적 지역이고, 둘째는 종교가 민족적 정신기반이 되어 신앙이 곧 생활방식이 된 지역이다. 세 번째는 험한 자연환경으로 생계가 어려운 격오지 지역이다.

이번에 배형규 목사가 살해당한 아프가니스탄지역은 이 세가지가 다 포함된 지극히 위험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아프카니스탄이 전략지역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옛 부터 실크로드가 지나고 있었고 지금도 동서를 잇는 교통요충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모슬렘화는 그 세력을 남방나라에까지 침투시킨 전략적 지역으로 역할을 한다. 이 통로로 인도네시아, 싱가폴, 말레이지아,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회교세력이 동남아를 물밀듯 공략한 것은 좋은 예이다. 그러나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지역은 무슬림 세력의 확장을 차단하고 복음을 이란, 이라크 근동지역까지 전파할 수 있는 교두보적 위치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지역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진지처럼 점령의 거점이며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9.11테러로 인해 탈레반 정권을 몰아낸 미국으로 인해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되었고 선교 전략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복음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미국중심의 세계정세의 재편은 곧 기독교 국가의 확산이 목표이기에 선교 전략적 차원과 맞아떨어진 부분도 없지 않다.

이번에 파견된 아프가니스탄 봉사단이 선교목적이냐, 순수한 봉사냐의 차원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 다만 탈레반 반군의 인질이 되는 황당한 처지가 되면서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되묻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는 선교에 대한 몰이해에서 발생했다. 선교 전략적 목표가 분명했다면 떠나기 전에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반면 별 생각없이 기독교이벤트의 일환으로 떠났다면 선교를 너무 쉽게 생각한 어리석음을 꾸짖을 수 밖에 없다. 위험한 타 문화권 지역선교는 출발부터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파송되기 전에 몇 년에 걸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선교지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고 혼자 떨어질 경우에도 살아 남아야 하기에 출발할 때 유서를 쓴다. 죽기를 각오하고 떠나는 선택이 위험지역선교이다.

만약 어떤 세력에 납치되어도 다른 선교팀을 어렵게 하지 않으려고 죽기를 각오한다. 그러므로 선교는 현지에 정착하고 그 곳에서 뼈를 묻는 진짜 선교사를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 복음의 부르심 때문에 그 지역에 목숨을 내 놓고 살아가는 몇 몇의 선교사들은 선교를 이벤트화 하려는 어리숙함을 저지르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를 그 지역에서 자신을 통해 살아 갈 뿐이다. 그들이 형성한 몇 십년, 몇 백년의 선교토양을 섣부른 선교전략이 하루 아침에 망칠 수 있다는 도전을 주는 사건이다.


5. 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은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내륙산악국

..영국, 러시아, 소련, 미국 등과 차례로 전쟁..끊이지 않는 수난으로 국토와 민생은 피폐화..일상이 된 전쟁속 '바달'전사로 자라며 저항 ..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은 닮은 점이 제법 많다. 둘 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잡아 역사적으로 숱한 질곡과 간난신고를 겪었다. 특히 강대국의 침탈과 내전 등 그로 인한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독자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 남았다.

정도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두 나라는 지금도 내적 불안성 속에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다. 한국이 남북분단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프가니스탄도 종족 간 불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에 미군이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물론 한국이 서구 가치를 적극 수용하고 경제 성장을 이뤘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가치를 고수한 가운데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 닮은 점이 생각 밖으로 많다는 건 아시아권에 속하며 실크로드를 통해 오랫동안 문화적 교류를 해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무엇보다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한 듯하다. 물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역사를 진취적으로 발전시켰다면 거대한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었다. 그럼 눈물과 투쟁으로 점철된 그들의 수난사를 따라가보자.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 = 아프가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땅의 넓이는 65만㎢ 가량으로 한반도의 세 배 크기다. 바다와는 1천㎞ 가량 떨어진 내륙국이고, 국토의 절반이 높이 1천m를 넘을 정도로 산악국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힌두쿠시로 7천500m를 헤아리며, 특히 파미르 고원이 연결되는 북동부는 5천m가 넘는 험산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전쟁이 일어나도 지상군의 행군은 물론 통신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숱한 외침을 물리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자연지형의 도움이 컸다.

구호 기다리는 아프간 난민들.
아프간은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국가다. 지배적인 종족이 '아프간족'으로 불리는 파슈툰족으로 50%에 가깝다. 이들은 크게 길자이 부족과 두라니 부족으로 나뉜다. 이어 타지크족이 25% 가량으로 두 번째를 차지하고, 하자라족(10%)과 우즈벡족(8%)이 그 뒤를 잇는다.

지금의 국경선은 19세기 말에 영국이 그어놓은 것이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이 이른바 '듀런드 라인'이라는 분계선을 획정했다. 남진하는 러시아와 맞대결했던 영국은 아프간을 완충지대로 이용한 것이 오늘의 아프간 영토가 된 것이다.

◇종교와 사회 = 인구 약 3천만 명 중 99%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무슬림이다. 그중 수니파가 85% 가량이고, 시아파는 15% 정도를 차지한다. 전래된 지 1천300여년이 된 이슬람교는 5천 개에 가까운 모스크(이슬람사원)가 말해주듯이 주민들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은 험한 산과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해 생활도 고립ㆍ분산적이다. 각 종족이 독립성이 강하며, 전통을 엄격히 준수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상호협력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아프간을 200여년 동안 통치해온 파슈툰족은 용맹성이 세계 어느 민족이나 종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수차례 아프간을 점령했다가 패퇴한 영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끈질긴 민족'이라며 치를 떨 정도다.

'파슈툰왈리'라는 엄격한 행동규범을 추종하는 이들은 명예를 매우 중시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복수하며 자기가 못하면 대를 이어서라도 한다. 즉, 파슈툰의 불문법인 파슈툰왈리 중 첫번째가 '바달(badalㆍ복수 또는 응징)'인 것이다. 이들에게 남성의 수염은 지혜와 용맹, 강인함을 상징한다.

또한 이들은 매우 친절하다. 불문법의 두 번째가 '환대'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부당하게 모욕당하거나 공격받을 경우에는 매우 공격적으로 저항하나 그렇지 않을 때는 더없이 친절하다.

◇근대의 수난과 저항 = 동서문명이 만나는 십자로에 위치한 탓에 아프간 사람들은 편할 날이 드물었다. 외침의 연속이었고, 그에 따른 내전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침략군의 무덤'이라는 용어가 함축해주듯이 외국군은 철저한 바달의 대상이 돼 쫓겨가곤 했다.

근래들어 아프간을 괴롭힌 대표적 나라가 영국이었다. 한때 '팍스 브리태니카'를 구가하던 영국은 아프간을 놓고 러시아와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이는 상황에서 아프간 내정에 지속적으로 간섭하며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으나 모두 실패하고 물러섰다.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
1839년에 시작된 제1차 앵글로-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칸다하르에 근거지를 둔 아프간군의 대공세 속에 4천500명의 영국군과 1만2천 명의 지원인력이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궤멸되면서 막을 내렸다. 물론 영국이 세운 허수아비 정권의 수장도 살해의 운명을 맞았다.

영국은 1879년 또다시 침공해 패배를 설욕코자 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밀려 이듬해에 철수했고, 1919년에 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을 벌였지만 역시 실패하고 아프간의 독립을 허용하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영국과 이 지역의 패권을 다투던 러시아의 잇단 침공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들은 영국이 쫓겨난 사이인 1865년과 1885년에 아프간을 차지하려 했으나 '복수의 화신'들에게 끝내 잡아 먹히고 말았다.

◇현대의 수난과 저항 = 1964년 절대군주제를 폐지하고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선포했지만 배후조종과 직접침략 등의 방법으로 옛 소련의 내정간섭은 집요하게 이뤄졌다.

1973년 쿠데타의 배후인 소련은 내전으로 혼란이 거듭되는 아프가니스탄을 평정키 위해 1979년에 군대를 동원해 개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아프간 사회의 전통적 반외세 감정에 불을 붙였고, 이슬람 세력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저항이 날로 거세졌다.

결국 소련은 아프간 저항군인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에게 5만 명의 병력을 잃고 1989년에 철군해야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세기에 영국이 침략과 패배를 거듭하면서 '팍스 브리태니카'의 종언을 재촉했듯이 소련도 아프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체제붕괴라는 최악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소련군이 물러가고 그 허수아비격인 나지불라 정권도 무너졌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다. 7개 단체로 구성된 무자헤딘 연합 정부는 치열한 내분과 갈등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아프간은 극도의 혼미 상태로 다시 빠져들었다.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무장종교그룹 탈레반이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탈레반은 파죽지세로 진격하며 수도 카불을 점령해 1996년 정권을 수립했다. 그리고 철저한 이슬람주의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탈레반은 카불을 내주고 칸다하르 중심의 산악전과 게릴라전으로 전환했다.

당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을 9.11의 배후주범으로 간주했고, 아프간은 이들을 비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1차 공격대상이 됐다. 미국은 소련이 그랬듯이 대규모 군대를 진주시키고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한 친미정권을 출범시켰으나 탈레반은 소멸되지 않은 가운데 반격의 공세를 날로 강화하고 있다.

◇저항과 반격의 힘 = 소련군 침공에서 현재까지 2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프간은 국토가 극도로 피폐해지고 민생 역시 도탄에 빠졌다. 거의 날마다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탈레반과 미군의 전투도 계속돼 살상과 부정부패가 일상이 돼버렸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탈레반에 들어가거나 반대로 아프간 경찰에 취직하기도 하며 가족간, 부족간, 종족간 갈등과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만 4천여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는 아프간이 말 그대로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음을 웅변해준다.

미국이 아프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파슈툰족 등 아프간인들의 자존심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이들은 군사력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세지만 벌써 6년 넘게 끈질기게 버텨내고 있다.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게릴라전의 귀재가 된 이들 탈레반은 소총은 물론 견착식 박격포를 들쳐 매고 산악지대를 평지처럼 뛰어다닌다.

구호 기다리는 아프간 난민들.
이들에게 저항의 연료를 제공하는 것은 뜻밖으로 미국일지 모른다. 확실한 근거없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희생양으로 아프간을 몰아간 데 대한 반감이 워낙 거세다는 얘기다. 이는 바달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아프간인들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으로, 이 모욕감은 탈레반의 지원자를 꾸준히 늘려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존심의 문명-이슬람의 힘'의 저자인 권삼윤 씨에 따르면, 1980년대 아프간 전쟁에 참가했던 한 소련군 장교는 "아프간 병사들은 내가 20년 동안 전선에서 마주친 어떤 병사들보다 뛰어났다. 미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의 어떤 나라도 섣불리 덤볐다간 파멸의 벼랑으로 몰릴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 장교는 "그들은 공격을 당해 쓰러져서도 총을 부여잡고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쏘아대는 무서운 병사들이다.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화장실 투기사건 등 미군의 잇단 반이슬람 행위를 계기로 반미 분위기가 최근 고조되고 있다"며 "한때 붕괴직전까지 갔던 탈레반이 이런 민심을 바탕으로 힘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9일 방영된 'KBS스페셜'의 '2007 아프간-지독한 전쟁'편 제작진도 탈레반을 제거하려는 6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세력은 강해지고 있으며 민심은 미군과 그 연합군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미군이 민간인 사상으로 이어지는 야간 공격을 무차별로 퍼붓고 이슬람 전통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가택수색 등을 함으로써 그 같은 방식에 배신감을 가진 주민들이 탈레반에 대한 우호적 동조로 돌아서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6. 보너스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 afghanistsn) 호수. 사막 가운데로 다섯 개의 호수가 이어져 있다.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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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 지형.
아프카니스탄 지형.
아프카니스탄 지형.
아프카니스탄 지형.
파괴 전 바미얀 석불.
파괴 전 바미얀 석불.
파괴 전 바미얀 석불.
파괴 전 바미얀 석불.
파괴 전 바미얀 석불. 바미얀석굴의 거대한 석불 중 가장 큰 것은 55m다. 이 석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당나라의 현장법사는 이 석불을 ‘황금이 번쩍이는 화려한 불상’이라고 극찬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신라의 혜초(慧超)도 772년 이 곳을 방문하였다. 바미얀 석불은 높이가 동대불의 경우 38m, 서대불의 경우 55m에 달해 역사상 단연 으뜸의 자리에 놓인다. 1천700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이 거대한 불상은..
파괴 전 바미얀 석불. 바미얀석굴의 거대한 석불 중 가장 큰 것은 55m다. 이 석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당나라의 현장법사는 이 석불을 ‘황금이 번쩍이는 화려한 불상’이라고 극찬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신라의 혜초(慧超)도 772년 이 곳을 방문하였다. 바미얀 석불은 높이가 동대불의 경우 38m, 서대불의 경우 55m에 달해 역사상 단연 으뜸의 자리에 놓인다. 1천700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이 거대한 불상은..
파괴 전 바미얀 석불 얼굴, 8세기 전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불상의 얼굴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파괴 전 바미얀 석불 얼굴, 8세기 전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불상의 얼굴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탈레반 반군에 의해 2001.3. 파괴되고 있는 바미얀 석불.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2003.3.13.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의해 바미안의 고대 석불들이 파괴되었음을 피에르 라프랑스 유네스코 특사를 통해 확인했다.
탈레반 반군에 의해 2001.3. 파괴되고 있는 바미얀 석불.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2003.3.13.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의해 바미안의 고대 석불들이 파괴되었음을 피에르 라프랑스 유네스코 특사를 통해 확인했다.
바미얀 계곡 석굴 군. 바미얀 계곡의 풍경, 해발 2,500m, 힌두쿠시산맥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교통로로 번성했던 곳이다. 병풍처럼 둘러 처진 바위산에는 거대한 불상과 석굴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2001년 탈레반에 의해 부서진 두 불상이 있던 감실이 바라보인다.
바미얀 계곡 석굴 군. 바미얀 계곡의 풍경, 해발 2,500m, 힌두쿠시산맥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교통로로 번성했던 곳이다. 병풍처럼 둘러 처진 바위산에는 거대한 불상과 석굴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2001년 탈레반에 의해 부서진 두 불상이 있던 감실이 바라보인다.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파괴 후 석불.
구호 기다리는 아프간 난민들.
구호 기다리는 아프간 난민들.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
아프간 탈레반.
아프간 탈레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왕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바미얀의 반디 아미르(band-i-amir lake)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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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아프카니스탄 더 보기  양기용 기자 (200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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