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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북한산 최대(最大)사찰, 호국참회 도량 도선사(道詵寺)②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4/01/30 21:44:33)

[탐방] 북한산 최대(最大)사찰, 호국참회 도량 도선사(道詵寺)②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도선사 는 풍수의 대가 도선대사 가 북한산 동쪽 가파른 곳, 부채살같이 펼쳐진 만경대와 용암봉을 병풍삼아 자리잡은 최고의 혈(穴)자리 에 위치한다. ⓒ2014012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조선시대때 사학, 유학자들이 세운 서원의 권력이 극에 달하면서 이들은 민중의 재산을 수탈하고 지배하기에 이른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립학교가 교육, 등록금인상 등으로 국민들 뼈골 빠지게 하고, 각종 세금혜택으로 부를 축적해 정치적 거물로 성장하는 것과 똑같다. 이 지배층에 성리학자들이라면, 민중편에 서서 애환을 들어줄 종교가 불교였다.

지배층이 불교를 배척한 것과 반대로 왕실에서는 불교를 은근히 지원한 경향도 두드러 졌다. 난리에 그 자녀들은 군을 면제 받거나 회피한 현상(어쩜 지금과 똑같냐)이 있는 반면, 불교에서는 승군을 조직해 위기에 대처했다. 그래서 불교 앞에 '호국'이라는 말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

오늘 찾은 도선사는 현대에 이르러 호국참회원(護國參會院)을 건립하고 불교의 평화 염원과 실천불교 ·생활불교 운동을 전개하여 현재와 같은 대찰로 발전했다.

나라가 어지러운 조선 말, 고종, 명성황후, 엄귀비 도 적극 불사에 관여했다. 도선사 뿐만 아니라, 문수사, 불암산 학도암, 관악산 연주암 등등 에 이 분들의 발원이 많다.

도선사는 862년 도선대사가 창건한 이래 (특별한 일이 없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창건한 곳의 산세가 1천 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佛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 내다보고 절을 세웠다"는 과거 기록이 사실이라면, 정확히 들어 맞아 해방후 역할이 두드러진다.

일제 때 태고사 등 대처승 중심으로 한국불교가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해방 후 이승만정권의 지원을 받아 1954년 불교정화, 일제 청산운동으로 태고사(현 견지동 조계사)에 진입하여 대처승을 몰아내고 조계사 간판을 단다. 이 중심에 청담대사 가 있었다. 청담대사는 1955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1957년 해인사 주지(1960년 까지), 불교정화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961년 도선사 주지로 취임한다. 이후 재건국민운동본부 중앙위원,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이 되어 도선사가 최대 부흥기를 맞아 오늘에 이른다.







※ 도선사를 창건한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 (자료 등 참고)

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 성은 김씨. 영암출신. 왕가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운봉산(雲峯山)에서 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태백산에서 움막을 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

859년(헌안왕 3)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에 청암사를 창건하였다. 37세가 되던 863년 전라남도 광양시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898년(효공왕 2) 세수 72세의 나이로 입적할 때까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도선국사는 승려로서보다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학의 역사가 신라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도선국사의 생존 연대가 그때였기 때문이다. 그뒤부터 도선 하면 비기(秘記), 비기 하면 풍수지리설을 연상할 만큼 도선과 풍수지리설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다.

도선국사가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고려 태조에 의해서였다.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는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 왕들은 도선국사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태조가 도선국사로부터 직접 설법을 들은 일은 없으나 사상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술로는 『도선비』, 『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제자들이 옥룡사에 징성혜등탑(澄聖慧燈塔)을 세웠다. 고려의 숙종은 대선사(大禪師)를 추증하고 왕사(王師)를 추가하였으며,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追封)하였다. 의종은 비를 세웠다.

* 일화 :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지형상 배의 선복(船腹)에 해당하므로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워 진압했다는 설. 특히 운주사를 진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운세가 일본으로 흘러가게 되므로 도선이 하룻밤 사이에 도력으로 인근의 돌을 모아 천불을 세워 사공으로 삼고 천불을 노로 삼아 비보진압(裨補鎭壓) 하였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 도선사 [道詵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道詵)이 862년(경문왕 2)에 창건하였다.

도선은 이곳의 산세가 1천 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佛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 내다보고 절을 세운 다음,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을 조각하였다고 전한다. 그후 조선 후기까지의 중건이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 승병들이 도선사에서 방번(防番)을 서기도 하였다.

1863년(철종 14) 김좌근(金左根)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任準)이 5층탑을 건립하고 그 속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하였다. 또, 1903년에는 혜명(慧明)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고, 1904년에는 국가기원도량(國家祈願道場)으로 지정되었다. 근래에 들어와 호국참회원(護國參會院)을 건립하고 불교의 평화 염원과 실천불교 ·생활불교 운동을 전개하여 현재와 같은 대찰로 발전하였다.

현재 있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호국참회원·백운정사(白雲精舍)·독성각(獨聖閣)·천불전(千佛殿)·종무소(宗務所)·요사(寮舍) 및 5개의 산문(山門)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내부의 벽에는 달마(達磨)와 혜능(慧能) 및 청담(淸潭)의 영정이 그려져 있으며, 후불탱화(後佛幀畵)·팔상도(八相圖)·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도선사 마애불입상(道詵寺 磨崖佛立像)이 있다. 이 석불상은 도선이 조각했다는 마애관세음보살상으로, 높이 8.43m이다. 이 석불은 영험이 있다고 하여 축수객이 끊이지 않는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대웅전 옆뜰에는 보리수가 있는데, 2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온 고승이 심었다고 전한다.

* (개인 소견) 도선사 마애불은 전통적 석불과 사뭇 다르게 비례를 무시한 기형적 형상에 뾰루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히 파격적인 모습에서 오히려 '해학'을 찾을 수 있다.

* 도산사 홈페이지 : 조선조 광무 7년에 광무황제로부터 정식으로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은바 있는 도선사가 오늘날의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은 조계종단의 종점과 총무원장, 종회의장, 장로원장 등을 두루 역임하신 한국불교정화유신운동의 총수 청담대종사의 대원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수행불교, 실천불교, 생활불교로 불교의 중흥을 꾀하자는 청담대종사의 호국참회사상이 대종사의 뜻을 받든 제자들과 고 육영수 대덕화보살을 비롯한 뜻있는 신남신녀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모아져 호국참회사상을 펼치는 근본도량으로 크게 중창되었다. 경내로 들어서면 호국참회원의 옹자와 마주치는데, 이 건물의 청담기념관에서는 청담대종사의 유물과 선필을 만날 수 있다.

천불전으로 오르는 길 옆 연못청담 심지에서는 참배객들이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명부전에는 생전 인연이 깊었던 고 박정희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대덕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명부전 앞뜰에는 200여 년전 어떤 고승이 인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가 고목이 되어 있고, 12세 소년이 썼다는 기록이 새겨진 대웅전 현판글씨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 청담대사(靑潭大師) - 도선사홈페이지 발췌

1902 경남 진주 출생, 본명 이찬호(李讚浩) 법명 순호(淳浩) 법호 청담(靑潭)
1910 봉부차재에서 한학 수학, 진주 제일보통학교 수학
1919 진주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 주도, 옥고 치름.
1921 차점이(車点伊)와 결혼. 진주농림학교 입학, 농업학교 교장 소개로 승려교육 받기로 하고 도일.

1926 26 경남 고성 옥천사(玉泉寺)로 출가, 도첩 받음. 동년 10월 개운사(開雲寺) 대원불교전문강원에 입학, 박한영 대강백으로부터 경·율·론 삼장 사사.
1930 설악산 봉정암, 피골이 상접하도록 용맹정진.
1931 금강산 마하연, 묘향산 보현사 설령대, 덕숭산 수덕사 정혜선원 만공(滿空)회상 등에서 용맹정진 및 안거

1941 40 조선총독부의 편향적 불교정책에 대응하여 선학원에서 유교법회(遺敎法會) 개최. 운허스님, 적음스님과 함께 준비위원으로서 행사 주관.
1942 속리산 복천암에서 생식 동안거.
1943 독립운동 혐의(금강회 사건)로 복천암에서 체포,투옥
1944 문경 사불산 대승사 쌍련선원에서 성철스님, 우봉스님 등과 안거
1946 쌍련선원에서 봉암사로 옮김. 해인사 조선불교 가야총림(伽倻叢林) 동참.

1954 53 불교교단 정화추진위원회 선학원에서 구성, 효봉스님, 대월스님 권유로 합류. 8. 25 선학원에서 제1차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 개최에 따른 정화추진위원으로 선출. 청담(靑潭)이라는 법호 사용시작. 11. 5 태고사(현 조계사)에 진입, 11. 10 태고사 현판을 조계사로 변경, '불교조계종 중앙종무원' 현판 부착.
1955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에 취임. 「대각회」총재 취임.
1956 조계종 종회의장에 선출됨.
1957 해인사 주지 취임. (1960. 5 까지 재임)
1960 종단기관지인 「대한불교(불교신문)」를 창간하고 편집 겸 발행인으로 초대사장 취임. 이승만 대통령 하야후 대처승 반격에 대응해 「한국불교정법수호순교단」조직. 「불교정화대책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

1961 60 도선사(道詵寺) 주지 취임. 재건국민운동본부 중앙위원 취임.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법계 품수.
1963 전국승려대표자대회 의장. 이후, 재단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부처님 탄신일 공휴일 제정을 추진. 선학원 제7대 이사장 취임(1964∼1967)
1966 중앙종회의장 재취임. 통합종단 제2대 종정에 취임.
1968 도선사 호국참회원 건립 기공. 「국민교육헌장」제정심의위원으로 추대.
1969 한국불교총연합회 이사장 취임.
1970 동국불교방송 설립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 종회에서 총무원장으로 선출됨. 8. 15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불교지도자대회 의장. 대회에서 장로원장으로 추대됨.

1971 70 한국종교협의회 회장에 피선. 일본 총지사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평화촉진 종교인 대회에 참석. 「삼일(3.1) 국민회의」 의장에 피선.
11. 15 열반, 11. 19 종단장 거행. 세수 70세, 법랍 45세. 사리 8과를 도선사, 옥천사, 문수암, 고창 선운사 등에 사리탑 부도를 조성하여 봉안.


▲ 도선사 는 풍수의 대가 도선대사 가 북한산 동쪽 가파른 곳, 부채살같이 펼쳐진 만경대와 용암봉 아래 자리잡은 최고의 혈(穴)자리 에 위치한다. ⓒ2014012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지장보살 ⓒ서울포스트
▲ 대웅전 ⓒ서울포스트
▲ 명부전 ⓒ서울포스트
▲ 윤장대 ⓒ서울포스트
▲ 석불은 서울시 기록과 차이가 난다. ⓒ서울포스트
▲ 청담대사석불, 청담대종사비, 청담대종사부도 ⓒ서울포스트
▲ 범종각 ⓒ서울포스트
▲ 도선사 마애불입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호)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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