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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종로 인왕산 남쪽 서촌마을(세종마을) 배화여중,여고,여대 내 캠벨 기념관, 백사 이항복 생가터 필운대(弼雲臺)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9/02/04 23:09:45)

[탐방] 종로 인왕산 남쪽 서촌마을(세종마을) 배화여중,여고,여대 내 캠벨 기념관, 백사 이항복 생가터 필운대(弼雲臺)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휴일을 맞은 오후, 종로 서촌마을 배화여중고 뒤 켠에 있는 백사 이항복의 집터 필운대, 수성동계곡을 찾았다. ⓒ20190204 세상을향한 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겸재 정선 의 '필운대(弼雲臺)' 수묵화 ⓒ자료

▲ 현재 등록문화재가 된 세 건물. 1927년 촬영한 배화여고 전경. 초가지붕 민가들 뒤로 본관·생활관·과학관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서울시 제공

 

과거의 배화학당(培花學堂)은 오늘날 배화여중, 배화여고, 배화여대와 배화유치원이 같이 있는 종합 캠퍼스다. 1898년 미국의 기독교 남감리회 선교사 조세핀 필 캠벨 (Josephine Campbell, 1853~1920년) 이 서울에 설립해 191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오늘은 특별한 연이 없는 배화여자중학교나 여자교등학교나 여자대학교나 창설자 캠벨 기념관 이 아닌 필운대 가 목적이었지만 근대문화재가 수두룩한 교정을 잠깐 돌아봤다. 저쪽에 오래된 회화나무는 담지 못했고 입구쯤에 아름다운 자태의 주목나무가 건강미를 뽐낸다. 교훈은 기독교정신이 담긴 '신(信),망(望),애(愛)' - 믿음,소망,사랑 - 이다.  

 

오랫만에 맘 편한(?) 휴일을 맞아 가까운 산에라도 갈려했는데 여의치가 않다. 서해바다길이나 무의도 정도는 진즉 생각해 두었지만 서울을 떠난 여행아닌 여행을 가을부터 겨울까지 제법했기에 걍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 같았다.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지금 주제넘게 내가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금방 망할 것 같다. 거의 정신병적인 중증환자가 돼, 내 걱정으로 대한민국이 근근이 버틴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올 2019년과 내년엔 한반도에 부동산폭락(부동산은 폭락해야 한다) 등 극심한 경제적인 고통과 이념간 갈등에서 도무지 무엇이 옳고그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미중간은 더 첨예한 대립을 할 것이며 북한이 핵을 포기한 대신 미국에 무엇을 바랄까. 중국이 바라지 않을 미군주둔이 북한땅에서 이뤄질까, 미국자본이 북한에 수혈돼 잘먹고 살게 될까,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할까.. 여러저런 생각에 필운대 와 수성동계곡을 찾아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필운대(弼雲臺 서울문화재자료 제9호)는 원래 권율(權慄 1537-1599) 장군의 집터였는데, 권장군의 무남독녀에게 장가든 오성(鰲城)부원군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66-1618)이 처가살이하면서 물려 받았다. 인왕산을 필운산이라고 부른 데 연유하며 필운(弼雲,우필운룡右弼雲龍)은 임금을 오른쪽에서 돕는다는 뜻. 이 일대는 경복궁 서쪽에 있어 서촌(西村)마을, 세종의 탄신지여서 세종마을이라고 한다. 경복궁 동쪽에는 가까이 북촌한옥마을과 멀리 낙산 밑 혜화동부근 동촌, 그리고 청계천 건너 남촌(한옥)마을이 있다.  


이항복 자신이 직접 해서체 '필운대(弼雲臺)' 암각 옆에는 백사(白沙)의 후손으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암각 글씨도 있다.

 

아조구거후예심 (我祖舊居後裔尋 )

창송석벽백운심 (蒼松石壁白雲深)

유풍부진백년구 (遺風不盡百年久)

부로의관고역금 (父老衣冠古亦今)

(癸酉 月城 李裕元 題白沙先生弼雲臺)

 

우리 할아버지 옛날 살던 집을 후손이 찾았는데

푸른 돌벽에는 흰 구름이 깊이 잠겼도다

끼쳐진 풍속이 백년토록 오래 전했으니

부로의  의복과 모자가 옛날과 같다

계유월성이유원제백사선생필운대

 

또,

계유감동  癸酉監董 

동추 박효관  同樞 朴孝寬 
가선 김창환  嘉善 金昌煥 
첨추 최윤상  僉樞 崔潤祥
절충 서치상, 유성구, 조변석  折衝 徐致祥 庾聖龜 趙㺹錫
출신 김황  出身 金璜
사과 조영훈 박윤형  司果 趙永勳 朴潤炯  이라는 암각도 있다.

 

오성(鰲城),백사(白沙),필운(弼雲),청화진인(淸化眞人),동강(東岡),소운(素雲) 등의 호를 쓴 이항복 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때 관료.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고 대북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이이첨, 허균 등이 주도한 인목대비(선조의 계비이며 영창대군의 어머니) 폐모론에 적극 반대하다가, 1618년 삭탈관직돼 함경남도 북청(北靑)으로 유배된 후 허균이 죽기 3개월 전인 1618년 5월 13일에 죽었다.

 

자료 : 이항복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덕형과 돈독한 우정으로 오성과 한음(鰲城, 漢陰)의 일화가 오랫동안 전해오게 되었다.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고, 오성부원군에 진봉되었다. 임진왜란 시 선조의 신임을 받았으며, 전란 후에는 수습책에 힘썼다. 북청 귀양길에서 읊은 시조는 잘 알려져 있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었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 사진 설명

 

▲ 휴일을 맞은 오후, 종로 서촌마을 배화여중고 뒤 켠에 있는 백사 이항복의 집터 필운대, 수성동계곡을 찾았다. ⓒ20190204 세상을향한 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배화여자중학교(여고,여대) 가는 길에서 백악산(북악산),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봉이 선명하다. ⓒ서울포스트

▲ 1898년 배화학당 창설자, 감리교 선교사인 조세핀 필 캠벨 여사 상 ⓒ서울포스트

▲ 캠벨 기념관  ⓒ서울포스트

▲ 현재 등록문화재가 된 세 건물. 1927년 촬영한 배화여고 전경. 초가지붕 민가들 뒤로 본관·생활관·과학관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서울시 제공
▲ 겸재 정선 의 '필운대(弼雲臺)' 수묵화  ⓒ자료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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