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불암산 학도암 마애 관세음보살 좌상은 명성황후 상(佛岩山 鶴到庵 磨崖 觀世音菩薩 坐像 明成皇后 像)?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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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산 학도암 에 있는 마애관음보살좌상. 3년전 처음 무심코 봤으나, 자료를 보다가 "저 보살은 여성의 자태이며 그렇다면 명성황후 를 모델로 새겼을 것이다"는 생각에 다시 찾았다. 학도암 마애보살상 은 명성황후의 염원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2014091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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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불암산을 오르다가 들른 학도암 ⓒ서울포스트자료 |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며 문화유산답사도 곁들인다. 사실 이만큼 더 값진 여가활동도 없다. 우리 것을 보고 느끼고 공유하고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아! 그렇구나!' 라는 느낌표의 현장학습 보다는 분야에 따라서 '그랬을까?'라는 물음표 를 달아보는 것도 좋을지 싶다. 달리 보고 거꾸로보고 뒤집어 보면서 자신의 관점으로 해설이나 소설을 써 보는 것.
난 우리 것에 의문을 품은 것이 더 많다. 자연물의 정의나 문화재 관리도 그렇고 결론 낸 해설도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방화로 전소된 '남대문(숭례문)' 이고, 원각사지십층석탑 보존 행태, 석굴암석불의 불필요한 보안문제,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격리,접근 차단하는 듯한 관리 등등, 몇년 전 보물로 지정된 '살곶이다리' 간지에는 '병진십월일(丙辰十月日)로 새겨져 있는데, 모든 문헌에 '병자(丙子)으로 잘못 기록된 것 등을 보면, 도대체 공공성에 관련있다는 사람들은 무엇을 봤으며 무슨 생각으로 앉아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북한산비에 진흥왕순수비라고 자기 이름을 새긴 김정희에 대해 위조,날조 의혹을 제기할 예정으로, 이건 김정희의 대사기극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공개,공시는 이미 국가 공공기관의 검증(?)을 거쳐 확정된 것이기에 바뀌기는 불가능할 정도지만 - 그러나 몇몇 것은 기념비적으로 '옳게' 바꿔놨다 - 내 나름대로 정의해보고 규정해보는 것도 탐사하는 재미를 더함은 사실이다. 공상하는 기쁨이랄까?
최근 몇 사찰을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지나친 매너리즘에 빠져 보통의 사람들은 그 이면을 못본다는 사실. 사찰내력이나 문화재 역사는 더더욱 그렇다. 국수주의자의 집단적 시각, 전제주의적 교과서,출판물 등 기술이 그 예다. 나도 한때는 우리 불교에 조계종만 있는 줄 알았고, 시국선언을 한 스님들을 보고 민중의 편에 서 매우 정의로운 행동을 한 것으로만 보았었다. 정말 역사란 힘있는 자와 승자의 몫일 뿐, 기록된 것이 다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늘 찾은 불암산 학도암은 커다란 바위에 음각된 '관음보살'상을 다르게 보기 위함이다. 그러고보니 마애불로는 이만큼 큰 보살상은 없는 것 같다. 높이 13.4m, 가로 7m라니. 3년전 불암산을 오르다 처음 봤을 땐 음각이 너무 얕아 보였고 제작연대가 조선후기 명성황후 발원물이라서 고전적인 면도 풍기지 않아 간과했다. 그 후 국가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마애불을 몇 보았는데 선의 깊이는 비슷하나 역시 오래된 색깔이다. 그러고보니 깊은 돋을새김의 마애불이 있는가하면 그림을 그리듯 조성된 마애불도 있다.
그런데, 다른 자료들을 찾다가 학도암 마애보살이 달리 보였다. '(이 마애관음보살상 이) 명성황후 발원으로 불사가 일어났고 그때 통상적인 관음보살상을 새겼다' 는 정도로 알았는데
좌상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매우 섬세한 조각으로 ① 머리 장식의 부처님을 모신 보관(寶冠)은 다른 어떤 보살상보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귀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여성이라는 결정적 근거로, 보통의 좌상에서 결가부좌에 발바닥 정도는 보이지만 무릎 아래를 새긴 예는 없다. 그런데 이 관음상은 ② 양 무릎이 같은 쪽이며(포개져) 한쪽 다리를 드러낸 채 - 엄지발가락이 바닥에 닿아 있어 '여성의 품세'가 확실하다. 기록대로 황후 의 염원이 담겼다면 그때 불사자는 '누구'를 모델로 새겼거나 혹은 새겨라고 했겠는가. 바로, 명성황후(明成皇后)다. 왕의 용모를 그린 어진(御眞)처럼, 황후 자신을 후세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이 거대한 바위에 초상을 새기고자 했을 것이다. 하여, 자신이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믿고 머리에 부처님을 모신 관음보살을 통해 부활코자 했을 것이다.
[*'보살'은 통상 남성이지만 여성도 보살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성불자에게 보살 호칭을 붙인다. 때문에 우리나라 보살상은 해수관음보살 등 여성인 경우가 더 많다. 관음보살은 그림(탱화)에 여성 전형으로 그려지지만, 그림이나 '상(像)'으로 부처님을 협시한 경우나 단독적인 '상'에서는 남성적으로 표현됨이 보통. 서양 신화에서 아름다움 - 아프로디테(그리스),비너스(로마), 지혜,풍요 등 분야별 여신, 기독교의 천사장이 보살 의 역할과 같다고 보면 됨]
150여 년이 흐른 지금, 세월의 흔적처럼 좌상 옆 검게 변한 빗물자국은 나라를 위해 뜻을 펼치지 못한 또는 엉망으로 된 현 대한민국을 보며 흐른 그분의 눈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소설이 너무 앞서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행자분이 올라왔다. '학도암은 여기 마애보살상이 포인트' 여서, (스님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가림막으로 설치한) 철구조물을 철거함이 낫다라는 처방전을 내렸더니 공감한다고했으나, 내가 앉아서 다리를 꼬고 허리를 비틀며 자세를 시연해도, 명성황후 - 여성 상이라는 설명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 학도암 관음보살상 특이점 정리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 추정 시각임)
1. 좌상 높이 13.4m: 국내 최대
2. 화려한 보관(寶冠): 국내 최고
3. 보관 속 부처: 국내 희귀
4. 무릎을 드러낸 여성의 앉음세: 국내 최초
※ 추기: [바위 측면에 새겨진 기록에는 고종 7년(1870) 명성황후가 불심(佛心)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으며, 고종 15년(1878) 학도암을 고치면서 마애불상을 보강하였다고 적고 있다.]라고 소개된 문구로 보아 내가 본 대로 '보살로 탄생한 명성황후'로 심증되나, 이날도 해당 문구는 찾지 못했다. 행자분은 동문서답(스텐 안내판만 설명)하고 측면을 열심히 둘러봐도 눈에 띄진 않고.. 대신 넷상에서 아래 이미지 를 구했다[(출처: http://blog.daum.net/kml4u/701(그림)].
황후님 뵈러 별 수 없이 또 가야지!
또,
다른 좌상들 사진과 다르게 학도암 관음보살좌상 사진의 '특징'은 '여성의 앉음세'만 찍은 이미지 가 많다. 즉, 그들도 어느 좌상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품세'에 주목했다는 증거다. 다만, '여성', 명성황후'라는 내색을 안했을 뿐. (아래 문화재청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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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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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blog.daum.net/kml4u/701(그림)] |
※ 참고할 사항: 'ㅇㅇ불'(석가불,여래불,본존불,아미타불,비로자나불,약사불)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부처(석가모니) 자체를 일컽는다. 그 외는 부처님을 돕는 상징적 협시불을 말하며 '보살'이라는 칭호가 많이 붙는다. 예로, 천수보살,미륵보살,관음(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지장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 등.
불교가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협시불의 역할이 분명하다. 예수도 12제자가 있고 부처도 10제자가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삼존불에서 보면 부처님 좌우에 있는 문수(지혜),보현(행동)보살의 구체적 역할로 부처님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조화를 유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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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도암 가는 불암산 샛길에서 북한산 정상부가 드러난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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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신여고 뒤 한국 최고의 슬랩리지, 영신1슬랩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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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사이길의 선바위. 선바위는 입석(立石, 입암立岩) 이라는 바위가 있고, 선바위(선암禪岩)가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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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면 대규모 중창불사가 진행중인 학도암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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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살님! 명성황후님 맞죠?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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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행 공간으로 천막을 친 철구조물. 수행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보살상 이 이 절의 주인이고, 지나는 나같은 사람도 보살상을 보기위해 찾는 곳이니 '이거 치워야한다'고 강조함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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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을 모신 머리의 화려한 보관과 보통 가부좌가 아닌 여성의 품세에서 여성보살로 생각되었다. 이런 자세의 보살상은 역시 "아직까지 못봤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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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방으로 용마산,관악산,남산이 보인 불암산 중턱에 대웅전이 중수되고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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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감도는 사실과 다를 수 있음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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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쪽은 영신슬랩이 있는 영신바위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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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벽 사리탑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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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초등학교에서 영신바위, 슬랩1,2,3이 보인다. ⓒ서울포스트 |
※ 명성황후 진짜 사진 찾기
현재 교과서, 신문,잡지, 인터넷상 명성황후 용모를 담은 생전의 사진이나 그림, 이미지 모두는 진위논란만 있을 뿐,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자료들이다.
황후는 국가간 갈등에서 기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진이나 초상 등을 남기기 꺼려했다고 한다. 있었어도 을미사변 이후 모두 불태워졌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 아래 올린 사진 세 장은 황후 사진이라고 공신력있는 자료집에 가장 자주 오른 이미지 다. 그러나 ①②번 사진은 '아니다'는 근거가 확실하다.
2020년 2월에 수정 : ③은 적삼을 입은 정황상 '아닐 것이다'다, 에서 내가 판단하기로는 ②,③번 사진은 명성황후로 유일한 사진에서 유이한 (두 장의) 사진이 되었다.
※ 모든 아래 기사에서 명성황후 '유일한(唯一)'에서 '유이한(唯二)'(사진)으로 바꿈.
사진 좌: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사진 우: 상하 사진은 동일 사진.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 사진 속 좌우 인물은 동일한 사람으로 서울포스트 가 판명. 2020년 2월)
↑ 위 사진에서, 좌 는 2006년 7월 25일 영국인 수집가 테리 베닛 씨가, 명성황후로 추정된다는 한 장의 사진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했다. 1894~1895년 한국을 찾은 독일인 사진작가(이름 미상)의 사진첩에서 'Die Ermordete Konigin(시해된 왕비)'라고 적힌 사진을 발견했다는 것.
사진 우 는, 1895년 일본 '전국사진화보'에 조선궁녀 로 실렸다. 그러나 이승만 의 '독립정신(1910년 출판)'에 명성황후로 실렸으나, 다시 조선일보 1935년 신년특별호 '한국사진첩'(1905년)에 조선의 궁녀로 실었다.
서울포스트 가 최종적으로 여러 형태의 사진3장은 동일 인물로 확신,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 이승만의 독립정신 이 맞아 민비(명성황후)로 판명한다.
사진이 없기 때문에 황후를 본 사람의 진술로 외모를 종합해 보면,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였던 신동식 위원은 칼럼에서 "조선조 23대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 외증손녀 윤백영 할머니가 명성황후를 뵌 선대 어른들의 말을 기억해 들려준 바는, [명성황후는 얼굴이 갸름하고, 콧날이 오똑하고, 입매가 야무지고, 눈이 가늘고, 살비듬이 흰 분...]이라는 것과,
황후를 만난 영국 고위성직자의 딸이었던 비숍 여사(1893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이래 1897년 까지 4차례 조선 답사)는 그가 남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서, [왕비는 마흔 살을 넘긴 듯했고 퍽 우아한 자태의 늘씬한 여성이었다. 피부는 너무도 투명하여 꼭 진줏빛 가루를 뿌린 듯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총명하고 냉정해 보이며 예지가 빛나는 표정이었다...]는 것과,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 조선특파원 맥켄지 기자는 황후를 주변사람들에게는 관대했으나 적과는 타협하지 않는 강한 여성으로 묘사를 했다.
이상 증언들의 공통점은 '황후 얼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또 황후와 고종 사이에서 낳은 순종 의 가계적 외모 등으로 볼 때 서민 차림의 ③번 사진이 명성황후 다. 독자분들도 추정해 보시길! (龍)
↓ 아래 추가된 사진들은 위 사진 중 ③이 '명성황후'다는 것을 확증함. 즉, 고종과 대원군과 같은 장소(배경)에서 찍은 명성황후 사진 전체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한 날, 한 시에 같이 찍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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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도암 과 마애관음보살좌상(鶴到庵 磨崖觀音菩薩 坐像) - 문화재청 자료 등
종 목: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24호
지 정: 일 2000.07.15
소 재: 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3
시 대: 조선시대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천보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학도암(조계종 직할교구)은 주위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날아와 노닐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조선 인조2년(1624) 무공화상이 불암산에 있던 옛절을 이곳으로 옮겨 창건, 이후 고종 15년(1878) 백운화상이 중창하고 고종 21년 경선화상이 불상 1구를 기금하고 탱화 6점을 그렸다.
여기 모셔져 있는 마애불은 거대한 바위면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높이 13.4m의 관음보살이다. 바위 측면에 새겨진 기록에는 고종 7년(1870) 명성황후가 불심(佛心)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으며, 고종 15년(1878) 학도암을 고치면서 마애불상을 보강하였다고 적고 있다.
당당한 체구에 얼굴은 원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다. 관의 정면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얇은 옷은 보살이 앉아 있는 화려한 연꽃무늬 대좌 위에 부드럽게 펼쳐져 있으며, 왼손 손목에는 두꺼운 팔찌을 끼고 있어서 보살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남겨진 기록과 함께 19세기 조각기법으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뛰어난 마애석불로 평가된다.
▲ 불암산 학도암 에 있는 마애관음보살좌상. 3년전 무심코 처음 봤으나, 자료를 보다가 "저 보살은 여성의 자태이며 그렇다면 명성황후 를 모델로 새겼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찾았다. 학도암 마애보살상 은 명성황후의 염원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2014091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2011년 불암산을 오르다가 들른 학도암 ⓒ서울포스트
▲ 학도암 가는 불암산 샛길에서 북한산 정상부가 드러난다. ⓒ서울포스트
▲ 영신여고 뒤 한국 최고의 슬랩리지, 영신1슬랩 ⓒ서울포스트
▲ 역시 사이길의 선바위. 선바위는 입석(立石, 입암立岩) 이라는 바위가 있고, 선바위(선암禪岩)가 있다. ⓒ서울포스트
▲ 전면 대규모 중창불사가 진행중인 학도암 ⓒ서울포스트
▲ 보살님! 명성황후님 맞죠? ⓒ서울포스트
▲ 수행 공간으로 천막을 친 철구조물. 수행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보살상 이 이 절의 주인이고, 지나는 나같은 사람도 보살상을 보기위해 찾는 곳이니 '이거 치워야한다'고 강조함 ⓒ서울포스트
▲ 부처님을 모신 머리의 화려한 보관과 보통 가부좌가 아닌 여성의 품세에서 여성보살로 생각되었다. 이런 자세의 보살상은 역시 "아직까지 못봤다" ⓒ서울포스트
▲ 전방으로 용마산,관악산,남산이 보인 불암산 중턱에 대웅전이 중수되고 있다. ⓒ서울포스트
▲ 조감도는 사실과 다를 수 있음 ⓒ서울포스트
▲ 뒤쪽은 영신슬랩이 있는 영신바위 ⓒ서울포스트
▲ 암벽 사리탑 ⓒ서울포스트
▲ 불암초등학교에서 영신바위, 슬랩1,2,3이 보인다.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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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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