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26 (월)
 http://www.seoulpost.co.kr/news/30747
[서울포스트특종 탐방]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 은 명성황후 초상 암각화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5/05/24 18:17:48)

[서울포스트특종 탐방]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세음보살좌상 鶴到庵 磨崖觀世音菩薩 坐像 은 명성황후 암각초상화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꽃들이 화사한 5월 첫 날, 명성황후님 을 뵈러 찾은 불암산 학도암
ⓒ2015050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화려한 보관을 머리에 이고 무릎을 여성가부좌로 포갠 보살상을, 금어 는 바로 명성황후 를 그렸다. 불상에서 여성가부좌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형태 ⓒ서울포스트


마애불에서 그림을 그린듯한 암각(岩刻, 巖刻) 기법은 고려 때 유행했고 조선이후 (현재까지) 사라졌다가 유일하게 여기 학도암 마애보살에서 부활했다.

학도암의 마애보살 좌상이 남성의 양무릎을 벌린 가부좌가 아닌 양무릎을 포갠 '여성가부좌(불상에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형태)'의 앉음세로 보아 여성상을 새겼고, 그 제작 연대가 고종 때 명성황후 권력이 살아 있을 때며 명성황후 발원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이 보살상은 누구를 모델로, 누구를 어떤 목적으로 새겼겠는가. 금어 는 바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그렸을 것이고 궁중석수는 그 선을 따라 새겼을 것이다.

우선, 학도암 과 마애관음보살좌상(鶴到庵 磨崖觀音菩薩 坐像,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24호)에 관한 문화재청 자료 등에서 보면, [주위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날아와 노닐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하며, 조선 인조2년(1624) 무공화상이 불암산에 있던 옛절을 이곳으로 옮겨 창건, 이후 고종 15년(1878) 백운화상이 중창하고 고종 21년 경선화상이 불상 1구를 기금하고 탱화 6점을 그렸다.

여기 마애불은 거대한 바위면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높이 13.4m의 관음보살. 바위 측면에 새겨진 기록에는 고종 7년(1870) 명성황후가 불심(佛心)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으며, 고종 15년(1878) 학도암을 고치면서 마애불상을 보강하였다고 적고 있다.

당당한 체구에 얼굴은 원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다. 관의 정면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얇은 옷은 보살이 앉아 있는 화려한 연꽃무늬 대좌 위에 부드럽게 펼쳐져 있으며, 왼손 손목에는 두꺼운 팔찌을 끼고 있어서 보살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남겨진 기록과 함께 19세기 조각기법으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뛰어난 마애석불로 평가된다]고 적고 있다.

옛날엔 두루미,왜가리, 백로, 황새, 학 등은 동네 소나무숲에 집을 짓는 흔한 풍경이었다. 학도암은 중랑천 학이 날아 들어올 수 있는 풍광 좋은 터로 전해오지만,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으로 궁중을 떠나 음성 장호원 오빠집(민응식)으로 가면서 잠시 머문 곳이기에 황후를 '학(鶴)'에 비유했을 개연성도 짙다. '학이 도래했다'는 절이름 학도암(鶴到庵)도 고종때 생겼기 때문이다.

↑ 서울포스트 가 확증한 명성황후 유이한 사진(참고 자료)

※ 모든 아래 기사에서 명성황후 '유일한(唯一)'에서 '유이한(唯二)'(사진)으로 바꿈.

사진 좌: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사진 우: 상하 사진은 동일 사진.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 사진 속 좌우 인물은 동일한 사람으로 서울포스트 가 판명. 2020년 2월)

 

↑ 위 사진에서, 좌 는 2006년 7월 25일 영국인 수집가 테리 베닛 씨가, 명성황후로 추정된다는 한 장의 사진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했다. 1894~1895년 한국을 찾은 독일인 사진작가(이름 미상)의 사진첩에서 'Die Ermordete Konigin(시해된 왕비)'라고 적힌 사진을 발견했다는 것.

사진 우 는, 1895년 일본 '전국사진화보'에 조선궁녀 로 실렸다. 그러나 이승만 의 '독립정신(1910년 출판)'에 명성황후로 실렸으나, 다시 조선일보 1935년 신년특별호 '한국사진첩'(1905년)에 조선의 궁녀로 실었다.

서울포스트 가 최종적으로 여러 형태의 사진3장은 동일 인물로 확신,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 이승만의 독립정신 이 맞아 민비(명성황후)로 판명한다.

 

 

오늘은 '명성황후 발원 여부의 문구'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한(韓)'씨 들이 주축이 돼 중창한 '증명(證明)'과 화승인 금어(金魚) '장엽'과 궁중석수 5명(김흥연 이운철 원승천 박천 황원석)의 이름도 발견했다.
[※ 학도암 마애불은 1872년 명성황후의 시주로 조성된 것으로 사지(寺誌)에 기록됨]

중계동에 들어서면 수 백년 된 은행나무 여러 그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은행나무가 숲을 이뤘을 곳으로 생장이 재미난 모양도 눈에 든다.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은행(銀行 Bank)이 아닌 은행(銀杏)을 말한다. 직경 1.5m쯤의 고목 느티나무는 있고.

부처님 오신날 이 이번 달에 들었기에 연등이 걸려있는 황후님 께 알현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이번에는 거대한 바위 뒤편까지 돌아 미로같은 틈을 일일이 조사했다. 혹시나 적혀 있을 무슨 문구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명문이 없어도 이미 당시대에 있었던 불사(佛事)는 구성이 완료되었다.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 계신 명성황후님!"

▲ 한국 최고의 불암산 영신슬랩 ⓒ서울포스트
▲ 생장이 재미난 수 백년 은행나무군 ⓒ서울포스트

▲ 불암산은 곳곳 채석 흔적이 있다. ⓒ서울포스트
▲ 바위 사리탑 ⓒ서울포스트






▲ 북한산 정상부 삼각봉우리가 보이는 하산길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에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


관련기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게시판모음

서울포스트
 
뉴스소개 | 광고제휴 | 이메일구독 | 공지알림 | 개인정보보호 | 기사제보

신문등록: 서울 아00174호[2006.2.16, 발행일:2005.12.23]. 발행인·편집인: 양기용.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49길 40. Tel: (02)433-4763. seoulpost@naver.com; seoulpostonline@kakao.com
Copyright ⓒ2005 The Seoul Post. Some rights reserved. 청소년보호책임자: 양기용.
서울포스트 자체기사는 상업목적외에 전재·복사·배포를 허용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