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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특종 자료] 불암산 학도암 그리고 명성황후 유일한 얼굴 사진 (추정→심정→확정)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5/05/24 18:16:32)

[서울포스트특종 자료] 불암산 학도암 그리고 명성황후 유일한 얼굴 사진 (추정→심정→확정)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여러 자료를 조사한 결론으로 위 사진은 명성황후 가 확실하다. ⓒ20150524 서울포스트

 

※ 모든 아래 기사에서 명성황후 '유일한(唯一)'에서 '유이한(唯二)'(사진)으로 바꿈.

사진 좌: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사진 우: 상하 사진은 동일 사진.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 사진 속 좌우 인물은 동일한 사람으로 서울포스트 가 판명. 2020년 2월)

 

↑ 위 사진에서, 좌 는 2006년 7월 25일 영국인 수집가 테리 베닛 씨가, 명성황후로 추정된다는 한 장의 사진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했다. 1894~1895년 한국을 찾은 독일인 사진작가(이름 미상)의 사진첩에서 'Die Ermordete Konigin(시해된 왕비)'라고 적힌 사진을 발견했다는 것.

사진 우 는, 1895년 일본 '전국사진화보'에 조선궁녀 로 실렸다. 그러나 이승만 의 '독립정신(1910년 출판)'에 명성황후로 실렸으나, 다시 조선일보 1935년 신년특별호 '한국사진첩'(1905년)에 조선의 궁녀로 실었다.

서울포스트 가 최종적으로 여러 형태의 사진3장은 동일 인물로 확신,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 이승만의 독립정신 이 맞아 민비(명성황후)로 판명한다.

 


과학의 발달로 만들어진 사진기(사실을 투사하는 기계)에 찍힌 왕족은 고종(명성황후)과 순종(순정효황후), 엄귀비(영친왕 친모), 양귀비(덕혜옹주 친모), 흥선대원군 등이다.

이 중 아직까지 논란을 빗은 사진이 '명성황후'. 한 때 교과서에조차 궁녀 사진이 게재되는 등 이견이 분분하다가 2006년에서야, 영국인 테리 베닛(56) 씨에 의해 한국 관련 소장품 2600여 점 가운데 포함돼 있는 독일인의 사진첩에 등장한 명성황후 추정 사진이 등장한다. (서울포스트 가 확정하건데, 이 사진이 진짜 명성황후 (유일한 아인) 유이한 사진, 아래)

이 명성황후 추정 사진 설명문에는 필기체로 'Die Ermodete Konigin'이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시해된 왕비'라는 뜻. 당시 학계에서는, [사진의 바로 아래쪽에 있는 대원군 사진은 명성황후 추정 사진의 배경과 정확히 일치,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것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실제로 명성황후를 만났던 이들이 평가했던 '눈빛이 차가우면서 예지력을 갖췄다'는 지적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점도 일단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고 했으나, 명성황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진 작가와 촬영 배경 등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이견도 있었다.

명성황후는 비운의 황후. 자신과 한민족에게 일본으로부터 치욕을 당한 분노로 사실적 평가가 금기시 된 점이 있으나, 역사에서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 사치가 심했고 미국산 담배도 즐겨 피웠다고 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맞서 초기 친일 개화파와 외척 민씨들을 대거 등용, 매관매직으로 세도정치를 구축했다. 우리 역사에서 황후를 개혁적인 성향으로 평가하는 면이 있는데, 이는 대원군과 대립적 관계로 인함일 뿐, 내심은 개혁적이지 못하고 사리사욕과 부패에 더 가까운 면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친청 세력인 흥선대원군과 갈등을 보이다가, 황후의 친일적 성향으로 조선군대를 홀대해 임오군란이 발발했고, 대원군의 지휘하에 군인들이 궁궐을 습격하자, 불암산 아래 학도암을 거쳐 충북 음성(장호원)으로 피신했다. 행방을 모른 대원군이 황후 서거 국상을 발표했으나, 고종에게 살아있음을 알리고 궁으로 복귀한 다음,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대원군을 청국으로 압송케 한다.

청일 갈등이 심해지자 대원군은 청나라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한다. 그러나 일본이 승리한 청일전쟁이후 대원군은 일본 세력과 손잡고 친러세력으로 변한 명성황후 제거에 나선다. 일본 낭인이 경복궁을 습격해 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은 대원군이 그 현장에 있었다.

자, 이상에서 보면, 대원군은 아들(고종)의 외척 세력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미 안동 김씨, 풍양 조씨들의 세도정치 폐해를 겪었고, 조선 왕권이 흔들린 곳곳에 외척세력의 비대 때문이라는 것을 대원군은 잘알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죽여야 하고,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죽여야 한 구한말 외세에 의한 조선의 갈등이었다. 결국 고종까지 살해돼, 왕과 왕비가 일본주도하에 시해되기에 이른다.

대원군은 이런 상황을 예견해, 고종 왕비 간택부터 신경을 썼기에 명성황후(민자영)의 이미지는 쉽게 결론 내려질 수 있다.

☆ 가정: 명성황후는 못생겼다.
★ 증명: 흥선대원군이 아들의 배필을 찾을 때 첫째 조건은 '볼 품 없고 능력없는 - 평범한 여자'였다. 호랑이보다 고양이를 원했다.

☆ 가정 : 가족과 같은 장소(배경)에서 찍은 사진속 여인은 명성황후 가 맞다.
★ 증명 : 노리개로 부채를 들고 있다는 점으로보아 왕과 함께한 하인의 행위로 볼 수 없어 적어도 대등한 지위로 보인다. 황후 복장의 소박함은 전 가족이 동일한 평상복 차림이어서 일상을 찍은 사진이다. 고로, 이 사진의 복식으로 지위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 그간 우리 스스로 오해하게 했던 문제점
1. 왕비는 당연히 미인이어야 했다. → 실제는 '아니다'
2. 왕비는 궁중복을 입은 채 품위있는 사진일 것이다. → 혼미스런 정국으로 인해 살해 위협으로부터 '품위는 필요었었다'. 또 이 자료 사진들은 왕가의 위엄이나 집무를 찍은 것이 아니고 일상을 기록한 것이므로 역시 복식으로 지위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또 사진이 부채와 적삼 차림이라지만 이 옷매무새만도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고종,순종,대원군,명성황후가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 같은 장소의 동일한 지위를 나타낸 유일한 증거로, 노리개에 해당되는 '명성황후 손에 든 부채' ⓒ서울포스트자료

②번: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③번: 서울포스트 가 명성황후 사진으로 최종 판명. 2020년 2월

(※ ②,③사진 인물은 동일인으로 서울포스트 가 최종 판명함)

 

↑ 위사진에서 ②번은 1895년 일본 '전국사진화보'에 조선궁녀 로 실렸다.
그러나 이승만 의 '독립정신(1910년 출판)'에 명성황후로 실렸으나, 다시 조선일보 1935년 신년특별호 '한국사진첩(1905년)'에 조선의 궁녀로 실었다.
서울포스트 가 최종적으로 여러 형태의 사진3장은 동일 인물로 확신,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 이승만의 독립정신 이 맞아 민비(명성황후)로 판명한다.  

③번은 2006년 7월 25일 영국인 수집가 테리 베닛 씨가, 명성황후로 추정된다는 한 장의 사진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했다. 1894~1895년 한국을 찾은 독일인 사진작가(이름 미상)의 사진첩에서, 'Die Ermordete Konigin(시해된 왕비)'라고 적힌 사진을 발견했다는 것.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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