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강화도 동막해변, 마니산 - 하늘,바다,섬,들,숲,바람②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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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동막해변과 마니산. 바다와 가을이 익어가는 노란 들녘과 푸른 산 ⓒ20121001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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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에 참성단에서 본 남쪽 흥왕리 일대 ⓒ서울포스트 |
가을이 진행된 며칠 노심초사했다. 혹시 그 들녘의 벼는 태풍에 무사할까? 아직 푸른빛일까 익었을까? 노랗게 익어 혹시 추수가 다 됐으면 어떡하지...?
10월 1일. 몹시 궁금했고 한편 날짜까지 기다림으로 설레기 그지 없었다. 지도를 검색하고 마니산(摩尼山 469m) 오르는 (트레킹) 코스를 정했다. 대부분 함허동천 이나 정수사 쪽을 택하지만, 기왕에 계획했던 것이면 바다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올라 때때로 변한 강화도의 하늘과 바다와 섬과 들과 숲과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남쪽 동막해수욕장과 최남단 분오리 돈대 에서 시작하자.
오늘의 포인트는 갯벌 넓은 바다와 '노랗게 물든 흥왕리 황금벌판과 푸른 마니산'의 조화. 지난 6월부터 그 풍경을 상상해 왔다. 그러니 동막해변과 돈대는 덤이다. 나만 열광한지 모르나 강화도의 가을에서 노란색과 녹색의 대비를 콕 찝어내지 못한다면 헛것 보고 다니는 꼴일 것이다.
우리 시골이 그랬었다. 한껏 수척해진 도랑물가로 노란 벼이삭이 가을바람에 살랑이고 게으른 잠자리 배회한 허공을 응시하노라면 부드러운 산능선이 펼져지곤 했다. 나의 가을이 그랬으니 울긋불긋 남들이 환상이라는 단풍에 한번도 환호한 적이 없다. 촌스럽게시리...
동막해변. 양도에 즐비한 차들 사이로 순환버스가 정차했다. 속을 드러낸 바다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뻘밭인지 끝이 없다. 소풍나온 사람들 사이로 바쁘게 걸음을 재촉했다. 정상과 참성단을 거쳐 흥왕리 들판을 가로지르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본오리돈대를 돌아 바로 산꼬리를 잡았다. 무조건 능선을 타다보니 123m봉. 다시 올라간 것만큼 내려와 옛길 구릉을 건너 올랐다. 고도를 높이니 숲사이로 언뜻언뜻 바다와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오른 곳이 235m봉우리다. 여기서 넘어야 할 314m봉과 정상능선길, 참성단이 까마득히 올려 보였다. 그래도 쉬엄쉬엄 볼 것은 보고 가야했다.
※ [분오리돈대(分五里 墩臺) : 화도면 사기리 소재. 강화도 최남단에 위치하며 서쪽 송곶돈대(松串墩臺)까지 약 3km 떨어져 있다. 고려 때부터 잦은 외세의 침입을 겪으면서 강화도는 돈대에 군사요충지를 구축하여 방위시설로 썼다. '돈대'란, '평지보다 조금 높이 두드러져 평평한 땅' 이라는 뜻.
잠깐, 강화도 화도면(江華島 華道面)은 옛날에는 고가도(高駕島)라는 섬으로 하도(下島)라고 불렸으나 조선때 상도(上島)인 혈구도(穴口島)와 뱃길을 메워 연결했다. 지금은 대평야를 이룬 간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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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막해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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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오리 돈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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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막해변과 마니산 줄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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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었던 바다는 만조가 되었다. 마치 북한산 의상봉능선을 타는 것처럼 능선 양 옆으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서는 바다와 섬과 들판도 있다. 흥왕리와 초피산 쪽을 두리번거리며 정상부능선에 접어들었다.
바다에서 시작한 이 산은 500m가 안되지만 서울의 600m급 - 관악산이나 수락산에 오르는 것과 맞먹는다. 남쪽은 급경사를 이뤄 아예 등산로가 없다. 조심해야 할 암릉구간도 있으며 바위는 불규칙한 무정형으로 잘게 갈라져 있는 것이 특징. 아마 해풍과 육풍으로 밤낮 기온차가 심해 부서지지 않았나 싶다. 또 화강암질은 매우 단단하고 매끄러워 미끄러지기 쉽다.
참성단(塹城壇, 사적 제136호) 앞 헬기장에 도착하니 해가 떨어진다. 개천절을 맞아 천제단에서 민족의 번영을 빌려는 형식은 못갖췄지만 마음으로는 모두가 저 들녘처럼 풍요로와지기를 기원했다. 흥왕리 벌판을 걸을 것이라는 기대는 아까 김밥 한 줄 먹으면서 접었었다. 내년을 기약하며 못내 아쉬워, 가로등 켜진 동네 사진을 마지막으로 단군로를 타다가 기도원계곡으로 내렸다.
근래들어 강화도는 축복의 땅으로 바뀌고 있다.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대안 휴양지로 각광 받으며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위락시설이 들어선다. 민족의 성지 이면에 역사에서나 개화기 100여년은 피와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땅으로, 그때의 격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산야를 볼 때 마음 한구석에 짠해 옴도 느껴진다. 오늘도 못밟은 흥왕리 들판을 유토피아로 남겨 놓으며...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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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부와 참성단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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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산 동쪽 초피산 일대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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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도면 일대 평야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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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에서. 올라 온 길 돌아보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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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에서 본 참성단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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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성단 중수비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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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군로에서 지나 온 길 보며. 참성단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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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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