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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특집] 영원한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 (사진,동영상)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2/02/14 23:18:10)

[특집 MV,영상] 영원한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 (사진,동영상)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나는 '맑고 깨끗한 소리'가 좋다. 웅장하거나 복합적인 요소는 현대 사회에서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고, 특별히 청아하다는 소리들은 특별한 자연현상 아니고는 접하기 쉽지 않다. 피아노보다는 바이얼린에 쉽게 감응하는 것도, 서양음악을 들으면서 모짜르트의 바이얼린 곡이 가장 먼저 귀를 뚫었던 인연 때문이리라.

목소리로써 여기에 가장 근접한 사람을 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휘트니 휴스톤)'을 꼽았다.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되었던 휘트니는 마이클 잭슨과 함께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뮤지션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열광하지는 않았어도 나도 모르게 그의 음반을 3장이나 사 들었다는 것은 당시 매우 인상적이었음을 말해준다.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1963-2012) ⓒ자료사진

지금이야 워낙 비트가 강한 음악들이 유행해 개인의 보이스가 아니라도 성공할 수 있는 음악시장이라서, 훌쩍 떠난 그들에 긴 여운이 남을 것이다.

올해 48세인 휘트니는 최근 몸의 발란스가 완전히 깨진 상태였다. 그의 죽음도 생활의 불균형에서 돌연 찾아왔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비명에 간 또 한 사람의 세계적인 뮤지션. 그가 대중음악에 남긴 족적은 남자 '마이클 잭슨'에 비견할 정도다. 공통적으로 흑인인 것도 그렇고 공통적으로 몸이 가냘픈 것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울(Soul)과 리듬앤부르스(R&B)에 기초한 창법과 가창력은 아마 백인이나 황인들은 그 정도의 깊이와 넓이에 도달하기가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2009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에 이어 2012년 '팝의 여왕' 휘트니휴스턴 사망까지 인류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잃었지만 그들의 행적은 대중문화를 통해 2008년 미국에서 유색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하게 한 혁명도 이뤘다. 아마 그들의 음악적 탈렌트는 온누리에 아름다운 소리로, 영원한 제왕으로 오랫동안 울려 퍼질 것이다.

▲ 마이클 잭슨 과 ⓒ자료사진

'팝의 디바' - 오페라의 유명 여가수에게 칭해지던 'DIVA' 라는 호칭을 대중가수로서 최초로 받은 '휘트니 휴스턴'은 1985년 1집 앨범 'Whitney Houston'으로 데뷔한 뒤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1980년대와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폭발적인 성량으로 전 세계적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그녀는 그래미상 6회, 빌보드 뮤직 어워드 16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22회 등 2010년까지 총 415번의 수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을 받은 여성 아티스트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라 있다. 또 7곡을 연속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려놓아 팝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출생, 가스펠 싱어로 유명세를 날리던 시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자, 디온 워릭(Dionne Warwick 내한공연도 했음)의 조카였고, 유명가수인 아리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그녀의 대모(代母)다. 그런 영향으로 모델활동을 한 그가 팝-소울 싱어가 되리라는 예측은 일찍부터 가능했다. 어머니가 음악목사로 있던 교회의 성가대에서 기초를 다지고 15살때부터 시시가 출연하는 나이트클럽에서 같이 노래해 일찌기 팝계의 생리를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예민하고 힘있는 가스펠적인 목소리는 사람들을 흠칫 놀라게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안정된 톤, 구사력, 창법, 유연한 테크닉 등의 천부성은 팝악단의 반주보다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느낌이 든다. 그의 우아한 보이스 칼라와 클래시칼한 분위기의 크로스 오버화된 음악들이 맞아 떨어져 섬세한 혼재를 느끼게 한다.

팝계를 마이클 잭슨이 독점하고 있을 때, 여성 가수로는 마돈나가 뮤직비디오 가수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을 80년대 중반 나타난 휘트니는 젊은 가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폭풍처럼 '머라이어 캐리' 가 데뷔할 때도 '휴스턴의 도플갱어'란 찬사가 있었을 정도다. 이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리한나까지 여성 싱어들은 계보를 형성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휘트니를 능가한 가수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현이 휘트니를 많이 닮았다. 6년전쯤 미국에서 잠시 건너 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할 당시 '참 노래 잘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국내 반응이 시원찮다가 최근 '나가수'로 마침내 빛을 본 경우.

ⓒ자료사진

휘트니의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1985년)'는 4곡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두 번째로 내놓은 앨범 'Whitney(1987년)'도 3곡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1990년에는 7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의 소유자 '머라이어 캐리'의 등장으로 거센 도전을 받지만 1992년 영화 '보디가드(Body Guard)'의 대히트로 영원한 디바의 자리에 남는다. 주연을 맡은 영화가 흥행 뿐만 아니라 그가 부른 주제곡(OST) 'I Will Always Love You'는 빌보드 싱글 차트 14주 연속 1위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머라이어의 'One sweet day(1995, 16주)'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그러나 이는 당대의 유망한 보이즈 투 멘과의 듀엣곡임에 진정으로 휘트니 휴스턴을 능가했다고 볼 수 없다).

1992년 랩댄스의 대가인 연하 바비 브라운(Bobby Brown 43)과 결혼, 2007년 이혼하고 파산과 마약에 연루되는 등 힘든 시기를 겪었다.

휘트니과 양대 산맥이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그가 세상을 은혜롭게 해준 가장 위대한 목소리를 지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 "우리는 또 하나의 전설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휘트니는 2010년 내한공연을 한 바 있다. (龍)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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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자료사진
▲ 어머니 시시 휴스턴 과 ⓒ자료사진
▲ 가족과 ⓒ자료사진
ⓒ자료사진
▲ 내한공연 때 ⓒ자료사진
▲ 내한공연 때 ⓒ자료사진
▲ 마이클 잭슨 과 ⓒ자료사진
▲ 엘톤 존 과 ⓒ자료사진
▲ 알리 와 ⓒ자료사진
▲ 넬슨 만델라 와 ⓒ자료사진
▲ 머라이어 캐리 와 ⓒ자료사진
▲ 영화 스틸 - 덴젤 워싱턴 과 ⓒ자료사진

ⓒ서울포스트

1집 앨범에서,
You Give Good Love
Saving All My Love For You
Great Love Of All (③)

2집 앨범에서,
I Wanna Dance With Somebody (①)
So Emotional
I Know Him So Well (휘트니 버전, 뮤지컬 '체스 Chess' 주제가)

그리고 공전의 싱글 히트곡 I Will Always Love You (②) 등이 유명.

음악적 특성상 발라드한 곡이 보통 생명력이 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2집이 가장 좋으며, 영화와 같이 유명세를 탄 ②번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①번이 가장 휘트니적인 곡이라고 생각한다. 소름이 쫙 돋을 정도.. 에너지가 팍팍 솟는.. 10념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 동영상 플레이 가 안되거나 계정해지 메시지 가 뜨면 해당 사이트 로 이동하여 들으시면 됩니다.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Whitney Houston


I Will Always Love You - Whitney Houston


I Know Him So Well - Whitney Houston (& Cissy Houston) Version

 

 


아래 좋은 기사 첨부:

전설로 남은 디바..휘트니 휴스턴
"20세기 기념비적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2012.02.12 ) 임미나 기자 = 11일(현지시간)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은 20세기 최고의 팝 보컬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흑인 특유의 솔(soul)이 충만하면서도 지나치게 청승맞지 않고 폭발적인 성량을 지녔으면서도 과하게 내지르지 않는 그의 절제된 창법은 여성 팝 보컬의 교본으로 여겨진다.

휘트니 휴스턴은 가스펠 가수인 어머니 씨씨 휴스턴으로부터 가수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교회에서 노래를 시작하고 어머니와도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던 그를 가수로 발탁한 것은 팝 음악계의 거물인 클라이브 데이비스였다.

데이비스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휴스턴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며 "그녀가 어느 클럽에서 노래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stunning impact). 어린 소녀가 노래에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데이비스의 안목은 정확했다. 휴스턴은 1985년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데뷔 앨범으로 전 세계 2천3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역대 여가수 중 데뷔 앨범을 가장 많이 팔아치운 가수로 기록된 그녀는 이후 팝의 역사를 새로 썼다.

뉴욕타임스는 그녀에 대해 "같은 세대 가수들 중 가장 강하게 가스펠로 다져진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녀는 기존 가스펠 가수들의 매너리즘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녀는 노래에 눈물 가득한 연약함을 투영하는 대신 시원한 자신감과 힘을 불어넣어 팝 발라드를 웅장하게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호소력 짙은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면서도 더 깔끔하고 부드러운 음색에 정교한 감정처리가 일품인 그녀의 노래는 흑인들뿐 아니라 백인들의 귀까지 사로잡았다. 게다가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춘 그녀를 미국인들은 몹시 사랑했고 20대 초반의 이 젊고 매력적인 여가수를 '팝의 순수한 공주'로 떠받들었다.

이런 인기는 특히 1992년 그녀가 주연하고 주제곡까지 부른 영화 '보디가드'가 나오면서 전 세계로 확대됐다.

데뷔 7년차인 그녀의 무르익은 가창력이 폭발하는 주제곡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는 영화보다 노래가 더 히트를 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간 1위를 기록했고 앨범은 전 세계에서 발매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앨범 중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됐다.

그녀의 뛰어난 음악성은 최고 권위의 음악상인 그래미 6차례 수상에서도 증명된다. 1986년과 1988년, 1994년까지 세 차례나 '최우수 팝 여성 보컬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최우수 알앤비(R & B) 여성 보컬상'을 받았다. 나머지 두 개는 1994년 '보디가드' 앨범으로 받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상이다.

그녀의 창법은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990년대 머라이어 캐리가 등장했을 때도 "휘트니 휴스턴을 따라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비욘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앨리샤 키스 등 이후 팝 무대를 주름잡은 대표적인 여가수들도 휴스턴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LA타임스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20세기 팝 무대에 기념비처럼 우뚝 서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양식을 정의하고 수많은 모방자에게 영감과 꿈을 심어주는 목소리들이 있다. 휘트니 휴스턴은 단연 그 목소리들 중의 하나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전설로 남게 됐다.


I Wanna Dance With Somebody

Oh
Yeah woh
Hey yeah ah ooh yeah ah ha
Yeah I want to dance

1.
Clock strike upon the hour and the sun begins to fade
There's still enough time to figure out
How to chase my blues away
I've done alright up till now
It's the light of day that shows me how
And when the night falls
Loneliness calls

Oh I wanna dance with somebody
I wanna feel the heat with somebody
Yeah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ith somebody who loves me
(Repeat Chorus One more)

2.
I've been in love and lost my senses spinning through the town
Sooner or later the fever ends
And I wind up feeling down
I need a man who'll take a chance
On a love that burns hot enough to last
So when the night falls
My lonely heart calls

Oh I wanna dance with somebody
I wanna feel the heat (with somebody)
Yeah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ith somebody who loves me
(Repeat Chorus One more)

(Somebody ooh somebody ooh)
Somebody who loves me yeah
(Somebody ooh somebody ooh)
To hold me in his arms oh

I need a man who'll take a chance
On a love that bruns hot enough to last
So when the night falls
My lonely heart calls

(Repeat Chorus Tw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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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정리·편집]=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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