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와인이야기 - 얼떨결에 연 '마릴린 멀로 2005'
-SPn 서울포스트, 권종상 자유기고가
참 오랜만에, 와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네요. 오랜 친구의 방문으로 뜻하지 않게 뜻하지 않은 와인을 열게 됐습니다. 이유는 이 친구가 레드와인 파였고, 또 준비한 음식이 스테이크여서 와인 말고는 별로 다른 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오래 전 국민학교 다닐 때 이야기부터 계속 되짚어 나가고, 또 그때 어린 나이에 좋아했던 여자친구들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면서 준비했던 와인이 떨어졌고, 그래서 잘 보관했던 것 한 병을 딴 것이 그 유명한 '마릴린 멀로' 의 2005년 산이었으니...
이상하게 어제는 캘리포니아로만 달렸습니다. 제일 처음 딴 와인이 로드니 스트롱의 피노 느와. 원래 이 지역에서 피노가 잘 되는 곳이라면 까르네로 지역이 있지만, 뭐, 캘리포니아의 피노 느와는 산타바바라처럼 일교차가 큰 지역이 아니라면 나름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피노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흑설탕의 향기와 이런저런 부케들이 느껴지지요. 역시 강점은 편안함이랄까. 장미향기, 가벼움 속에서도 느껴지는 풍성함 같은 것. 캘리포니아 피노의 특징이지요.
그 다음에 연 와인은 '노벨라'의 쁘띠 시라였습니다. 파소 로블레스 지역의 와인이지요. 캘리포니아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1번과 101을 타고 다닐 때, 못 들러봐서 섭섭했던 지역 중 하나입니다. 미국이 한참 와인 광풍이 불고 있을 때, 원래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포도를 재배했고 이 때문에 테이블 와인에 적합한 포도들이 별 개성없이 재배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의 진판델은 원래 유명한 편이긴 했고, 또 한 나무에서 고루 익지 않는 진판델이라는 포도의 특성상 이들을 막 털어 로제 형태로 만든 화이트 진판델이라는(미국 와인의 코카 콜라...) 와인이 주요 생산 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엉뚱한 데서 생겼습니다. 나파, 소노마 등의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고, 미국이 닷컴 붐 등 이른바 실물이 아닌 허수의 경제, 돈놓고 돈먹기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와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어 와인메이커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또, 갤로나 몬다비 같은 대형 와인회사가 '찍어내는' 와인 맛에 질린 사람들 중, IT 기업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중 조기퇴직한 사람들이 직접 포도 재배와 양조에 뛰어드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주요 포도 생산 지역들의 부동산 값이 그 수요에 의해 천정부지로 뛰게 된 것이지요.
UC 데이비스에서는 매년 충분한 실력과 야망을 가진 와인메이커들이 배출됐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나중에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포도주 산업이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원래 포도주가 아닌 맥주가 탄생의 배경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나라이고, 와인을 문화로 가지고 있던 이민자들의 출신국은 이탈리아와 독일(그나마 독일도 좋은 백포도주를 만들긴 하지만 맥주에 더 특화된 나라라) 정도였던 겁니다. 따라서 자국내 포도주 소비 여력은 한계가 있었고, 엄청난 물량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캘리포니아 한 주만 따로 떼어 놓더라도 전 세계 4위의 와인 생산국이지요. 어쨌든 이들은 나파와 소노마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을 하기 좋은 곳을 찾기 시작했고, 파소 로블레스 역시 그들의 눈에 띈 지역의 하나였습니다. 워싱턴주 등 서북미 와인의 전성기가 도래했던 것도 사실 이런 훌륭한 와인메이커들이 사방을 발품 팔며 돌아다녔던 것의 결과인 셈이지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저변을 넓혔다 생각됐던 와인 붐은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격랑을 만나면서 꺾이게 됩니다. 단순히 은행을 통해 융자를 받은 개인들 뿐 아니라 그 은행까지 넘어가버리는 상황. 부동산과 주식은 오를 거라는 낙관 속에서 와인과 시가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경제적 쓰나미가 덮쳤습니다. 그들은 집을 빼앗겼고, 길거리로 내앉거나 엄청난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집을 내던지고 임대 주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비 패턴엔 당연히 변화가 왔습니다. 더 이상 그들의 샤핑 리스트엔 와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경제가 약간의 호황세로 돌아섰을 때, 그들은 와인 대신 맥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의 붐은 미국에서 이런 과정을 겪고 생겨난 것입니다.
그 바람에 망해 나간 와이너리들이 꽤 됐고, EOS 라는 이름의 와인 회사가 노벨라를 흡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벨라의 이름으로 나오는 와인은 시장에서 사라졌고, 그 재고 와인들은 이런 물건들만 찾아 처분하는 디스카운트 매장으로 흡수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와인을 사 두었다가 딴 것이고. 쁘띠 시라라는 포도는 프랑스에서는 뺄루쟁, 또는 뒤리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시라와는 전혀 관계 없는 포도지만 일단 묵직하고 태닌이 받쳐 주어 장기 숙성이 가능한 품종 중 하나입니다. 산도가 충분할 경우, 이 품종은 진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명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포도주도 이렇게 우리들의 만남 속에 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연 와인은(이 다음부터는 위스키였으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이걸 왜 지금 땄지 싶을 정도로... 조금 더 와인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열 것을... 하는 후회가(와인쟁이들이 어쩌면 종종 하는 후회일수도 있는) 들지만, 이미 리사이클 빈으로 병이 들어가버린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만... 전설의 컬트 와인, 마릴린 멀로의 2005 년산이었습니다. 10년 됐으니 따자.... 뭐 이런 마음도 있었고, 친구에게 좋은 와인을 대접하자는 마음도 물론 있었을 겁니다만... 그래도 얘 말고 다른 애 딸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든 것은, 이게 그 세월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건했다는 것이고, 또 요염한 맛으로 이미 상당히 꽐라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던 우리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상태로 있어도 또 10년을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컬트는 컬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인 역시, 몇년 전만 해도 경매로 팔리면 꽤 높은 가격을 받았던 와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격을 살펴 보니, 병당 1백달러 아래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때 미국에서 '와인 펀드'라는 것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역시 와인이란 것의 위상은 꽤 추락한 것이지요.
뭐, 그래도 친구가 찾아와 함께 와인을 마셔주니 그것은 즐거운 일이었지요. 이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애틀, 지금 바람은 살랑살랑 응접실을 넘어 들어옵니다. 바깥에선 분명히 뜨거운 바람이다가, 그것이 집안에 들어와서는 시원함으로 전이됩니다. 와인들의 위상이야 꺾여 버렸겠지만, 함께 마시는 사람이 좋고 술 자체가 좋으니, 제겐 어떤 와인이든 다 좋은 와인이었겠지요. 그 친구에게도 그랬기를 바라고.
시애틀에서...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권종상)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