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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종로 경운동,운니동 운현궁 지나, 창덕궁 돈화문 지나,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내 한국 근대건축물 '대한의원(大韓醫院)' 그리고 함춘원지(含春苑址),경모궁지(景慕宮址)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21/01/09 20:12:20)

[탐방] 종로 경운동,운니동 운현궁 지나, 창덕궁 돈화문 지나,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내 한국 근대건축물 '대한의원(大韓醫院)' 그리고 함춘원(含春苑)터,경모궁(景慕宮)터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鍾路 慶雲洞,雲泥洞 雲峴宮 지나, 昌德宮 敦化門 지나,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내 한국 근대건축물 '大韓醫院' 그리고 含春苑址,景慕宮址

 

▲ 종로 거쳐 서울대병원 내 근대건축물 대한의원 그리고 함춘원지(경모궁터) 탐방
ⓒ2021010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참고자료 사진
↑ 참고자료 사진
↑ 참고자료 사진

 

경험상, 1월5일 전후 1주일이 가장 추웠다. 그러니까 길게 잡아 12월25일 크리스마스부터 1월15일까지 겨울 한파시즌이라고 보면 된다. 올해 지난주엔 소낙눈이 퍼부었고 부산,제주까지 수 십년 내 최고의 추위란다. 일이 없어 겨울잠을 자야하는 신세로, 아주 오랫만에 시내를 나가 서점에도 들르고 그간 탐방을 생각했던 서울대병원내 근대건축물 '대한의원'의 자태를 담기로 했다.

 

'시의 근원을 찾아서(허만하, 품절)', '오름 오르다,타오르는 물(이성복, 품절)', 다행히 푸시킨 의 '보리스 고두노프/모차르트 와 살리에리'는 손에 넣었다. 1990년대 초 경운동 본사 근무할 때 인사동과 접한 낙원동 해장국집은 30년 전 1000원, 지금 2000원, 테이블도 밑반찬도 맛도 똑같다. 그때 사무실 건너 운현궁, 조금 아래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10층석탑,보물 제3호인 대원각사비(원각사비),근대건축물(사실은 적산기옥으로 분류)인 덕성여대,교동국민학교(한국최초 소학교) 등을 소 닭보듯 하고 다녔으나, 대신 중앙청,중앙박물관으로 사용했던 일제 조선총독부건물, 인사동미술관,골동품골목들은 비교적 샅샅히 뒤졌다. 또 청계천 비디오와 레코드가게를 자주 간 것도 문화적허기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정말 다행인 게, 내 세대가 1940년대부터 본격화해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문화,예술,과학,기술,종교,인문학 등 세상 모든 학문의 황금기를 보고 배우며 살아왔다는 점, 네오르네상스시대였음에 감사할 일이다.

 

교동국민학교앞을 지나 운현궁 담벽과 옛 근무지를 담고 역시 옛거래처 현대건설본사를 지나 창덕궁 돈화문을 지났다. 거기 닭털이 뽑힌듯한 은행나무노목 가슴부위에 누가 심은듯한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매우 이색적. 이방원이 조선 3대(태종) 왕이 되며 경복궁을 나와 창덕궁으로 집무를 옮겨왔는데, 그 정문 돈화문은 북한산 보현봉과 어떤 구도를 이루고 있다. 혹시 풍수지리 때문은 아닐까.     

 

1907년 3월 착공되어 1908년 11월 준공된 대한의원은 일제때 경성제국대학병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적산가옥으로 분류는 안되지만 당시 조선 건축술도 아닐 터, 적별돌과 석재의 건축미에 그 가치가 매우 높아 보인다. 1907년 3월에는 광제원을 폐지하고 그 업무를 대한의원으로 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망우공원묘지에 계신 지석영선생 동상,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 대한제국시대: 우리 역사에서 과연 (고종)'황제의 나라'라는 제국시대를 인정해야하는가는 후세 몫이다. 우리가 스스로 오류를 범한 점은, 조선의 멸망을 1910년 고종,순종때라고 규정하면서 대한제국은 또 뭐라는 말인가.]  

 

그리고 찾은 함춘원터 와 경모궁터 는 같이 붙어 있었던 다른 용도의 사적지로, '봄을 머금다'는 뜻의 함춘원은 성종때 궁궐의 후원용도였고, 경모궁은 영조가 그의 아들 사도세자의 사당인 수은묘를 옮겨 지었다고 하며,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을 수은묘에서 경모궁으로 격상시켜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함춘문만이 함춘원과 관련 유적, 석단은 경모궁유적, 그리고 나오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구내에 경성제국대학 (옛 서울대학교) 본관은 별 건축미가 없어 담지 않았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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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전부 검색 자료

 

◈ 대한의원(大韓醫院,사적 제248호)

 

대한의원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1 서울대학교병원 내. 1907년대한제국 내부 소관의 서양식 병원인 광제원, 학부 소관인 의학교부속병원, 그리고 궁내부 소관인 대한국적십자병원을 통합,설립되었으며, 의정부 직속으로 운영된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이었다. 대한의원의 편제는 치료부, 의육부, 위생시험부로 구성되어, 지금의 대학병원(University Hospital)의 기능을 대신했다.

 

역사

대한의원은 기존 광제원에서 개원했다가 1908년 준공된 본 건물로 이전했다. 이 건물이 위치한 곳은 마두봉 언덕이다. 이곳은 일찍이 창경궁의 외원이었던 함춘원이 있던 장소이며, 창경궁을 조망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이 함춘원지에 1764년 사도세자의 사당인 수은묘를 북부 순화방으로부터 옮겨왔으며, 1776년 정조가 즉위하여 수은묘를 경모궁으로 개칭했다.

 

대한의원 본관은 1907년 3월 착공되어 1908년 11월 준공되었으며, 이후 부속 건물이 세워졌다. 대한의원은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되었다가, 1928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으로 개편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이 되었다.

 

1978년 서울대학교병원 신관이 개원함에 따라 본관 주변의 건물들은 1978~1979년에 모두 철거되었다. 본관 건물은 용도 변경되어 병원연구소로 사용되었으며, 1981년 보수공사를 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의 특징​


건물 중앙의 시계탑
대한의원 본관은 지상 2층, 연면적 1,636.37m2(495평)으로 세워졌고, 이후 연면적 1,500평 규모의 병동 7동·해부실·의학교 등이 건립되었다. 탁지부(度支部) 건축소에서 설계와 감독을 담당하였으며, 건축소 기사(技師)인 야바시 겐키치(失矯賢吉)가 설계를 주관하였다.

 

본관 건물은 정면과 후면이 각각 완전 대칭으로 건축되었다. 적벽돌과 화강암을 주요 자재로 썼고, 지붕은 동판을 덮었다. 형태는 기념성이 강조되는 고전주의적인 특성을 가진다. 건물 중앙에는 시계탑과 현관 포치[2]가 있다. 현관 포치는 석조 아치형 개구부로 되어 있으며, 자동차가 직접 진입 진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시계탑은 상부와 하부로 구성되었는데, 하부는 적벽돌 벽면과 코너의 장식기둥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었으며, 상부는 둥근 지붕(bulbous dome)을 중심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처리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은행 본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과 함께 1900년대 초 서울의 3대 명물로 손꼽혔다. 또한, 1900년대 초기 한국에서 건립된 양식 건물 중에서 고전주의양식에 충실하며, 정교한 벽돌조 구조와 섬세한 장식수법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계탑과 탑시계​


대한의원의 시계탑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시계탑이다. 1880년대 말 경복궁 내 건청궁의 관문각(觀文閣)과 집옥재(集玉齎) 사이에 서양식 시계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4] 그 뒤 1901년 종로 한성전기회사 사옥에도 시계탑이 설치되었는데, 전기회사답게 전기 모터로 구동되는 시계를 설치하였다. 이 건물은 뒷날(1915-1929) 종로경찰서 등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1936년 철거되었고 시계탑도 이 때 함께 철거되었다.

 

대한의원 탑시계는 대한의원 건립 계획의 일환으로 설치되어 1908년 대한의원 건물 낙성과 함께 작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형 공공 탑시계이며,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100% 기계식 시계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몇 차례의 수리를 겪었으나 1970년대 초에는 정상 작동이 어려울 정도로 노후하였는데, 서울대학교병원 신본관 신축을 계기로 1979-1980년 사이 시계탑의 시계를 전자식으로 교체하면서 원래의 기계식 무브먼트는 퇴역하였다. 기계식 무브먼트는 시계탑 안에 보존되어 있다가 2014년 서울대학교병원 제15대 원장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복원 수리를 거쳐 일반에 공개되었다.[5] 시계의 복원과 수리는 대한민국시계명장 정윤호가 담당하였다.

 

대한의원 탑시계는 19세기 말 대형 탑시계의 젼헝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철근으로 만든 평판 프레임(flatbed frame) 구조 위에 모시계(master clock)이 올라가 있으며, 이 모시계는 감아올린 추가 낙하하면서 동력을 얻는다. 탈진기는 핀휠 탈진기(pinwheel escapement)를 채택하고 있다. 모시계의 운동은 사면기어(bevel gear)의 조합을 통해 동, 서, 남 3면의 자시계(slave clocks)로 전달된다. 북면(현재의 본관 방향)에는 자시계가 없었으나 전자식 시계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북측면에도 시계가 증설되었다.

 

시계의 주요 부품은 황동제이며 매우 정밀하게 가공되어 있다. 제조사를 확정할 수 있는 단서는 없으나, 부품의 규격이 인치(inch) 단위라는 것과 당시 국제 정세 등을 감안하면 영국제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 함춘원터, 경모궁터(含春苑址,景慕宮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원유(苑囿).

사적 제237호. 지정면적 4,142㎡.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구내에 있다. 함춘원이 있었던 터이므로 ‘함춘원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나,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석단(石壇)은 경모궁(景慕宮)의 유적이며 함춘문(含春門)만이 함춘원에 관련된 유적이다.

 

궁궐의 후원으로서 성종 때(1470∼1494)에 조성되어 임진왜란으로 파괴되기 전까지는 왕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으며, 이 원유를 가꾸기 위하여 주변의 민가·가묘 등을 거의 다 철거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1623∼1649)에 와서는 그 절반을 떼어서 말을 놓아 기르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다시 1764년(영조 40)에는 이곳에 아들 사도세자의 사당인 수은묘(垂恩廟)를 옮겨 지었다고 하는데, 이때에는 아마도 방마장(放馬場)을 제외한 나머지 땅에다 지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수선전도 首善全圖〉에는 함춘원과 경모궁이 담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그려져 있고, 《동국여지비고》에서도 함춘원이 경모궁의 서쪽 담장과 서로 접하여 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조선 전기까지는 창경궁 앞 동쪽 언덕이 모두 궁궐의 원유인 함춘원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일부는 말을 기르는 곳으로 사용된 함춘원이 되고, 일부는 사도세자의 사당이 되었던 것이다.

 

이 조선 후기의 함춘원에 대해서는 《동국여지비고》에 원장(苑墻)에 설치된 문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어서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즉, 함춘원 동산의 동쪽은 경모궁의 일첨문(日瞻門)이며 서쪽은 좌첨문, 북쪽은 유근문(逌覲門), 동북쪽은 유액문(逌掖門), 동남쪽은 우액문이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을 수은묘에서 경모궁으로 격상시키는 한편, 경모궁에서 시행되는 의례를 정하는 동시에 건축에도 정성을 쏟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함춘원도 새롭게 정비되었던 것이다. 경모궁은 1839년(헌종 5)에 불탔으나 곧 중건되었고, 1899년에 장조(사도세자에게 올린 존호)의 신위를 종묘에 옮기기 전까지는 중요시되었다. 이후 1900년에는 경모궁에 영희전(永禧殿)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함춘원과 경모궁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면서 결정적으로 파괴되었는데, 1973년에야 사적으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호받기 시작하였다. 한편, 사료상으로는 경희궁에 부속된 후원도 모두 함춘원으로 되어 있으나, 경희궁 후원의 본이름은 방림원(芳林苑)이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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