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종로구 숭인동(숭인공원) 정순왕후의 '동망정(東望亭)'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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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 의 비 - 정순왕후의 일화가 전해내려 온 종로 숭인동 '동망정(東望亭)' ⓒ2015060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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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망정(東望亭)은 조선 6대 단종이 그의 작은 아버지(7대 세조)에 의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 가자, 단종(端宗) 의 비 - 정순왕후(定順王后)가 매일 이곳에 올라 동쪽(영월)을 바라보며 님을 그리워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숭인동(崇仁洞) 일대가 한양 내사산의 동쪽인 낙산(駱山)에 속하며, 곳곳 한양과 서울에 쓰인 돌을 캐낸 채석장이었다. 낙산 아래는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는 샘이 있는데, 정순왕후가 시녀와 옷감에 자주색 물을 들여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며, 비구니 승방 보문동의 보문사(普門寺), 숭인동의 청룡사(靑龍寺), 청량리의 청량사(淸凉寺)도 자주 들렀고, 동묘東廟)에 있는 여인시장(女人市場)도 왕후의 일화가 전해온다.
조선 초에 승려들에 의해 축조된 저 아래 청계천7가에 있는 영도교(永渡橋)는 종로구 숭인동(崇仁洞)과 중구 황학동(黃鶴洞) 사이를 잇는 다리로써, 1458년(세조 4) 단종(端宗)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귀양갈 때 그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이 다리까지 따라와 영영 이별한 곳이라 하여 영이별다리·영이별교·영영건넌다리 등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뒤에 붙은 영미교(永尾橋) 역시 영이별교가 변음(變音)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成宗) 때 영도사(永導寺:지금의 안암동 개운사)의 비구를 동원해 돌다리를 놓은 뒤(개축), 성종이 직접 영도교라는 어필(御筆)을 내렸는데, 영도교는 이때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영도교는 서울 외곽의 주요 다리 역할을 하였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景福宮)을 중수할 때 다리를 부수어 궁궐의 석재로 써서 없어졌다. (자료 등)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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