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고향 길, 내 어린 상상 속 '보성 제암산(寶城 帝岩山 807m)' 눈팅산행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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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 뒷산 '관주산(串珠山 296m)'에서 본 보성 웅치 '제암산(帝岩山 807m)'. 읍내 주봉리 관주산 길에서 제암산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20140805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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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전 처리. 장마기간이라 먼 산이 선명하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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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동네 주봉리(珠峰里)는 구슬봉 에서 유래했는데, 일대에 차돌고개 라는 유리재료 석영이 많이 난 곳이기도 하다. 거기 놀러 다니며 수정,자수정도 많이 캤던 추억. 관주산(串珠山, Gwanjusan 296m)은 - 꿸 관, 꿰미 천, 땅 이름 곶 을 써 '구슬과 같은 동글동글한 봉우리'가 이어진 데서 이름되었다. 포털 다음 지도의 곶수산 은 잘못 읽은 글자로 서울포스트가 수정(요청)할 예정 ⓒ서울포스트 |
'보성(寶城 보배로운 성)'은 남도 끝부분에 위치해 바다를 접하고 있으며, 군소재지는 '산으로 빙 둘러져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섬진강 발원지 중 하나가 '제암산(帝岩山 807m)'이니 산,강,바다가 어우러져 음식문화에서는 민물고기,바다고기,육고기 가 잘 균형을 이룬다. 읍내 남산에 해당한 '봉화산(烽火山 411m)'은 해상의 이상징후를 인근 지역과 연락하는 봉화터로 지금도 정상에 돌로 만든 봉수대가 있으며 북쪽에는 관주산(串珠山 296m)이 위치한다.
자료에 의하면, 1895년 관제개혁으로 군 이 되었고, 1908년 낙안군(현 승주군)의 4개 면을 흡수, 1914년 장흥군 지역이던 천포·회령(회천)·웅치의 3개 면을 편입, 1929년에는 순천 관내의 일부 지역을 벌교 로 편입. 1937년 벌교면이 읍으로, 1941년 보성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당시 보성군의 호구수는 253호, 인구는 1,245명(男丁만). 1789년(정조 13)의 전국 인구 통계서 '호구총서'에는 호구수는 4,651호, 인구는 2만2274명으로 돼 있다(임진왜란 당시를 거친 1600년 초 조선 총인구는 300만 정도).
(의병활동,항일운동,한국동란,판소리,문화 등은 여기서 언급할 부분이 아니고) 읍내 최고 먹거리로는 보양탕(補養湯) 이라는 양탕(羊湯)이 유명하다. 옛부터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양고기를 훨씬 쳐주는데 서울지역엔 개고기만 보신탕(補身湯)으로 불티난다. 이해가 안간 사이 중국(몽고풍) 양고기요리가 서울을 점령했다. 유병언도 농장에 흑염소를 키우고 순천 별장부근엔 아예 양고기집이 별장을 관리했다는데, 그 맛과 효능을 안 모양이다. 또 왜 그가 순천에서 객사했을까. 죄를 짓고 '순천(順天)'이라는 하늘의 섭리를 따르고 싶었을까. 하여간 순천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자연미, 성형외과 가지않아도 하늘의 순리대로 양생하면 미인이 된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염소 하니 칭기스칸 을 빼놓을 수 없다. 먼 유라시아 정복에 오르면서 기병의 휴대물자를 확실히 줄일 수 있는 것이 양고기육포였다. 몽고간장과 말린 양고기 몇 근이면 수 개월 원정길에서 살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과 동유럽까지 손에 넣었으니 몽고 양고기는 당시 세계화의 원동력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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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암산을 오르며 대부분 경유하는 동남쪽에선 산 모양이 별것 없다. ⓒ인터넷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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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쪽에서. 제암산 정상은 쌍암봉(雙岩峰)으로 이뤄졌다. 왼 편이 '제(帝)'자 모양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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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쪽에서. 제암산 정상은 쌍암봉(雙岩峰)으로 이뤄졌다. 왼 편이 '제(帝)'자 모양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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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전에도 입선한 조카 양광식 소조 작품 '망상' - 낚시하는 모습, 사람크기 1:1. 작품을 집에 뒀더니 아부지가 다 두들겨 깨셨다며 남은 것을 작업장으로 가져간단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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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월남에서 귀국한 형은 모은 월급으로 전답을 장만하고 진공관식 전축도 샀다. 그때 모짜르트 바이얼린 협주곡을 처음 알았다. 월남 맹호부대 전선에서 병장 양삼용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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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 노동 명봉역(寶城 蘆洞 鳴鳳). 봉황새 우는 동네라는 '명봉'. 명봉역은 여름향기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역사앞 벚꽃나무 풍경이 일품 ⓒ인터넷자료사진 |
'제암산(帝岩山 807m)'은 보성군 웅치면 과 장흥군 안양면 사이에 위치하며, 800m급 이상 산으로는 한반도 최남단에 솟아있다. 북서쪽에 국립공원인 영암 월출산(月出山 809m), 북동쪽에 광양 백운산(白雲山 1218m)이 있다.
최근 연대에 장흥군소재지에서 가까워 표지석 '제암산 장흥군' 때문에 더 알려진듯 하지만, 한반도에 철쭉이 가장 먼저 피는 일림산 과 사자산, 보성녹차밭, 제암산(보성군지역에서는 '제암산 보성군'이라는 표지석을 세우지 않았음) 과 연계된 산행으로 인기다. [군소재 산: 관주산, 대룡산, 동소산, 몽중산, 방장산, 범바위산, 벽옥산, 봉두산, 봉화산, 부용산, 사자산, 오봉산, 일림산, 제석산, 제암산, 존제산, 주월산, 천봉산, 초암산, 활성산, 가마봉, 옥녀봉, 필봉, 형제봉 -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2010.12, 국토지리정보원)]
산 정상은 보통의 경계처럼 양 군이 공유하지만 주인행세를 놓고 보성과 장흥이 신경전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능선에는 사자산과 곰재산이 있고 곰재(熊峙 곰 웅, 재 치)가 '웅치'를 말함으로 굳이 따지자면 보성이 주인이다. 또한 산의 형태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봐도 장흥에서는 아무 형태가 없고 보성쪽에서 봐야 임금 '제(帝)'자 선명하다.
내 어릴적 소를 먹이러, 꼴을 베러, 나무를 하기 위해 다닌 우리동네 관주산길을 오르다보면 서남쪽 웅치에 뭉개구름이 핀듯한 산봉우리가 아스라이 보였다. 지금도, 아주 어릴 때 웅치 시앙(시제)가면서 걷다가 어머니 등에 업히기도 하면서 쾌상리 평촌 뒤산 재를 중절모에 하얀 두루마기 차려 입으신 아버지 뒤를 따라 파란 하늘 노랗게 빛난 억새 산길을 넘은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며칠을 앓았던 것도. 그 이후로도 명절쯤엔 문중에 가끔 다니며 '지암산'이라고 일찍이 알았다. 어느날 작은형에게 물었다. "성(형)! 쩌그 제암산 꼭대기 올라가 봤어?", "얼마나 높아?", "얼마나 넓어?"... 덕석 한 장 깔 정도로 넓다고 했다.
어린 시절 나만 그렇게 감탄했을까. 뒷산에 올라보면 산으로 둘러 쳐진 보배로운 성벽 그 너머가 몹시 궁금해서였을까. 먼 서남쪽 끝 하늘아래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아름다운 봉우리 한 개. 어찌 생각하면 서역 피안의 세계를 꿈꿨던 탓은 아닐까.
이후 작은 형은 군대를 가 파월장병으로, 난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도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가끔 들른 고향, 한때 다원(茶園)에 머물렀지만 그때까지도 그냥 보면 아름다운 구름처럼 이상향의 세계였지 꼭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 산들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산이 주는 묘미를 내 마음속 제암산과 비교해보곤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제암산만큼 아름다운 정상을 가진 산은 몇 없다. 다행히 서울 주변 산은 충족시켜 주지만, 한국의 명산이라는 곳을 봐도 다시는 고생해서 오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산이 많다. 게다가 산정상에 엄청난 크기의 표지석을 세우거나 인공물을 구축함으로써 자연의 본래 가치를 완전히 말살한 경우가 많다. 물론 산행때 작은 풀꽃부터 능선,골짜기, 시시각각도 원거리조망도 볼 게 많아 어디 얼굴만 보기 위함이 아니겠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분명한 것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준 제암산이 내 눈높이를 높여 여기저기 잡산(아무 동네 뒷동산도 명산이지만)에 놀러(?)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해 준 것이다, 건강,정력이 좋아진다고 산에 다닌 사람의 경우는 예외라해도.
오늘도 제암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번 고향길에 아주 산행을 곁들일까 생각했지만 장마 막 걷히고 시간도 충분치 않았다. 대신 여장을 풀고 바로 관주산으로 향했다. 소를 몰고, 나무를 해서 지고 수 번을 쉬어 오르내리던 그 길, 처녀 뫼등이 있는 공동묘지의 무서운 산길은 웰빙 바람을 타고 신작로처럼 변했다. 생면부지의 아낙네들도 안녕하세요,한다. 무슨 볼 게 있느냐고 사진 찍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난 항상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있는 애인같은 산을 경애심으로 우러르고 있었다.
요즘엔 분대,소대단위로 산정복꾼들이 소개한 제암산을 인터넷에서 구경한다. 그들이 산행기를 쓰고 사진을 찍지만 대부분 걸리버 여행기처럼 거인 나라에 가서 거인 콧등만 오를 뿐, 내가 보는 각도와 거리에서 산의 전체적 진면모를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철이 들면서 고향길은 물리적 변화만큼이나 편하지 못하다. 부모님 합제일이어서 더욱 그랬을까, 어쩜 나보다 더 변한 유년의 주변들이 많이 그리워서겠지.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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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호를 타고 한강을 건너. 오전까지 장마영향이라는데 잔뜩 흐려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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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순8경의 하나인 능주 영벽정(和順 綾州 映碧亭)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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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순 이양 송석정(和順 梨陽 松石亭)유원지 하류 지석천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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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봉역 아래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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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전선에도 폐역사가 많다. 시화인들의 단골소재 간이역. 곽재구 시인 '사평역에서'의 사평역 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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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남초등학교(난, 초등학교 안나오고 국민학교 나왔음)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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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 주봉리 남외마을. 南外 라고해서 '남밖에' 라는 뜻으로 북쪽을 가리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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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뒷동산 오르며 본 읍내 와 봉화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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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정비된 관주산 산책로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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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광에 시계도 좋지 않지만 제암산의 멋은 여전하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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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죽 아래 벌써 올벼가 고개를 숙인다. ⓒ서울포스트 |
▲ 동네 뒷산 '관주산(串珠山 296m)'에서 본 보성 웅치 '제암산(帝岩山 807m)'. 읍내 주봉리 관주산 길에서 제암산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20140805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반전 처리. 장마기간이라 먼 산이 선명하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 ⓒ서울포스트
▲ 우리동네 주봉리(珠峰里)는 구슬봉 에서 유래했는데, 일대에 차돌고개 라는 유리재료 석영이 많이 난 곳이기도 하다. 거기 놀러 다니며 수정,자수정도 많이 캤던 추억. 관주산(串珠山, Gwanjusan 296m)은 - 꿸 관, 꿰미 천, 땅 이름 곶 을 써 '구슬과 같은 동글동글한 봉우리'가 이어진 데서 이름되었다. 포털 다음 지도의 곶수산 은 잘못 읽은 글자로 서울포스트가 수정(요청)할 예정 ⓒ서울포스트
▲ 제암산을 오르며 대부분 경유하는 동남쪽에선 산 모양이 별것 없다. ⓒ인터넷자료사진
▲ 동남쪽에서. 제암산 정상은 쌍암봉(雙岩峰)으로 이뤄졌다. 왼 편이 '제(帝)'자 모양 ⓒ자료
▲ 동북쪽에서. 제암산 정상은 쌍암봉(雙岩峰)으로 이뤄졌다. 왼 편이 '제(帝)'자 모양 ⓒ자료
▲ 국전에도 입선한 조카 양광식 소조 작품 '망상' - 낚시하는 모습, 사람크기 1:1. 작품을 집에 뒀더니 아부지가 다 두들겨 깨셨다며 남은 것을 작업장으로 가져간단다. ⓒ서울포스트
▲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월남에서 귀국한 형은 모은 월급으로 전답을 장만하고 진공관식 전축도 샀다. 그때 모짜르트 바이얼린 협주곡을 처음 알았다. 월남 맹호부대 전선에서 병장 양삼용 ⓒ서울포스트
▲ 보성 노동 명봉역(寶城 蘆洞 鳴鳳). 봉황새 우는 동네라는 '명봉'. 명봉역은 여름향기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역사앞 벚꽃나무 풍경이 일품 ⓒ인터넷자료사진
▲ 무궁화호를 타고 한강을 건너. 오전까지 장마영향이라는데 잔뜩 흐려있다. ⓒ서울포스트
▲ 화순8경의 하나인 능주 영벽정(和順 綾州 映碧亭) ⓒ서울포스트
▲ 화순 이양 송석정(和順 梨陽 松石亭)유원지 하류 지석천 ⓒ서울포스트
▲ 명봉역 아래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서울포스트
▲ 경전선에도 폐역사가 많다. 시화인들의 단골소재 간이역. 곽재구 시인 '사평역에서'의 사평역 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서울포스트▲ 보성남초등학교(난, 초등학교 안나오고 국민학교 나왔음) ⓒ서울포스트
▲ 보성 주봉리 남외마을. 南外 라고해서 '남밖에' 라는 뜻으로 북쪽을 가리킴 ⓒ서울포스트
▲ 마을 뒷동산 오르며 본 읍내 와 봉화산 ⓒ서울포스트
▲ 잘 정비된 관주산 산책로 ⓒ서울포스트
▲ 역광에 시계도 좋지 않지만 제암산의 멋은 여전하다. ⓒ서울포스트
▲ 방죽 아래 벌써 올벼가 고개를 숙인다. ⓒ서울포스트
▲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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