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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북한산 화계사(華溪寺)와 둘레길 ③구간(흰구름길)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9/05/05 22:04:25)

▲ 오랫만에 북한산길과 화계사 탐방 ⓒ20190505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희한하게 종이 두 개 달려 있는 범종각. 화계사 종은 1978년 진암 이 만들었으며, 사진 좌측 상부 작은 종 이 보물 제11-5호로 지정돼 있다. 원래 경북 풍기 희방사 봉안용 동종이었는데 1897년 매매를 통해 현재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애기종'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의 이 소종은 대종과 대비돼 앙증맞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량기룡 기자=] 석가탄신일이 있는 5월이면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화사한 연등이 아름답고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퍼지지만, 한쪽에서는 민주화니 노동투쟁이니 하면서 그들의 무자비나 공권력의 무자비가 넘친 계절이기도 하다.

 

연일 진이 빠질 정도의 노동에 시달려 빈둥거리며 쉬려고 했는데, 후배녀석이 북한산에 가자고 찾은 곳이 화계사 다.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 화계사는 조선 중종때 창건돼 고종 때는 조대비(趙大妃, 신정왕후 조씨, 제23대 순조의 세자인 익종翼宗의 왕비, 24대 헌종의 어머니)와 상궁들 출입이 잦아 궁절 로 불렸다고 한다. 현재는 불교대학, 템플스테이, 국제선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자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넘은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신록을 보인다. 녀석이 부처님전에 읍조리는 사이 난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담았다. 2018년 12월에조성불사 가 완료돼 낙성·점안식이 있었던  미륵존불을 뵈었고 어린이날이라 평소보다 붐빈 '전(殿)'안은 살짝 피했다.  

 

범종각에는 희한하게 종이 두 개 달려 있다. 화계사 종은 1978년 진암 이 만들었으며, 상부 작은 동종(銅鐘)이 보물 제11-5호로 지정돼 있다. 원래 경북 풍기 희방사 봉안용 동종이 19세기 후반에 매매를 통해 현재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애기종'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의 이 소종은 화계사 대종과 대비돼 앙증맞다.

 

둘레길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희뿌연 하늘 하 오랫만에 북한산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와 도봉산 등을 바라 보았다. 몸과 맘이 편할 때 또 오를 저 산들. (龍)  

 

 

 

※ 화계사 華溪寺 (자료)


1522년(중종 17)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창건. 원래는 고려 광종 때 탄문(坦文)·법인대사(法印大師)가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삼각산 부허동(浮虛洞)에 보덕암(普德庵)을 창건하였는데, 1522년 신월이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지금의 화계사 자리로 옮기고 법당 3처(處)와 스님들의 요사(寮舍) 50칸을 지어 화계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1618년(광해군 10) 9월 화재로 모두 불타 버리자, 이듬해 도월(道月)이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岧)의 시주를 받아 중창하여 다음해 3월에 완공하였다. 그 뒤 1866년(고종 3) 용선(龍船)과 범운(梵雲)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퇴락한 건물들을 보수하였으며, 1876년 초암(草庵)이 관음전을 중창하였다.

 

1878년 초암이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였으며, 1880년에는 조대비(趙大妃)가 명부전의 불량답(佛糧畓)을 시주했다. 이 무렵 화계사에는 대비와 상궁들의 왕래가 잦아 사람들이 ‘궁(宮)절’이라고 불렀다.

 

1885년 2월 금산(錦山)이 산신각(山神閣)을, 1921년 현하(玄荷)와 동화(東化)가 관음전과 시왕전을, 1943년 다시 시왕전을 중수하였다.

1964년 오백나한전을 건립하고, 1972년 종각을 지었다. 1973년 대웅전 삼존불을 새로 봉안했으며, 1974년 관음전이 소실되었다.
 

현황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대적광전·명부전(冥府殿)·삼성각(三聖閣)·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범종각·보화루(寶華樓)·조실당·백상원(白象院)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이들 불상의 조성 연대는 미상이나 대웅전이라는 현판은 신관호(申觀浩)가 쓴 글씨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1870년(고종 7) 용선과 초암이 화주(化主)가 되어 중건하였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서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 건물이다. 대웅전은 내부천장의 장식이나 건축부재의 장식이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목조건축물이다.

 

2층 6각형의 건물인 범종각에는 불구사물(佛具四物: 불교의 예불의식에 사용하는 네 가지 법구)이 모여 있다. 이 가운데 2층 천장에 걸려있는 동종(銅鐘, 보물 제11-5호)은 본래 경상북도 풍기 희방사(喜方寺)에 있던 종으로 189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종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따르면, 1683년에 사인 스님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300근에 달한다고 한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며,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승려가 공명첩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어, 종 연구와 더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범종각에는 만지기만 하여도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질 정도로 심하게 풍화된 목어(木魚)가 걸려 있는데, 이 목어는 원래 고려 때의 창건사찰인 보덕암에 있던 것으로 매우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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