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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칸트 의 고장, 발트해에 접한 구 독일 땅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넷 상 자료 중심)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8/11/04 12:48:13)

[서울포스트 량기룡 기자=]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 : 유럽역사를 보면 여러 민족이 이동하고 섞여 딱히 어느 민족이나 지역을 구분할 수 없다. 서기 300,400년대에는 중국과 몽고 를 이룬 동양의 흉노족,훈족이 로마 를 정복했고, 이후엔 중앙아시아의 고트족이 로마 를 정복했다. 또 1100년대 칭기스칸 의 몽골제국을 시작으로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원나라는 1300년대 지구촌 인구 1/3을 앗아간 흑사병으로 타격을 입고 명나라에게 망했다.  

 

역시 글을 소개하며 짚어본 칼리닌그라드* 는 대한민국과 전혀 무관하리만치 알려지지 않았고, 그 지역의 존재유무도 한국과 아무 상관이 없을 정도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남극,북극이나 세상끝 어디 보다 먼 지역(아래 지도 중 까만 직선 참고). 칸트 가 독일 철학자인 것을 알아도 프러시아(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 출신이라는 것을 안 한국사람이 드문 것처럼. 그러나 유럽역사에서는 어느 곳보다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현 독일의 모태가 된 프로이센공국의 수도, 그러나 2차대전으로 독일 나치 가 패한 후 연합국(소련)에 빼앗겼고 다시 독일땅으로 되기는 불가능한 곳이다.   

 

[*두산백과 : ... 칼리닌그라드 는 1256년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러시아군의 치열한 접전 지역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도시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칼리닌그라드가 독일령에 속해 있을 당시에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 불리었으나, 1945년 포츠담 회담의 결정에 따라 쾨니히스베르크가 일시적으로 소련으로 이관되었고, 국경 조약 이후 완전히 스탈린 체제 소련령으로 편입되면서 소련의 볼셰비키혁명 원로 지도자 미카엘 이바노비치 칼리닌(Mikhail Ivanovich Kalinin)의 이름을 딴 도시 이름을 정하였다. 본래 칼리닌그라드 의 주민은 독일인이 대부분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방당했다.]

 

해당 글에 네이버 길손 님의 2016년 7월 여행기를 붙인다. 먼 길까지 사진과 글 감사히 올리며 길손님이 저작권을 행사하시려거든 메모 남겨 주십시오.

 

 

로마 는 300년 중반에 황제의 아들 두 명이 동로마,서로마 로 나눈다. 동로마는 비잔틴제국을 건설해 1000년을 지속하다 오스만 투르크족에 망한다. 돌궐족은 6,7세기 서몽골 고원과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투르크계 민족. 서로마는 800년대 프랑크푸르트 를 중심으로 한 신성로마제국(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이 탄생하고, 다시 동프랑크왕국(독일 지역),서프랑크왕국(프랑스중심),중프랑크왕국(로마북부)로 나뉘어 1806년 나폴레옹 에 멸망할 때까지 1000년을 지속한다. 프랑스 의 어원이 된 프랑크왕국은 이렇게 저물고 나폴레옹시대의 프랑스 는 프러시아(영어 Prussia =  독일어 Preußen 프로이센)까지 정복했다. 

 

프로이센 은  원래 발틱해 남동부 해안에 프로이센인들이 살던 지역으로 폴란드인과 독일인들의 지배를 받다가 1701년부터는 호엔촐레른 왕가가 베를린을 수도로 프로이센 왕국을 세웠다. 당시 프로이센 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프로이센 공국으로 구분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지만 프로이센 공국은 독립된 공국으로 취급을 받았기에 나폴레옹 영향을 덜 받았다. 

 

이후 비스마르크 가 나타나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독일통일을 추진하였으며, 더욱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의 승리로 통일을 가로막던 많은 장애가 제거됨에 따라, 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되어 통일이 이루어졌다. 독일제국은 연방제를 채택하였는데, 프로이센왕국은 그 한 지방(支邦)이면서도 제국 전체의 2/3를 점하는 대세력으로서 실질적으로 제국을 지배하였다. 이와 같은 독일·프로이센의 이중 구조는 바이마르공화국에도 존속하였고, 나치스시대에 이르러 연방제는 폐지되었으나 프로이센정부는 존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로이센은 완전 해체되어, 오데르강·나이세강 동쪽은 폴란드령(領)으로, 북쪽 반은 소련령이 되었다. 이 소련령이 지금의 칼리닌그라드 다.  칼리닌그라드 는 대한민국과 전혀 무관하거나 알려지지도 않았고 거기까지 가기에는 세상끝보다 먼 지역이다.

 

참고로 노예라는 뜻의 슬라브족은 현 러시아권민족이지만 4세기 훈족의 침략으로 게르만족 동부(과거 동독지역)까지 로 밀려들어갔고 지금의 동유럽국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유럽의 역사를 바꾼 게르만민족 대이동은 동쪽의 훈족의 침략을 피해 서남진한 이동이었다.   

 

잠깐만 살펴봐도 세계사는 나와 내 국가와 내 민족이 존재하기 위해서 폭력과 전쟁은 정당하다. 비폭력과 평화는 무능한 자의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 자, 현재로 눈을 돌려, 2차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승전국인 미국과 중국,러시아 관계, 연합국의 적이었던 일본,독일과 미국과의 관계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21세기초에 세상은 지각변동을 예고한 징후가 곳곳 산재한다. 당장의 전면전은 없을거라고해도 국지전은 예상되며 무역전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굶어죽을 것이다. 특히 중동의 질서를 어느 정도 강제한 미국의 트럼프 는 동아시아 중국령을 주장한 곳 어디에서 군사적 충돌을 의도적으로 일으킬 가능성도 충분하다.

 

트럼프는 이미 INF - 중거리 핵전력 협정(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을 탈퇴(파기)했다. 이에 지난달 (10월 26일) 러시아 는 유엔총회에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지지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지만 회원국이 부결시켜 무력에 힘을 실었다. 이에 러시아 는 당혹감을 표하며, "미국이 INF에서 탈퇴하고 통제불가능한 핵 잠재력을 구축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며 "오늘의 문제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우리는 훗날 이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이 INF를 파기하고 나토 가 무장하려는 움직임에 러시아 는 칼리닌그라드 에 유럽지역을 조준타격할 미사일 배치를 할 가능성으로 맞섰다. (龍)

 

= 아래 칼리닌그라드 여행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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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 러시아 # 1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 외행-유럽

길손 2016.07.11 02:45  http://blog.daum.net/swany62687/496

 

 

-여행경로-

**인천(6.17)-->모스크바-->칼리닌그라드-->발틱 3국-->상트 페테르부르그-->페트로자보스크-->모스크바-->인천(7.6)

 

-칼라닌그라드(Kaliningrad) 지도-

** 칼리닌그라드 시는 칼리닌그라드 주의 주도이며 발트 해에 면한 항구 도시이다. 주의 인구는 94만 명, 현재 인구의 78%가 러시아 인이며 기타, 독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독일의 영토였으나 독일인 인구 비율은 4만명 정도이다. 지형은 3각형 모양에 동서 200 km, 남북 100 km 이다. 이 도시의 예전의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Koenigsberg)이고 한때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으며 프로이센이 독일과 합병한 후 계속 독일령으로 남아 있었던 곳이다. 이곳 출신으로 유명인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이다.

독일이 패전 후 구소련과 폴란드를 분활하는 과정에서 회담 실무자들이 편의 상 지도상에 일직선으로 죽 그어 국경선을 정한 결과  유럽에서는 일직선의 국경선은 이곳 이외에는 찾을 수 없을것이다.(과거 한국의 38선 같이)

 

- 모스크바 공항 이륙 직후-

** 인천과 모스크바간의 왕복 항공편은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Aeroflot) 였는데 운용되는 항공기는 러시아의 안토노프가 아닌  보잉-777기 였고 모스크바와 칼리닌그라드간의 국내선도 에어버스-320기 였다.

모스크바에서 입국심사에 시비가 붙어 항의하자 창구 직원이 창구를 닫고 사보타쥬를 하는 바람에 입국심사가 늦어지고 칼리닌그라드행  비행편은우리 여행팀 20명 때문에  50분을 늦게 출발했다.  우리 여행팀을 위해 출발할 여객기가 기다려 준것은 고맙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칼리닌그라드 공항 건물-

** 독일의 패망으로 1945 년 이 도시는 소비에트 연방의 도시가 되었고 이듬해 소비에트 최고회의 의장 미하일 칼라닌이 사망한 후 그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소련이 사라지고 주변 영토는 벨라루스와 발트 3국으로 각각 독립을 하였으나 칼리닌그라드만 본토와는 멀리 떨어진 묘한 존재로 남아있다.

 

-칼리닌그라드의 이른 아침 거리-

 

-구 소련 시대의 아파트-

** 구 소련 시대에 지어진 아파트는 시멘트 벽체에 도색이 된적이 없는 듯이 보이고  베란다 난간은 함석으로 둘러쳤으나 녹슨 것들이 많이 보인다. 아파트 벽체는 규격화된  세멘트 패늘을 조립하여 건설한 것으로 이음새가 보여서 조잡스럽게 느껴진다.

 

-프리골랴 江(Pregolya river) 강변-

** 동에서 서로 칼리닌그라드를 가로질러 비스툴라 湖(Vistula lagoon)로  흘러드는 프레골랴 강은 칼리닌그라드에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 사진에 보이는 돔이 있는 건물은 여행팀이 묵는 숙소 카이제르호프(Keiserhof)라는 독일식 이름의 4성(****)급 호텔이다.

 

-프레골랴 강의 다리-

**도심에 있는 세개의 다리 중에서 고전적이어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다. 다른 다리들은 상판만 걸려있는 평범한 새마을 형 다리(?)이다.

 

-교각 위의 가로등-

** 교각은 상판보다 넓고 양쪽 교각 위에는 기념비적인 가로등이 서있다.

 

-주물 장식 다리 난간-

** 난간은 비교적 높은 주물장식의 난간이다. 추모용인 듯한 조화 다발이 놓여 있다.

 

-다리의 서쪽 강변-

 

-다리 위에서 보는 동쪽 풍경-

**왼편 현대식 아파트 뒤로 보이는 검은 지붕이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The Cathedral church in Koenigsberg)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등대 뒤로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걸려있다.

 

-여행팀 숙소 인근의 강변 풍경-

** 왼편 테라스 앞 건물이 여행팀이 석식을 해결한 식당이다. 멀리 여행팀의 숙소와  그 뒷편에 구 소련식 아파트들이 보인다. 위의 사진은 이른 아침, 이 사진은 석양녘의 풍경이다.

 

발티스크(Baltiysk)

발티스크는 칼리닌그라드의 서쪽 끝 발트 해의 비스툴라 만灣에 접해 있다.

1945년까지는 동프로이센의 도시 '필라우'였다.1510년 9월 10일 불어닥친 거대한 폭풍우는 이 마을 앞에 사주를 쌓아 놓아 항해가 가능한 석호(潟湖)를 만들어 주었다. 이로부터 이 마을은 프로이센 공국의 중요한 항구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도시는 1945년 4월 25일 소련군이 완전히 장악하였다.

 

-구 소련의 유물 어뢰정-

** 두 발의 어뢰를 탑재한 이 구식 어뢰정은 지금은 퇴역하여 유물로 전시되어 있으나 북괴군은 아직도 이 소련식 어뢰정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동 프로이센 시대부터"필라우(항구라는 의미)"로 불리던 이 도시는 1946년에  '발티스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52년 부터 소련해군(발트함대)이 주둔하고 있다.

 

-러시아 발트 함대의 기지 '발티스크'-

** 발트함대의 주둔과 더불어 이 도시는 폐쇄된 도시로 남아 있다. 세번씩이나 이 도시를 방문했던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 부둣가에 서 있다. 뒤에는 오래된 등대가 보인다.

 

-부두에 계류된 예인선(Tug Boat)-

 

-각종 선박들-

 

-붉은색 선체의 소방 방재선-

 

-연안 경비정-

 

-정비중인 함정들-

** 거리가 멀고 역광에 정확한 함형을 알 수 없었으나 밝은 모니터에서 확인한 결과 두 채의 부양식 독크(Floating Dock)에 들어가 정비중인 군함으로 보인다.   오른편 독크에 입거한 함정 갑판에는 미사일 발사대도 보인다.

 

-외해(발트 해)로 드나드는 항만의 출구-

**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상이 서 있는 거대한 석축 둘레에 쌓인 붉은 석벽이 앞에 보인다.

 

-엘리자베스(Elizabeth petrovni) 여왕의 동상-

** 이 동상은 발트해로 나가는 항만의 출구가 바라보이는 곳에 10여 m 높이의 성벽과 같은 석축 위에 역시 거대한 동상을 세웠다. 말 꼬리를 비정상적으로 크고 투박하게 과장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재위 1741--1761)의 기마상-

** 기마 자세가 아닌 걸터앉은 자세의 여왕 상에는 7톤의 청동이 소요되었고  말이 비정상적인 근육질로 표현되어 승마용이나 군마라기 보다 유럽 등지에서 농사나 짐 수레를 끄는 사역마 처럼 몸집이 둔하게 조각되어 있다.

 

독일군 묘지

엘리자베스 여왕 동상에서 걸어서도 몇 분 걸리지 않는 언덕 주변에 전사자를 위한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묘비-

** 자연 산림속에 조성한 공원 입구 소로에 나란히 세워진 열개의 판석으로 된 묘비에는 독일군 전사자의 이름과 생존기간(출생일-사망일)이 빼곡히 각자되어 있다.

 

-십자가 조형물-

** 소로 옆 수풀 사이의 넓은 초원에는 세 개씩 쌍을 이룬 화강암 돌 십자가가 나란히 또는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설치미술 같은 예술성도 느껴진다.

 

-십자가의 언덕(필자가 임의로 지은 이름)-

** 추모 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언덕에는 세개의 검은 십자가가 돌무더기 위에 세워져 있고 그 양쪽으로는 판석 묘비 13개가 늘어서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독일식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노란색 들꽃

** 언덕을 뒤덮은 앙징스럽고 예쁜 노란색 꽃이 반갑지가 않다.

 

-십자가 언덕 아래 있는 컨테이너 형의 안내센터-

** 안내센터 안에는 수습된 유품 일부가 전시되어 있고 센터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 접시가 놓여 있다. 센터 벽에는 러시아 어와 독일어로 " 평화를 위한 노력(Arbeit für den frieden)"이란 문구가 있다.

이 공원은 독일과 러시아의 전투중 전사한  영령들을 기리고 영원한 평화를 위해  독일과 러시아가 상호 협력하여 벌이는 사업으로 보인다.

 

-추모공원에서 수습된 유품들-

** 유품들은 독일군의 기관단총과 총탄이 관통된 철모 등이다.

 

-해변 근처 마을의 동화처럼 꾸민 집들과 상점-

 

** 집앞에는 여러나라 각 도시들의 이정표가 있다. 한국의 도시는 없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는 아름다운 신부-

 

-숲속에 꾸며진 아름다운 야외 결혼식장-

 

-해변가로 가는길-

 

-발트 해 해변-

**물 밑에 잠겨 있던 천연 호박이 파도에 밀려오면 원석을 주울 수 있는 해변이다.

 

-발트 해의 파도

 

-칼리닌그라드 대성당(Koenigsberg Dom)-

** 1333 년에 건축된 대성당은 길이 99.3m, 폭 30.2 m, 높이 32 m, 첨탑 높이 57,75 m,이다.  칸트의 박물관을 수용하고 있고 파이프 오르간 연주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대성당 정면-

** 1944년 폭격으로 손상되었으나 1992년 복원을 완료하였다.

 

-대성당 남쪽 벽에 새겨진 칸트의 이름-

 

-대성당 2층의 칸트 기념홀(Hall)-

**왼쪽으로 유리관 속에 칸트의 밀립 인형이 보인다. 그 외에도 칸트에 관한 벽화와 소소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 본당 중앙홀 폭의 크기만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회가 열리고 있있다. 역사 깊은 대성당에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것은  여행객으로서는 우연한 행운이었다.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러 들어갔다가 행운을 잡은 것이었다. 연주자는 파이프 오르간 중앙의 성 모자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단 한 곡의 연주로 연주회는 끝났다.

 

-승리 광장-

**과거 소련이나 연방국가들에서는 의례 볼 수 있는 기념물의 형태이다. 높직한 원기둥 위에 소련을 상징하는 엠불렘이 얹혀있는 탑이다. 기념탑 뒤로 보이는 흰색 건물은 시청이다.

 

-기념탑 위의 엠불렘-

** 엠불렘 중앙에는 크레믈린 위에 CCCP(SSSR=Soviet Soyuz Socialist Republic)이 적혀있고 밑에는 победа(빠베다 = 승리)가 조각되어 있어 이곳이 승리광장으로 불리는것 같다. 

 

- 정교회 구세주 대성당(Cathedral of Christ the Saviour)-

** 러시아 정교회 구세주 교회는 승리광장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다. 기단을 높직하게 쌓고 그 위에 건설하여 교회에서는 승리광장과 주변이 내려다 보인다.

 

-교회 내부-

 

-교회 내부-

**일요일이어서 신자들이 많이 참예하고 있다.

 

-교회내부-

 

-2차대전 전몰자 위령탑-

** 오벨리스크 양편에 진군하는 군인상이 배치되어 있다.

 

-오벨리스크 와  꺼지지 않는 불꽃-

 

-1차대전 전몰자 위령탑-

** 위의 2차대전 위령탑에서 멀지 않은곳에 세워져 있다. 탑 뒷편에는 붉은 벽돌로 축성된 요새가 있다.

 

-부상자를 치료하는  수녀상의 부조-

 

 발틱 함대 박물관

발틱 함대 박물관은 프레골랴 강의 하구 근처 강폭이 넓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퇴역 함정이나

무기들이 개방 전시되어 있다..

 

-해상 초계기-

** 해상에서 이륙과 착수가 가능한 수상기 형태의 항공기 이다.

 

-구형 어뢰-

 

-구형 잠수함-

** 북괴가 도입한 구형 잠수함이지만 크기가 커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탑재가 가능하다. 발티스크는 2차대전 중 U-보트(Unterwasserboot)의 훈련기지였다.

 

-통신선-

** 거대한 위성 안테나와 레이돔을 탑재한 이 배는 때때로 인공위성과 교신을 한다고 한다.

 

-심해 탐사 잠수정-

 

-국경으로 가는길-

**서부 유럽은 몇 나라를 돌아 다녀도 산은 보이지 않고 지평선과 삼림만 보인다.

 

-리투아니아로 들어가는  검문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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