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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큐슈(九州) 여행 - 쿠니사키, 벳푸, 유후인
 장팔현 칼럼니스트 (발행일: 2016/07/02 14:09:25)

[일본] 큐우슈우(규슈 九州) 여행 - 쿠니사키, 벳푸, 유후인
-SPn 서울포스트, 장팔현 칼럼니스트


▲ 퍼시픽블루골프장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장팔현

오늘은 오오이타현 동부지역에 대하여 그동안 여행했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벳푸, 유후인과 달리 골프 치러 갈일 빼곤 거의 갈 일이 적은 쿠니사키시(国東市)에 대하여 적어본다.

필자가 친구의 부탁으로 난생 처음 쿠니사키에 들른 것은 쿠마모토 지진으로 한국인 여행객들 발길이 끊겨 인천공항에서 오오이타공항 행 비행기도 끊겼던 4월 말이었다.

할 수 없이 후쿠오카 공항을 통해 벳푸 경유하여 쿠니사키 퍼시픽블루&리조트 골프장(현재의 정식 명칭은 컴파스블루-저팬(CompassBlue-japan)으로 갔다. 그곳에서 2주간 있었는데 경치가 참 좋았다. 그러나 시골로 적막한 것도 사실이다.

이 골프장은 올해 3월 다시 소유주가 바뀌었다. 이곳은 원래 일본 경제 과열기에 막대한 돈을 들여서 세워진 고급 골프장이었다.

하여튼 이곳은 ‘잃어버린 20년’이란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하던 2009년 처음 한국인 소유로 바뀐 이후 현재도 한국인 소유다. 경매 가격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골프장 새로 만들 때보다 몇 배는 훨씬 덜 들었다 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일본 전국에 2000여개가 넘는 골프장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부도난 곳이 많았고, 이를 한국 자본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여 경제회생을 꿈꾸는 현지 지자체와의 생각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곳은 1991년 63만여 평의 대지에 골프장(18홀)과 50평 크기에 한 채 당 8인은 숙박 가능한 리조트 건물(25채)과 캐디숙소 56채(현재는 캐디 운영 안함) 등의 부대시설과 길이가 무려 145m나 되는 웅장한 스케일의 클럽하우스가 있다. 이 골프장의 설계는 스페인의 세베 바예스테로스가 했다한다. 그의 경험과 이상을 실현코자 최고의 기획력과 자존심을 담아 설계했다는 골프코스로 유명한 이 골프장은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가 1킬로미터 앞에 펼쳐진 멋진 코스를 가지고 있다.

구글(http://www.nipponrentacar.co.jp/freeroad/kunisaki2.htm)

퍼시픽블루골프장

퍼시픽블루골프장

특이한 것은 쿠니사키반도는 벳푸에서 60킬로미터 거리이지만 쿠마모토 지진 때 전혀 지진의 영향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유후인만 해도 지붕의 기와가 떨어져 푸른 천막으로 빗물 새는 것을 방지키 위해 응급조치 된 집이 여러 채 보였을 때였다. 유후인이나 벳푸도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어 울상이었을 때다. 지진 나기 전만 해도 유후인이나 벳푸 지옥온천 등을 가보면 태반이 한국인 나머지가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 순이었었다. 다행히 인천공항에서 오오이타행 비행기는 6월1일 재개되었고, 산사태로 통행금지였던 유후인 근처 고속도로도 5월말 재개통 되어 지금은 원활하다.

유후인 킨린코(金鱗湖)

벳푸 지옥온천

벳푸 지옥온천

벳푸 지옥온천

오오이타공항에서 북쪽으로 골프장까지는 20킬로미터로 20여분이면 도착한다. 남쪽 방향 벳푸까지는 40여 킬로미터이다.

아름다운 골프장에서 바로 보는 히메시마(姫島)는 가까운 곳으로 인구 2천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다. 시간 내어 가 볼만한 곳으로 이미항(伊美港)에서 페리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역사적으로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섬이다. 팜플렛을 보니, 그 옛날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사모하던 가야인이 그리워한 나머지 그 여자를 따라 들어왔다 한다. 7가지 전설이 지금도 회자되는 앙증맞은 작은 섬에서 전통 여관에서 묵으면 자연히 힐링이 될 것 같다.

이미항에서 히메시마는 아침 6시20분 첫배가 뜨고 저녁 7시45분에 마지막 배가 뜬다. 한 시간 간격으로 총 12편이다. 참고로 동절기인 12월1일부터 3월31일 사이엔 마지막 배가 뜨지 않는다. 편도 어른 570엔으로 차도 가져갈 수 있다. 소형 2,140엔부터 12미터 길이의 트럭 11,470엔으로 크기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히메시마(姫島)는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이자나기 이자나미 두 신이 국토를 만들 때 6개의 섬 중 4번째로 낳은 온나시마(女島)가 곧 이 섬이라 한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수인천황 시대에 대가야 왕자인 츠누가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가 시라이시(白石)에서 태어난 처녀에게 구혼하니, 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왕자가 쫓아가 보니 히메시마였다. 이 처녀는 히메시마와 셋츠(오오사카)에 이르러 히메코소(比売語曽) 신사의 신으로 진좌되었다 한다. 현재 히메시마와 오오사카시 히가시나리쿠(東成区)에 똑같은 이름의 히메코소신사(比売許曽神社)가 현존한다. 이 전설을 들으면 후쿠이현 츠루가(福井県敦賀市)의 지명과도 관련 있다. 대가야왕자 츠누가아라시토가 일본열도에 처음 도착한 땅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는데 같은 왕자 이름이다. 아울러 히메시마의 대가야왕자 전설은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오오이타시에 불상을 만든 백제 승려 일라(日羅)에 관한 ‘일본서기’ 기록도 재미있다. 그는 부친이 큐우슈우의 지방호족으로 히노아시키타노쿠니츠쿠리 (火葦北国造:) 관직의 아리시토(阿利斯登)라 한다. 당시 히노아시키타구니의 세력범위는 현재의 쿠마모토 미즈마타시로부터 아시키타군 주변(熊本県水俣市、八代市、葦北郡周辺)에 이르는 곳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일라스님은 백제 위덕왕(재위: 554년~598년)이 불러 달솔이란 벼슬까지 주어 측근으로 삼았다. 그런데 ‘일본서기’ 기록에 의하면, 민달12년(583년)에 신라에 망한 가야를 재건하기 위해 일라를 오오사카로 불러들였다. 물론 백제사신과 함께. 이때 백제는 큐우슈우 지역에 세력 확대를 동시에 꾀하고 있었는데, 일라가 대왕(당시엔 천황명칭 사용 전)에게 이르기를 ‘백제왕자나 요인을 초청해서 임나(가야) 재건과 백제의 큐우슈우 내 세력 확대를 견제해야 한다’ 건의했다.

이에 백제사신은 돌아가면서 오오사카의 백제인에게 일라의 암살을 지시했다. 이에 그들에 의해 583년 12월30일(양력 584년 2월16일) 일라는 결국 죽임을 당했다 한다.

이를 보면, 일라는 그 부친이 큐우슈우 지역에 이주해 살던 가야계 후손으로 보인다. 그가 백제관료로 고위직인 달솔까지 올랐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고, 일본에 돌아와서는 백제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려했다는 점도 그가 가야계 열도 이주민의 후손임을 추정케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제주도는 중국인이 휩쓸고 큐우슈우는 한국인이 휩쓴다’라고. 일례로 2011년도에 한국 자본에 의한 큐우슈우지역 골프장과 호텔 소유는 22개였는데 2016년엔 40곳도 넘는다 한다. 벳푸 자위대 주둔지 옆에도 한국인 소유 골프장이 있고 유후인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관이 있다.

여유를 가지고 큐우슈우 지역 골프장과 바다 그리고 온천 여행하면서 덤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한일 간 역사공부까지 하면 일석삼조의 힐링이 자연적으로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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