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1편 - 황제의 나라 중국, 황제의 신전 천단공원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 ▲ 북경 천단공원의 가을 |
텐진에 도착했을때 비행기 창밖은 우윳빛 안개로 자욱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흡기를 타고 들어오는 공기의 탁한 밀도가 느껴지더라구요.
이러다가는 북경을 여행하는 동안 안개속만 헤메다닐 것 같은 걱정이 앞서더라구요.
출입국 수속장 앞에서 부터는 한국에선 달리던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거북이 걸음입니다.
중국여행때마다 느끼는것인데 이렇게 '만만디'하면 조바심이 납니다.
우리가 '빨리빨리'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확실한가 봅니다.
수속이 느리게 진행되는동안 이번 패키지여행을 같이하는 일행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인천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면면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3박 4일간 동고동락하게 될 식구나 다름없는 분들이잖아요.
우리셋, 딸셋을 포함한 가족 다섯명, 여대생 두명, 한국에 유학중인 일본인 여대생 1명 그리고 아들과 조카를 데려온 중년 여성 가족 셋, 청주에서 온 노년의 엄마와 중년의 딸, 역시 청주에서 올라온 노년과 중년이 섞힌 계원 넷, 이렇게 해서 도합 스무명!
공항대합실로 나오면서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OO여행사라고 씌어진 팻말을 들고 있는 청년앞으로 모여듭니다.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처럼 인사조차 변변하게 나누지 않은 채로 청년은 중국 동포 특유의 억양으로, 지독한 안개로 우리를 태울 버스가 북경에서 넘어오지 못했다며 기차로 이동할꺼라고 간단히 설명을 한 다음 자동차 안테나 같은 막대기에 달린 깃발을 쭉 빼더니 그걸 치켜들로 앞장서서 걷습니다. 그 조선족 청년이 바로 앞으로 나흘동안 우리를 이끌게 될 가이드였습니다.
국내나 해외에서 마치 병아리들처럼 가이드를 쫄쫄 따라다니는 무리들을 만날때마다 우스꽝스러웠는데 막상 그 장본인이 되어보니 쑥스럽더라구요.
텐진 시내를 왕래하는 지하철을 타고 천진역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지하철보다 폭이 약간 작은 인천지하철 비슷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공항보다 더 삼엄한 보안검사를 거친 다음에야 대합실로 들어설 수 있더라구요.
중국에 머무는동안 주요 시설물을 드나들때마다 일상적으로 보안검사가 실시되었습니다.
어지간한 식당에도 휴대용 금속탐지기를 비치해두고 있더라구요.
아마도 최근 빈발하는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도 이제 테러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기차역 편의점에서 18위안을 지불하고 생수 세병을 샀습니다.
우리돈 3200원이니 1병당 1000원이 넘는군요.
중국 물가 싸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중국의 결제 성장률이 우리보다 대략 2.5배정도 됨에 따라 앞으로 중국 물가가 우리에 비해 점점 더 높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텐진에서 북경으로 향하는 고속철도를 탓는데 속도(300km/h)와 시설면에서 KTX와 비슷하네요. 한때 우리나라가 중국 고속철도 그거 다 우리나라가 수주해서 깔게 될꺼고 그렇게해서 돈 무지 벌 것처럼 설레발을 떨었는데 아마 단 한구간도 수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여간 정치인들이란.... ^^
드디어 북경남역에 도착했습니다.
난생 처음 북경을 밟았다는 감격에 겨울 겨를 없이 역을 빠져 나온 우리는 역시 안테나를 쭉 뽑아서 깃발을 나부끼며 앞장서서 걷는 가이드 꽁무니를 쫓아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어라? 널따란 주차장도 그냥 지나치네요. 거짓말 안보태고 한 1 km는 걸었을 것입니다. 역에 한참 떨어진 행길에 우리를 태우고갈 버스가 세워져 있더라구요. 짐을 싣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자존심이 쪼끔 상할려고 하는데 참습니다이~~ ㅎㅎ
버스가 움직이니 다음에야 가이드는 비로소 마이크를 들고 역시 조선족 억양으로 그러나 세련된 서울식 어휘를 구사하며 장황하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냥 흑룡강성 출신 조선족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을 ' 저희 할아버지는 전주 출신으로 1904년 흑룡강성으로 이주하여 쭈욱 거기서 살고 있으며 따라서 저는 전주출신 교포3세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니 그가 조선족이 아니라 한국에 살다가 부모따라 엘에이에 살고 있는 청년처럼 여겨지더라구요. ^^ 이후에 만난 조선족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저는 대구출신 교포 3세입니다.'
'청주출신 교포 4세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것이 대세인가 봅니다.
듣는 입장에선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그렇게라도 드러내 주는 것이 고맙고 가상하더라구요.
맞어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 호주에 사는 사람들만 교포가 아니라 조선족이든, 고려인이든, 탈북자든 다들 우리와 같은 한국인임에는 틀림없으니까요.
그래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들을 대하면서 우월감을 가져야할 이유는 하등에도 없다고 봅니다. 역사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부채의식을 느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복지 예산의 일정부분은 그들을 위해서도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이드가 알려주는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들으면서 눈은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북경 거리를 더듬었습니다.
그제서야 내가 지금 북경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더라구요.
북경이라고 해서 지금까지 다녀간 중국의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전에 없는 풍요로움과 자신감이 엿보였습니다.
그가 천단공원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을때도 저는 줄곳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북경이라고 해서 지난봄 심천에서 본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옷입는 걸로 한국.중국.일본사람을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불과 10년전만해도 당시 중국의 유력한 IT관련 공무원 그리고 종사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나름대로는 입는다고 입었을텐데 입성이 너무 초라해보여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옷이라도 한벌 사주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부자집에 놀러온 가난한집 아이처럼 주눅든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저의 못된 마음은 그걸 은근히 즐기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국인이 중국인에 대해서 그런 느낌을 가진것은 아마도 처음이었겠지만 10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뒤바뀌고 말았잖아요.
당시엔 주먹만한 회사 대표도 중국 한번 다녀오면 성장을 만났네 중국 공산당 서열 몇위 전인대대의원으로 부터 접대를 받았네 하고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지금은 턱도 없습니다.
최근 중국 국제 행사장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VIP통로로 지나갈려다가 제지를 받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장시간 줄을 서서 들어갔다는 것 아닙니까. 중국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 역시 많이 달라졌습니다.
북경이 처음이라 시가지 풍경은 얼마나 바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마음 가짐만큼은 지난 10년동안 천지개벽을 했을 겁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버스는 어느덧 천단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천단공원의 주차장은 차와 인파가 뒤섞혀서 시장통을 방불케 했습니다.
한참 시즌이면 서울이나 제주의 어지간한 관광지들은 중국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중국 그것도 북경에서 손꼽히는 유적지인 천단공원인데 오죽 하겠습니까.
천단공원의 안내판과 지도에 한자와 영어 그리고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위상이 중국에서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중국을 많이 찾아서 그런 것인지, 잡상인들이 우리를 보고 싸다, 싸다 천원 천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싶네요.
출발하기 전에 공부한 바로는 천단공원의 면적은 약 2.73 제곱키로미터로 2.9 제곱 키로미터인 여의도 면적과 거의 동일합니다. 제실 치고는 정말 대단한 규모입니다.
천단 공원의 성격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기준으로 한다면 역대 왕들을 모신 종묘,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대상인 사직단 대한제국때 조성된 현 조선호텔 인근에 있는 환구단 이 세곳이 갖는 의미를 한군데 모아놓은 곳입니다.
이곳은 황제가 직접 제사를 집전한 곳으로 황제의 신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일반인은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것인데 왕정제가 폐지된다음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공원으로 개방되어 비로소 일반인에게도 출입이 허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천단공원에는 그곳을 대표하는 기년전말고도 서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소리가 전달 된다는 신비한 회음벽, 그리고 환구단과 황건전등의 적각들이 배치되어 있고 수령 수백년의 고목들이 즐비한 드넓은 공원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시간에 쫓기는 패키지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는 기년전만 둘러보게 된다고 가이드가 양해를 구하더군요.
오랫도록 머물면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귀를 기울려 그 공간에 숨쉬는 당대 아시아 최고 권력자인 황제들의 자취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패키지 여행이니까.
거기 천단공원이 있구나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요.
공원에 들어서자 무엇보다 거대한 고목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천단공원은 이곳을 조성한 영락제 이래로 명나라, 청나라의 황제들만 출입하여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서 수백년동안 엄격하게 관리된 곳이라서 숲이 이렇게 잘 보존된 것이겠지요. 거대한 건물들 보다 오래된 고목들로 인하여 황제의 신전인 천단이 더욱 신성하게 다가왔습니다.
동문에서 기년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목이 울창한 공원을 지나 긴 회랑을 통과해야 합니다.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열성적으로 합창연습을 하고 있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가 하면 갖가지 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구성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어떤 조직 또는 소조 형태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중국은 한발은 자본주의 다른 한발은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전체주의적인 속성을 유지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은 과도기라서 가능하겠지만 현재 추세로 간다면 중국은 결국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기로에 서게 될꺼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중국은 그런 혼란기를 어떻게 극복해갈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
기년전 동문과 연결되는 긴 회랑에서는 주로 노인들이 카드놀이를 하거나 장기를 두고 있습니다.
마치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훈수를 하는 장면은 역시 중국인답더라구요.
할아버지들 틈에 할머니들이 끼어 있는 것도 이채로웠습니다.
북경사람들에게 천단공원은 여의도 광장이나 파고다 공원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입장료를 받더라구요.
참 파고다 공원도 입장료를 받는가요?
기년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매표소를 통과합니다.
다른 유적지들도 역역에 따라 별도로 표를 구입해야 하더라구요.
하여간 악착같이 입장료를 받는 것을 보면서 여기 사회주의국가 맞어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
매표소를 통과하자 기년전이 거대한 모습을하고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안개가 드리워져 있어 더욱 신비하고 웅장해 보였습니다.
예전에 아테네에서 만난 파르테뇬 신전이 그 위에 오버랩 되더라구요.
그 규모나 분위기는 사뭇 달랐지만 말입니다.
천단의 높이는 약 39미터로 지상 15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과 같은 높이로서 목조 건물로서는 실로 대단한 규모입니다. 천단이 세워진 토대 면적만 해도 거의 1만평에 육박합니다. 곁에서 보니 눈앞에 산이 하나 우뚝 서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북경뿐만 아니라 남경이나 장안등 중국의 도읍지들에는 기년전 같은 거대한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중국의 황재들은 막대한 재원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로 신전을 건축했을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의 역사를 드려다 봐야합니다.
중국은 하나라 이래로 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왕조와 왕과 황제들이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보였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기를 거듭합니다. 원나라,청나라, 금나라등 중국 변방의 이민족이 중원으로 들어와 중국을 통치한 경우도 허다했고 이합집산 즉 여러조각으로 쪼개졌다가 도로 합쳐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지구상에서 역사가 가장 복잡한 나라일 것입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얘기는 이러한 중국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것입니다. 가까운 역사를 보더라도 굶기를 밥먹듯 한 고아였던 주원장이 대명황제가 되어 중원을 호령하고 변방의 한낱 이민족 하급 관리였던 누르하치가 청나라의 황제가 되어 천하를 주물렀습니다. 이들은 시운도 잘타고 났을 뿐만 아니라 용기와 지혜 그리고 대단한 카르스마를 지녔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중국인 스스로 '천하'라 칭하며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하는 중국 황제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좀더 특별한 뭔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신탁(神託)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백성들은 그를 황제로 인정하고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라 여겼을 테니까요.
따라서 천단은 하늘 아들이 하늘 아버지에게 땅의 일들을 고하고 지나간 일의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행해야 할 일에 대한 허락과 더불어 그것의 형통함을 구하는 공간으로서 권위와 권력의 실질적인 원천인 셈입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 제국 중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천단공원을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들, 바티칸의 거대한 예배당들과 비교 한다면 소박하다 싶은 부분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엄청난 규모와 내부와 외부의 화려한 장식들은 작은 나라에서 온 저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
기년전의 기둥도 중국을 상징하는 여느 건물과 마찬가지로 붉은 기둥에 황색문양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색,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은 중국의 오성홍기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하늘아래서 최고의 국가라는 중국의 자부심을 담고 있을 겁니다. ^^
중국의 색과 중국의 자부심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지요.
기년전 남문을 통화하면 천단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마다 꼭 한번씩은 들려서 그 신비로움을 확인해본다는 회음벽과 환구단과 황건전같은 전각들이 즐비합니다. 그곳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발걸음을 돌리네요. 만약 북경 자유여행을 하게 된다면 천단공원은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종묘와 사직단과 환구단부터 둘러봐야겠지요.
유럽이나 일본의 유서깊은 유적지를 들를때마다 그곳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측면 보다 열등감을 자극했던 것들은 그곳의 역사를 간직하며 즐비하게 서 있는 수백년 된 고목들이었습니다. 천단공원의 가장 큰 자산도 마찬가지로 신령함마져 감도는 고목들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유적지 주변에도 그런 고목들이 있었겠지만 일제의 수탈 그리고 말살정책에 반 이상이 베어졌고 6.25 전쟁통에 또 수 많은 나무들이 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나무들이라도 잘 가꾸고 보존해야할 필요가 거기에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을 상징하니까요. ^^
-------------------------------------------------------------------------
자금성과 이화원 그리고 만리장성 올초에 다녀온 홍콩까지 포함한 모티브를 바탕으로 앞으로 4 편에 걸쳐 [중국기행]을 엮어볼 생각입니다.
다소 장황한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지금까지의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데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중국을 잘 모르고 있거나, 막연하게 알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짤막하게 정리해본다는 측면에서 중국 여행을 다녀온 후기에 힘입어 이런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한 두달 더 소요되는 저로서는 다소 지루해질 수 도 있는 작업입니다.
이럴때 읽어주시는 이웃님들의 공감은 제게 큰 위로가 된답니다. ^^
(나종화 객원기자 )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