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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자료1] 한국불교 흐름 - 각황사, 태고사 가 조계사 로 된 이유 [펌글]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4/09/14 20:57:15)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불교는 북방계의 대승불교계이지만, 남방계의 소승불교가 변형된 밀교 등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한반도에도 상륙했고 현재는 SGI라는 이름으로 일본산 불교도 수입 성업하고 있다. 서양종교라는 천주교,기독교는 7개(?)교단 외에도 성공회, 여호와의 증인, 미국기독교라할 수 있는 몰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통일교, 대순진리교, 원불교 그리고 각종 사이비 종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불교종파는 200여개, 한국은 100여개, 이중 법인 등록은 20여 종파다.

조선이후 한국은 근 세기 세계 종교역사에 유래가 없는 기독교의 선교 기적(?)이 일어난 나라다. 이런 가운데 한국불교의 현실은 어떤가, 무엇이 종파간 대립을 이룬가를 봤더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없는 불교계 현실이다.

한반도의 불교는 5교9산(신라,고려초) - 교종선종(양종兩宗, 고려말,조선초) - 선종(조선말,현재) 라고 할 수 있다. 교리를 공부해서 점진적으로 깨닫는다는 교종(敎宗)과 달리, 참선,염불 등으로 '화두(話頭)'을 단방에 깨우쳐 누구나 부처의 경지(부처가 될 수 있다)에 이른다는 사상이 선종(禪宗)이다. 이 가운데 교종 원리는 없어진 것이 아니고 선종에 완전히 흡수되었다고 본다. 목어(木魚)에서 유래한 목탁(木鐸)을 두드리는 행법도 교종이 아니라 선종방식이다. 북방계의 대승불교에서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선종의 탄생은 달마대사(인도 승려 보리달마菩提達磨) 부터라고 한다. 이후 중국에서 6조 혜능에 이르러 발전한 것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자, 현재 선종 만 있는 우리불교 교단이 독신승(조계종)과 대처 가능한 승(태고종 외)이 벌이는 재산과 파벌 싸움 5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우리가 판단할 사항이다.

수집된 자료에 저작권을 행사하실 분은 메모 남겨 주십시오.


Q(질문자): dre****(2003.07.18)

조계사 대웅전의 앞 마당에는 대웅전을 정면으로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습니다. 답변1조회5,584나무 옆에는 부처님께, 오늘도 많은 불자님들이 촛불을 밝히며 등공양,향공양을 올리면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가정의 평안을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계사 대웅전 앞 마당에 있는 큰 나무는 무슨 나무인가요 ?

A(응답자): venuslv(2003.07.18)

제가 조계사청년회에 다니고 있어 조금 소개할까 합니다.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큰 '회화나무'가 있는데, 우리에게 늘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고, 만남의 약소장소가 되어 줍니다. 너무 크고 오래되어 정확한 수령은 모르겠으나, 이 회화나무가 사막한 조계사를 지켜오고 있고요. 대웅전옆의 '백송'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현재 조계사의 중창불사로 앞마당을 넓히고 나무를 이곳저곳 많이 심어서 후에 크게 자라면 과장되지만, 울창한 숲속의 산사처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계사는 산중사찰처럼 명산대찰은 아니나, 도심의 사찰로 그다지 역사도 깊지 않으나, 조계종의 총무원이 있어 우리나라 중심도량으로서의 위치에 있지 않나 봅니다. 무엇보다도 도심한복판에 있어 편리한 접근성이 뛰어나 언제든 찾아가는 사찰로 좋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창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진행중입니다. 현대불교사의 성상을 대변해온 낡은 총무원 건물을 대신해 '불교역사문화관'이 곧 들어설 예정입니다.

* 조계사의 역사

조계사의 창건은 각황사(覺皇寺)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각황사는 원래 고려 말(14C말엽) 현 수송공원(전 중동고등학교 위치)에 창건된 사찰로서 화재로 소실(연대미상)되었다가 1910년 한용운, 이회광스님 등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그 전에 원흥사(元興寺)에 있던 조선불교중앙회 사무소를 옮겨와 한국 근대불교의 새 불교운동을 이어가게 했던 중심 사찰입니다.

당시 일본은 총독부가 조선사찰령이라는 것을 선포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사찰을 그들의 일본사원인 장충단의 박문사(博文寺)에 귀속시키려 하였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해인사 주지 회광, 마곡사 주지 만공, 그리고 용운스님 등이 31본산주지회의를 열게 되었고 그때 만해 용운스님이 ‘조선불교의 개혁안’을 통하여 조선불교의 통일기반인 총본산제도를 주창했습니다.

이어서 1929년 전국에서 모인 104명의 승려가 각황사에서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를 열어 종회법(宗會法)을 제정하였고 그 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로 옮기는 공사를 시작, 이듬해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절 이름을 태고사로 했습니다. 태고사를 창건하면서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정읍에 있었던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殿)을 이전하여 개축하였으며, 1938년 10월 25일 총본산 대웅전 건물의 준공 봉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다시 1941년 조선의 사찰 및 승려를 통합하는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의 인가를 받아 조선불교 조계종이 발족되었고 제1대 종정에 한암스님이 취임합니다. 그러다 광복 후인 1945년 9월 이곳에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일본강점기 때 만들어진 사찰령 및 태고사법 폐지를 결의하고 새로이 조선불교 교헌(敎憲)을 제정합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사찰정화담화문>이 발표되는 것을 계기로 석우, 효봉, 동산, 금오 등의 선사와 청담, 경산, 구산, 탄허, 지효 등의 중견 수좌들은 앞장서서 '왜색화된 불교를 척결하고 비구 스님 중심의 전통 회복'이라는 목표로 불교정화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 와중에 태고사는 조계사로 이름이 개칭되었습니다. 1954년 11월 5일 당시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을 중심으로 정화운동을 펼쳐나가던 비구 스님들이 태고사에 들어오면서 조계종의 이름을 따서 조계사라고 간판을 고치게 됩니다. 이후 비구와 대처 양측의 세력에 따라 조계사, 태고사라는 간판이 서로간에 붙여지게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비구 스님들 중심의 조계종이 성립되면서 현재의 조계사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조계사는 한국불교와 그 대표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계사 법당은 불교 행사의 중심장소로서 거의 일년 내내 법회나 강좌, 제사 등 다양한 의식들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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