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칼바위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담채색 환타지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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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채색 환타지의 주인공은 세개의 뿔(三角) ⓒ20131109 세상을향항넓은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이별의 건배
바위 나종화
불타는 단풍에 뜨거워진 내 속은 어쩌라고
참으로 무정한 가을입니다.
나는 아직 저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저 만큼 가고 있네요.
가을을 따라 길을 나선 바람에
낙옆 몇 개 철부지들 처럼 쫄랑거리다가
제풀에 겨워 멈춰서는 거리에서
예쁜 미소와 사랑 가득한 눈길로
내 가슴 새까맣게 태워놓고
가을처럼 가버린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헛헛한 마음으론
애수띤 7080음악을 안주삼아
한 잔 두 잔 마시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데
부슬비에 젖고 있던 은행나무 노란 이파리가
한 웅큼씩 우수수 떨어집니다.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고
잘 가라며 술 한잔을 권합니다.
이별을 건배하며...
( 2013년 11월 9일 )
환희와 희망을 보여주는 새봄 뿐만 아니라 화려한 단풍잔치가 끝나고 가을이랄 수 도 겨울이랄 수 도 없는 우수와 고독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요즘같은 시절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살아온 관록이 쌓인 그만큼 까닭이겠죠.
옛 추억을 더듬다가 눈물 한방울 주룩 흘러내린다 해도 무슨 대수겠습니까. 새삼스레 그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문득 홀로 걷고 싶었습니다.
홀로 걸어도 청승맞아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산 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광고 사진에 등장하는 북한산 가을 풍경을 찾아서
어느해 가을 제가 승선한 배가 발틱해에 접해있는 폴란드 항구에 입항했을때입니다.
쉬는날 교외로 나가서 플라타너스로 기억되는 아름드리 가로수가 끝없이 늘어선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낙옆은 이미 발목까지 빠질정도로 쌓여 있었지요.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남아있는 샛노란 이파리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습니다.
오가는 차도, 사람도 기척이 없는 그길을 말이 이끄는 달구지가 천연덕스럽게 지나가는 거였어요. 어떤 영화에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가을 풍경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꼭 거기 폴란드 시골길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북한산이 주는 가을빛은 내 마음에 차고도 넘치니까요.
은평 뉴타운 광고사진을 보면서 어쩌면 저리도 북한산의 가을을 잘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바위에서 촬영한 것 같은데 붉게 타오르는 산성 주능선의 단풍을 배경으로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총 사령부를 담은 사진입니다.
저도 그걸 흉내를 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박산행때처럼 새벽같이 집을 나설 요량이었습니다.
늦어도 일출이 막 시작되는 오전 일곱시까지는 칼바위에 올라서야 더욱 선명한 색조를 보여주는 산성주능선 단풍을 배경으로 아침 햇살을 받아 옅은 붉은 빛을 띈 백운대와 만경대 그리고 인수봉과 노적봉, 삼각뿔 암봉의 환타스틱한 풍경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
2013년 11월 9일 토요일
간밤 술자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새벽시간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하는 사진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릉으로 향했습니다. 그냥 걷는 것 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요.
옷깃을 여기며 들어서는 청정(淸淨)한 절길
예전에는 정릉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땐 주로 보국문 방향으로 갔습니다. 가끔은 정릉에서 칼바위능선 안부를 거쳐서 아카데미 하우스쪽으로 넘어가기도 했구요.
그런데 내원암길을 접한 다음 부터는 줄곳 그쪽으로만 다니게 되네요. 내원암까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흠이지만 그 길이 주는 호젓함은 북한산 어느 길 보다 더 마음을 이끕니다. 그래서 이번처럼 홀로 산행을 할때면 저도 모르게 이길을 통해 들어오게 되네요. 당신께서도 느낌 아시죠? ㅎㅎ
언제나 청정(淸淨)이라는 글귀가 씌어진 자연석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느라구요. 그 돌이 제겐 이 세상 어떤 절의 일주문보다 더 큰 경건함으로 다가옵니다.
아~! 너 어리석은 중생
걷는 내내 산길은 적막했고 마음은 한 없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렇게 서너시간만 더 걸으면 해탈을 해서 부처가 되든지 우화등선하여 하늘로 날아갈 것같은 기분이었죠.
능선 등줄기로 올라와서 갑자기 늘어난 등산객들 틈바구니 사이를 걸으면서 그들의 잡담과 앞서가는 어느 연놈( 죄송 ^^ 저보다 훨씬 더 나이 어려보이는 남자와 여자만 지칭함) 이 크게 틀어 놓은 음악소리를 따라가다보니 그 잔잔하던 연못에 끊임 없이 돌맹이를 던져놓은 것 처럼 정신을 차릴 수 가 없더라구요.
대책 뭐 있겠습니까.
앞질러 가는 수 밖에요. 한 다섯팀을 그렇게 통과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오버페이스를 하게 된 겁니다. 칼바위 정상에 이르렀을땐 전에 없이 숨이 턱까지 차 올랐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석은 중생에 불과합니다. 마음이 채워져 있다면 천둥이 치는 한이 있더라도 중심이 요지부동이어야 하거늘...
음악 이어폰으로 들으심 않될까요. 제발...
산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산행 기분을 망칠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요즘 들어 그런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엔 주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그러고 다녔는데 요즘은 30~4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나 아리따워보이는 여성분들까지 그 소음족에 가세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소음 공해입니다. 솔직히 공중도덕 중에서도 가장 상식에 속하는 거잖아요.
지하철에서처럼 [음악은 이어폰으로 들읍시다] 이런 캠페인 스티커라도 산 입구 마다 부착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 한 폭의 그림 같은 대동문 ( 칼바위에서 450mm 줌밍 )
▲ 가을이 떠나면서 색이 빠져나간 북한산이지만, 그대를 바라본 순간 일렁이는 가슴이 잔잔해 지더이다.
▲ 색 대신 혼을 드러낸 당신의 경이로움에 아둔한 중생은 그저 머리를 숙일뿐입니다.
산을 읽어보십시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칼바위 정상은 봉우리가 두 개입니다. 산성쪽 봉우리가 많이 붐비고 있어서 그쪽으로 건너가지 않고 첫 번째 봉우리에 배낭을 내려놓았습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북한산은 불타오르는 화려한 단풍을 죄다 떨구고 담채색으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초겨울의 허허로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아쉽든지요.
최고의 사진 배경을 만날 수 있는 칼바위라지만 단풍은 다 졌지요. 날씨는 우중충하지요. 좋은 사진은 애시당초 물건너 갔으니 욕심을 버릴 밖에요. 그랬더니 오히려 산이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잿빛 하늘아래 유난히 선연한 윤곽을 드러내며 서 있는 북한산을 정독하듯이 찬찬히 드려다봅니다.
오른쪽에선 도봉산이 게으르게 누어서 북한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도봉산이 유순해 보이더라구요. 가까운 사람도 이따금은 이렇게 먼 발치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수봉은 영락없이 김장 무우를 세워놓은 것 같지요?
만경대 능선위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나름 귀엽기도 하네요. 뒤쪽에서 만경대를 다정스럽게 안고 있는 한 뼘 더 키가 큰 백운대도 의젓해 보입니다.
이렇게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일까요?
그런데 정작 만경대는 약간 우쭐거리는 것 같지 않은가요?
날선 검 같은 용암봉을 떡 하니 앞에 차고 말이죠.
노적봉과 백운대 사이 겨드랑에서 뿔뚝 올라온 그대는 뉘신가요.
남쪽에서 보면 그 존재감이 상당한 장군봉이랍니다.
그런데 노적봉은 왜 저러고 있죠?
동봉과 서봉이 서로 힘을 합해서 여차하면 만경대에게 들이댈 기세입니다.
만경대는 고얀놈 하면서 내려보구요.
산이라는 책은 그때그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칼바위에서 바라보는 저 신령스런 삼각뿔 속엔 볼때마다 다른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짬짬히 셔터를 눌러서 얻은 것이라서 사진이 제겐 훨신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더라구요.
물론 볼품은 없지만...
이제부터는 산을 먼저 들여다 보고 마음이 동하면 그때 사진을 담으려구요.
그게 정상이잖아요.
▲ 게으르게 누어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당겨보니 살아있네요. 우이암과 도봉산 주봉들이 이렇게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흔하지 않습니다.
▲ 풍경이 단조로운 남쪽으로는 잘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 450mm(크롭바디라서)에 이르는 망원렌즈가 아니면 잡기 힘든 장면입니다. 칼바위에서 문수봉
▲ 왼쪽 봉우리가 문수봉입니다.
▲ 왼쪽 뒤로 보현봉 오른쪽 문수봉. 산이 푹 꺼진 곳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기엔 꼭 문이 있습니다. 가운데 대남문
산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먼저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자신을 최대한 릴렉스 시켜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풍경들이 하나씩 모습을 보여줍니다.
▲ 들켰지요? 가을이 떠나가면 숲은 더이상 길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정릉에서 보국문 가는 길
▲ 만경대에 등돌리고 선 노적봉
왜 나는 보이는데 너는 보이지 않냐구
산성 능선으로 올라왔습니다.
대동문 못 미쳐서 '뷰티풀임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일찌감치 의상봉에서 산행을 시작했다면 지금쯤 대남문은 오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증취봉에서 식사를 하는 중이라네요. 용암문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곡성쯤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을 요량으로 대동문과 동장대를 휭하고 지나갑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거든요.
곡성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밥상부터 폈습니다.
시장기는 들지 않았지만 비가 더 세차게 내리기전에 일단 먹어 두어야 했으니까요.
걸쳐 입은 패딩 자켓이 비에 젖었지만 빗물에 밥을 말아먹을 정도는 아니라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식사를 마쳤습니다.
대충 추스리고 사진을 담고 있는데 부부인듯한 중년 남녀가 올라와서 휙 둘러보고 괜히 올라왔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총총거리며 내려갑니다. 남자에게 건네는 여자의 말이 내 귀에 와 닿더군요.
" 볼 것도 없는데 저 사람은 뭘 찍고 있는 거지? "
뷰 파인더로 만경대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말했습니다.
" 야이 멍충아 니 눈엔 정녕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말이냐.""
▲ 이것이 아름답지 않다면 무엇을 일러 아름답다 하리요.
▲ 비가 그쳤습니다. 뷰님과 만나기로 한 용암문으로 서둘러 달려갑니다.
▲ 예전 같으면 삼십분 넘게 머물렀을 포토존입니다. 뷰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걸으면서 셔터를 눌른 겁니다. 성의 없는 사진이라도..
뷰티풀임님과의 조우, 악수대신 받은 막걸리잔과 상주 홍시
뷰님은 용암문에서 만나자 마자 다짜고짜 막걸리부터 권합합니다.
안주는 상주산 커다란 장두감!!
뷰님식의 반가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용암봉으로 향합니다.
용암봉에서 내려오는 리지객들이 우리를 위아래로 훝어보며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씩을 건네는 군요.
"신발 그거 신고는 못갑니다."
우리가 그 시간에 비까지 내리는데 용암봉과 만경대 리지를 감행할 것 처럼 보였던거죠.
저 같으면 말렸을 것입니다. ㅎㅎ
용암봉코앞에서 발길을 돌려 백운대로 향합니다.
아까부터 영남알프스에서 병통을 일으킨 무릎이 심상치 않네요.
기분이 급 다운합니다.
" 아놔! 겨울 공룡도 만나야하고, 지리며, 한라도 보듬어야 하는데...."
무릎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입니다.
더 덧날까 싶어서 숨은벽으로 하산하는 것을 포기하고 백운동암문(위문)에서 곧장 산성으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겨울이 오기전에 어떻게든지 이 무릎을 고쳐 놔야겠습니다.
▲ 용암봉 앞에선 뷰님! 내년 봄 만경대 리지를 예약합니다.
▲ 노적봉
▲ 원효봉
▲ 뷰님이 거쳐 온 의상봉과 용출봉
▲ 노적봉 동봉과 서봉 그리고 나한봉, 상원봉, 문수봉,보현봉
▲ 백운대가 비에 젖고 있습니다.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던 산행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습니다.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 넣고 대신 비옷을 꺼내입었습니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만경대 밴드길을 지나서 산성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숨은벽 못지 않게 아름다운 단풍길이지만 지금은 다 지고 없습니다.
뷰님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다보니 가파른 내리막길인데도 그리 지겹지는 않습니다.
대동사앞에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한 무더기의 단풍을 만났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사진에 담기엔 빛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보리사 앞에서 다시 카메라를 꺼내야 했습니다.
비옷과 배낭을 벗어야하는 번거로움을 충분히 감수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한 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2013년 북한산 가을의 마지막 모습을 상징하듯 어둠속에서도,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던 이번 산행입니다.
내원암 절길에서는 고독과 평화를 칼바위 정상에서는 환희를 용암문에서는 뷰님을 만난 반가움을 뒤풀이로 술한잔 걸치고 귀가하는 길에 느닷없이 찾아든 향수와 옛 추억까지...
그래서 꽤 괜찮았던 2013년 마지막 가을 산행이었습니다.
▲ 대동사 주변에 남아있는 북한산의 마지막 가을 풍경
▲ 그대를 2013년 북한산 가을 상징나무로 기억합니다.
산행스케치
▶ 내원암 절길 - 고독이 주는 그 야릇한 평화
▶ 칼바위 - 담채색 유화같은 풍경, 그래서 들뜨지 않고 산을 읽을 수 있었 던
▶ 곡성 - 눈물젖은 빵이 아닌 비에 젖은 밥을 먹다.
▶ 용암문 - 악수대신 막걸리 잔을 건네는 뷰님
▶ 용암봉 - 그 신발 신고는 못갑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리지객들)
▶ 만경대 밴드길 - 서벽밴드는 어디래요?
▶ 대동문앞 - 그래도 한장 담읍시다.
■ 산행거리 : 10 km
■ 산행시간 : 6시간 40분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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