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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명지산] 눈길 이 십리 그 상쾌한 고행의 기록
 나종화 객원기자 (발행일: 2013/02/27 19:12:29)

▲ 푹푹 빠지고 넘어지고 그래도 유쾌했던 소풍같은 고행의 순간(2013/01/2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겨울산에서

이 가혹한
눈보라속에서도
거추장스러움을 훨훨 벗어 던지고
인고의 겨울을
묵묵히 버티고 선 나목(裸木)들의
무채색 매혹!

짙푸른 하늘을
예리하게 가르며
아득한곳으로 흘러 흘러가는
눈쌓인 마루금의
저 신령스런 매혹!

오직 흑과 백으로만
그려진 그림인데
어쩜 이리도 아름다우냐.
보면 볼 수 록 푹 빠져드는
겨울산
이 차거운 매혹!

(2013년 1월 26일 명지산 3봉을향해 가면서...)

▲ 눈이 시릴만큼 짙푸른 상판리 그리고 명지산의 하늘

겨울 명지산 눈길 이 십리

가기도 무지 불편하고 수온주가 최소한 영하 15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점심한끼 먹는 것 조차도 힘들고 한 두시간이라면 모를까. 대여섯 시간 내내 발목까지 어쩔땐 허벅지까지 푹푹빠지면서 눈속을 헤쳐가야 하는 겨울산행!
그런데도 명지산을 가기로 한 2013년 1월 26일을 설레임으로 기다렸다.

왜 우리는 이런 지독한 고행을 꿈꾸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드디어 그날!
진짜루님. 셜리님. 호진님. 미운오리님. 들꽃님과 함께 명지산을 만났다.
예상대로 힘든 산행이었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처녀설위에 남겨진 내 발자국의 환영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또 가고 싶다. 저 설원으로...

▲ 명지산 초입 언덕에 올라 운악산에게 인사를 건넨다. '봄에 보자.'

이번 산행은 상판리를 출발하여 귀목고개로 북동진 귀목고개에서 능선을 따라 동남진하여 명지 3 봉을 찍고 연인산으로 흘러가는 방화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아제비 고개에서 우회전 그러면 도로 상판리에 이르게 되는 마름모꼴 형태의 원점회귀 코스였다.

각 변을 이루는 축선 네개의 분위기와 느낌이 확연히 달라서 뚜렷한 기승전결 [ 起承轉結 ]을 보여주는 한편의 드라마같은 산행이었다.

▲ 십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오니 옛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起) : 귀목(鬼木)고개의 여우 울음같은 상념

FROM: 상판리 TO: 귀목고개

순전히 대중교통만을 이용해서 상판리 마지막 마을에 도착했다.
눈대중으로 봤을 때 삼백살은 더 먹었을 영험해 보이는 소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낙엽송 군락지다.
그땐 늦은 여름이었고 지금은 겨울에다가 십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어제 다녀간 것 마냥 낯익다.

맞다. 그때 억장이 무너진 가슴으로 이 숲속을 찾아 왔었다.
그 와중에서도 상쾌함이 느껴졌었다.

잠자코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은데도 막상 아무데도 갈곳이 떠오르지 않아 무작정 차를 몰다보니 어느덧 이 막다른 산중 여기까지 와 버렸지.
명지산이 내 기분을 알아서 그랬을까.
우박이 섞힌 세찬 소나기에다가 겁나게 내리치는 천둥번개로 나를 맞았었지.

귀목고개까지 이어지는 약 2.5 km의 된비알을 잠시 일행과 떨어져 걸었던 것은 새삼스레 떠오른 그날의 상념이 피어오르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귀목고개에서 그걸 죄다 놓아버렸다.
다 지나간 일인데. 새삼스럽게 뭘.

귀목고개에 귀가 오홉달린 여우가 산다고?
고놈 예쁜 처자의 모양을 하고 달밝은 밤 여기서 넋잃은 어느 님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 고개를 넘어가면 익근리다.
언젠가 거기있는 민박집에서도 하룻밤을 지내고 이쪽으로 올라온 기억이 났다.

나와 명지산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을꺼다.

명지 3 봉 방향으로는 길이 눈속에 묻혀버렸다.
" 이쪽으로 가는 건가요? "
말 수가 거의 없는 호진님이 대답대신 소년처럼 헤맑은 미소를 짓더니 성큼성큼 처녀설위를 앞서 걸어간다.
여기서 부터 지독한 러셀이 시작되었다.

▲ 초반부터 세월아 네월아 그러시면 어떻햐. 갈길이 먼데...
▲ 귀목고개! 귀가 아홉달린 여우가 산다고? 말 됩니다. 옛날 옛적 깊고 깊은 산속이 바로 여기니까요.

승(承) : 빙화(氷花)를 뻥튀기 기계에 넣고 튀기면 설화(雪花)가 된다고?

FROM: 귀목고개 TO: 명지 3 봉

초반에는 눈도 발목 깊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경사도 완만하여 우리 모두 뽀드득 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
"좋네. 좋아"를 연발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명색 1000m 가 넘는 산인데 언제까지 마냥 좋기만 할까보냐.

아니나 다를까.
두 걸음 앞으로 가면 한 걸음은 뒤로 밀릴 정도로 점점 가팔라지는 눈 쌓인 산길.
겨울 설악산에선 날아다니던 준족의 셜리님까지도 지친 표정이 역력한데 막상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니 더욱 힘이 빠진다.
한 2km 올라왔나 싶은데 '에구, 귀목고개에서 겨우 0.6km'

이정표가 잘못되었다고 이구동성 한마디씩.
올라오면서 한 0.4 km 뒤로 밀린 것은 계산 안 한거지.

그래서 슬슬 입에 단내가 날 무렵, 나무 가지 끄트머리에 달려있던 투명한 빙화가 뻥튀기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 마냥 고도가 오를 수록 조금씩 풍성해지더니 마침내 나무 나무마다에 설화(雪花)로 만개했다.
푸른하늘과 설화의 기막힌 앙상불 그 황홀경을 바라보니 눈길을 헤쳐온 피로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도착한 명지 3봉에 일망 무제로 펼쳐지는 겨울산들의 열병식!

국망봉. 백운봉. 귀목산. 연인봉. 운악산같은 포천과 가평에 엎드려 있던 명산 고봉들이 일제히 우리앞에 기립하고 선 이 순간이 바로 이번 산행의 클라이맥스! 그러나 오늘의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첨엔 룰루랄라 했는데 그러나 길이 점점 가팔라지면서 부터는 진땀이 납니다.
▲ 눈과 나무와 하늘과 산이 만나서 그려놓은 가장 아름다운 선(線) - 귀목봉
▲ 멀어질 수 록 짙어지면서 점점 신령스러운 빛을 보여주는 겨울 운악산의 음영...
▲ 아리따운 그대의 이름은 혹시 설매(雪梅)?
▲ 찍고, 담고 가다가 되돌아서서 또 담고 또 찍고.... 사진 삼매경.
▲ 이번에 함께하신 우리들.... 가운데 두분은 이번에 새 이웃으로 만나뵙게 된, 들꽃님(좌)과 미운오리님(우)
▲ 이상 명지 3 봉에서 만난 풍경들

전(轉) : 유쾌한 반전, 그리고 동행의 힘

FROM: 명지 3 봉 TO: 아제비 고개

고생 끝, 행복한 내리막? '
누구나 그런 꿈은 꿀 수 있지만 요즘 드라마의 법칙은 반전(反轉)!
이번 명지산 산행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명지산에서 연인산으로 흘러가는 이 능선위에 어떤 곳은 사람 키보다 더 높을 것 같은 바람이 쌓아올린 눈으로 만들어진 담벼락 즉 설벽(雪壁)지대 통과는 이번 산행중에 만난 최고의 난코스였다.

영하 15도에서 20도 사이는 될 것인데( 아침 최저기온 영하 28도 기록)
다행히 바람도 없고 날씨가 쾌청하여 국망봉때 보다는 점심먹기가 훨씬 나았다.
국망봉에 두고 온 칠초육말님표 솔잎삼겹살과 에이스님표 오뎅라면이 그제사 눈에 아른거렸다.

비박을 하러 왔다는 산객까지 초대하여 청담동에서라면 자리세만 해도 두당 10만원쯤 될 것 같은 전망좋은 레스토랑에서
성대한 설원의 오찬을 즐겼다.

크기는 100리터에 35KG의 배낭을 짊어진 산객께서 맛있는 점심에 대한 답례로 아제비고개까지 앞장서서 러셀을 자청했다.
해본 사람은 안다. 눈길에서 앞장 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뒤를 따라가는 사람조차도 진흙속에 푹푹 빠지면서 무논을 걷는 느낌이 들고 조금 가다보면 허벅지의 근육이 팍팍 땡긴다.

그런 가운데 수 없이 눈구덩이 속에 빠지고 넘어지고 언덕에서 미끌어지고 심지어는 곤두박질까지 치는데도 우리는 마냥 유쾌했다. 이런 고난의 행군중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동행의 힘이다.

▲ 저런 눈길을 걷는 것은 모내기를 앞 둔 무논에서 쟁기질을 하는 딱 그 느낌? 모르는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표현인가..ㅎ
▲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여있을 것 같은 순도 100%의 눈으로 만들어진 언덕들...
▲ 넘어져도 괜찮고, 높은데서 떨어져도 괜찮아. 하여간 재밌다.
▲ 에고 힘들다. 아~ 이 고행의 끝은 어드메뇨.
▲ 뉘엇뉘엇 길어져가는 햇살에 마음만 급하고
▲ 막판 또 마지막 반전, 오메 바람이다. 영하 15도의 바람엔 면도날이 숨겨져 있다는데.....

결(結) :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해

FROM: 아제비고개 TO: 상판리

이 지독한 추위속에서도 이산 저산을 옮겨다니며 비박을 즐긴다는 백팩 산객은 우리들의 우려섞힌 배웅을 뒤로하고 연인산을 향해 홀연히 떠났다.

상판리를 출발할때부터 우리를 따라 오면서 우리가 내준 길을 걷다가 우리가 멈추면 함께 멈추는 것 같아 약간은 얌채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뒤 따라오던 팀이 품앗이를 할 셈이었는지 이번엔 앞장을 선다.
그런 생각을 했던 자체가 그분들에게 약간 미안했다. ㅎㅎ

덕분에 늘 앞장서서 길을 내던 호진님의 발걸음이 내리막길에서는 좀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눈이 없는 생땅을 밟았다.
꼬박 일곱시간만에 생땅(맨땅)을 딛는 그 희안한 느낌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상판리인근의 임도에 살폿이 쌓여있는 눈 위에는 온갖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돼지. 고라니. 멧토끼. 오소리. 너구리. 삵 같은 놈들의 것이다.

하긴 이놈들도 생땅이 드러난 여기가 아니면 저 눈속에서 어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명지산 눈길을 헤멨던 꿈을 꾼것 같은 일곱시간을 회상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사람은 역시 땅을 딛고 살아야해..."



겨울산을 즐길 수 있는 참 소중한 평화

지난 일요일 저녁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침 EBS에서 방영하는 영화 [남부군]을 감상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이었던 [이태]가 겪었던 실화를 영화로 만들어 개봉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그 영화엔 저희가 명지산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한 눈속을 헤메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의복도 변변하지 못했을텐데.
소백산에서 지리산까지 그들의 활동 영역이었던 준령에 휘몰아치는 한겨울 칼바람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 혹독한 추위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빨치산들...
이들 또한 우리네 앞서간 이들의 또 다른 슬픈 자화상입니다.

1.4후퇴 때 중공군을 피해 피난을 가면서 등에 업혀있는 아기가 죽은줄도 모르고 혹독한 추위속에서 망연자실 걷는 아낙을 묘사한 외국 종군기자의 글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아펏는지 모릅니다.

개마고원 장진호에 고립된 미군들이 겪었던 추위는 미군 전사상 여태것 그 유래가 없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수많은 미군을 비롯한 UN군 전사자가 발생했는데 그때 그들을 습격한 적은 중공군이 아니라 개마고원의 눈보라와 추위였던 것이죠.

이 세가지의 사례는 60년 전 바로 이 땅의 겨울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레져활동을 즐기기 위해 그런 혹독한 추위를 일부러 찾아 나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요. 그야말로 평화를 만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화가 앞서간 이들의 피와 죽음의 댓가라는 것을 한 번쯤은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아름다운 상고대가 끔찍한 지옥의 꽃으로 바뀌는 그런 비극적인 현실이
이제는 더 이상 이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지요.

그러니 시대는 부지불식간에 전혀 다른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우리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냉철하게 오늘날의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작은 관심이라도 보태야합니다.
평화 그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힘써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 이번 산행에 함께해주신 진짜루님. 호진님 그리고 셜리님 감사드립니다.
특히 새로운 이웃으로 찾아오신 미운오리님, 들꽃님 정말 반갑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 대접 감사합니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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