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독바위와 첫 만남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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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산을 독바위라 부른다(2011/02/1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북한산은 언제나 새롭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때 정릉에 머물면서 처음 북한산을 접한 이후 서울 출신이 아닌 치고는 나름 꽤 많이 오르내렸다.
지금으로 부터 4 년전쯤이었나 보다.
한 산행 뒷풀이 자리에서 북한산의 거의 모든 등산로를 섭렵했다고 호기를 부렸던 기억이 나는데 돌이켜보면 지금도 얼굴이 후끈거린다. 사실은 그때가 북한산을 향한 걸음마를 막 시작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무수히 많은 북한산의 새로운 풍광을 만나 감격에 겨웠다.
다녀온 길이라 할지라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산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북한산길은 여전히 설레임을 안고 만나는 첫 걸음이다. 그리고 독바위와 국민대 뒷길은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초행길이었다.
▲ 준식이네 농장이라는 이름의 주말농장을 가로질러 독바위를 향하여...
2011년 2월 12일 토요일
영동지역에는 1미터가 넘는 눈이 내렸고 봄이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켯던 대기는 다시 꽁꽁 얼어 행장을 꾸리고 나오니 콧날이 시큰했다. 지난 번 영봉 칼바람에 비하면 대수도 아니지만...
모처럼 관악산으로 행선지를 정했다가 다시 북한산으로 바꾸고 독바위역에서 에이스님과 합류하여 둘이서 단촐하게 선림사 뒤편 독바위로 향했다.
독바위역에서 불광중학교가 나올때까지 400미터 남짓 내려가 거기서 우측 골목을 계속 따라가면 준식이네 주말농장이다. 선림사 지킴터까지는 농장을 가로질러 갈 수 도 있는데 선림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코스다.
독바위 봉우리가 바뀐 사연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양한 설이 난무했다.
독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해서 인근 동네 이름을 독바위골 또는 독박골이라 부르고 있는데 동네 이름의 유래가 되는 진짜 독바위는 지금의 족두리봉을 이르는 것 같다.
예전에 이곳이 시골 마을이었을때 마을 부근에 있는 가장 큰 봉우리 이름을 따서 동네 이름을 정하지 않았겠는가.
조선시대엔 이 일대를 옹암동(瓮岩洞)이라 불렀다는데 옹기모양을 뜻하는 옹암은 족두리봉을 이르는 것 같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독바위다.
그런데 후대에 이것을 매바위라는 의미의 응암(鷹岩)으로 잘못읽어 수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제법 타당하게 들린다.
이 마을이 도시로 편입되면서 독바위(족두리봉)와 마을간의 감성적 거리가 벌어지면서 원래의 독바위는 족두리봉으로 바뀌고 그 대신 선림사 뒤쪽에 있던 이름없는 바위봉우리를 독바위로 부른듯 하다.
기자촌 능선에서 이 독바위 봉우리를 보면 다른 능선과의 연결이 뚜렷하지 않고 ( 기자촌능선의 지능선이다.)
연결되지 않고 덩그러니 홀로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독(獨)바위라 할 수 도 있겠다.
어쨋든 인근의 지하철역도 독바위역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독바위로 부르고 있고 선린슬랩.오산슬랩 그리고 폭포슬랩이 있어 리지산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독바위라는 정체성이 명확한 봉우리가 되었다.
▲ 선림 슬랩 진입로에 눈이 녹지 않아 에이스님도 초행이라는 바위길로 올랐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오산슬랩도 아닌 무명길이었다.
▲ 선림슬랩 상단! 뽀송뽀송한 봄날 다시한번 만납시다.
▲ 어느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봤는데 직접보니 인상 깊다. 음각이 아닌 양각이다. 붙었겠지. 바위를 저토록 쪼아대었던 집념이라면....
▲ 마치 사구(沙邱)같은 느낌이드는 낙타등 이다. 이제 대머리는 은퇴시켜 드립시다.
▲ 총사령부가 등장하면 향로봉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 관봉(알봉)과 비봉이 지척이다.
▲ 응봉능선 막바지 오늘따라 왜 저리도 험상굿은 표정을 하고 있을까. 케이블카 때문이 아닐까?
▲ 위에 올라왔더니 아까 못찾았던 김신조굴이 나 여기있다는 듯 멀리서 빼꼼한 모습을 비쳤다.
▲ 에이스님은 관봉을 좋아하신다. 전망도 좋고 볼더링도 할 수 있어서 '오늘은 춥다. 어디가서 밥이나 먹자'
▲ 관봉에서 보는 향로봉은 한층 순해 보인다. 사람이나 산이나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 비봉의 명물 코뿔소 바위 누구나 사진 한장 쯤 담아보고 싶은 곳이다.
▲ 연락이 안되 서로 애태우다가 우연히 비봉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운해님 일행
[바위의 역사산책]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문화적 자긍심의 상징이다.
고고학에 있어서 비문 해석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매우 난해하기 때문에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에 걸쳐 확실한 해석이 이루어 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20세기 초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옛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함무라비법전비를 발견하고 이를 해석한것은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견될만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손꼽힌다.
당대에 기술된 사료가 유실되어 고려시대에 기록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일본서기. 사기. 삼국지연의같은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서를 활용하여 퍼즐을 맞추듯 삼국시대의 역사를 꾀 맞추고 있는데 진흥왕 순수비나 광개토대왕비같은 비문은 참고하고 있는 사료의 정확성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어 우리나라의 고대사의 지평을 넓히는 획기적인 역할을 한다.
그동안 이름을 모르는 몰상비라 하여 그저 산정에 있는 이름없는 비석으로 치부되어 오랜 풍화작용으로 글자가 마모되어 판독 자체가 힘들었느데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조선 후기 학자들이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진흥왕 순수비의 전모가 밝혀진것은 매우 각별한 의미갖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과 비문 해독작업은 서구의 근대 선진 문명이 이룩한 성과였고 서구열강들과 서양 따라하기에 집착하는 일제는 자국의 문화 국력을 자랑하기 위해 그것에 대해 대단한 열의를 쏟았다.
그 보다 훨씬 이전 역사를 밝히려는 순수한 뜻을 가진 우리 학자들에 의해 판독이 거의 불가능한 비문을 해석하는 성과를 거둔것에 대해서는 대단한 문화적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우리가 단순히 서예가 또는 금석학자로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은 종합 학문의 소양을 갖춘 고고학자였던 것이다.
그의 지난한 연구를 통해 영남지역의 작은 소국에 불과한 신라를 가야를 병합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쳐서 영토를 무려 3 배 이상 넓히고 그 국경을 돌아보며 순수비를 세운 신라 24대 진흥왕의 업적이 사실(史實)로 드러난 것이다.
순수비에는 이쪽 영토를 넓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유신의 할아버지 이름도 등장하고 북한산 석굴에서 ( 아마 문수사 석굴인듯한) 도를 닦고 있는 도사에 기록도 있다고 한다. 북한산 비석의 원형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20년만에 올라본 비봉 북면
처음 비봉을 오른 것은 서울에서 생활을 막 시작한 90년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동창들 여럿과 함께 비봉을 찾았는데 겁없는 촌놈들이었던 우리들은 한명도 열외없이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면서 비봉 최정상까지 올랐었다.
그때 얼마나 후달거렸든지 그 끔찍한 기억때문에 비봉 만큼은 외면하고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몇 년전 공단직원이 상주하면서 본격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서면으로도 어렵지 않게 올랐고 최근 비봉 오름길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굴통리지를 통해 오른적도 있는지라 20년만에 다시 찾은 비봉 북면 코스가 이젠 쉬울꺼라 생각했는데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만만하지 않다.
더우기 요즘같은 겨울철엔 군데 군데 얼어있어 발 딛기도 마땅치 않았다.
▲ 저 승가봉과 보현봉 사이로 케이블카가 다니게 될것이다. 북한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입을 닫는다면....
▲ 승가봉에서 서면 서울이 참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수 있다. 북악산 인왕산 그리고 남산이 한눈에
▲ 지나갈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나월봉 상원봉 문수봉의 앙상불
▲ 진정으로 산을 즐기시는법을 터득하신 80대 산객이 차분하게 문수 남면을 오르고 계신다.
80대 산객이 주신 교훈
문수봉 남면으로 접근하는 길부터 혀를 쏙 내밀고 올라야 할만큼 된비알이다.
비록 쇠 난간에 의지해도 남면엔 직벽에 가까운 곳도 있어 상당한 근력이 필요해 젊은 사람들에게도 버거운 코스다.
묵묵히 앞서 가시던 어르신이 우리에게 길을 양보해 주셨다. 헉헉거리고 오르고 있는데 어르신은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우리뒤에 계셨다.
문수 남면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비로소 그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면서 연세가 팔십이 넘으셨고 북한산을 20년째 찾고 계신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곱게 살다 가고 싶어 열심히 산을 다닌답니다."
어르신은 지리산 한라산등 전국의 명산도 대부분 혼자 다니셨다고 했다.
" 산을 오랫동안 즐기려면 또박또박 천천히 다녀야해요"
그분을 닮고 싶은 우리에게 주신 간결하고도 심오한 교훈이었다.
어르신 곱게 그리고 오래오래 사시기를......
▲ 보현봉 정상에 5층짜리 건물을 짓고 스카이라운지까지 만드시겠다구?
▲ 보현봉은 멀리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 같은 서울의 산들에 있어서 아버지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 서쪽으로 한참 누운 햇살에 반사된 문수봉은 한껏 상기되어 보였다.
▲ 311일째 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장 김병관씨를 만났다.
지금 추진현황은 어떤가요?
김병관씨 답변
국민들의 공감대가 확산되어 감에 따라서 추진의지가 수그러진듯 보이지만 경계는 늦출 수 없습니다.
만약 추진되면 보현봉 정상에 5층건물과 함께 술집까지 들어서게 된답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백운대의 혹한을 견뎌낸 그의 결연한 의지 앞에서 고개가 숙여졌다.
블로그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등의 정치적인 의사표명을 가급적 자제하려한다.
비 경제적인 사안에까지 경제논리를 앞세우고 우리 고유문화와 전통을 무시하는 부분이 확연하게 드러날때마다 신랄하게 댓거리를 하고 싶어도 참았고 앞으로도 그것은 유지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니 한놈쯤 떠들어 봤자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보현봉 케이블카를 기여히 밀어붙힌다면 내지를 수 있는 힘껏 떠들어 댈것이고 보현봉으로 쫓아가는 것도 불사하겠다.
북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뜻을 모으겠다.
4대강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몇 푼벌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이쯤에서 그만 두기를 바란다.
▲ 임금이 북한산성으로 들어갈때 사용했던 대성문 -가마를 탓을까. 말을 탓을까 걸어갔을까.
▲ 북한산에서 가장 편안한 길! 형제봉능선
▲ 아~보현봉 언론에 그런 문장 등장 안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저 봉우리위에 5층건물이라니 상상이 안된다.( 형제봉 능선에서)
독바위에서 시작해서 향로봉 서능. 관봉. 비봉. 문수봉. 대남문과 대성문 형제봉 능선을 거쳐 국민대 방향의 북악탐방로를 타고 내려오는 여섯시간동안 처음만난 독바위가 좋았고, 향로봉 서쪽으로 뻣은 기자촌 능선의 구조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20년만에 북쪽 등산로를 통해 비봉을 올랐고, 80대 어르신으로 부터 좋은 교훈을 들었고 대남문에서 북한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하는 김병관씨를 만났던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그 길을 에이스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잠시 조우했던 운해님 그리고 일행분들께 감사드린다.
변변치 않은 사진과 글을 우정으로 찾아와 인내심으로 갖고 봐 주신 이웃님께도 감사드린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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