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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자료] 인류 최악의 종족전쟁, 독일 vs 소련 (독소전쟁)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5/10/11 21:05:55)

[서울포스트 량기룡 기자=] 세계사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격언인 있듯, 제2차세계대전을 잠깐 들여다 보았다. 동맹국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일으킨 이 전쟁은 크게 일본이 주도한 아시아 쪽 태평양전쟁과 독일이 주도한 유럽 쪽 독소전쟁 으로 나뉜다.

그 중 독소전쟁은 우리에게 별 무관하기 때문에 등안시 된 면도 있지만, 인류전쟁사에서 최대,최악으로 꼽힌다. 공산당(스탈린)을 혐오했던 파시스트(히틀러)가 유럽지역을 어느 정도 평정한 후에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한 이 전쟁은 종족말살전쟁으로 볼 수 있다. 역사상 이처럼 대규모 전쟁은 중세의 십자군동방원정(전쟁)으로,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 종교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크지만 원칙적으로 이 역시 종족전쟁이다. 세계에서 세력을 넓히는 식민지 전쟁은, '식민지(colony, 植民地) - 정복국가에 자국 민족 씨를 뿌리는 행위'에서 말해주듯 엄연한 '민족'을 바탕으로 한 전쟁이다.

앙갚음으로 강간을 적극 방조한 소련, 독소전쟁 후 독일에선 많은 독일계 슬라브인, 슬라브계 독일인이 태어났다. 독일의 전 수상 헬무트 콜 의 첫 부인 한네로레 콜 여사도 1960년 결혼한 후에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 2001년 자살했다. 1944년 베를린에 침공한 소련군에 모녀가 참화를 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졌다. 한네로레(하네로레)는 헬무트 에게 쓴 이별편지에서, 혼자 살아서는 안되며, 재혼해라,고 썼으며 헬무트 는 2008년 재혼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을 보고 "만약 이 세상에 지옥이 존재한다면 지옥은 바로 여기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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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할만한 아래 글

[독소 전쟁]


http://www.instiz.net/pt/2753694


1941년 6월 22일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대략 4년동안독일과 소련 양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제2차 세계 대전의 동부전선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그 규모와 피해가 너무나도엄청나기에 '독소 전쟁'이라 따로 표기하고있다.

'인류가 치른 무수한 전쟁 중 가장 거대한 규모로 치러졌으며 동시에 최악의 피해를 남긴 전쟁."
"전쟁이라기 보다는 인류 살육의 현장에 가까운, 말로 형용하기 조차 힘든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전쟁."

그야말로 국가의 모든 기능을 투입한 총력전이라는 단어를 현실화시킨 전쟁이다. 고대부터 계속 반복되왔던 게르만족과 슬라브족간의 종족 전쟁의 궁극적 버전이라 볼 수 있다. 양측 모두 한 전투가 있을 때마다 몇십, 몇백만의 물량을 투입했기 때문에 엄청난대규모로 치러졌으며 그에 따라 인명 피해도 대단히 컸다.

소련은 독소전쟁 중 무려 민간인 포함 2900만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 5000만명의 60%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하루 평균 2만명 이상이 죽었다고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다. 독일 또한 이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에서전사한 독일군 500만명 중 400만명이 소련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과연 독일이 소련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멸망해버렸을까 하는 의심마저 품게 만드는 수치다.

독소 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
https://www.youtube.com/watch?v=j4I03GxcO_Q




2. 참고할만한 글은 아래 글

[인류 최악의 종족전쟁, 독일 vs 소련 (독소전쟁)]

"2차 대전은 소련과 독일의 전쟁이며 나머지 참전국은 그저 들러리일 뿐"

출처 (주)충연기획 | 치코
원문 http://dhaliaxjapan.blog.me/120206207626


인류가 탄생한 후 종족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번 있었지만 정말 순수하게 해당 종족의 보존 및 영토 확장, 그리고 발전을 위한 전쟁이라고 한다면 2차 세계대전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독일 vs 소련 (게르만 vs 슬라브) 즉 우리가 독소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이다.

소련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2차 대전의 주도권을 연합국으로 돌려놓았고 종전 후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2천9만 명이나 희생되는 비싼 대가(참고로 2차 대전 희생자는 약 5천만 명)를 치러야만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2차 대전에 대해 "2차 대전은 소련과 독일의 전쟁이며 나머지 참전국은 그저 들리러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인의 영토를 우랄산맥 서부까지 넓히자"

2차 대전 직전 독일의'아돌프 히틀러'는 1차 대전과 같은 전선의 2중화를 막기 위해 소련과 이른바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었고 이후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합의하에 폴란드를 침공한다.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 후 서부전선 침공에 전력을 다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까지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스탈린도 독소불가침조약을 이용했다. 폴란드 동부를 차지한 스탈린은 혹시 모르는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발트 3국을 차례로 점령하기에 이른다.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대부분을 차지한 히틀러의 꿈은 이제 불가침조약을 채결한 소련 침공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을 통해 독일인에게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이른바 '레벤스라움'(독일어로 공간이라는 뜻)을 우랄산맥 서부, 즉 소련으로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레벤스라움에 대한 꿈은 히틀러가 세계정복 후 독일에 세우려고 했던 대도시 '게르마니아'의 조형물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기회만을 엿보던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 영토로의 침공을 개시한다. 강대한 적 프랑스를 '전격전'을 통해 불과 1주일 만에 무너뜨린 바 있는 히틀러는 이번에도 만슈타인, 구데리안과 같은 기갑 전의 명장들을 통해 속전속결로 모스크바까지 함락하고자 했다. 이 작전을 붉은 수염이라는 뜻으로 '바르바롯사 작전'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종족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소전의 막이 올랐다.

독일의 진군은 멈출 줄 몰랐다. 독일은 무방비 상태였던 소련군을 무차별로 살육하고 포로로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했다. 여기에 소련 제2의 수도인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그)를 목표로 한 북부 군은 핀란드가 동맹에 가담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고 어느새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기에 이른다.[사진 : 독일군의 포로가 된 소련군]

스탈린은 언젠가는 히틀러가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으로 처들어 올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폴란드와 발트3국을 점령해 완충지대 정도만 만들었지 직접적인 소련 침공에 대한 어떠한 작전도 세우지 못 했다. 소련은 서부전선에서의 계속된 전투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던 독일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후퇴하기만 했다.


길어진 병참선이 전격전의 발목을 잡다

전격전의 장점은 바로 속도다. 프랑스를 불과 1주일 만에 함락시켰던 히틀러는 소련도 전격전을 통해 단 기간에 함락시키려 했다. 하지만 소련은 엄청난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였고 내륙으로 진군하면 진군할수록 병참선이 길어지면서 보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매서운 추위가 독일군을 괴롭혔으며 동토가 녹다 얼어붙다를 반복하면서 땅이 진흙탕이 되었던 관계로 탱크와 군인들이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없었다. [사진 : 넓고도 넓은 소련의 영토, 히틀러는 소련을 너무 작게 봤나?]

히틀러도 이쯤에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되자 히틀러는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부 군의 진군을 잠시 멈추고 전력을 비축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히틀러는 당시만 해도 1942년의 봄이 되면 금방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소련이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 되었다.

여기서 히틀러는 또 하나의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석유자원이 풍부한 소련 남부 코카서스 지역 침공이다. 이곳을 점령해 독일에 부족한 천연자원을 손에 넣자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목표였으며 아프리카에서 선전하고 있는 롬멜과 중동에서 합류하자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히틀러는 봄이 되자 모스크바에 집중되어 있던 중부 군에게 남쪽으로 진군하라고 명령한다.

24시간도 안된 소련군의 생존 시간

히틀러는 볼가강 유역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현재의 볼고그라드)를 점령하라고 지시한다.

독일은 스탈린그라드를 확보한다면 코카서스로 가는 안전통로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천연자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의 이름이 들어간 도시를 점령한다면 소련인들의 자존심에 큰 데미지를 줄 수도 있다. [사진 :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독일 병사]

물론 소련에게도 이 도시에서 일어날 전쟁은 중요했다. 소련의 장군 로코모프스키는 스탈린에게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소련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상황의 심각함을 알게 된 스탈린은 장군들에게 "도망가는 병사들은 모조리 총살하라"고 명령했고 이로 인해 소련 병사들은 오로지 전진만 하게 되었다.

소련에게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모 아니면 도'였다. 얼마나 치열했는지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소련군 생존 시간은 24시간이 안되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스탈린은 1942년 7월에 내린 이른바 명령 227호를 발동하는데 명령 227호는 "상부의 허가 없이 자리를 이탈하면 무조건 사살해라"는 내용이었다. 소련 병사들은 이리 죽어도 저리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고 이는 기세등등한 독일의 기세를 압도했다. 소련은 이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하기 위해 극동 시베리아에 있던 병사들은 물론 수병들까지 동원했다.

소련에게 승리를, 독일에게 패배를 안겨준 이는 바로 소련의 장군 '게오르기 주코프'다. 주코프는 독일을 스탈린그라드에 몰아넣은 뒤 포위해 궁지에 몰아넣는 천왕성작전을 통해 전세를 소련에 유리하게 만든다. 여기에 독일의 6군 사령관 파울루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뒤 "더 이상 독일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 수 없다"면서 주코프에게 항복을 한다. 이후 승리의 여신은 서서히 소련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사진 : 소련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주코프 , 훈장 보소 ㅎㄷㄷㄷ]

히틀러는 절대로 스탈린그라드를 양보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전장으로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들을 수송했지만 우랄산맥 건너에 위치한 군수공장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소련의 어마어마한 생산량을 이겨낼 수 없었다. 히틀러도 차마 멀고 먼 우랄산맥 아시아 쪽의 군수공장들까지 폭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의 승리로 끝난다.

2차 대전 최악의 전투라고 불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한 소련은 2차 대전의 전세를 연합국의 편으로 돌려놓았고 이후 파죽지세로 서쪽으로 진격해 미국, 영국보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하게 된다. 

핵 전쟁보다 끔찍한 전쟁

독소전이 왜 세계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불리는지는 수치가 말해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으로 민관군을 포함해 2천7백만 명이 사망했으며 전사자만 1천만 명을 기록했다. 독일 역시 350만 명의 전사자를 낳았다. 참고로 일부에서는 소련이 전사자의 수를 줄였다고 주장하며 원래 주장인 2천9백만 명이 아닌 5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말이 맞는다면 독소전의 기간 동안 남한 인구가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다. 군사전문가들은 핵 전쟁이 나도 이 정도의 사망자가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아무튼 독소전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1. 독소전에서 소련은 민관군을 합해 2천9백만 명을 잃었다. 이는 2차 대전 사망자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2. 독소전 전쟁 기간을 독소전 사망자로 백분 율하면 매일 2만 명씩 사망했다.
3. 역사가들은 핵 전쟁이 나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독소전은 인류 탄생 후 가장 비극적인 전쟁으로 해석한다.
4. 이 전쟁을 통해 연합군의 승리, 그리고 히틀러의 패배가 결정되었다.
5. 2차 대전의 메인 전쟁은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아니라 스탈린그라드전투다.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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